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75
“이건…….”
“……이놈.”
남궁천과 사도학이 식은땀을 흘렸다.
매향과 장삼태가 질질 끌고 온 이를 바라보며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천하의 오황, 틀림없이 방노백이 분명할 텐데, 생겨 먹은 꼴이 파락호들에게 두들겨 맞은 자 같았다.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단우현을 향했다.
제갈운과 제갈연마저 어이없는 표정이 역력했다.
두 사람은 단우현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리소문없이 걸황 방노백을 두들겨 팰 정도라고는 조금도 생각을 하지 못했던 탓이다.
“아는 사이냐?”
단우현이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방노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표정에는 불쾌감이 역력했다.
필시 둘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방노백의 괄괄한 성격을 알고 있는 이들이 저마다 속으로 혀를 찼다.
물론 방노백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단우현 또한 못지않았으니, 필시 두 사람 사이에 충돌이 있었을 거다.
누가 먼저 잘못을 했든 간에, 단우현의 성질을 건든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처, 천하오황 중 한 분이신…… 방노백 어르신이세요.”
남궁소혜가 어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입에서 방노백의 정체가 나오자, 장삼태와 매향이 서로를 바라보며 기겁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렇게 대들었지, 정체를 알았으면 알아서 고개를 숙이며 손바닥을 비볐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하는가?
헛기침을 하며 애써 외면했다.
“오황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맞아야 정신 차리는 놈들밖에 없는 건가?”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사도학과 남궁천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왠지 모를 가시가 돋아 있었다.
삐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단우현이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지 않나?”
“허험-! 뭐…… 사람 성격마다 다르니 말이야. 그리고 이 거지 놈은 원래부터 성격이 지랄 맞은 걸로 유명했지.”
“하하! 맞습니다요. 아까 처음 봤는데 사 어르신만큼 더러웠습니다요!”
장삼태가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 사도학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고 황급히 입을 닫았다.
괜한 말을 꺼냈다며 주둥이를 툭툭 때렸다.
“헤헤헤, 무…… 물론 사 어르신이 훨씬 좋습니다.”
“염병…….”
사도학은 불끈 주먹을 쥐었으나 차마 매향이 보는 앞에서 때릴 수는 없는 것인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부릅뜬 매향의 눈빛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분하구나!’
임자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는가?
사도학은 괜스레 장삼태 따위에게 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자는 왜 여기 온 거지?”
“아마도 저를 만나러 오신 것일 테지요.”
슬쩍 앞으로 나온 제갈운이 방노백의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남궁천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면 제갈운일 테니까.
현 무림의 정황상 남궁천보다는 제갈운을 찾아온 거라 생각하는 게 타당했다.
“창고 구석에 방 하나 내주고 눕혀 놔라.”
단우현이 한마디를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공통된 생각을 가졌다.
애초에 창고에는 방이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더러운 창고에 던져 놓으라는 소리였다.
다들 식은땀을 흘렸으나 단우현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 * *
“끄아아악!”
이름 모를 동굴.
그곳에서 한 사람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몸에 꽂혀 있는 암기를 하나하나 뺄 때마다, 미친 듯이 내지르는 고함은 그가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알려 주었다.
“헉…… 헉…….”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신음을 흘리며 가쁜 호흡을 가다듬었다. 벌써 몸에 꽂힌 암기 몇 개를 뽑아내었는지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바닥에 떨어진 암기는 그 종류도 무척 다양했다.
장침, 단검, 수리검 등.
사천당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다양한 암기술이 총동원된 것 같았다.
“제길…… 그놈들…….”
사내는 이를 악물며 당시 일을 떠올렸다.
기습적으로 곁에 있던 수하들까지 배신하여 공격을 당했다.
수백여 명이 한꺼번에 암기를 쏘아 댔고, 독을 뿌리며 약점을 파고드니 아무리 오황이라는 무명을 지닌 적무성이라 할지라도 두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들 중에는 제법 강한 이들도 섞여 있었다.
적무성은 아른거리는 기억 속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긴 장검을 손에 쥐고 있는 그의 검술은 다소 기묘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급소를 피하였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더 많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내가…… 당하다니…….’
배신당했다.
천하의 적무성이.
수하를 자처했던 이들에게 뒤통수를 맞았기에 제법 뼈 아팠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있는 이는 언제나 뒤를 조심해야 하는 법.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무시했던 적무성의 실책이었다.
감히 이빨을 보인 배신자들에게 복수하려고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그러나.
‘문제는…… 그놈들이다.’
배신한 이들을 부추기고, 이끌었던 자들.
시뻘건 혈의를 입고 나타난 그놈들의 실력은 결코 범상치 않았다.
그들 중에는 적무성과 비등한 자들 또한 있었으니, 복수는 이미 물 건너간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적무성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한때 사파를 다스리며 많은 것들을 쌓아 왔던 적무성의 몰락은 참으로 순식간에 벌어졌다.
“하하…….”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도 추격자들이 그의 뒤를 쫓는 중이었다. 이미 죽었다 공표되었기는 하지만, 시체를 보아야 인정할 이들도 있는 법이니까.
또한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처리하는 편이 좋기에 놈들은 결코 자신의 뒤를 쫓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착 가라앉은 적무성의 눈동자가 정면을 바라봤다.
적이라면 단박에 일장을 퍼부어 죽이리라.
애초에 이런 외딴 곳으로 제 발로 들어올 이는 그를 뒤쫓는 적밖에 없을 테니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윽고 발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적무성은 온몸이 굳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후후.”
모습을 드러낸 이는 화사한 궁장을 입은 여인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빼앗기는 매혹적인 느낌.
혹, 엉덩이에 꼬리 아홉 개가 달린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만큼 엄청난 마력을 지닌 외모였다.
정신력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적무성조차, 무엇에 홀린 듯 여인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살고 싶어요?”
뜬금없는 그 질문에 적무성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답니다.”
“무…… 무엇이냐…….”
여인은 잠시 적무성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 살고자 하는 갈망이 깃들어 있음을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여인은 저런 눈빛을 참 좋아했다.
“악양으로 가세요. 그곳에 당신이 살 수 있는 방도가 있답니다.”
사아아악-!
눈앞이 돌연 뿌옇게 변했다.
갑작스런 기변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적무성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그 순간, 뿌옇게 시야를 막았던 무언가가 서서히 걷히고, 어느새 눈앞에 있던 여인의 모습도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 * *
무언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혼절을 하다 깨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방노백은 천천히 눈을 뜨며 주위를 둘러봤다.
퀴퀴한 먼지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런 곳에서 잠을 잔 기억이 없는데?’
의문을 표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온몸이 쑤시는 것을 느꼈다.
“아구구…… 나도 많이 늙었나?”
방노백이 여기저기 아픈 몸을 이끌며 인상을 썼다.
하긴 나이를 제법 먹었으니 여기저기 아플 법도 했다.
시간이 나면 솜씨 좋은 의원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서는 순간, 무언가가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그놈!”
지금 떠오른 상황들이 결코 꿈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이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라, 얻어맞은 것 때문에 아프다는 사실 또한 그제야 눈치를 챘다.
‘그럼 여기는?’
울분 어린 시선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방노백이 벌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오, 일어났는가?”
그러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친우의 얼굴이었다.
그는 마당 한편에서 커다란 돼지를 굽고, 고기를 뜯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더불어 여러 사람이 보였다. 몇몇 이들은 낯이 익었으나, 처음 보는 자들 또한 있었다.
물론.
“너…… 너……!”
그 처음 보는 자들 또한 자세히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방노백이 장삼태를 손가락질 하며 파르르 손을 떨었다.
저 얼굴을 보니 자신이 겪은 일이 정녕 꿈이 아닌 현실임을 직시한 거다.
“왜 그러슈?”
“왜…… 왜 그러슈?!”
“내가 뭐 잘못했나?”
장삼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매향을 바라봤다.
그녀가 작게 자른 고기를 씹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시비를 건 것은 저 거지였고, 장삼태가 말을 험하게 하기는 했어도 따지고 보면 잘못한 것은 없었다.
설령 무슨 짓을 했더라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거지 놈, 일어났으면 정신이나 챙기고 밥이나 먹어라.”
느닷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방노백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어느 놈이 감히 자신을 향해 거지 놈이라고 함부로 말하는가?
구파일방은 물론이고, 팔대세가, 심지어 모든 중원 무인을 따져 봐도 그를 향해 거지 놈이라고 지껄일 수 있는 담력을 지닌 이는 몇 없었다.
그렇기에 다소 화가 난 표정으로 그 소리를 담은 자를 바라본 순간.
“허어억!”
방노백은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눈을 치켜떴다.
두 눈알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네…… 네가…… 왜…… 여…… 여기…….”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냐?”
“끅!”
방노백은 숨을 삼키며 딸꾹질을 했다.
사도학.
틀림없이 그놈이었다.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찌 저 마두가 남궁천과 함께하고 있단 말인가?
휙 고개를 돌려 고기를 음미하고 있는 남궁천을 노려보니, 그가 시선을 외면한 채 술을 마시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 요상한 상황을 설명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도대체 뭐가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마치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짚었다.
본래 이상한 세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그렇다면 마천군이라는 노인의 정체가 사도학이었나?’
방노백이 파르르 떨리는 시선으로 제갈운을 바라봤다.
이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뜻이 담긴 눈빛에 제갈운이 씩 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선 제갈운이 천천히 방노백에게 다가와 고기를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드십시오, 어르신. 그게 제일입니다.”
제갈운은 마치 해탈한 고승처럼 공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