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12
장삼태가 다시금 관부로 돌아갔을 때는 누구 하나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시체들마저 치웠는지, 쥐죽은 듯 고요함만이 악양 관아를 감싸고 있었다.
“망할!”
장삼태가 욕을 내뱉으며 인상을 썼다.
아직 그놈들이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사라졌으니 허탈한 마음마저 들었다.
제자리에 주저앉아 긴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손부채질하며 오른 열을 식혔다.
부글부글 속에서는 아직까지 천불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을 풀어낼 존재가 없으니 답답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벌러덩 관아 한복판에 누운 장삼태가 하늘을 올려다 봤다. 먹구름 탓에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먹먹한 하늘만이 그의 시야를 자극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홍원창과 매향의 얼굴이 아른거리니,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되는 게 없네.”
주위를 둘러보며 그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단우현이 손을 놓는다 하여 장삼태 또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인간은 분명 나서지 않을 테니까.’
호남단가에서 단우현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장삼태였다.
한 번 움직이지 않겠다 다짐하였으면, 누가 죽는다 한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단우현이라는 것을 알기에, 장삼태는 이 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두 발로 직접 뛰어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흔적이다.
‘분명 남겼을 거다…… 나를 유인하기 위해서.’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을 리가 없다.
유덕천의 목적은 틀림없이 장삼태였고, 그가 도망을 친 이상 유인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단서를 남겼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한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깊게 파여 있는 것을 보니 상당한 공력을 지닌 자.
유덕천, 혹은 그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자의 것 같았다.
장삼태가 고개를 돌려 발자국이 난 곳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북서쪽으로 마치 장삼태를 유인하듯이 찍혀 있는 발자국은 점점 사람이 없고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윽고 어느 한 곳에서 그 흔적이 끊겼는데, 이는 다름 아닌 동정호의 물길이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배를 타고 이동을 한 흔적이 있었다.
산적이 느닷없이 배를 이용해 움직이다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뭐야, 이것들은 대체?”
장삼태를 유인하려 한다면 굳이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인근 야산에 틀어박혀 오는 것만을 기다리면 끝날 일이니까.
그런데 그 많은 인질을 이끌고 배를 탔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썩을 것들이 꼭 이상한 짓을 해서 사람 머리 아프게 만든다니까.”
장삼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물길을 타고 갔으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물속에서 배가 지나간 길을 확인한다는 것은 설령 단우현이라 하여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때, 돌연 수풀 한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장삼태가 발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가 허공으로 떠오른 순간, 수 개의 암기가 그가 있던 자리에 틀어박혔다.
“놓치지 마라!”
느닷없이 나타난 자들은 녹림의 일원이었다.
검을 뽑은 채 장삼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함정을 파고 기다린 것이 정확한 판단이었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그들은 반드시 장삼태를 잡아 채주 앞에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그것만 성공하면 앞으로 인생은 탄탄대로다.
“이 자식들……!”
장삼태는 그들의 생각을 읽으며 이를 갈았다.
분명 호남단가 안에서 장삼태는 가장 약할 것이다. 무공도 보잘것없고 공력 또한 상당히 낮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겪어 온 그의 경험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이미 균웅을 사로잡을 만한 능력이 있는 장삼태이기에, 결코 이런 잡졸들에게 당할 리 없었다.
저들은 지금 벌집을 건든 것과 같았다.
한껏 얼굴을 붉힌 장삼태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뒤졌어!”
화풀이하기에는 딱 좋은 상대였다.
* * *
동정호의 물길은 호남 전체를 아우르고 있으며, 호북까지 뻗어 나가는 물줄기는 무척 넓고 컸다.
그렇기에 제법 큰 배들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을 노리고 배를 띄우는 이들 또한 있었다.
강수채(江水寨).
동정호 일대를 아우르는 수적 집단이다.
이 강수채는 장강수로채의 현 채주인 가독군의 오른팔 문독상이 수로채를 빠져나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부가 이 강수채를 쉽게 건들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강수채의 현 채주인 문독상이 녹림왕이라 불리는 유덕천과 아주 긴밀한 사이인 데다 녹림 또한 강수채의 뒤를 봐주고 있었던 탓이었다.
콰당-!
“꺅!”
그 강수채 안에 있는 뇌옥에 홍원창을 비롯하여 매향과 포졸들이 우르르 잡혀 들어왔다.
중상을 입은 이들과 경상을 입은 자들 또한 섞여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신음 소리와 아픈 괴성이 섞여 들렸다.
“하루다. 하루 동안 그놈이 오지 않으면 네놈들은 전부 죽는다.”
뇌옥 밖에 우두커니 서 있는 양자강이 시퍼렇게 눈을 빛냈다.
유덕천의 명령만 아니었다면 누구 하나 살려 놓지 않고 죽였으리라.
도망을 섬전각 장삼태라는 놈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라고는 하지만, 양자강은 그리 내키지 않았다.
그들은 산적이고 거칠 것 없는 존재들.
그런 녹림을 무시하고 녹수채를 박살 낸 장삼태 놈과 연관되어 있는 자들이라면 하나같이 꼬챙이에 꽂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쾅!
양자강이 거칠게 창살을 걷어차고 등을 돌렸다.
그 소리에 다들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진득하게 퍼지는 양자강의 살기가 살을 어릴 만큼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후우…… 괜찮은가?”
이윽고 양자강이 그곳을 빠져나가자 홍원창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대부분 이들이 괜찮지 않을 테지만, 매향은 여인이므로 가장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녀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 한두 번 겪어 본 것도 아니고…….”
“하하, 당찬 소저로군.”
“그보다 현령님은 괜찮나요? 베였잖아요.”
“이 정도야 뭐…… 흔히 있는 일이지.”
씁쓸한 표정으로 웃음을 짓는 홍원창을 바라보며 매향은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렇고 일이 꽤 심각하게 되었구려. 하필이면 강수채라니…….”
“위험한가요?”
“유덕천보다 위험한 자라네. 강수채의 채주는…….”
홍원창이 신음을 삼켰다.
강수채의 채주는 그 무공 수위도 그렇지만 잔학한 성품으로 더 이름을 날렸다.
커다란 배를 습격하여 물품만 빼앗는 장강수로채와는 다르게, 그 안에 있는 인간 모두를 죽이거나 물에 던져 버리는 짓을 마다치 않았다.
본래 장강수로채의 부채주였던 그가 따로 떨어져 나온 이유도 그 성품이 워낙 잔학하여 가독군이 쫓아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목에는 유덕천보다 더 큰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홍원창이 반짝 눈을 빛냈다.
매향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허망하게 웃었다.
“그래 봐야…….”
“그분들보다는 못하겠죠…….”
두 사람이 작은 신음을 흘렸다.
* * *
“강수채?”
“예, 틀림없습니다.”
제갈운의 말에 단우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동정호에 그런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들은 적이 없었기에 다소 뜬금없다는 표정이다.
“홍 대인께서 알리지 않은 것이지…… 사실 꽤 유명한 자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녹림과 관계가 있다?”
“예, 심지어 홍원창과 매향을 이끌고 강수채에 머물고 있다 합니다.”
제갈운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이 또한 하오문에서 받아 온 정보였다.
이렇게까지 정확할 것이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삼류방파였는데, 이제는 하오문이라는 곳 자체가 다소 새롭게 보일 지경이다.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까지 정보를 모으다니…….’
개방조차 하지 못할 일을 해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단우현의 눈이 틀리지 않았으며, 하오문이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들은 적 있지. 강수채 채주는 완전 미친놈이라면서?”
사도학이 낄낄거리며 술병을 나발 불었다.
마교에서도 이름이 날 정도로 잔학한 성품으로 유명한 자다. 유덕천이 지금까지 한 짓을 생각해 본다면, 그 둘은 아주 죽이 잘 맞을 듯했다.
“끼리끼리 모인다더니 원…….”
적무성이 안주를 집어 먹으며 쯧쯧 혀를 찼다.
잔인한 놈들끼리 죽이 잘 맞으니 함께 다닌다. 홍원창과 매향을 이끌고 강수채로 들어간 이유 또한, 장삼태를 곱게 죽이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 주는 것과 같았다.
“어떤 놈들인지 말해 봐라.”
툭 하고 내뱉는 단우현의 말에 제갈운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저 묻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 사람의 심령을 제압하는 무언가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주륵 식은땀을 흘린 제갈운이 입을 열었다.
“먼저, 유덕천은 아시다시피 무림인이든 양민이든 가차 없이 죽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떤 이의 말로는 살성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그래……?”
“그 밖에도 수많은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면서 사실상 중원 무림을 어지럽히는 일인으로 손꼽히는 자입니다만…… 녹림이라는 단체가 워낙 거대하고 수뇌부들도 넓게 퍼져 있는 탓에 토벌해 내기가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제갈운이 말을 내뱉으며 힐끗 단우현을 쳐다봤다.
실정이었다는 말은 곧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결국 호남단가가 움직이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다행히 단우현은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강수채는 유덕천보다 도가 지나칩니다. 채주인 문독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재미 삼아 배를 침몰시키고 사람들을 수장시킨 전적도 있습니다.”
“허…… 완전 미친놈이네.”
사도학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많은 미친놈들을 보았고 또한 기르기도 했지만, 유덕천과 문독상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또한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모조리 때려 부수고 죽이는데, 죄 없는 중소 문파들이 휩쓸려 사라진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그런 놈들이 동정호에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단우현이 눈을 좁히며 인상을 썼다.
동정호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천 년 동안 갇혀 있던 곳이며, 또한 새로운 삶을 얻은 곳이기도 했다.
하여, 그곳에 더러운 것들이 산다는 것이 그리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그때, 미약한 바람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바람엔 어디선가 흘러오는 진득한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단우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못 당하겠군. 정말…….”
그 말과 함께 달빛을 등진 채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단우현에게 말을 걸거나 붙잡지 못하였는데, 살짝 바람이 불어옴과 동시에 어느새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