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
악양 어디를 뒤져 봐도 이 장원보다 멋진 곳은 없을 것이다. 동정호에서 가장 돈 많은 이의 집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좋지는 않을 것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그만큼 집 짓는 단우현의 실력은 탁월했다.
칼밥을 먹고 살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손재주다. 어쩌면 그의 천직은 무인이 아닌 목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드넓은 장원 마당에는 커다랗게 파 놓은 연못이 있다. 동정호에 있는 물을 퍼다 담은 것으로 보이는데, 용케도 혼자서 그걸 다했다.
연못 위엔 두둥실 연꽃이 떠 있고, 그 안에는 제법 튼실한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며 놀고 있었다.
이것 또한 낚시를 하여 잡아 놓은 것들이다.
장원 마당 정중앙에는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천 년 묵은 거대한 나무인지라 그 높이는 실로 어마어마하여, 담장 밖에서도 소나무의 형태가 보일 정도였다.
그 화려하고 웅장한 소나무 덕에 장원은 한층 더 풍미가 있어 보였다. 누가 봐도 결코 이 장원이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 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본 각이라 할 수 있는 건물 뒤편으로는 자그마한 연무장이, 그 옆으로는 부엌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데 걸린 시각은 고작해야 사흘, 보통 사람이라면 인부들을 총동원하여도 몇 달이나 걸리는 작업을 너무나도 수월하게 해냈다.
그리고 지금, 단우현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는지 망치질을 하고 있다.
쿵쾅쿵쾅-!
화소미는 주르륵 흘러나오는 코를 집어넣으며, 가만히 단우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무언가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작은 손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단우현의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잔심부름이라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딱히 장원에서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한참을 그렇게 단우현을 바라봤다.
지그시, 뚫어지게, 만약 쳐다보는 것만으로 사람의 몸에 구멍을 낼 수 있다면, 단우현은 지금 온몸에 수백 개의 구멍이 생겼을 것이다.
결국 지루함을 참다못한 화소미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
“왜 그러느냐?”
“뭘 만드시는 거예요?”
우물쭈물, 작게 중얼거렸다.
작업할 때 방해 받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말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몇 번이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나이 어린 화소미에게 있어서 상당히 용기를 낸 한마디였다. 사실 옆에서 계속 쳐다보고 있기는 했지만, 단우현이 뭘 만드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보기에는 그저 단순한 통 같았다.
“목욕을 할 수 있는 통이다.”
“목욕……?”
“그래, 몸을 씻는 거 말이다.”
화소미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동정호에서 물을 상당히 많이 떠온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무슨 용도인가 싶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목욕이라니.
“거기 서라.”
“…….”
단우현이 도망치려 하는 화소미를 불렀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자리를 벗어나던 화소미가 우뚝 멈춰 섰다. 그녀에게 있어선 단우현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천금과도 같은 무게를 지녔으니까.
“어제 잡은 멧돼지와 나무를 팔아 옷을 샀다. 새 옷을 입으려면 당연히 몸이 깨끗해야지.”
“아, 안 씻어도 멋져요, 아저씨는.”
“나는 그렇지만 너는 그렇지 않지.”
“아니에요, 아니에요! 소미도 완전 깨끗한걸요?”
단우현은 콧방귀를 뀌었다.
깨끗하다?
기껏 만들어 놓은 침상에서 딱 하루 잠을 잤을 뿐인데 온통 묵은 때가 묻어 있었다.
옷은 또 얼마나 오래전에 빨았는지, 시커먼 얼룩은 지어지지도 않을 것 같았다.
심지어 저 얼굴을 보라.
콧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선명하고, 얼굴에는 온갖 흙들이 묻어 있었다. 맞은 상처 또한 아직까지 가라앉지 않아 아이가 사내인지 계집인지도 분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단우현은 동정호에서 퍼 온 물을 통에 붓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며 화소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추운 날에 목욕을 했다간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아이는 그대로 뜀박질을 하며 내달렸다.
단숨에 장원의 대문으로 향한 것이다. 자그마한 몸놀림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한데, 마치 누군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단우현이 있는 곳으로 쭉 끌려왔다.
“어? 어?”
화소미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하며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생각은 더 이상 오래가지 못했다.
돌연 풍덩 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집어삼켰다.
꼬르륵-!
허우적거리며 몇 번이고 난리를 피워 보았지만 단우현의 힘이 얼마나 센지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푸홧!”
“물에 담그는 것만으로 때가 가실 리가 없지.”
단우현은 손을 뻗어 재빨리 아이의 얼굴을 닦아 냈다. 그럴 때마다 시커먼 땟물이 주르륵주르륵 단우현의 손을 타고 떨어졌다.
낡아 빠진 옷가지를 모조리 벗겼다.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 버린 화소미가 화들짝 놀랐지만, 단우현이 고작해야 어린아이의 몸을 보고 성욕이 생기는 이상한 놈은 아니었다.
온몸을 구석구석 씻겨 주었다.
순식간에 물이 더러워졌다. 역한 냄새까지 풍겨 오니 코를 막아야 할 지경이었다
손을 대고는 있지만 결코 몸에 튀고 싶지 않은 그런 물이다.
“도대체 얼마나 안 씻으면 이렇게 되는 거지?”
“모…… 몰라요! 헝…….”
단우현의 거친 손길은 결코 멈추지 않았고, 결국 화소미는 울상을 지으며 주저앉아 버렸다.
반 시진 뒤, 반쯤 죽은 생선 같은 눈이 되어 버린 화소미를 끄집어내 구석구석 몸을 털어 주었다.
목욕을 시키며 워낙 난리를 피운 통에 단우현조차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화소미의 옷을 다 갈아입힌 단우현은 자신 또한 그리 좋지는 않지만 새로 사 놓은 백의 장삼으로 갈아입었다. 거침없이 옷을 벗는 그의 모습을 화소미가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게 다 뭐예요?”
단우현의 몸에 나 있는 상처를 두고 물은 말이었다. 베이고 찔린 상처들이 어찌나 많은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돌려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화소미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아직 어리기에 아무것도 몰라 하는 행동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침착함이었다.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영광의 상처지.”
“영광? 먹는 거예요?”
“아니, 뭐든 먹는 것으로 연관 짓지 말거라.”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세상에는 잘 먹는 거랑 잘 자는 게 최고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잘 먹으면 그만큼 부유하다는 것이고, 잘 자면 그만큼 좋은 집에 머문다는 뜻이니까.
“하하, 맞는 말이기는 하구나.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르다. 최고가 되기 위한 여정이 남긴 흔적들이라고나 할까?”
“최고요? 혹시 목수?”
“…….”
화소미가 보기엔 단우현은 틀림없는 목수였다.
이렇게 무언가를 잘 만들 리가 없으니까.
이 집은 물론이고, 방 안을 둘러봐도 사 온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단우현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것들이다.
이것만 봐도 단우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가진 목수라고 화소미는 확신하고 있었다.
“목수는…… 아니다.”
“아저씨, 목수 아니었어요? 그럼 뭔데요?”
“나무를 잘 만진다 하여 다 목수는 아니지. 그저 남들보다 칼을 좀 더 잘 쓸 뿐이다.”
“칼이요? 숙수? 하지만 아저씨가 해 준 요리는 전부 굽거나 생으로 먹는 거였는데…….”
“하하하…….”
“아! 요리를 못해서 거지가 되었군요.”
화소미는 깊이(?) 납득을 한 듯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보냈다.
잡는 건 잘하지만, 막상 요리를 못한다. 그래서 제대로 숙수 일을 할 수 없었고 결국 거지가 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한 듯했다.
“숙수도 아니었다.”
“그럼 조금만 더 알려 줘요.”
흠- 하며 신음을 삼킨 단우현이 탁자에 앉았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칼 들고 사람을 죽이며 세상을 떠돌았다. 하지만 그게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딱히 그것으로 돈을 번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고 진실 되게 말하기에는, 화소미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눈에 걸렸다. 이 아이 앞에서는 누구보다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결국 얼버무리며 넘어가야 했다.
“알아봐야 좋을 것 없으니 이만하자. 그건 그렇고, 옷은 잘 맞느냐?”
“네! 이런 옷을 입어 보는 건 처음이에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화소미가 빙그르르 돌았다. 옷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비단으로 만들어진 비싼 옷은 아니었지만, 저잣거리에서 나름 고급 천을 사용해 만든 것이었다.
덕분에 상당히 비쌌다.
나무와 가죽을 팔아 번 돈 대부분을 저 옷 한 벌 사는 데 썼을 정도로.
“잘 맞으니 다행이구나. 혹시 맞지 않을까 걱정하였는데…….”
털썩-
화소미가 의자에 주저앉아 양발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러고는 동그란 눈동자로 단우현을 지그시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티끌 하나 없이 맑은 눈동자는 오로지 단우현만 담고 있었다.
“안 맞아도 괜찮아요. 이것보다 싼 옷을 입어도 배를 곯아도…… 소미는 괜찮아요. 아저씨랑 있으면 뭐든 괜찮아요.”
단우현은 멍한 시선으로 소미를 보고 있었다.
순진무구한 표정과 말투, 그 속에는 어떠한 가식도 없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말을 언제 들어 본 적이나 있던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 접근을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혹은 그의 목을 가져가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그것은 단우현의 가슴속 깊이 비수를 꽂아 넣었다.
하여, 소미의 한마디는 그의 심금을 울렸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똑바로 화소미를 바라보지 못했다.
아마도 이 아이 또한 목적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것은 이익이 아닌, 그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것 또한 어쩌면 이 아이가 단우현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단우현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더 마음이 간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정말로 이 아이라면 천 년이라는 세월의 빈 공허함을 가득 메워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어린 것이 말만 번지르르하구나.”
“우리 엄마가 항상 말했어요. 소미는 어리지만 머리가 늙었다고. 저는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다.”
“그게 뭐예요? 먹는 거예요?”
또 고개를 갸웃한다.
정말로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단우현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이 아이는 뭐든지 먹는 것으로만 생각을 한다. 아마도 오랫동안 굶주렸으니 그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느낌이 좋은지 화소미가 눈을 감으며 배시시 웃었다.
“이렇게 조용히 살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럴 수 있어요!”
“하하, 그래 그랬으면 정말 좋겠구나.”
단우현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열려 있는 창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조심스레 단우현을 휘어 감고 멈춰 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단우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칼밥을 먹고 산 인간은 결코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지금 단우현에게 부는 바람은 칼날 끝에 머물러 있었다.
바란다.
이 바람이 결코 다시 흐르지 않기를.
무공이 퇴보해도 상관없었다.
이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것이 지금 단우현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소망이었다. 과거 피 튀겼던 그 격렬한 삶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욱 만족스러웠다.
씩 웃음을 지은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그럼 단장도 다 했으니 산을 올라가 볼까?”
“좋아요! 오늘은 소미가 맛있는 걸 먹여 드릴게요. 헤헤헤.”
단우현은 다시금 배시시 웃는 화소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