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05
상황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 들어갔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장삼태는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주변을 찾아본들 보이지 않았으며, 금환객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이 악양 땅을 완전히 떠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가의 사람들은 장삼태가 가출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
“크큼…….”
가만 앉아 있는 단우현은 곳곳에서 꽂히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남궁소혜가 힐끗, 사도학과 남궁천이 힐끗, 지나가는 이들마저 단우현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마치 죄지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단우현이 인상을 썼다.
“왜 그리 보는 것이냐?”
다소 짜증이 난 투가 역력했다.
할 말이 있으면 당장 와서 할 것이지, 괜히 뜸을 들이며 사람에게 눈치를 주는 것 같지 않은가?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당당한 단우현의 입장에서 그들의 시선은 달갑지 않았다.
“크흠! 아니, 뭐 다른 것은 아니고…… 정말로 그놈이 도망갔나 싶어서 말이야.”
사도학이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이 호남단가에서 장삼태는 나름 중심되는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잡일을 도맡아 했으니, 없으면 안 되는 아주 소중한 이었다.
그런 이가 나갔다.
누구 때문에?
자연스럽게 단우현을 향해 시선이 갔다.
“오지 않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군.”
“괜찮으냐?”
“뭐가 말이냐?”
단우현이 인상이 깊어졌다.
사도학이 내뱉은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그의 시선이 어느 곳으로 향했다.
자연스레 바라보니 한가득 쌓여 있는 빨랫감이 보였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만큼, 빨아야 할 빨랫감들이 수북하게 쌓인 것이다.
고작해야 이틀이 지났는데 말이다.
또한 남궁소혜의 몰골 역시 말이 아니었다.
끼니마다 챙겨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했다. 심지어 수련마저 게을리할 수 없었으니, 점점 심신이 지쳐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당에 잔풀도 많이 자랐고, 쓸지 않은 탓에 꽤 더럽다.”
사도학의 말에 단우현의 시선이 그제야 마당을 향했다. 많이 지저분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잡풀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으며, 곳곳에는 단소미가 버려 놓은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며칠만 지나면 너저분해질 것이다.
“이거 다 누가 하냐? 사람이라도 쓸래?”
단우현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사람을 쓴다는 것은 곧 돈이 나간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하오문주에게 사기를 당한 탓에, 상당한 금자를 소비했다.
이 정도 크기의 장원을 관리할 사람을 구한다면 결코 한두 명 가지고는 되지 않을 테니, 꽤 큰돈이 나갈 것이다.
적어도 달마다 은자 열 냥 정도?
단우현은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게 좀 살살 다루지 그랬어!”
“내가 뭘 했다고 그러나?”
사도학이 지그시 단우현을 바라봤다.
장삼태를 가장 많이 혼낸 것은 다름 아닌 단우현이었다.
그럼에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단우현도 할 말은 있었다.
단우현이 장삼태를 건드린 것은 그가 잘못했을 때만이었다.
애초에 그 녀석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때리거나 걷어차거나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학은 툭 하면 건드렸고, 심사가 꼬였을 때도 장삼태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나보다는 네놈이 때문이겠지.”
“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무공도 가르쳐 줬고.”
“그거라면 나도 가르쳐 주었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퍼졌다.
서로가 나빴다면서 잘못을 부정하는 모습은 다소 우습기까지 했다.
곁에 있던 남궁천이 껄껄 하며 웃음을 지었다.
“허허, 진정들 하게. 누가 되었든 일은 벌어졌고 지금은 녀석을 어찌 데려오느냐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은가?”
“쳇…….”
“…….”
사도학과 단우현이 입을 다물었다.
기실 이곳에 있는 세 사람 중 장삼태를 가장 크게 돌봐 준 것은 다름 아닌 남궁천이었다.
처음에는 도둑놈이라 하여 잘 믿지 않았으나, 오랜 시간 장삼태라는 인간을 겪어 보니 정파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겉으론 웃고, 속으로 칼을 가는 이들보다 백번 나았다.
그렇기에 남궁천은 누구보다 장삼태에게 많은 정이 갔다.
하다못해 그 녀석은 겉과 속이 같은 인간이었으니까.
“도망간 녀석을 뒤쫓는 건 나중에 하기로 합세. 지금은 세가의 일이 먼저이지 않은가?”
남궁천의 말에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이틀이란 시간이 흘렀다.
적무성이라는 종놈이 있다고는 하지만 장삼태만큼 꼼꼼하지 못하고, 또한 아는 것이 없으니만큼 그리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단우현이 슥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한숨을 쉬었다.
언제까지고 이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할을 나누도록 하지.”
그가 한마디를 내뱉자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그의 입을 주시했다.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장삼태만큼 믿을 만한 이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단우현은 사람을 가리고 있을 만큼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으헤…… 으헤헤헤!”
바닥에 누워 있는 장삼태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강아지가 재미있는 것인지, 아니면 먹이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이 재미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어쩌면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홍원창은 그런 장삼태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휴…….”
고작해야 이틀.
느닷없이 찾아온 장삼태를 재워 준 날이다.
파업을 했다며 돌아가지도 않고 한량처럼 종일 뒹굴고 있었는데 어찌나 꼴 보기 싫은지…….
또다시 깊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자네, 정말 괜찮은가?”
“뭐가 말이요?”
“아니, 이러다 주군께 제대로 얻어맞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아니, 제기랄! 내가 그 인간들 눈치나 보면서 살아야 하오?”
울컥한 장삼태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랬던 게 하루 이틀인가?”
“……그건 맞지만 어쨌든 나는 이제 그런 인간들 모르오! 내 마음대로 살거니까.”
“어휴, 애도 아니고…….”
“나 애요, 애!”
장삼태가 탕탕 가슴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더 이상 무슨 이야기도 듣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없어져 봐야 비로소 소중함을 느낀다고 하니, 지금쯤이면 장원 식구들 대부분이 장삼태의 소중함을 조금씩 깨닫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중요한 순간에 팍! 하며 나타나면 다들 반겨 주겠지.’
장삼태는 속으로 계획을 그렸다.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 혼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존재 의의를 그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시켜 줄 수 있다.
머릿속에 있는 계획들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자.
장삼태는 그런 생각을 하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
하지만 그런 장삼태를 바라보고 있는 홍원창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빤히 보이는 데다, 단우현이라는 존재를 너무 쉽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단우현이다.
장삼태가 저런 식으로 나온다면 단우현은 결코…….
‘붙잡지 않을 테지.’
버리면 버렸지 붙잡지 않을 것이다.
그의 냉정한 성격을 정녕 몰라서 그러는 것인가 싶었다. 아니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않는 건가 싶어 히죽히죽 웃고 있는 장삼태를 불쌍하게 바라봤다.
‘절대 생각 안 하고 있군.’
홍원창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만 여기서도 그리 오래 머물게 해 줄 수 없다네.”
“나가라는 소리요?”
“그렇지. 잘 아는군.”
“엥?”
장삼태가 두 눈을 끔뻑이며 홍원창을 바라봤다.
갈 곳 없는 사람을 내쫓겠다는 것인가 지금?
다소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홍원창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누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하지 않았던가? 한량 같은 이를 내 집에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네. 더군다나 소미도 자주 오는데, 그때마다 숨어 있을 텐가?”
그 말에 장삼태가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이곳에는 홍진랑이 때문에 가끔 단소미가 찾아오곤 했다.
때가 될 때까지 다른 이들을 절대 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장삼태였으니, 단소미조차 보아서는 안 된다.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자그마한 손에 끌려가고 말 테니까.
단소미에게 너무 약한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홍 아저씨-!”
저 먼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장삼태가 몸을 날려 지붕 위로 올라섰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꿀꺽-
지붕 위에 몸을 최대한 낮춘 장삼태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단우현의 손을 붙잡고 홍원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단소미가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잘 있었느냐?”
“무…… 물론입니다, 주군.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홍원창마저 긴장을 금치 못한 상황이었다.
장삼태가 가출을 하였고 그를 재워 주고 먹여 주고 있었다.
만에 하나 그것을 단우현에게 들켰다간 자칫 함께 혼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 것이다.
“소미가 오고 싶다 하여 데리고 온 것이니 신경 쓰지 마라.”
“놀다 올게요.”
반갑게 홍원창의 두 손을 붙잡았던 단소미가 쪼르르 홍진랑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장삼태가 없으니 심심했던 것인지 친구를 찾아온 것 같았다.
그 뒷모습을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바라봤다.
“그럼 나는 갈 테니 나중에 돌려보내거라.”
“아…… 알겠습니다.”
식은땀을 흘린 홍원창이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소미를 맡겨 놓고 홀연히 돌아갔기에 특별히 무언가를 눈치챈 낌새는 없었다.
한데, 단우현이 등을 돌리다 우뚝 한 자리에서 멈춰 섰다.
두근두근-
홍원창과 숨어 있는 장삼태가 숨을 죽이며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귀신보다 무서우면 무서웠지 못하지 않는 단우현의 발길이 멈춰 섰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그때, 슥 하며 단우현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지붕을 가만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시선 같았다.
홍원창의 이마에서 주륵주륵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마치 비를 맞은 사람 같아 보였다.
“쓸모없어 보이는 놈도 가끔 쓸모 있을 때가 있다.”
“예?”
의미를 알지 못하는 홍원창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마치 가출한 장삼태를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장원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다른 것을 말함인지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단우현이 슥 하고 손을 뻗어 홍원창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말을 내뱉은 단우현은 서슴없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빛이 지붕 위를 한 차례 훑었다.
이윽고 아무런 말도 없이 그곳을 천천히 벗어났다.
굳어 있는 홍원창과 장삼태가 한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닦아낸 것은 그로부터 약 일각이 더 지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