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8
청송학당.
악양에서 가장 유명한 학당은 청송학당이었다.
나름 이름 있는 관료들의 자식들이나 돈 많은 상인들의 자식들이 다니는 곳으로, 악양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문의 아이들만 모여 있었다.
그곳에 훈장은 황실에서 학사를 지낸 자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으며 해마다는 아니지만 과거에 합격한 이들을 수두룩하게 배출한 전적 또한 있었다.
그 청송학당의 훈장, 감원은 단우현 앞에서 엄한 표정으로 화소미를 바라봤다.
“흠…… 이 아이를 학당에?”
“그렇다.”
대뜸 튀어나온 반말에 감원은 눈썹을 들썩였다.
많이 먹어 봐야 스물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말이다. 하지만 일단 화를 내지는 않았다.
입은 옷만 보면 제법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른 쪽이 아니라 아이 쪽이 말이다. 어른 쪽은 뭐라 할까, 돈도 없어 보이는 데다 꾀죄죄한 느낌이다.
사실 마음 같아선 받아 주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으나, 알게 모르게 현령의 입김이 작용한 탓에 수락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기에 현령까지 나서는 것인가…….’
현재 호남 땅에는 큰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두 곳이 있었다.
하나는 천외천인 왕부였으며, 다른 하나는 최근 흑도회를 일망타진하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현령 홍원창이었다.
그에게 밉보이는 짓을 했다간 자칫 웃으며 넘길 수 없을지도 모르는 만큼, 감원은 속이 뒤틀려도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만히 화소미를 살폈다.
단우현이라는 사내 뒤에 서서 배꼼 고개만 내밀고 있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크면 상당한 미인이라는 소리를 좀 들을 것 같다.
하지만 학당에 다닐 돈은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이에게는 좋은 옷을 입히지만 막상 집안에 돈이 없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특히 이곳은 악양에서도 가장 비싼 학당이며, 돈이 없으면 아무리 현령의 부탁이라 하여도 들어줄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달에 은자 열 냥인데 괜찮은가?”
다소 불편한 표정으로 물었다.
보통 인부들이 한 달에 받는 녹봉이 은자 두세 냥이다. 객잔의 점소이들조차 한 냥을 받을까 말까였으니, 열 냥이라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은자 열 냥이라…… 비싸군.”
단우현은 최근 돈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고 있는 실정이었다.
은자 열 냥이라면 아낀다면 몇 달치 생활비가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화소미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감원의 시선을 마주하며 품을 뒤졌다. 전낭에서 금자 하나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면 되는가?”
“무…… 물론입니다.”
감원의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졌다.
설마하니 느닷없이 금자를 꺼낼 줄이야?
금자의 값어치는 때에 따라 달라졌지만, 하나에 은자 열 냥은 가뿐히 상회했다.
이것이 진짜라면 현 시세로 두세 달치 금액을 한 번에 내는 것이었다.
감원의 시선이 탁자 위에 놓인 금자를 주시했다.
한번 깨물어 보고 싶었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하지만 꾹 참았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가볍게 보일만 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크흠,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이 감원이 대인의 따님을 장원 급제자들도 가볍게 보일 만큼 뛰어난 학식을 지닌 아이로 만들겠습니다.”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사람의 행동이 이렇게까지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우스웠다.
더군다나 무력도 아닌 돈 앞에 빳빳했던 목을 굽히다니?
분명 황실에서도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던 학사라 들었는데, 실망스러웠다.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은 필요 없다. 그저 이 아이가 즐겁게 지낼 수만 있다면 만족하는 것이지.”
덤덤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감원은 몸을 움찔했다.
한순간이긴 하지만 눈을 마주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거대한 맹수 앞에 홀로 서 있는 나약한 짐승처럼 송골송골 식은땀마저 흘렀다.
현령이 추천을 했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범상치 않아 보이니, 아이를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저 아이가 과연 적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돈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 * *
“정말 내일부터 학당에 다니는 거예요?”
장원으로 되돌아온 화소미는 툇마루에 앉아 있는 단우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사실 다니고 싶기는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척 봐도 그 학당은 지체 높은 집안의 자식들이 다닐 법한 곳인 데다, 훈장이라는 사람 또한 꽤 깐깐해 보였으니까.
괜히 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불안한 마음이 맑은 눈동자에 나타났다.
단우현은 화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항상 붙어 있다가 떨어진다는 것에 불안해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 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홀로서기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고작해야 학당에 가는 것이지만, 홀로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였다.
“걱정하지 마라. 분명 좋은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다.”
“네!”
화소미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 하는 말이다. 틀림없이 모든 것들이 잘 풀릴 테고, 지금처럼 좋은 일들만 생길 것이다.
배시시 웃음을 지은 화소미가 등을 돌렸다.
마음이 풀렸으니 이제 놀 생각이었다.
마당 한편을 향해 세차게 달려간다.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상당히 들떠 있어 보였다.
“쉽지 않을 텐데요?”
그때, 단우현의 귀에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랄 법도 하것만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남궁소혜가 작게 한숨을 쉬는 것이 보였다.
“아직도 있었나?”
“오늘 아침에도 봤거든요 우리.”
“존재감이 없어서 잘 몰랐군. 미안하다.”
“흥! 그보다 정말로 괜찮아요? 청송학당이라면 악양에서도 제법 유명한 곳인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남궁소혜가 미간을 움켜쥐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은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모양이다. 유명한 학당일수록 있는 집 아이들이 몰리는 법이며, 그런 곳일수록 텃세가 심했다.
누구의 추천으로 들어갔는지도 중요했지만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이들에게 가장 크게 작용하는 자그마한 정치판과도 같은 곳이었다.
화소미가 제법 귀엽기는 하지만 배경이 이래서야 필시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을 걸요? 어릴 적부터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며 짓궂은 장난을 일삼는 아이들이니…….”
“겪어 봤나?”
“겪어 봤냐고요?”
남궁소혜는 아미를 찌푸렸다.
안휘성 일대에서 남궁세가는 왕부보다 유명하고 강한 권력을 지닌 곳이었지만 학당에 다닐 무렵 남궁소혜는 일부러 이름을 바꾸었고, 원체 밖을 돌아다니지 않은 탓에 아무도 그녀가 남궁세가의 사람임을 몰랐다.
그 탓에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안휘성 일대에 조금 산다 싶은 아이들이 툭 하면 시비를 걸고 괴롭히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심한 욕설까지 뱉었다.
그녀는 그 수모를 꿋꿋하게 참았다.
강자는 약자를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엄명이 있었으니까.
그러다 참고 또 참았던 게 터진 날에.
‘아주 작살을 냈지…….’
남궁소혜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학당에 다니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매일 그녀가 괴롭힘 당하는 걸 지켜만 보고 있던 훈장까지 두들겨 팼다.
고작해야 열 살이었지만 체계적으로 무공을 익힌 그녀를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덕분에 다른 학당을 구하느라 꽤 고생했다.
“뭐, 비슷해요. 어쨌든 굉장히 좋지 않아요. 차라리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돈이 좀 더 있으면 실력 좋은 학사를 집으로 초빙해도 되고…….”
단우현이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걱정거리가 줄어드니 단우현의 입장에선 그쪽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화소미가 마치 새장 속에 갇힌 새 같지 않은가.
넓은 세상을 보고 많은 것들을 경험해야 비로소 진정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법이다. 하여 고된 일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결코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걱정할 것 없다. 저 아이는 저 아이 나름대로 잘 헤쳐 나갈 테니.”
“그런 건 좀 나이가 차면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 아이, 은근히 마음이 여리고 착해 빠져서 크게 당할지도 몰라요.”
단우현은 슥 고개를 돌려 화소미를 바라봤다.
마당 한편에서 장삼태와 함께 장난을 치는 듯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저건 또 뭐예요? 태극권? 투로는 비슷한데 어딘가 이상하네요. 도대체 저런 걸로 뭘 하겠다고…….”
장삼태가 움직이는 대로 화소미가 따라 움직인다. 연무를 한다기보다는 그저 재미 삼아 따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그래도 두 사람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단우현이 힐끗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자만심이 눈을 가리고 있으니 무엇 하나 제대로 볼 수가 있나.”
“네?”
“소미는 네 생각보다 강한 아이다. 그런 소미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내가 대신해 주면 된다.”
“……부모니까요?”
“그래, 내가 저 아이의 부모이니까.”
“그건 당연한 거잖아요. 하지만 큰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남궁소혜는 물었다.
무공조차 익히지 않은 듯한 이 남자.
가진 것이라곤 이 장원과 이 안에 있는 사람이 전부인 듯했다. 그런 이가 과연, 호남땅에서도 이름 있는 세가나 관료들의 등쌀을 막을 수 있을까?
답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나와는 상관없지만…….’
남궁소혜는 작게 한숨을 쉬며 툇마루에 앉았다.
화소미가 귀엽기는 하지만 그녀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주 잠시 뿐, 일이 끝난다면 돌아오지 않을 곳이다.
그녀는 힐끗 눈동자만 굴려 곁에 앉아 있는 단우현을 바라봤다. 덤덤하기 짝이 없는 그의 시선은 여전히 화소미를 쫓고 있었고, 굳게 닫혀 있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설령 이 중원 전체가 적이 된다고 해도 저 아이를 지킬 것이다.”
“포부는 좋네요.”
“포부라…… 하하.”
단우현은 웃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설령 화소미의 잘못으로 또다시 중원 전체가 적이 된다 하여도, 단우현은 망설이지 않고 화소미의 편을 들고 모든 이들을 막아설 것이다.
누구도 저 아이를 어찌할 수 없으리라. 이 단우현이 살아 있는 한은.
번뜩-!
한 순간이지만 그의 눈동자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오로지 천살성만이 가지고 태어난다는 붉은 눈동자가 세상을 훑었다.
오싹-!
‘뭐…… 뭐지?’
잠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남궁소혜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한순간이기는 하지만 공기가 억눌리고 바람이 숨을 죽였다.
몸은 부들부들 떨려 왔으며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도대체 뭐야?’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현상은 곧 사라졌다.
너무나도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무언가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방금…….”
“뭐지?”
“방금 이상한 기운이…….”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
남궁소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면 그 기세는 오로지 자신만이 느꼈다는 말이 된다. 혹시 이 악양에 숨어 있다는 그 고수가 쏘아 낸 것일까.
그렇다면 분명 이 근방에 있다는 소리였다.
남궁소혜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반드시 찾아내겠어요.’
그녀는 또다시 다짐했다.
봉황단 단주로서, 그리고 남궁세가의 일원으로서.
임무 실패란 있을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