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90
예상을 뒤엎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무림대회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벌어진 일을 가지고 안줏거리 삼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귀면자가 어떻더니 천도회가 어떻더니.
남궁소혜와 호남단가에 대한 이야기 역시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이번 무림대회의 대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심지어 이번 무림대회에서 천도회 사람들의 대거 탈락으로 인하여, 금왕부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들 또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쪽에 돈을 걸었던 이들 대부분이 땅을 치고 후회를 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금왕부의 입장에선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또한 그것 외에도 소문이 도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제갈연이 낭왕 마장강을 꺾은 사실이었다.
귀면자와 당문혜의 싸움도 논란거리라 할 수 있었지만, 당시 모든 상황을 지켜본 이들은 엄연한 실력 차이에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갈연과 낭왕은 그 반대의 상황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마장강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었다. 연신 밀리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제갈연이었으니까.
그러나 결과가 판이하게 뒤바뀌었다.
둘 사이에서 무언가 대화가 오갔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이 연이어 추측성 발언을 내뱉었다.
“분명 뭔가가 있다니까. 아니면 그렇게 쉽게 질 리가 없지!”
“에이, 그래도 제갈세가인데? 낭왕 따위가 눈에 차겠어?”
“크윽…… 제갈연이…… 그런 놈과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
곳곳에서 들려오는 말에 사람들은 눈물을 삼켰다.
남궁소혜만큼이나 사내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제갈연인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반면
한 사람
권무진은 멍한 표정으로 객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람들은 들뜬 표정으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권무진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주군…….’
권무진은 본선 첫 경기에서 귀면자와 만나 바로 탈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전심전력으로 내뻗은 그의 쌍도는 허무하게 빈 공간만 갈랐으며, 이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을 떠 보니 의방이었고, 권무진은 고작 한 수에 탈락해 버렸다.
이 탓에 그가 쓴 가면의 주인인 군자검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냐는 소리도 흘러나왔다.
결국 권무진은 남궁천의 이름을 더럽힌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
그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연거푸 술을 들이마셨다.
“으하하하!”
“히히히.”
앞에 있는 두 사람이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 사람은 장삼태였고, 다른 한 사람은 홍원창이었다.
둘은 무슨 죽이 그렇게 잘 맞는지, 술잔을 기울이며 연신 권무진 놀리기 바빴다.
“크흠! 권 호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 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맞아. 애초에 그 괴물을 이기려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이야기라니까.”
권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장삼태와 홍원창을 노려봤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내뱉으니 괜스레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괜한 곳에 화풀이해 봐야 무엇이 되겠는가?
권무진은 길게 한숨을 쉬며 술잔을 기울였다.
빈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홍원창이 그 잔을 가득 채웠다.
이런 날에는 먹고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권무진이 자연스럽게 술잔을 받으며 장삼태를 바라봤다.
“그런데 네놈은 괜찮은 거냐?”
“으응? 나 말이냐?”
“그래.”
장삼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모습에 권무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단우현의 대회 참가가 장삼태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이제 없을 것이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다 이놈 때문이잖아?’
권무진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기껏 대회에 출전하여 장삼태와 붙어 볼 요령이었는데, 그것이 무산되어 버리니 내심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곧 단우현에게 벌을 받을 놈이니 굳이 나설 필요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누구야? 바로 장삼태야, 장삼태!”
장삼태는 무엇이 그리 당당한지 가슴을 팡팡 두들겼다. 천하의 단우현을 상대하는 일임에도 자신감을 내비치는 꼴이 상당히 기이하기까지 했다.
권무진은 물론이고 홍원창까지 묘한 시선을 보냈다.
이놈의 이런 자신감의 근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놈이 그리 말을 하니 더 불안한데?”
“으흐흐, 걱정하지 말라고.”
이번만큼은 절대 단우현의 뜻대로 될 리 없었다.
장삼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술잔을 넘겼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들이 두 사람의 불안감을 더 부추겼다. 지금까지 장삼태가 나서서 잘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음을 아니까.
오히려 화가 되었지.
‘일찍 떨어진 것이 잘된 것인지도…….’
권무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
“저기…….”
“크큼…….”
반면, 호남단가에서는 풀이 죽어 있는 이가 또 한 명 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마당 구석에 주저앉아 있는 그는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듯 멍했다.
곁에 제갈연과 제갈운이 있었지만, 이 사내의 귀에는 다른 이야기 무엇 하나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크큼, 미안하네. 딸 아이가 원체 좀…… 그래서…….”
“뭐예요? 꼭 내 잘못인 것처럼…….”
제갈연은 콧방귀를 뀌며 팔짱을 꼈다.
물론 편법을 써서 이긴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넘어간 것은 마장강이 아니었던가?
살아남은 이가 승자인 무림의 특성상, 제갈연은 엄연한 승자이고, 마장강은 꾀에 넘어간 패자였다.
불쌍한 마음에 달래 주고 있기는 하지만, 제갈연은 자신의 잘못은 손톱만큼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지…… 내가 병신이지, 뭐…….”
“그야 당연하죠. 칼이 오가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에 홀라당 넘어간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에요?”
“하. 하. 하아…….”
영혼 없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신랄하게 평하는 제갈연의 말이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고 헤집었다.
나이도 어린 것이 어찌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잘 후벼 파는지.
마장강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자존심마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푸하하- 이놈아, 사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안 그래?”
사도학이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건넸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스운 상황 아닌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대고수에 오른 이가, 어린 계집의 세 치 혀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하였으니, 이만한 웃음거리도 없을 것이다.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나. 이게 다 경험 아니겠는가?”
남궁천이 마장강을 다독이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윽고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포옥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더욱 마장강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사내라면 그럴 수 있다네.”
“아-! 진짜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잠깐 놀란 것뿐이라고요!”
“놀랄 정도였으면 그래도 마음이 조금 있었던 거 아냐?”
사도학의 날카로운 지적에 마장강이 움찔했다.
순간, 제갈연의 표정이 확 변했다.
마치 벌레를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마장강을 바라보다 다시금 표정을 고치고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저기…… 미안해요.”
“아니라고!”
“마음은 고맙지만…… 그…… 취향이 전혀…….”
“……하아, 농담할 생각 없으니 그만 돌아가. 마음 추스르고 들어갈 테니.”
“그래요? 그럼 힘내세요.”
제갈연은 피식 웃음을 짓고 그대로 등을 돌렸다. 쌀쌀맞다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마장강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다.
돌아가는 그녀는 콧노래를 불렀다.
“크윽…….”
“그러게 이 녀석아, 백대고수 어쩌고 하는 놈이 정신력이 왜 그러냐?”
“아니…… 죄송합니다.”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정말로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해라.”
사도학의 조언에 마장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하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이미 이겼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제갈연의 말에 홀라당 넘어간 것이다.
‘나도 아직 미숙하군.’
마장강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별이 유난히도 반짝였다.
그러든가 말든가, 사도학과 남궁천은 더 이상 마장강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한번 좌절을 맛본 이는 반드시 그것을 이겨 내기 마련이니까.
그 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그것밖에 되지 않는 놈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네놈은 괜찮은 거냐?”
힐끗 뒤를 돌아보자 단우현이 보였다. 단소미가 그 무릎을 베고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보아하니 쉽게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무슨 소리지?”
단우현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도학을 바라봤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표정이다.
피식하며 웃음을 흘러나왔다.
사도학은 손가락으로 배를 가리켰다.
“잘 나오냐고 이제. 무슨 놈이 뒷간만 가면 반나절이냐?”
“으음…….”
“덕분에 소미가 좋은 거 먹인다고 산까지 올라갔다 오지 않았냐.”
단우현은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오늘 저녁 유난히도 장에 좋은 음식들이 나온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는가?
정말이지 아비의 걱정 너무하는 아이다.
단우현이 단소미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다. 괜찮더군.”
“쯧쯧, 네놈 때문에 좌절한 놈들이 벌써 몇이더냐.”
“글쎄…… 무슨 소리인지……?”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 버렸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파 최고의 후기지수들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니 괜스레 불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당문혜, 그 아이는 제법이더군.”
“그렇지. 사천당가의 한 수라고 불리는 아이니까 말이네.”
“하지만 아직 미숙하다.”
“당연하지. 나이가 몇이라 생각하느냐?”
이제 약관을 넘은 아이들이다.
아직 더 성장하고 나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부족한 것들이 있을 법도 하다.
그들의 눈에는 단우현이 그것을 가르쳐 준 것에 불과했으나, 당문혜의 입장에선 이만한 굴욕이 또 없을 것이다.
“드디어 내일이 마지막이로구나.”
“그런가?”
단우현은 영 흥미가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회가 지속되든 말든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사도학이 씩 웃었다.
“재미있는 대회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뭐든 좋다.”
“그렇지…… 하지만 네놈도 나와 같을 거다.”
단우현이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려 사도학을 바라봤다. 영롱한 달빛에 비추는 그의 눈동자가 청명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흥미 어린 시선, 도발적인 눈빛.
한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표정.
마치 오래전, 단우현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때, 사도학이 기지개를 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이겨 버리는 건 재미없잖아?”
그런 소리를 하며 등을 돌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단우현과는 다르게, 사도학의 한마디에는 어떠한 의미가 실려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