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82
단소미와 주지약은 악양 거리를 둘러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장사 쪽에 사람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이곳까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다.
곁에 있는 홍진랑 또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 날씨에 사람까지 몰려드니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장사에서 뭔가를 한다면서?”
단소미가 흥미 가득한 시선으로 물었다.
단우현과 남궁천이 소곤거리고 있는 것을 들어 보니, 장사에서 커다란 축제가 열리려는 것 같았다.
덕분에 그곳에 사람이 몰리니, 가뜩이나 유명한 동정호 마을 악양은, 그만큼 더 사람이 찾아드는 것이다.
이리저리 수많은 인파를 피하며 세 아이는 구석에 틀어박혔다.
“무림대회를…… 연다네…….”
주지약이 영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매년 벌이는 무림대회인데 영친왕부에서 나선 이들은 단 한 번도 우승을 거두지 못했다.
물론 우승 같은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하다못해 금왕부 사람들에게는 지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고사리 같은 주먹을 움켜쥐고 괜스레 뿔이 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금왕부가 이기…… 크억?!”
눈치 없는 홍진랑이 무심코 말을 내뱉는 순간 주지약의 주먹이 복부를 후려쳤다.
무공조차 익히지 않았지만, 기습적으로 들어간 일격은 꽤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홍진랑이 시퍼렇게 질린 안색으로 주저앉았다.
“호호,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아…… 아무것도…… 쿨럭……!”
“금왕부가 뭐?”
“쿨럭쿨럭.”
홍진랑은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어 숨을 몰아쉬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주지약의 표정 탓에 기가 죽어 움츠러들었다.
“금왕부가 뭐야?”
단소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듣는 곳이라는 듯 물은 단소미는 주지약이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지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홍진랑이 헛기침을 했다.
“내가 설명해 주지. 이 호남을 다스리는 곳은 바로 영친왕부다.”
“응응, 들어 봤어. 굉장히 높은 분이라면서?”
높은 분이라는 말에 주지약의 콧대가 높아졌다.
에헴! 하며 마치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홍진랑이 그것을 바라보며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으나, 곧 주지약의 눈빛에 얼른 숨을 삼켰다.
“그냥 높은 분 정도가 아니야! 황제 폐하의 친인척이시자, 신임을 받는 분이시니까.”
“헤에…….”
단소미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황제가 누구인지는 그녀 또한 알았다.
학당에 다녔을 때 공부하는 이유가 황제 폐하를 도와 나라를 어질게 다스리기 위함이라며 떠벌리고 다니던 학장 때문이다.
“그리고 금왕부는 호북을 다스리는 왕부를 말하는 거지.”
홍진랑의 말에 단소미는 작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럼에도 살짝 이해를 하지 못해 의아한 시선이다.
“악양은 홍 아저씨가 다스리는데……?”
“그런 찌꺼기가 아니야, 소미야! 비교하면 안 돼!”
“찌…… 찌꺼기…….”
주지약이 단호하게 내뱉은 한마디에 홍진랑은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나름 악양을 위해 열심히 발 벗고 뛰어다니며 치안을 유지하는 관리였고, 세간에는 명수사관이라 불리는 명예까지 얻었다.
주지약의 아버지인 영친왕이 붙잡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홍진랑의 가족들은 북경에 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홍진랑의 앞길을 주지약이 막고 있듯, 홍원창의 앞길을 영친왕이 틀어막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금왕부와 영친왕부 사이에 뭔가 있는 거야?”
“금왕부의 외가 쪽이 유명한 무가거든…… 영친왕부와는 다르게 말이지. 그래서 무력으로는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어.”
홍진랑의 말에 주지약이 인상을 썼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정치나 학문에는 문외한인 것들이 무공에 나름 조예가 있다고 떵떵거리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 이게 누구야! 지약이 아냐?”
그때, 슬그머니 들려오는 목소리에 주지약은 인상을 썼다.
그리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드니 괜스레 심기가 사나워졌다.
한껏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수 명의 호위를 거느리고 있는 또래 사내아이가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화려하다 못해 눈이 돌아갈 만큼 비싸 보였으며, 주위에 머물고 있는 호위들은 제법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 상당한 기세가 느껴졌다.
“주자인…….”
“이게 얼마 만이야? 일 년 만인가?”
크게 웃음을 짓고 있는 사내아이는 제법 호탕한 느낌이었다.
홍진랑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데다, 무엇을 하든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한마디로 철없는 어린아이의 상징 그 자체.
“그랬나? 잘 기억이 안 나네.”
“하하하, 벌써 치매야? 기억이 안 나게?”
주지약이 인상을 굳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주지약은 황제의 조카였고, 주자인은 먼 친척이었다.
조금 더 겸손하게 지약을 대하는 게 법도에 맞는데도, 상당히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린아이라 지위 고하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고.
“이번에도 무림대회에 참가하는 건가?”
“그래 보여.”
주지약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말을 섞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사천의 그 녀석처럼 함부로 막대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조차 통하지 않으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흐음…… 그런데 옆에 있는 이들은?”
“안녕하십니까? 홍진랑이라 합니다.”
주자인이 가만 홍진랑을 바라봤다.
오만방자한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몇 번이고 홍진랑의 이름을 입에 담다가 이내 반짝하며 눈을 빛내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그대가 홍원창의……?”
“에…… 예 그렇습니다.”
홍진랑이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금왕부에서도 홍원창은 상당히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군부나 무가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금왕부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진 것을 보면 말이다.
이것을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복잡한 심정이 된 홍원창이었다.
“하하하! 무로는 대성을 이루지 못하는 것들이 꼭 잔머리를 굴린다니까. 네놈의 아비도 그런 부류겠지?”
“윽……!”
주자인은 홍원창에 대해 조사를 해 본 적이 있었다.
일신의 무공은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으나, 뛰어난 머리로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명성을 떨친 자.
금왕부의 입장에선 우스워할 법했다.
“그보다 곁에 있는 계집은 누구인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게냐?”
“건들지 마.”
이윽고 주자인의 시선이 단소미에게 향하자, 주지약이 불쾌한 시선으로 그를 쏘아봤다.
홍진랑까지는 그럭저럭 봐줄 수 있으나 단소미를 걸고넘어지면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주자인이 칫 하며 혀를 찼다.
그러다 문득 입가에 한 줄기 장난스런 미소를 걸더니 손을 뻗었다.
대대로 내려온 금나수였다.
단숨에 단소미의 멱살을 잡아끌 생각이었다. 교묘하게 뻗어 나간 한 수가, 홍진랑을 지나쳐 단소미를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손이 단소미의 멱살을 막 쥐려 하던 그때.
탁!
“…….”
“응?”
어느새 뻗어진 단소미의 작은 손이 날아들었던 주자인의 손을 쳐 냈다.
가볍게 내지른 한 수라 해도 무공을 모르는 이는 결코 막을 수 없는 금나수를 막아 낸 것이다.
“뭐하는 거야?”
주지약이 살짝 얼빠진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조금 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익!”
그때,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진 주자인이 더욱 빠르게 손을 뻗었다.
조금 전에는 방심하다 실수했지만, 이번만큼은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공력마저 실려 있는 금나수는 더 빠르게 날아가, 단박에 단소미의 멱살을 잡아챌 것 같았다.
그 순간, 단소미 또한 손을 뻗었다.
작은 손이 날아드는 주자인의 손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공력과 공력이 부딪치자 주자인이 몇 걸음 물러섰다.
“뭐…… 뭐야!”
당황한 것은 주자인이었다.
무공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신을 밀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에 놀라움은 더 커졌다.
놀란 것은 주자인만이 아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지약이나 홍진랑마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단소미가 무공을 펼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호남단가에서 사는 단소미인 만큼, 호신용으로 몇 가지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홍진랑조차 어찌하지 못할 실력을 지닌 주자인에게 망신을 줄 정도라니.
주지약이 반짝 눈을 빛냈다.
“대단해, 소미야-!”
“헤헤…….”
단소미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남궁천이나 사도학이 가르쳐 주었던 것인데, 이렇게 써먹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무…… 무공을 익히고 있었느냐?”
“응? 그냥 호신술이라고…….”
팟-!
화가 머리끝까지 난 주자인이 달려들었다.
그는 날쌘 짐승처럼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었다.
날카로운 표범의 발톱처럼 그의 손은 그대로 단소미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사정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일격.
얻어맞는다면 아무리 단소미라 하여도 결코 무사치 못하리라.
한데, 단소미는 날아오는 주자인의 손을 가볍게 파훼해 버리고는 다리를 뻗어 무릎을 걷어찼다.
퍽!
“억?!”
균형을 잃고 휘청이는 주자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균형을 잡으려는 순간, 단소미의 발이 그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윽……!”
“제가 이긴 거죠?”
그러나 맞지 않았다.
그대로 뻗었다면 아무리 벌모세수를 받고 영약을 물처럼 마시며 공력을 늘린 주자인이라 하여도 결코 무사치 못했을 것이다.
주자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네 이년……!”
“한번 해보려고?”
당장이라도 호위들에게 단소미를 죽이라고 명령하려 했던 주자인이 입을 다물었다.
서늘하게 들려오는 딱딱한 음성의 주인이 어느새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는 주지약은 제법 화가 난 것 같았다.
장난 삼아 말장난을 거는 것은 몰라도 진심으로 싸우는 것은 절대 금물이었다.
누가 뭐래도 현 황제의 동생인 영친왕이 지닌 권력은 금왕을 상회하였으니까.
“아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주자인이 이를 갈며 등을 돌렸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단소미를 쏘아본 그가 성큼성큼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주지약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