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88
왕부 주최 무림대회.
무수히 많은 이들이 참가한 만큼, 경비가 강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왕부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면 이런 혼란을 틈타 언제 습격을 해 와도 이상하지 않았으므로.
물론 지금 이곳에도 그런 불순한 목적을 지닌 무리가 섞여 있었다.
[잊지 마라. 반드시 우승하여 단상 앞에 서야 한다.]몇몇 이들이 그런 전음을 나누며 다짐했다.
바로 어제까지.
그들은 황실을 뒤집으려 하는 역도들로, 그 대계의 첫걸음이 바로 영친왕과 금왕야의 암살이었다.
비록 동료 중 몇몇은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을 테지만, 설령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전부가 죽는다 해도, 목적만 이룬다면 다른 동료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들의 결의를 다짐했다.
하지만.
뻐걱-!
“꺼커억……!”
한 사내가 코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에 아픔에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곧 눈이 뒤집혀 버렸는데, 아무리 봐도 더 이상 경기를 계속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았다.
사내는 흐릿해지는 정신 속에 눈앞에 있는 이를 망연하게 바라봤다.
도깨비 가면을 쓴 이.
예선에서부터 본선까지.
자신들의 동료를 한 명 한 명 때려눕혔다.
대진표가 나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자신들만 노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구 하나 저 도깨비 사내 앞에서 쓰러지지 않은 동료가 없었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사내는 원망했다.
‘비…… 빌어먹을…….’
기껏 세워 놓았던 계획이 어이없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승자는 귀면자(鬼面子)!”
[우와아아아-!]함성과 함께 귀면자라 칭한 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실려 가는 상대를 빤히 바라보는 눈은 표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귀면자는 아무렇지 않게 대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를 향해 무수히 많은 시선이 꽂혔다.
우승 후보라 할 수 있는 이들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고수의 등장은 다들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대단한 실력을 지닌 것 같소. 승리 축하드리오.”
들려오는 말에 귀면자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지난번 보았던 황보권이 포권을 취하며 서 있었다.
전에 보았던 그 경멸 어린 시선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보이지 않고, 지금은 그를 천도회에 영입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았다.
귀면자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마치 날파리를 쫓아내는 것 같은 행위다.
황보권의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졌다.
“무례한 자 같으니!”
얼굴을 붉힌 황보권이 씩씩거리며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귀면자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제갈연이 그것을 바라보며 고소를 머금었다.
‘들이댈 사람한테 들이대야지.’
통쾌하다면 통쾌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표정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힐끗 옆을 바라보니 남궁소혜가 묘한 표정으로 귀면자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그래?”
“아니……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자꾸…….”
“어휴…….”
아직도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남궁소혜를 보며 제갈연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쪽으로는 다소 심각하게 둔한 친구가 꽤 답답했다.
그때, 밖에서 또다시 우람찬 함성이 들렸다.
“이겼나 보네.”
장삼태의 승리를 알리는 함성이 들렸다.
상대는 천도회의 후기지수.
아니나 다를까 후기지수들의 표정이 한껏 굳어진 것이 보였다.
팔대세가에 속한 이들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탓이다.
황보영과 진연화의 시선이 남궁소혜를 비롯한 호남단가의 인물들을 향했다.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그들과는 다르게, 호남단가 쪽은 만면 미소를 지은 채 상대를 완벽하게 도발하고 있었다.
다음은 남궁소혜의 차례였다.
* * *
비무장 위로 올라간 남궁소혜는 시끄럽게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대는 팔대세가의 한 축이자, 천도회 내에서도 나름 입지를 다지고 있는 광동진가의 진연화였다.
이미 지난번 실력을 확인해 본 상대였지만, 이번만큼은 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결의에 찬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노려보지 않았으면 하는데…….’
진연화가 앙칼지게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게 보였다.
남궁소혜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기수색을 취했다. 두 사람 모두 기수식을 취하자, 대회장은 마치 천둥이 치듯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
다른 사람도 아닌 남궁세가와 광동진가의 싸움.
이만한 볼거리는 쉽사리 찾을 수 없을 테니 모두들 기대 어린 표정이 역력했다.
“이번에는 절대 지지 않아.”
“아…… 그래…….”
진연화는 인상을 찌푸렸다.
여유로운 남궁소혜의 모습에 화가 난 것이다.
나름대로 대회를 준비하며 세가 어르신들의 지옥과도 같은 수련을 버텨내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인데, 남궁소혜는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도 그녀는 다른 이를 신경 쓰는 것 같았다.
틀림없이 당문혜이리라.
진연화는 그것이 무척이나 치욕스러워 울분이 치솟았다.
“핫!”
진연화의 검에 맺혀 있는 기세는 날카로웠고, 가볍게 다가오는 보법은 간결했다.
광동진가의 무공이 지닌 요체가 담겨 있는 한 수였다.
그녀는 선공을 가져가면서 분위기를 바꿀 생각이었다.
기선 제압 후, 대결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마음대로 이끌어 가려는 것.
진연화가 빠르게 검을 내질렀다.
파캉-!
무언가가 부러져 날아가는 소리.
이윽고 사람으로 추정되는 것이 하늘 높이 떴다가 떨어지는 격렬한 소리도 이어졌다.
팔대세가의 한 축이자 광동진가의 이름을 등에 업고 있는 진연화의 몸이 어이없이 나가떨어지는 그 광경을 누구도 믿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쿵!
충격 그 자체.
모든 이들이 한마음일 것 같았다.
진연화는 천도회 내부에서도 나름 전도유망한 여인이었다.
남궁소혜에게 밀린다는 말도 있었지만, 후기지수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일 테니, 그래도 훌륭한 대결을 보여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일검.
남궁소혜의 일검이 진연화의 검을 두 동강 냈고, 그 반동으로 인해 날아간 진연화는 어이없이 쓰러져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스…… 승자…… 남궁소혜!”
함성은 들리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그저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남궁소혜라는 이름이 이렇게 무거웠던가?
남궁세가가 어찌하여 팔대세가를 이끌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는 표정들이다.
짝짝짝-!
어디선가 자그마한 박수 소리가 들렸다.
힐끗 그곳을 향해 돌아본 남궁소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상석에서 주지약이 통쾌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관객석에서도 단소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환호를 내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것은 곧 물결처럼 퍼져 대회장 전체를 울렸다.
남궁소혜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대기실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
* * *
“와! 언니가 엄청 대단했어요!”
단소미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조금 전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대회를 구경하면서 많은 무인을 보았지만, 조금 전 남궁소혜만큼 화려한 일검을 뻗은 이가 없었던 탓이다.
여전히 좋아하며 방방 뛰는 단소미는, 마치 자신이 남궁소혜라도 되는 양 칼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휙휙 움직이는 그 몸짓에 남궁천과 사도학이 눈을 반짝였다.
장난 삼아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 검로가 남궁소혜의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단우현의 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두 노인이었다.
“방금 그건 남궁세가의 검술이 아니지? 단 장주의 것인가?”
“그래 보이네.”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소혜가 펼친 것은 틀림없는 발검술이었다.
남궁세가의 검술에도 발검술을 기초로 하는 것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조금 전 보여 주었던 것처럼 가볍지만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할 만한 힘을 지닌 건 없었다.
게다가 검로에는 힘뿐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우아함마저 담겨 있었다.
‘환조검이라…….’
남궁천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삼천의 후예였다는 증거.
그리고 남궁소혜는 마치 그 여인의 뒤를 따르듯 나날이 성장하고 있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제왕검형 또한 그에 못지않을 정도로 강렬함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저 환조검이라는 것은 마치 남궁소혜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은 검술이었다.
남궁천이 자신만을 위해 창안해 낸 제왕검형처럼.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제법이군. 저 광동진가 계집애…… 상대가 나빴어. 소혜만 아니었다면 제법 재미있는 비무를 보여 줬을 텐데 말이야.”
사도학의 평에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연화의 기량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단우현과 함께 지내 온 남궁소혜는 이미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으며, 환조검을 익히고 그것을 소화한 남궁소혜는 이미 마장강과 동등, 혹은 그보다 한 수 아래라 봐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후기지수라 부를 수도 없겠구나. 허허허.”
“이미 그런 영역은 지났지. 다들 말이다.”
사도학이 다소 불만스런 표정으로 쯧 하며 혀를 찼다.
황보세가의 두 남매, 당문혜, 그리고 제갈연과 남궁소혜.
각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미 후기지수라는 영역을 넘어선 이들이다.
어엿한 한 사람의 무인.
“당문혜라는 계집도 제법이더군.”
“사천당가는 예로부터 무골이 뛰어났으니 말이네. 소혜와 비견되는 아이 중 한 명이라 불렸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흠…….”
사도학의 눈은 정확했다.
암기술을 펼치고 독공을 펼치는 당문혜는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권각법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는 탓에, 남궁소혜나 혹은 마장강이 아니라면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래서야…….”
“끄응…… 그렇지.”
두 사람이 식은땀을 흘리며 비무장을 바라봤다.
우두커니 서 있는 당문혜는 암기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 앞에는 기수식조차 취하지 않은 귀면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는 듯 미동조차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은 당문혜의 이름을 연이어 외쳤다. 팔대세가의 주축, 한때는 오대세가에서도 수위를 타투었던 곳.
사천의 지배자 사천당가.
그 화려한 독공과 암기술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대단하였다.
더욱이 이번 대회에 출전한 천도회의 후기지수들 중에서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여인이었으니, 그만큼 많은 이들이 당문혜에게 돈을 걸었고 반드시 그녀가 귀면자를 이길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기에 사도학과 남궁천은 몹시 안타까웠다.
다른 이도 아니고 하필이면 귀면자라니.
“좌절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음…….”
두 노인의 신음이 나지막하게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