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10
음습한 어둠 속에서 악양 관아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수십 명은 될 법한 이들이 수풀과 건물 사이에 몸을 숨긴 모습은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맹수와도 같아 보였다.
“끄아아아악!”
안에서는 누군가 고문을 하는 것인지 사내들의 괴로운 비명이 퍼져 왔다.
그럴 때마다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들이 몸을 움찔하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으나, 가장 선두에 있는 유덕천이 신호를 보내지 않는 탓에 그저 안절부절하지못하고만 있었다.
“죽인다…….”
유덕천은 관아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악양 관부 안에 누가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러나 천하의 녹림을 건드려 놓고 곱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리라.
유덕천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슬쩍 칼을 들어 올린 그가 드디어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수많은 녹림도들이 일제히 담벼락을 넘어서며 공격을 개시했다.
촤촤악!
“스…… 습격이다!”
동료가 쓰러지는 것을 보는 순간, 한 포졸이 크게 소리를 쳤다.
손에 쥐고 있는 창을 뻗어 후려치려 했지만, 어이없이 허공을 가른 창대가 칼에 막혀 동강 나고, 포졸의 머리가 갈라졌다.
촤아아악!
피가 터졌다.
이 자리에서 유덕천의 일격을 막아 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가 휘두르는 칼날은 마치 폭풍과도 같이 주변을 휩쓸었다. 피 묻은 도가 넘실넘실 춤을 추니 마치 흉신(凶神)을 보는 듯했다.
“저항하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라!”
들려오는 유덕천의 외침에 수하들이 광소를 터뜨리며 답했다.
녹림도를 건드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겠다는 듯 그들의 시선이 흉흉한 빛을 냈다.
* * *
쾅-!
들려오는 고함과 괴성에 장삼태가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벌컥 문이 열리고는 헐레벌떡 매향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큰일이에요!”
“무슨 소란이야?”
“산적들이 관아를 습격하고 있어요!”
장삼태가 기겁을 하며 슬쩍 창문 밖을 바라보니, 포졸들이 산적들을 상대로 어렵게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죽는 이들도 있었으며 쓰러진 채 혼절한 자들도 있다.
산적들에겐 자비가 없었으며, 쓰러진 이의 목숨을 완전히 끊어 놓는 잔학함마저 보여 주었다.
“뭐하는 거예요! 빨리 도망가야죠!”
“기…… 기다려 봐!”
매향이 장삼태의 손을 이끌고 황급히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지금 도망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네 이놈들-!”
까랑까랑-!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쓰러진 포졸들 사이를 가르며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홍원창.
한 손에 검을 쥐고 있는 그는, 자신의 무기력함 따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죽어 가는 수하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일념만 가진 듯했다.
“저 병신이……!”
장삼태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홍원창이다.
단우현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데다 이름값도 못 하는 현령에 지나지 않는 자였다. 그런 놈이 무슨 자신으로 검을 들고 설치는가.
“네놈이 현령이냐?”
그런 홍원창 앞에 유덕천이 우뚝 섰다.
팔 척의 장신인 커다란 키, 곰과도 같은 덩치, 부리부리한 눈매와 덥수룩한 수염, 손에 쥐고 있는 칼조차 이쑤시개처럼 보이게 만드는 엄청난 사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기를 죽이는 듯한 그의 등장에 홍원창이 몸을 움찔하며 겁을 집어먹었다.
많은 이들을 만나 보았고 그중 무서운 자들 또한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유덕천만큼 강인한 기세를 뿜는 자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몸이 위축되었다.
“그…… 그렇다! 네놈들은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날뛰는 것이냐!”
“흥! 내 그런 것도 모르고 온 것처럼 보이느냐?”
콧방귀를 뀌는 유덕천이 칼을 휘둘렀다.
가볍게 내지른 검날이 번뜩이며 삽시간에 홍원창의 가슴을 갈랐다.
촤악!
“끄억!”
“아버지!”
“여보!”
가슴에서 피가 튀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의 애타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차례 크게 휘청인 홍원창이 이를 악물며 버텨서면서, 두 사람이 다가오려는 것을 막았다.
부스럭!
이윽고 소리가 들렸다.
유덕천의 고개가 돌아간 것 또한 바로 그때였다.
눈앞에 있는 이들에게 정신이 팔린 탓에 다른 누군가 더 숨어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칼날이 매섭게 옆을 향해 휘둘렀다.
부웅-!
바람을 가르는 거센 도가 폭풍을 머금고 휘둘러졌다. 쭉쭉 뻗어 나가는 강맹한 기세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그 힘 또한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했다.
쾅-!
이윽고 별채 한 곳이 와르르 무너지며 그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럼에도 유덕천은 멈추지 않았다.
느닷없이 내달리며 또 한 번 칼을 휘둘렀다.
쾅!
“큭!?”
“…….”
어마어마한 공력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가까스로 몸을 피한 장삼태가 다리를 뻗어 휘둘러진 도의 궤도를 바꾸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매향은 결코 무사하지 못했을 거다.
품에 매향을 안고 있는 장삼태가 이를 갈며 유덕천을 쏘아봤다.
유덕천 또한 재차 장삼태의 머리를 노리며 도를 찔러 넣었다.
촤악-!
치고 들어오는 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똑바로 쳐다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장삼태는 그대로 꼬치가 되어 버렸을 거다.
“개놈 새끼!”
“……!”
난데없는 욕설에 유덕천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머금으며 또다시 횡으로 크게 도를 휘둘렀다.
부웅-!
강맹한 기세가 맺혀 있는 칼날은 무겁다.
도기가 실려 있는 그 공격은 장삼태가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인 장삼태가 다리를 뻗었다.
비스듬히 휘둘러지는 칼날의 옆면을 후려쳤다.
콰다다당-!
그러나 공력의 차이 탓인지 오히려 장삼태가 허망하게 뒤로 튕겨 날아갔다.
품에 끌어안고 있던 매향은 이미 떠올랐으며, 장삼태의 몸이 벽에 부딪치며 토혈했다.
“커억!”
유덕천이 떨어지는 매향의 몸을 가볍게 받았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제법 반반한 계집이로군.”
“히끅!?”
“너…… 이 개새끼……!”
“하하, 그렇게 얻어맞고도 아직 말할 힘이 남았나?”
유덕천이 제법 흥미로운 표정으로 장삼태를 바라봤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종잇조각처럼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다.
그런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 내고 움직인다?
그 말은 상대가 기운을 흘렸거나 유덕천 못지않은 공력을 지녔다는 뜻이었다.
유덕천은 전자라 생각했다.
놈은 그만큼 뛰어난 몸놀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장삼태가 손을 뻗었다.
촤락-!
뻗어 나온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덕천이 뒤로 물러서며 도를 휘둘렀다.
촤촤촤악!
누구도 쉽게 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강사가 어이없이 끊어졌다.
강사의 강도는 공력에 영향을 받으므로, 장삼태의 공력이 형편없을 정도로 뒤떨어져 발생한 일이었다.
“채주님, 그놈입니다! 그놈이 바로 섬전각 장삼태입니다!”
그때, 뇌옥에서 풀려난 균웅이 크게 소리를 치며 장삼태를 가리켰다.
처참하게 뭉개진 그의 상태만 아니었으면, 당장 달려가 주먹이라도 휘두를 것처럼 이를 갈았다.
“역시 그렇군.”
유덕천은 생각했다.
이만한 각력을 가진 자가 그 말고 또 있겠는가?
확실히 얻어맞지는 않았지만 각법으로 도기를 두른 공격의 경로를 바꿀 정도라면 섬전각 이외에 다른 녀석은 없을 것이다.
생각을 끝마친 유덕천이 도를 치켜들었다.
단박에 놈의 머리통을 갈라 버릴 심산이었다.
그때, 갑자기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윽?!”
그리 아픈 것도 아니지만 놀랄 만한 일이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품에 안겨 있는 매향이 유덕천의 팔을 깨물고 있었다.
“이년이?!”
유덕천이 거칠게 소리를 치며 손을 휘둘렀다.
짝-!
뺨을 얻어맞은 매향의 몸이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땅에 쓰러진 그녀는 앙칼지게 유덕천을 올려 보면서도, 장삼태를 향해 말을 건넸다.
“도망쳐요!”
“뭐어?”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요!”
매향의 한마디에 장삼태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제일 위험한 게 누구인데 누구보고 도망치라고 말을 하는가?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유덕천이 고함을 내지르며 장삼태를 향해 다가갔다. 천천히 걸어오는 그에게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치솟았다.
매향의 앙칼진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다.
“이대로 죽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요!”
강한 외침에 장삼태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시선을 돌려 다른 쪽을 바라보자 홍원창 또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뚝뚝 피를 흘리면서도 장삼태에게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야 뭘 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장삼태는 망설였다.
정말로 도망을 쳐야 하나?
자신 혼자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도망치는 순간 뒷일은 누가 책임지겠는가? 홍원창이나 매향이 죽을 수도 있고, 자칫 더 큰 참사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목숨 바쳐 싸운다면……!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장삼태가 매향을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나서면 반드시 죽는다.
장삼태가 죽는다고 다른 이들이 무사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도박이라 한다면, 누구 하나라도 살아남아 차선책을 생각하는 것이 맞았다. 하다못해 남궁천이나 사도학, 혹은 단우현이라도 데려온다면!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장삼태가 훌쩍 몸을 날렸다.
쾅!
동시에 유덕천의 도가 바닥을 내리찍었다.
후드득- 떨어지는 거센 파편들이 참상을 자아냈다.
“칫…… 다리 하난 빠른 놈이로군.”
유덕천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느새 지붕 위에 올라선 장삼태가 보였다.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는 사이로 휑한 바람이 불어왔다.
장삼태의 매서운 시선은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등을 돌려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섬전각은 고작 이 정도였나?”
사라져 버린 장삼태를 떠올리며 유덕천이 중얼거렸다. 저런 놈에게 녹수채가 박살 났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목을 따지 못한 것이 한이기는 하나, 이 년놈들이 제법 관계가 깊은 것 같으니, 인질로 삼는다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유덕천이 그런 생각을 하며 씩 웃는 순간.
매향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에는 그런 여유를 가질 새도 없을걸요?”
“뭐라고?”
“후후…….”
매향은 유덕천을 비웃었다.
그 뜻 모를 미소에 유덕천은 괜스레 불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