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295
적무성이 몸을 움찔했다.
그만큼 단우현의 눈빛이 매서웠던 탓이다.
또한 단우현의 옆에는 남궁천과 사도학, 이 세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마치 추궁을 당하는 것처럼 날 선 시선들이 꽂혔다.
적무성에겐 굉장한 부담감이었다.
단우현 하나만으로도 모자라 남궁천과 사도학마저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괜스레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같은 오황이라 하지만 적무성의 실력은 남궁천이나 사도학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력마저 고갈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들과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기에 적무성은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드디어 긴 침묵을 깨고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위압하는 기운이 온몸을 엄습했다.
전신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강하게 느껴지며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고통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놈, 정신머리가 나간 거 아니야? 네놈이 제 발로 찾아와 놓고 모른다는 건 또 뭐야?”
사도학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다그쳤다.
세간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공표된 적무성이다. 사파의 반란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그가 살아 있다 여기는 자들 또한 없었다.
그런 이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인데, 다른 곳도 아닌 호남단가로 찾아온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했다.
혹, 세가에 안 좋은 것을 끌어들이는 것은 아닌지, 남궁천이나 사도학은 경계 어린 표정으로 적무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정말로 모르네. 그냥 무작정 이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움직인 거야.”
그 한마디에 단우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 같은 표정이긴 했으나, 겉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애써 감추려 한 표정에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봐라.”
단우현의 목소리가 귀에 파고드는 순간, 적무성의 눈동자가 잠시 흐릿해졌다가 이내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 왔다.
그것을 눈치챈 사도학이 묘한 표정으로 적무성을 지켜봤다.
“기묘한 무리들이었네. 혈의를 입고 나타난 자들이었지. 느닷없이 무황성 내부로 침입하더니 다짜고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네.”
당시 일을 회상하고 있는 적무성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처음에는 겁 없는 녀석들이 날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는 데다 그 수 또한 그리 많다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파의 무인들이 배신하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그 수가 몇 배로 불어났다.
모든 상황은 마치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는 것 같았다.
느닷없이 사파의 고위 간부들이 배신할 리는 없을 테니까.
그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는데, 붉은 장포를 입은 열 명의 귀인(鬼人)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적무성을 뛰어넘는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괴물들이 열 명이나 있다고?!”
사도학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적무성이 작은 신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의 악몽 같은 시간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인지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당당하게 죽지 않고 도망을 쳤다라…….”
단우현이 적무성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오황에 버금가는 이들이 열 명이나 있다는 사실은 놀랄 만 했다.
그런 압도적인 힘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무황성을 뒤집어엎는 것은 무척 쉬웠을 것이다. 심지어 내부에서 도움을 준 이들마저 있었으니까.
적무성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을 터.
“하지만 살아남는 것이 꼭 치욕은 아니지.”
뒤이어 단우현이 웃음을 보이며 중얼거렸다.
이 무림에선 살아남는 이가 승자였다.
정체 모를 인영들은 비록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적무성이란 불씨를 남겨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좋네만 상황 자체가 조금 심각한 것 같네. 오황과 버금가는 이들 열 명이라……?”
남궁천이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오황은 중원에서 손꼽는 절대자들을 뜻했다. 지금까지 이들만 한 고수들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 균형이 깨지지 않았던 것인데, 열 명이나 되는 절대 고수들의 등장은 실로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그리 많은 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솟구쳐 나온 것인가.
남궁천의 눈이 점점 깊어졌다.
“최대한 빠르게 확인해 보겠습니다.”
제갈운이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움직였다.
이 일은 단순히 사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저 정도 절대고수가 대거 등장했다는 것은, 정사마를 비롯하여 전 무림의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혈의…… 혈의…….”
그때, 장삼태가 무언가 고민하듯 중얼거렸다. 작은 소리이긴 했지만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는지,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향해 돌아갔다.
“아는 자들이냐?”
가장 먼저 물은 것은 다름 아닌 남궁천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파의 상황이 안 좋을 때 이런 일이 터지니, 한때 무림맹주였던 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삼태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붕붕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요. 제가 그런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요. 하. 하.”
장삼태는 마치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듯 어정쩡한 말투로 부정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다른 이들의 의심을 부추기는 것 같았다.
‘설마.’
이윽고 사람들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단숨에 단우현을 향했다.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않으나, 어쩌면 그가 관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단우현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모든 시선을 받아넘겼다.
“뭐냐?”
“자네, 혹 지난번에 갔던 유람 말이네. 저 녀석과 둘이서 갔을 때…….”
남궁천이 의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뭐지?”
“어디를 갔었는가?”
“장백산이다.”
“그…… 그곳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단우현이 남궁천을 바라봤다. 그가 한 질문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한 듯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당당하게 내뱉는 한마디에 장삼태가 입을 꾹 닫았다.
‘아무것도 안 하기는…….’
살아생전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던 장삼태의 입장에선 콧방귀가 나올 정도로 어이없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혈의라면 그때 도망친 놈들이잖아.’
장백산을 헤집으며 돌아다녔을 당시, 단우현이 때려 부순 그곳에서 무수히 많은 이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도망쳤다.
아마도 이번 무황성 습격의 범인은 그들이 아닐까 싶었다.
‘말하면…… 죽겠지?’
저리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초를 쳤다간 그냥 끝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자 장삼태는 입을 꾹 닫았다.
“혹 네놈 짓 아니냐?”
사도학마저 묘한 표정을 짓자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입에 대었던 찻잔을 내려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단우현은 여전히 잡아떼며 천천히 자신의 거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은 꽤 여유로워 보였으나 조금 빨라진 걸음걸이는 마치 도망을 치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이들이 그런 단우현을 주시하다 이내 장삼태를 바라봤다.
‘저 녀석 같은데?’
‘틀림없이…….’
‘역시 단 가주의 짓인가.’
여기저기에서 확신 가득 찬 시선을 보냈다. 그만큼 단우현의 행동이 기묘했던 탓이다.
제갈운이 머리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 세가가 모든 골치 아픈 일의 중심이 아닌가 싶었다.
그때, 장삼태가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헤헤헤, 소인은 이만. 청소해야 할 것들이 남아서…….”
장삼태는 바로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칫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입에 담기라도 한다면 좋게 끝나지 않을 테니까.
“잠깐 기다려라.”
움찔!
장삼태가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렸다.
눈을 치켜뜬 사도학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털어놓으라는 강렬한 압박을 내보이고 있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요?”
“앉아라.”
“헤헤, 소인은 할 일이…….”
“앉아.”
“싫습니다요.”
장삼태는 결코 이 자리에 남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다른 일도 아닌 그날 단우현이 벌인 모든 일을 알고 있는 그였다.
사도학과 남궁천이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게 한다면,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터였다.
그것만큼은 절대 사양이었다.
“허허허, 왜 그러는가? 그냥 앉아서 이야기나 좀 하자는 것이네.”
“헤헤, 많은 담소 나누십시오. 소인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사도학과 남궁천의 눈이 반짝였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장삼태는 필시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
무황성에서 벌어진 일이 단우현이 움직인 여파라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정황.
그러나 그것 외에도 장삼태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것을 캐내고야 말겠다.
두 사람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을 냈다.
“잠깐 따라와 봐라.”
그때, 사도학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것과 동시에 장삼태가 부리나케 경공을 펼치며 도망을 쳤다.
“이놈 보소?”
사도학과 남궁천이 동시에 장삼태를 쫓았다.
* * *
좌중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가장 높은 상석에 앉아 있으나, 그 힘은 다른 이들에 비해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치자(治者)의 근엄함도 패자(?者)의 기세도 없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하나같이 하늘을 꿰뚫는 힘을 지닌 자들.
온 중원 사방에 퍼져 있던 혈마의 진정한 힘.
그들의 시선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해 보였으며, 눈앞에 있는 이를 향해 절대적 충성을 맹세했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한층 더 자신들을 낮췄다.
상석에 앉은 사내는 침을 삼키며 숨을 골랐다.
‘내가…….’
이제는 찾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자신의 주군.
본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던 이들이 이제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절대적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무공이라고는 쥐뿔조차 모르는 만후량이기에 이 상황이 몹시 불편했다.
[복수하게 해 주랴?]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누군가 그에게 그런 말을 속삭였던 것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누구인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만후량이 인상을 썼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머리가 아파 왔다.
‘하지만…….’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은 힘을 얻었고 주군의 복수를 이룰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만후량은 만족하며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