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76
방노백은 묘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제갈연과 남궁소혜가 몸을 풀며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먼 거리에서 지켜보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몇 년 전 보았을 때와 수준이 다르구나.’
제갈연도 그러했지만 남궁소혜의 실력이 특히 눈에 띄게 바뀌었다.
이미 일류를 벗어나 절정에 도달했을 정도.
그녀의 재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큰 성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제갈연 역시 이를 악물고 남궁소혜를 상대하고 있는 덕분인지, 최근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후기지수들 중에서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남궁천 또한 기세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방노백이 고개를 돌려 이 모든 상황의 원흉이라 생각되는 이를 바라봤다.
연못 앞에 서서 잡아 온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단우현이 보였다.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자였다.
무공이 고강하다는 것도 실제 부딪쳐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아무런 기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겉보기엔 무척 평범하다는 소리다.
천하오황이라 불리는 방노백을 단 한 수에 제압하는 실력.
또한 지난 며칠간 두고 본 바에 의하면 저 사도학마저 한 수 접어주는 것 같았으니, 실질적인 천하제일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이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라…….’
이 중원에 이름 없는 은거기인들이 아무리 숱하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이나 동향 모두 개방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세상에 거지가 없는 곳은 없었으니까.
‘한데, 아무리 조사해 봐도 안 나온단 말이지…….’
그런데 단우현만이 개방의 눈에서 벗어나 있었다. 뒷조사를 아무리 해 봐도 나오는 것이 없으니 방노백의 입장에선 답답할 따름이었다.
“거, 좀 비키쇼!”
그때, 날선 목소리가 들렸다.
힐끗 눈을 굴려 옆을 돌아보니 빗자루를 들고 있는 장삼태가 있었다.
방노백은 저도 모르게 주춤 옆으로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러자 장삼태가 천천히 마당을 쓸며 중얼거렸다.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압니다. 그래도 우리 장주님은 건들지 마쇼. 괜히 사달 날라.”
“끄응…… 자네는 아는가? 저자가 누구인지?”
“알지 잘 알고말고.”
방노백이 반짝 눈을 빛냈다.
사도학은 물론이고 남궁천마저 고개를 저었던 인간 단우현.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방노백이 은근슬쩍 장삼태에게 다가갔다.
“그래, 자네가 아는 것을 말해 보게나.”
“공짜로?”
장삼태가 슥슥 손가락을 비볐다.
명백히 돈을 요구하는 모습에 방노백은 인상을 썼다. 거지에게 돈을 뜯어내는 놈이라니.
“없으면 마쇼.”
“있네, 있어. 자, 이거면 되겠는가?”
방노백이 급하게 달라붙으며 은자 두 냥을 꺼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여비로 쓰기 위해 구걸하여 벌어들인 천금과도 같은 돈이자, 그의 전재산이었다.
“이게 다요?”
“예끼, 이 사람아. 이 노부는 거지라네. 거지한테 돈이 어디 있겠는가?”
“킁, 그렇긴 하지.”
장삼태가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방노백이 더욱 그의 곁으로 거리를 좁히며 물었다.
“그래,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그게 말입니다요?”
“그래!”
장삼태가 단우현을 힐끗거렸다. 이쪽은 신경조차 쓰지않고 먹이를 주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을 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방노백을 향해 중얼거렸다.
“목내이(木乃伊 : 미라)입니다요.”
“……뭐?”
“그러니까 천 년 묵은 목내이라고요, 목내이.”
말을 마친 장삼태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비밀을 드디어 털어놨다는 듯이 속 시원해 보였다.
이윽고 다시 마당을 쓸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 부들부들 떨던 방노백의 손이 장삼태의 머리를 붙잡았다.
“너…… 잠깐 따라와 봐라.”
* * *
곡소리 나게 얻어맞은 장삼태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양손을 번쩍 들고 있는 것이 벌을 받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이들이 힐끗힐끗 쳐다보았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일이기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세 늙은이 사이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진짜냐, 그게!?”
깜짝 놀라 소리친 것은 다름 아닌 방노백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정말로 모용혁문을 죽였단 말이야?”
“그렇다네.”
“하…….”
방노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모용세가와 남궁세가, 그들이 반목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남궁천의 성격상 모용혁문을 죽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둘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천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시신은?”
“태웠네.”
이것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섞인 한숨이 방노백의 입에서 나왔다.
‘모용혁문 토벌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갔는데…….’
정도무림의 수치나 다름없는 이였기에 그를 토벌하기 위해 막대한 돈과 시간을 쏟아 부었다.
이는 무림맹과 천도회 양측 모두 동일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 모용혁문이 토벌되었고, 그 시신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되었으니 이것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벌써부터 난감했다.
“그러니 혁문…… 그의 일은 접어도 좋다네.”
“하아…… 알았다. 내 그리 말해 두마.”
영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식으로든 녀석이 죽었다는 것은 무림맹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될 일이 아니었다.
방노백이 숨을 가다듬고 제갈운을 바라봤다.
이제 사파의 문제를 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마치 모든 상황을 읽고 있었다는 듯이, 방노백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냉정한 목소리가 울렸다.
“무림의 일을 이곳에 들고 오지 마라.”
세 사람의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갔다.
그곳에는 언제 왔는지 모를 단우현이 서 있었다.
“크큼! 나는 그냥 의견을 듣고자 하는 것뿐이네.”
“무림맹에는 생각할 머리도 없나 보군.”
방노백이 정곡이 찔린 표정을 지었다.
“이 무림이 어찌 흘러가든 우린 흥미 없다. 그러니 묻지도 말고, 사정하지도 말아라.”
“크큼! 따지고 보면 이곳도 무림세가 아닌가?”
호남단가는 이미 악양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낭인들은 물론이고 무림인들마저 호남단가의 이름을 들으면 기겁할 정도였으니, 이미 무림세가나 다름없었다.
또한 최근엔 이런 소문까지 돌고 있다.
호남제일세가(湖南第一世家).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급부상하고 있는 곳이 바로 호남단가.
지금이야 큰일이 연이어 터져 무림맹이나 천도회에서 신경을 쓰고 있지 않지만, 곧 이들의 눈과 귀가 호남단가로 향할지도 몰랐다.
“세가든 장원든 그딴 건 상관없다. 쓸데없는 문제를 가져오지 말고 여긴 그냥 내버려 둬. 진짜 한바탕 뒤집히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이번에 말을 내뱉은 것은 단우현이 아니라 사도학이었다.
그 말 속에 실려 있는 진심은 그야말로 비수와도 같았다.
진심이라는 걸 보여 주듯 그의 검붉은 마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크큼…….”
방노백이 신음을 흘렸다.
잠깐 사도학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던 사도학은 언제나 살기를 두르고, 마기를 뿜어내던 마귀였다.
그러나 이곳에선 평범한 노인이나 다름없이 행동하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과거의 그를 잊고 있었다.
‘낭왕 마장강, 제갈연과 남궁소혜…… 소쌍도 권무진…….’
이 정도만 나서도 웬만한 중소문파는 씹어 먹을 수 있을 전력.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제갈운의 머리와 검황 남궁천, 그리고 마황이라 불리는 사도학이었고, 그런 이들 사이에서 구심점이 되는 단우현이었다.
무림맹이든, 천도회든 정면 승부를 벌인다 해도 결코 이길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기에 방노백은 식은땀을 흘리며 두 손을 들었다.
“알았네, 알았어! 내가 잘못했다. 무림 일은 안 들고 오마. 되었지?”
“허허, 그래 주면 고마울 따름이네.”
남궁천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사도학과 마찬가지로 계속 무림에 끼어드는 것을 그리 원치 않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억지웃음을 지으면서도 방노백은 단우현의 정체를 고민했다.
이런 거물들을 한데 모아 놓은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거늘, 그들을 다스리며 제 편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도학과 남궁천의 눈에는 단우현에 대한 믿음이 가득하였다.
저 두 사람이 말이다.
방노백은 속히 돌아가 단우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 *
홀로 연무장에 앉아 있는 권무진은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숨을 골랐다.
남궁소혜가 한 시진 수련하면 그는 네 시진이 넘게 수련할 정도로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자꾸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제길…….”
그가 인상을 쓰며 이를 갈았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파의 지존이라 불리던 적무성의 죽음은 권무진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지금은 무황성을 따르지 않았으나,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왔던 적무성에 대한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권무진은 언제나 그의 등을 쫓았으니까.
‘도대체 어느 놈들이……!’
일부러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알아본다 한들 의미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단우현에게 목숨을 맡긴 이상 적무성의 죽음은 그저 한때 동경했던 이의 죽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일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칼에는 그걸 쥔 자의 마음이 스며든다고 하지.”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권무진이 시선을 돌렸다.
언제부터 서 있었던 것인지 단우현이 보였다.
“주…… 주군…….”
“심란한가 보구나.”
단우현이 목검을 손에 쥐고 휘둘렀다. 가볍게 내지르는 동작이었지만, 바람 가르는 작은 소리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보고 계셨습니까?”
“잠깐이었다. 한데, 꽤 복잡해 보이더구나.”
“잡념이 섞여 있었습니다.”
단우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도 남았기에 권무진은 한 치 거짓도 없이 대답했다.
“어디 한번 해볼 테냐?”
어느새 단우현이 연무장 한가운데 섰다. 진검도 아닌 목검을 쥐고 있음에도 권무진은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을 보는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을 향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기회.
그러나 그의 앞에 마주 선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없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런 기세조차 내뿜고 있지 않으나, 단우현이 지닌 투기는 저절로 상대의 기세를 짓누르고, 의지를 밟아 버렸기 때문이다.
권무진이 손을 덜덜 떨었다.
그러나 천천히 양손에 칼을 쥐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시선은 눈앞에 있는 단우현에게 고정되었다.
자신을 조금 더 위로 이끌어 줄 자.
그를 향해 자신의 실력이 얼마만큼 닿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볼 절호의 기회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은 무슨…… 죽고 싶지 않다면 죽일 각오로 오너라.”
들려오는 한마디에 권무진이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