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40
남궁천은 검을 거두며 주위를 둘러봤다.
윤공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고 그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순간, 모든 이들이 싸움을 멈추었다.
만금상단 쪽 무인들은 힐끗 눈치를 보더니 검을 들어 자신들의 목을 그었다.
촤악-!
“커억!”
“끄으으으…….”
죽음은 실로 한순간이었다. 누구도 말릴 수 없었으며 살릴 수 있는 자들 또한 없었다.
남궁천이 그 모든 상황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지독하구나.”
사람이 자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용기를 지닌 자조차 제대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 자결인데도, 이들은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자신의 목을 그었다.
철저한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 참…… 곤란하군.”
남궁천이 볼을 긁적였다.
전부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몇 사람은 살려 관아로 끌고 가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하나같이 목을 그어 버리니 그로서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윽고 힐끗 고개를 들어 올려 이 층을 바라봤다.
“도망갔는가?”
귀영들의 수장으로 추정되는 자.
물론 제갈운의 예상이기에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자를 놓쳤다는 것이 아쉬웠다.
짐짓 인상을 찌푸리다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다 늙어서 다리가 안 좋으니 쫓아갈 수 없군……. 이런 것은 젊은 놈이 해야지.”
남궁천이 영친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홍원창이 어색하게 웃었다.
장삼태에게 뒤를 쫓게 할 심산이 보였으므로.
* * *
자학상은 빠르게 내달렸다.
순식간에 도약하는 그의 몸놀림은 무척 신속했다.
무인으로서 칼을 들고 달려들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그가 죽는다면 이 모든 사실을 만금상단에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오명을 쓰더라도 살아야 했다.
‘우습군.’
자학상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공의 조심스럽다 못해 강박적인 계획이 납득되지 않았건만, 군자검의 기세가 느껴지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안겨 주고 공포감을 심었다.
잠깐이었지만 그만큼 강인한 기세를 느껴 본 적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상단주께 알려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학상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본디 이런 역할은 그가 아닌 윤공의 몫이거늘, 입장이 정반대가 되어 싸워야 할 이가 도리어 도망치고 있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호남단가…….’
새로이 만금상단의 상단주가 된 자도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자학상은 호남단가를 떠올리자 만후량이 그리워졌다.
그가 있었다면 호남단가에게 지는 수모를 겪지 않았을 테니까.
그가 있었다면 호남의 영향력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뛰어난 재력과 권력을 적절하게 언제 어느 때 써야 하는지 아는 자.
그것이 바로 만후량이었으니까.
그는 천하의 수많은 이들이 제갈운을 치켜세울지라도 만후량이야말로 최고의 지략가이자 그 이상 가는 이는 없다고 굳게 믿었다.
“어디를 그렇게 가쇼?”
그때, 느닷없이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자학상이 고개를 돌리며 칼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칼날이 나타난 이의 코앞을 스쳤다.
“아이코! 무서워라.”
나타난 인영은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더니 어느새 다시금 좁히며 들어왔다. 그것을 바라보며 자학상이 파르르 눈을 떨었다.
이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객잔에서 소란을 일으킨 자.
그리고 노점에서 음식을 만든 자.
장삼태라는 호남단가의 종놈이 분명했다.
“빌어먹을 놈…….”
“빌어먹을 새끼,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
장삼태가 툴툴거리며 자학상과 보폭을 맞췄다.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고, 언제라도 쫓을 수 있다는 듯이,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보였다.
그것이 자학상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다.
‘강하지는 않다…… 마음만 먹는다면!’
내달리며 또다시 칼을 쥐었다.
조금 전에는 다소 놀란 탓에 짧았지만, 이번엔 반드시 그 머리를 쪼갤 것이다.
“우리 장주님이 기다리시는데 어때? 가 볼래? 추천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뭐라?”
칼을 휘두르려던 자학상이 눈을 치켜떴다.
호남단가의 장주라면 단우현이리라.
한데, 윤공의 계략 탓에 호북을 향해 움직였을 이가 어찌 이곳에 있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소리에 가늘게 눈을 떴다.
혹, 정신을 어지럽히게 만드는 수법이 아닌가 했다.
“네가 어디를 가든 만나게 될 거다. 도망칠 수가 없거든.”
“…….”
“어차피 뒤질 거 가서 얼굴이라도 확인해 보지그래?”
그 자신 가득한 어투가는 자학상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오냐, 얼마나 강한 자이기에 그 윤공마저 학을 뛰며 떨어트려 놓았는지 보자.’
“어디에 있느냐!”
“가면 죽을 텐데?”
“이래나 저래나 죽는 것은 똑같다고 방금 네놈이 말하지 않았더냐!”
“그래도 살고 싶지 않아?”
장삼태가 깐족거리며 물었다.
그 한 마디가 더욱 자학상의 심기를 건드렸다.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고, 당장 칼을 휘두를 것 같은 기세가 몰아쳤다.
장삼태가 기겁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마치 칼의 간격을 깨닫고 있는 것인지, 닿지 않는 곳으로 움직이는 몸놀림이 제법 자연스러웠다.
‘이 자식…….’
선천적으로 생존력을 타고난 이들이 있다.
아무리 무공이 약하다 해도 살아남는 법을 찾아내는 자들.
이 장삼태라는 사내도 그런 부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약육강식 같은 무림에서 가장 부러운 능력이기도 했다.
“왜 꼬라봐?”
“개자식…….”
“뭐?”
장삼태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차마 때릴 용기는 없는 것인지 슬그머니 내렸다. 간격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그대로 두 동강 날 것이 뻔 했던 탓이다.
자학상은 고민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칼을 휘두르는 찰나에 녀석이 간격 밖으로 벗어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이고, 가능하다면 오히려 경각심만 심어 주는 셈이다.
‘죽인다!’
그러나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어찌하여 자학상이 귀영의 수장이겠는가?
그것은 그가 누구보다 살육을 즐기며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단박에 장삼태와 거리를 좁힐 생각으로 준비를 하는 찰나.
사아악-!
주변의 수풀이 걷히며 풍경이 뒤바뀌었다.
눈앞에 있던 장삼태는 어느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기이한 낌새를 느낀 그가 정면을 바라보자, 몇 명의 인영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곁에 있던 장삼태도 있었다.
‘분명 눈을 떼지 않았거늘…….’
아무리 빠른 경공이라 할지라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곳에 있단 말인가?
심지어 눈앞에는 검은 가면을 뒤집어쓴 마천군과 도깨비 가면을 쓴 자가 있었다.
틀림없이 소문으로 들었던 귀면자였다.
호남단가의 인물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았다. 하지만 들었던 것과는 그 체형과 모습이 조금 달랐다.
그리고 호남단가의 가주 단우현이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멈춰라.”
쿵!
이윽고 그가 한 마디를 내뱉는 순간, 강한 압박에 두 발이 저절로 멈춰 섰다.
콰다당-!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대로 엎어졌다.
“쯧쯧, 정신상태가 엉망인 놈이네.”
사도학이 혀를 차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귀영이라면 그 또한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을 실제로 본 이들은 얼마 되지 않고, 그들 중 살아남은 이들 역시 극소수인지라 그저 과장된 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우현이 직접 그들을 베었고, 입을 열게 했으니, 그들이 실제 존재하고 눈앞에 있는 이가 수장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약한 느낌이다.
사도학의 얼굴에 깃들어 있던 흥미가 사라졌다.
또한, 도깨비 가면을 쓰고 귀면자로 분한 적무성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름 사파에서도 저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었는데, 번번이 실패하였다.
‘이 가면을 쓰고 온 보람이 있군. 하지만 역시 소문은 소문일 뿐인가?’
적무성이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고 가면을 고쳐 썼다.
단우현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살기만 가득한 놈이구나.”
단우현이 바라본 자학상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뿜어내지는 않지만,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
“당신이…… 호남단가의 가주인가?”
“말이 짧구나.”
빠각-!
단우현의 한마디가 끝나는 순간 자학생의 고개가 돌아갔다.
엄습하는 고통에 이를 갈며 자세를 바로잡으려는데, 또다시 날아온 몽둥이가 그의 다리를 노렸다.
팍!
황급히 다리를 들어 올려 피해 낸 그가 검을 내질렀다.
캉!
쇳소리와 함께 묵직한 충격이 손아귀에서 전해졌다. 막아 낸 이와 검을 내지른 이, 두 사람의 공력이 서로 부딪치며 강한 파동을 만들었다.
싸아아아-
마장강은 인상을 썼다.
전해지는 공력이 예상보다 대단했던 탓이다.
그때, 느닷없이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마장강만 바라보고 있었던 자학상이 깜짝 놀라며 몸을 피하려 하였지만, 날아든 그것은 확실하게 온몸을 묶어 버렸고, 그대로 자학상을 바닥에 꿇어 앉혔다.
“제법이구나.”
“으하하, 이거 연습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요?”
장삼태가 손에 차고 있는 강사를 매만지며 흡족했다. 단순히 함정만 파고 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사람을 묶거나 조종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물론 제갈운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큭……!”
“제법 강단은 있어 보인다만 여기까지로구나.”
그때, 단우현이 슥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동자에는 자학상에 대한 일말의 흥미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를 얻어 내려는 의지만 가득했다.
어느새 묶여 있는 자학상 앞에 선 단우현이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아마 이 년 정도 되었을 거다.”
“…….”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머리를 붙잡힌 자학상이 단우현을 올려다보았다. 어떠한 것을 묻는다 해도 입을 열 생각이 없었기에, 그는 그저 조소를 지었다.
“한 촌락을 습격했지?”
“……!”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켰고?”
한 마디 한 마디에 자학상의 눈빛이 떨려왔다. 표정을 숨기고 싶으나 이상하게도 그것이 불가능했다.
몸속의 기운이 무언가와 섞여 그를 무기력한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단우현이 조소를 입에 걸었다.
“어째서 그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토해 내라.”
차가운 목소리가 무겁게 심신을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