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89
당문혜는 입술을 깨물며 앞에 있는 상대를 바라봤다.
살기나 내공을 이용해 압박해 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보통 이 정도라면 식은땀이라도 흘리기 마련인데, 당문혜의 기세는 상대에게 어떤 영향력조차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이 몹시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소맷 속에 있던 독을 뿌렸다.
상대를 움직이게 만들어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를 가지는 것이 최우선이라 판단했다.
촤악-!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미약한 가루가 귀면자를 향해 쏟아졌다.
사악-!
그러나 그 바람은 귀면자에게 닿지 않았다.
독은 격렬한 바람에 의해 한데 모여 바닥에 가라앉았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바라보며 당문혜는 경악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이리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독을 뿌리다니…… 생각이 짧구나.”
“큭……!”
들려오는 목소리는 마치 훈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문혜가 이를 갈며 주먹을 쥐었다.
독을 뿌리지 않아도 다른 것들 역시 많이 가지고 있다. 그녀가 재빠르게 손을 뻗자, 자그마한 침들이 귀면자를 향해 쏟아졌다.
카카카캉-!
“윽?!”
하지만 그 또한 무용지물.
쥐고 있는 칼을 몇 번 휘두르는가 싶더니 당문혜가 전력으로 날린 침들이 모조리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나같이 독이 묻어 있던 끄트머리가 깨져 나가 있었다.
“암기 쓰는 법이 식상하구나. 그런 뻔히 보이는 식으로 날린다면 전부 쳐 내 달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제가…… 사천당가의 사람이라는 걸 알고 하시는 소리인가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들려오는 말에 당문혜가 까득 이를 갈았다.
사천당가를 모른다고?
이 중원에서 사천당가를 모르는 무인이 있을까? 아무리 산골에 틀어박혀 산다고 해도, 팔대세가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필시 당문혜를 놀리고 있는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화가 난 당문혜가 내달렸다.
순식간에 다리를 뻗으며 귀면자의 머리를 노렸다.
설령 막는다 하여도 실려 있는 공력에 의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귀면자는 그마저도 가볍게 든 검집으로 막아 냈다.
화가 난 당문혜의 손속이 점점 더 거세져 갔다.
그녀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보는 이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맹했다.
막아 내지 못하는 순간 어딘가 부러지거나 혹은 머리통이 박살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하지만 귀면자는 멀쩡했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여유롭게 검 당문혜의 권각을 모조리 막아 내고 있었다.
그 모든 광경은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되었다.”
콰다다당-!
귀면자가 가볍게 손을 내질렀다.
당문혜의 공격을 살짝 피하며 그녀의 복부를 가격했다. 격렬하게 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당문혜가 날아갔다.
신음을 흘리는 것이 꽤 거하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러나.
촤차차착-!
하늘에서 뿌려지는 암기들이 귀면자를 노렸다.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한 수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귀면자 또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 흥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콰콰콰쾅-!
만천화우(滿天花雨).
당가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수법이었다.
마치 비가 내리듯 하늘에서 빼곡히 쏟아지는 암기는, 설령 그 어떤 고수라 해도 피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필사의 한 수였다.
그것을 펼쳤다는 것은 당문혜가 상당히 몰렸다는 것.
또한 얻어맞고 날아가는 상황에서 만천화우를 펼친 것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비무대 전체가 암기들로 빼곡했다.
그 안에 사람이 있다면 필시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켜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귀면자는 상처하나 없이 멀쩡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의 주위로는 암기 하나 꽂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뿌려진 암기가 오로지 귀면자가 있는 곳을 피해 꽂힌 것 같은 우습지도 않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건…… 말도 안 돼…….”
당문혜가 그것을 바라보며 파르르 입꼬리를 떨었다. 필사의 한 수였으며 상대를 완벽하게 죽이고자 펼친 수법이다.
그럼에도 상대가 멀쩡하니 그 충격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때, 귀면자가 슬쩍 발을 뻗어 바닥에 박혀 있는 암기 하나를 걷어찼다.
쇅-!
바람을 찢으며 날아간 암기는 당문혜의 볼을 스쳤다.
주륵 뺨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낀 그녀가 당혹감 어린 시선으로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는 파르르 입꼬리를 떨었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달아 버렸다.
“제, 제가 졌어요…….”
분기가 가득한 그녀의 한마디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 * *
부들부들-
금왕부 왕야는 입꼬리를 떨었다.
믿었던 천도회의 후기지수들이 대부분 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는 당문혜마저 어이없게 져 버리니 그의 입장에선 최강의 한 수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하하- 정말 멋진 싸움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영친왕이 큰 웃음을 지으며 손뼉을 쳤다.
상대가 호남단가의 인물은 아니었지만 천도회 최강의 한 수가 꺾인 것이니 그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제 남은 것은 호남단가의 인물들이 금왕부를 모조리 꺾어 내고 우승을 하는 것이다.
만약 그리된다면 한 상 크게 대접할 심산이다.
“기뻐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하하하! 이게 다 네 덕 아니겠느냐?”
주지약이 곁에서 싱긋 웃음을 지었다. 본디 영친왕은 무림맹을 섭외하려 하였는데, 그것을 반대하고 호남단가를 추천한 것이 바로 주지약이었다.
그 생각이 절로 맞아 떨어지니 두 모녀의 웃음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바득바득 이를 가는 금왕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통쾌함만 들었다.
‘그건 그렇고…… 어쩌실 요령이시람?’
주지약은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는 귀면자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봤다.
저 끝에 있는 단소미는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딱 보고 단우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설마 이대로 우승까지 가려는 것은 아닌지, 주지약은 다소 곤혹스런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정말 곤란하신 분이라니까.’
* * *
대기실은 그야말로 경악에 가득 찼다.
당문혜가 졌다는 사실도 그러하였지만, 너무나도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인 탓. 지금까지는 단순한 요행이라 생각을 했던 이들조차, 귀면자에 대한 경계심을 보이며 그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또 한 명.
유난히도 시퍼렇게 안색이 질린 이가 있었다.
질근질근 손톱을 깨물며 귀면자 곁에 앉아 있는 장삼태였다.
그가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 같은 새하얀 표정으로 귀면자를 바라봤다.
“저…… 장주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단우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장삼태는 울상을 지었다. 끝까지 시치미를 떼겠다는 단우현의 의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그렇다면 대, 대협께선 왜 이런 대회에……?”
단우현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으면 답을 해 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귀면자가 힐끗 장삼태를 바라봤다.
가면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반짝 빛을 냈다.
장삼태는 차마 그것을 주시하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생각을 해 보니…….”
“생각 해 보니?”
“무신도 사람이더군…….”
“…….”
장삼태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저 가면 속에 단우현이 씩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자기가 헛소리를 내뱉었던 것을 아직까지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것인가?
그제야 장삼태는 단우현이 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면서까지 출전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단우현이 노리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나잖아?!’
세가에서 두들겨 패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많은 이들의 시선도 그렇지만 단소미 또한 있으니까. 하지만 무림대회라는 특성상 치고받는 것이 당연한 만큼, 얼마든지 두들겨 팰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장삼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만있다가는 죽는다!’
그런 생각이 드니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어디를 가느냐?”
“아하하, 뭐…… 뒷간입니다요.”
그렇게 말을 건넨 장삼태가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도망을 쳤다간 곱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 이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단우현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그는 어딘가를 향해 맹렬히 달려갔다.
* * *
비무장 위에는 오랜만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거대한 대검을 손에 쥔 마장강 때문이었다.
낭왕이라는 별호를 가진 것만 보아도 그의 강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백대고수의 말엽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후기지수들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여인.
검을 들고 있음에도 왠지 모르게 우아함을 풍기고 있었다. 얼굴은 다소 지친 듯했으나 그럼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만하는 게 어떤가?”
“싫어요.”
제갈연이다.
그녀는 반드시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남궁소혜와 검조차 부딪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이다.
하여 더욱 무릎 꿇고 싶지 않았다.
마장강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 또한 물러설 수 없음을 알게나.”
“한 수 아래라고 무시하다가는 큰코다쳐요. 알죠?”
“잘 알지. 우리 세가에서 그쪽만큼 무서운 여인은 없을 테니.”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마장강은 눈매를 좁히며 기수식을 취했다.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는 여인이다.
무림에서 상대와의 격차를 무공의 고하로 나눈다고 하지만, 약자가 강한 자를 죽이는 경우도 빈번하게 벌어지곤 했다.
그것이 바로 무림이고 방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였다.
또한.
‘뭔가 있다!’
마장강은 생각했다.
조금 전부터 제갈연의 움직임이 다소 기이했다. 마치 무언가를 짜고 있는 듯 말이다.
온갖 기관진식에 정통한 제갈세가인 만큼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기수식을 취하며 단박에 끝을 내기 위해 몸을 날렸다.
이 일도(一刀)로 무릎을 꿇릴 심산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하게 도를 휘두르는 순간, 제갈연이 다급하게 오른쪽으로 몸을 구르며 손을 뻗었다.
파캉-!
그러나 마장강이 암기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거대한 도를 휘둘러 그것을 막아 내는 순간, 몸을 틀었던 제갈연이 급하게 앞으로 파고들었다.
“윽?!”
“대도는 세밀히 움직이는 게 여의치 않죠?”
순식간에 품으로 파고드는 제갈연을 보며 마장강이 피식 웃더니 보법을 밟고 뒤로 물러섰다.
이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었고, 비숫하게 겪어 본 일이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가슴을 향해 일장을 내지를 수 있는 간격을 만들어 냈다.
짧은 순간, 공력이 손에 모이는 것과 동시에.
“설마 제 가슴에 손을 대시려고요? 책임지실 건가요?”
들려오는 속삭임에 마장강의 몸이 움찔했다.
그것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어느새 제갈연의 검이 마장강의 목에 닿아 있었다.
“요망한 년 같으니…….”
“호호호.”
마장강이 인상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