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28
제갈연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단우현이 부른다 하여 아무런 생각 없이 온 것과 함께한다 하여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긴 것들을 말이다.
그녀는 무척이나 고단했다.
악양을 벗어남과 동시에 무작정 북쪽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척 보아 가는 곳은 호북인데 도통 어디를 가는지, 그리고 왜 가는지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단우현이 움직이는 것이니 목적지가 있을 것이고, 따라가다 보면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단소미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지 않았으니, 이 여정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문제였다.
“…….”
권무진은 사내놈이고 또한 칼을 휘두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였다.
천성이 그런 놈인지라 요리 따위는 할 줄 몰랐으며, 단우현 또한 두 손을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제갈연이 하지 않으면 모두 쫄쫄 굶는다.
단우현은 끼니를 챙길 생각은 머릿속에 없는지, 누군가 식사를 챙기지 않으면 무작정 걷기만 했다.
“망할…….”
쾅!
제갈연이 커다란 봇짐에서 꺼낸 도마를 후려쳤다. 부서지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현재 마음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었다.
밥을 해야 한다.
잡아 온 짐승을 손질하는 것 정도야 권무진에게 맡기면 되지만, 그것을 요리하고 또 손수 대접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대강 요리를 하면 단우현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눈치를 준다.
“차라리 삼태 녀석을 데려올 걸 그랬군. 너는 생각보다 쓸모가 없구나.”
그런 말을 수차례 들으니 울분마저 치솟았다.
남궁소혜라면 어린 시절부터 비교되어 왔으니 또 모르겠지만, 장삼태와 비교당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서 고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하여 결국 그녀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칼을 비롯하여 온갖 물품들은 마을에서 사야 했고, 한 보따리나 되는 짐을 짊어진 채 이 끝 모를 여정을 떠나야 했다.
“무공 수련은 무슨…….”
제갈연이 후우- 하고 한숨을 쉬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도와줄까?”
“꺼져요.”
“…….”
제갈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권무진이 입을 닫았다. 기껏 생각해서 내뱉은 말인데, 돌아오는 말이 좋지 않으니 그 역시 마음이 상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대들어 봐야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조심스레 물러서며 단우현의 옆으로 다가섰다.
“조금…… 까칠합니다.”
“하하.”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던 단우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앙칼진 제갈연의 시선이 돌아왔으나, 단우현은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너무 열 내지 말거라. 이 또한 경험이니.”
“이런 경험 별로 하고 싶지 않네요.”
그렇지 않아도 호남단가로 들어오기 전에 산속에서 살다시피 한 제갈연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계속해서 떠오르니 괜스레 더욱 뿔이 났다.
“후우…… 뭐 아무래도 좋지만…… 그런데 정말 괜찮나요? 이런 시기에 악양을 비우다니?”
“이런 시기라는 건 무슨 소리냐?”
“당연히 이런 시기죠. 만금상단이 단 가주님의 돈줄을 끊으려 하잖아요.”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닐 텐데 모른 척하는 단우현의 모습에서 제갈연은 더욱 뿔이 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뾰족하게 들려오는 그녀의 말투는 마치 가시가 돋쳐 있어 내뱉을 때마다 사람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권무진이 식은땀을 흘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우현이다. 그런 이를 향해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만금상단의 일은 잘 해결될 테니.”
“아버지를 믿고 그러시는 건가요?”
“딱히 그런 것은 아니다만…… 이런 일 정도 해결하지 못할 이들도 아니지 않으냐.”
“…….”
제갈연은 저도 모르게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어떠한 사태가 찾아온다 하여도 능히 돌파할 만한 능력을 지닌 인재들이다.
하지만 제갈연은 불안감을 금치 못했다.
만금상단은 처음부터 호남단가를 주시했을 것이다.
그러니 호남단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었을 테고 또한 그 대비책을 짰을 것이다. 하여 괜스레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이들과 다르다고 해도요?”
“그래 봐야 사람이지 않으냐?”
단우현의 말에 제갈연은 기가 찬 듯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귀신이나 들짐승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 하거늘, 단우현은 그런 것 따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이 같았다.
제갈연은 저도 모르게 지끈거리는 미간을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요리에 열중했다. 더 말을 하면 울화통만 터질 것 같았다.
“불만이 많은 모양이구나.”
“아니에요- 설마요? 제가요? 그럴 리가! 단 가주님에게 불만 따위 가질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완성된 요리를 가져오며 제갈연이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 환한 웃음은 마치 꽃을 보는 것 같았기에, 무릇 남성들이라면 얼굴을 붉힐 만했다.
하지만 권무진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악귀나찰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가 주르륵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제갈연이 가져다 놓은 고기조차 먹기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단우현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악귀나찰의 웃음조차 그에게는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권무진은 진심으로 단우현을 존경했다.
“맛있구나.”
“할 줄 아는 게 이런 거밖에 없어서요.”
제갈연이 자신 앞에 놓인 그릇에 젓가락을 푹 찔렀다. 젓가락이 잘 익은 고깃덩어리 안으로 파고드는 그 모습은, 마치 단우현을 찔러 죽이는 것 같은 살기마저 느껴졌다.
단우현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화가 날 일이더냐?”
“저는 식모살이하러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단 가주님!”
“딱히 만들라고 한 적은 없다만?”
“……윽.”
단우현의 한마디에 제갈연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찾기 마련이다. 제갈연은 배가 고팠고 누구도 밥을 할 줄 모르니 스스로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누군가 강요를 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그것을 꼭 짚어 이야기하니 할 말을 잃었다.
“내 보기에는 이런 것보다 무림행이 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당연한 걸 물어요?”
“하하하.”
단우현이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쥐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무림행이라는 게 그렇게 신나는 게 아닐 텐데 말이지…….”
그런 말을 하며 한쪽을 주시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 빛을 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기에, 권무진은 물론이고 제갈연마저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곧 머지않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카카카캉-!
격렬하게 검이 부딪치는 소리다.
한 사람을 상대로 다수의 인물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
깜짝 놀란 제갈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새 손에 칼을 쥐고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내달렸다. 그 빠른 경공에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단우현은 그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스스로 자신이 있어 끼어든 것일 테니.”
“…….”
권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연 정도의 실력이라면 어디를 간다 한들 쉽게 나자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결코 수준 낮은 이들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곧 상당한 실력자들이 모여 있다는 말과 같았다.
“걱정되느냐?”
“잠시…… 보고 와도 되겠습니까?”
“흠…… 이 또한 경험이니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 볼까?”
단우현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입가에 미소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 미소가 괜스레 불안해지는 권무진이다.
* * *
카카캉-!
“큭!”
소림의 승복을 입은 이가 봉을 잡고 움직였다. 패도적인 힘이 맺힌 봉은 그대로 상대를 후려치는가 싶었지만, 날렵하기 그지없는 상대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해 냈다.
검이 치고 들어온다.
완벽하게 허점을 노린 한 수는 상당히 빨랐다.
촤악!
소림승이 인상을 썼다. 자칫 목덜미를 내어 줄 판국이었다. 하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 내며 진각을 밟았다.
쿵!
육중한 소리가 들리며 공기가 흔들렸다. 단우현이나 사도학처럼 구덩이가 파이거나 그 여파로 상대를 쓰러트릴 정도는 아니었으나, 적의 기선을 제압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놈들! 나 무호를 얕보지 마라!”
구파일방.
지금은 봉문하여 문을 닫은 소림사.
가까스로 소수만이 살아남아 있는 소림사는 이제 예전의 태산북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만큼은 아직까지도 살아 있고, 무예 또한 중원을 울릴 만큼 대단했다.
심지어 한때 남궁소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
십팔나한의 수장인 무호라면, 상대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콰콰쾅!
무호가 휘두른 봉이 사방을 찔렀다.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면 어느 누구라 한들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상대의 검 또한 매서우며 빠르고 지독했다.
푹푹푹푹-!
찔러 들어오는 봉을 비켜 내며 검을 뻗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수 명이 내지르는 칼날은, 그대로 뻗어 나가 무호의 온몸을 찔렀다. 강인했던 무호의 기세가 서서히 사그라지며 위압감 가득했던 무호의 몸이 어이없이 넘어갔다.
쿵!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한때나마 소림의 위상을 드높였던 무호는 울컥 피를 내뱉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푸른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붉게 보이는 순간이다.
“고생시키는군.”
사내들이 천천히 무호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결코 망설이지 않고 검을 치켜들었다. 하남에서부터 이곳 호북까지, 뒤를 쫓아온 것을 생각해 본다면, 단칼에 죽여도 시원찮았다.
그때.
“거기 멈추지 못해?!”
앙칼진 음성이 들렸다.
화들짝 놀란 이들이 시선을 돌렸다.
사아아악-!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들었다. 바람 소리에 그들은 그것이 암기라는 것을 깨닫고는 칼을 휘둘렀다.
캉!
막아 낸 암기가 어이없이 튀어 올라 바닥에 틀어박혔다. 사내들은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다 인상을 썼다. 이 암기술은 틀림없이.
“사천당가?”
남궁세가를 제외하면 가장 성가신 이들이 온 것이다.
긴장 어린 시선으로 지그시 앞을 응시하는 순간.
이윽고 나타난 이를 보며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챙-!
모습을 드러낸 제갈연이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눈앞에 있는 이들을 향해 칼을 겨누며 숨을 골랐다.
그녀의 기세가 사방으로 퍼지며 이들을 압박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사내들은 그저 어이없는 조소를 흘리며 삐딱한 시선을 보냈다.
“사천당가가 아니었던가? 놀라지 않았느냐.”
사내들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제갈연을 쏘아봤다.
사천당가도 아닌, 고작해야 계집 한 명.
다수가 아니라 한 명이라면 자신들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사내들이 기수식을 취하고 있는 제갈연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