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32
홍원창은 주르륵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 좋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나왔더니, 어느새 단소미가 툇마루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누군가 가져다주었는지 입에는 간식을 물고 있었는데, 오독오독 씹어 먹고 있는 그 모습은 실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아이 앞에 거대한 체구의 백호가 주저앉아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괴기한지 저도 모르게 땀이 났다.
어느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의 집 앞마당에 성인 남성보다 몇 배는 더 큰 호랑이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으면 말이다.
백호와 함께 있는 단소미는 마치 새외 세력들 중 맹수를 다룬다는 남만 무림인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단소미가 다루고 있는 맹수는 단순한 맹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남만 무림인들보다 몇 배나 더 위험해 보였다.
“그…… 소미야?”
가만 쳐다보고 있었던 홍원창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하였는데, 이는 호랑이에 대한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때 야금야금 간식을 먹고 있던 단소미가 고개를 돌렸다.
홍원창을 바라보더니 생긋 웃음을 지었는데, 그것이 어찌나 예쁜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홍원창은 곧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무섭지 않으냐?”
“뭐가요?”
툭툭-
발밑에 있는 백호를 몇 번이고 툭툭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크르릉거리는 짧은소리가 들렸으나, 달려들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몹시 불만스럽기는 한지, 감았던 눈을 뜨며 홍원창을 노려봤다. 황금빛 맹수의 눈동자가 매섭게 꽂혔다.
움찔!
홍원창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아…… 아니다.”
“응?”
단소미는 정녕 홍원창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자그마한 아이에게는 백호나 백묘가 그저 귀여운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홍원창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다가가 단소미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백호와는 다소 거리를 두었는데, 아무리 순하다고 하지만 호랑이를 코앞에 두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보다 이제 좀 괜찮은 것이냐? 예전에는 우리 집에 머물 때만 해도 불안해하더니.”
“헤헤, 이제 익숙해졌는걸요.”
단소미가 수줍게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과 익숙해졌다는 말에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홍원창이다. 진짜 자신의 집처럼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만세를 부를 일이었다. 점점 더 단소미가 며느리로 보였다.
“하하하, 그래 이제는 이 집이 네 집이…….”
“어차피 아빠는 또 소미가 보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
자그마한 다리를 흔들며 단소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신을 이 집에 맡긴다는 것 자체가 어떠한 의미인지 단소미는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홍원창의 이마에 주르륵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 그럴 리가…… 없지 않으냐.”
“헤헤, 그렇죠? 하지만 저는 알아요.”
쭈욱 기지개를 켠 단소미가 땀을 흘리는 홍원창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이 자그마한 아이의 웃음 짓는 얼굴은 알게 모르게 홍원창을 압박하고 있는 것 같았으며, 또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런 뜻이 서려 있었다.
홍원창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어쩌면 이 아이, 보기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약아빠진 것일지도.
괜스레 홍진랑의 앞날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 * *
“뭐라고요?!”
초췌한 모습의 제갈연이 큰 소리를 냈다. 몸 곳곳에는 피가 튀어 있었으며, 여기저기 베인 흔적들이 가득했다.
기실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든 상황이 분명할 텐데도, 언성을 높인 제갈연은 힘없이 웃는 무호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그러니까, 선진 대사께서 붙잡혀 갔다 했습니다.”
무호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운기조식을 하여 겨우 생명줄을 잇고 있다. 기본적인 치료를 하기는 했지만, 워낙 치명상을 많은 입은 탓에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제갈연의 목소리가 귀를 울리니 그는 토혈이라도 할 것처럼 속이 좋지 않았다.
“어디로요?”
당장 무호의 멱살을 잡아챌 것 같았던 제갈연은, 자신의 조급함을 꾹 참아 내며 물었다.
천하의 선진대사가 붙잡혀 갔는데, 소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봉문을 하였으니 그 황당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선진대사가 붙잡혔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무림맹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했을 것이라고만 여겼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쩌다 그 지경이 되어 버린 거죠? 무림맹은 정파의 기둥 아니었던가요? 이렇게 쉽게 무너져 버려도 되는 건가요?”
울분을 토하는 제갈연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숫한 무림의 위기 속에서도 단 한 차례도 무너진 적이 없었던 곳이 바로 무림맹이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낸 곳 역시 무림맹이었다.
그런 곳이 몰락했다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가 없는데, 심지어 그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선진마저 붙잡혀 갔다는 것은 그녀로선 이해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뾰족한 시선이 무호를 향했다.
정도인이며 한때는 무림맹을 이끌었던 문파였다는 자존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어디인가?”
그때, 슬그머니 다가온 권무진이 제갈연을 다독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한때나마 도움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무호를 대하는 것에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호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무…… 무당으로…….”
무호는 침음성을 흘리며 질끈 눈을 감았다.
선진대사를 무당으로 끌고 간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혈천이라는 이름 앞에 무릎 꿇지 않은 무당을 상대로, 그들의 눈앞에서 현 정파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선진의 목을 베려는 것이다.
그리된다면 많은 이들이 동요하게 될 것이고, 혈천의 이름을 다시 한번 크게 이 세상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참담하군.”
단우현이 조소를 입에 걸며 세 사람을 바라봤다.
사파를 이끌고 있던 무황성을 집어삼키고, 정파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소림과 무림맹을 박살 내며, 심지어 그 수장의 목을 벤다?
이처럼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는 그들은 그야말로 악귀나 다름없었으며, 당하는 이들로서는 참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혀를 차는 단우현에게 누구도 화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정파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제갈연조차도 입술을 꾹 깨문 채 말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정도무림이 몰락할 줄 어느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도…… 도와주십시오…….”
무호가 고개를 푹 숙이며 애원했다.
단우현이 아니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실낱같은 희망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붙잡고 싶었던 것이다.
“무당이라…….”
단우현이 북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본디 가야 하는 곳은 융중산이었다. 빼앗긴 물건들을 되찾는 것이 이번 여정의 목표였다.
융중산에서 무당산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데다, 오랜만에 무당 구경이라도 할 심산인지 그가 웃었다.
“오랜만에 가겠구나.”
“도와주시는 건가요?”
제갈연의 시선이 단우현을 향했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 단우현이 직접 무당산으로 간다는 것은, 그 역시 이번 사태를 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무당산의 세 봉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도와준다는 말을 꼭 그렇게 돌려서 해야겠어요?”
제갈연의 뾰족한 시선이 꽂혔다.
누가 보더라도 단우현은 무호가 청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도와주겠다는 말을 내뱉으면 되는 것을, 굳이 빙글빙글 돌려 말을 할 필요까지 있겠는가?
그때, 단우현이 또다시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때까지 실력을 좀 올려야겠구나. 고작 검진을 상대로 이 꼴이라니…….”
움찔!
두 사람이 몸을 움츠렸다.
이미 단우현이 한 사람을 줄여 놓은 상태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였으니, 차마 반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권무진은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하…… 하지만, 어쨌든 이겼잖아요. 그리고 저들의 진법은 중원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고요.”
제갈연이 불만 섞인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제갈세가는 오랫동안 이 중원무림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일족이다. 그렇기에 많은 검진을 머릿속에 익히고 있었는데, 저들이 펼쳤던 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종류였다.
검진의 파훼법은 물론이고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생각을 하며 움직이다 보니, 몸의 반응이 절로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단우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주위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슬쩍 바라봤다.
붉은 혈의를 입은 자들.
장백산에서 보았던 그 옷과 색은 같았지만 다소 다른 느낌이다.
그것을 가만 바라보고 있었던 단우현이 손을 휘저었다. 단숨에 몰려든 바람이 칼날처럼 뻗어 나가더니 옷자락을 베어냈다.
섬세하기 그지없는 내력 조절에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저런 식으로 바람을 다룬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칼날과도 같은 바람을 이용해 얇은 옷자락을 잘라 낸다는 것 역시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 도대체 저분은…….”
“몰라도 돼요.”
제갈연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니까.’
어느누구라 하여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만큼 단우현의 신위는 인간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전설이라 불리는 무신이 저럴까? 아니면 삼천이 저러할까?’
그들과 단우현을 비교해 보았지만 어쩌면 단우현이 더욱 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습지도 않은 망상마저 들었다.
제갈연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틀림없군.”
그때, 단우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죽은 이들이 입고 있는 혈의는 혈마신교의 것과 달랐다. 붉은색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같은 느낌이 전혀 없다. 하지만 상체를 벗기는 순간 드러나는 것이 있다.
각인(刻印).
상체 가슴 위쪽으로 박혀 있는 선명한 각인은 틀림없이 혈마신교를 뜻하는 문양이었다.
“무언가 아시겠습니까?”
권무진이 다가와 물었다.
단우현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러나 단우현은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으며 곧 시선을 돌렸다.
“신경 쓰지 마라. 그보다 선진인지 뭔지 하는 늙은이를 잡아간 자들도 이들과 같은가?”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무공은 그야말로 천외천…… 서, 선진 대사께서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 한마디에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느긋하게 등을 돌리며 걷자 권무진이 자연스레 뒤를 따랐다. 환자인 무호를 눈곱만치도 신경 쓰지 않는 점이 그들다웠다.
“어…… 그러니까 음…….”
제갈연이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이대로 무호를 두고 가도 되려나? 하다못해 마을까지 데려다주어야 하지 않는가 하며 짧은 고민을 해 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훌쩍 저만치 멀어져 있는 단우현을 바라보고는 그 생각을 접었다.
“몸조리 잘하세요!”
“어……?! 소…… 소저?”
당황한 무호가 소리를 쳐 보았지만 제갈연은 뒤조차 돌아보지 않았다.
무호는 홀로 남겨진 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제갈연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무호가 어색하게 합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