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65
쾅!
형문산 산중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무인들이 날뛰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귀가 밝은 이들은 슬그머니 눈을 뜨며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도학을 필두로 남궁천과 적무성.
제갈연, 그리고 제갈운까지.
호남단가를 대표하는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그 또한 상당한 위압감을 주는 것 같았다.
“시작되었구나.”
“들키지 않고 나오는 것은 역시 무리겠죠.”
“애초에 그럴 수가 없지. 이 많은 인원이 움직이고 있는데 하늘에 숨거나 땅으로 꺼지지 않는 이상 걸릴 수밖에.”
사도학이 귀를 후벼 파며 입을 열었다.
저 싸움에서 사천당가의 놈들이 죽어 주지는 않으려나 하는 기대감이 그의 눈빛에 서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얍삽한 족속들은 죽지 않을 것 같았다.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니까.
“그럼 우린 이제 어쩌죠?”
제갈연의 시선이 제갈운을 향해 돌아갔다.
이 일의 모든 지휘를 맡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제갈운이다.
그 또한 어떠한 생각이 있으니 이 사태를 두고 보았을 것이다.
“어차피 혈천의 영향력은 줄여 놔야 합니다. 고로 싸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검이 우웅 하며 검명을 터트렸다. 오랜만에 피 맛을 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남궁천의 기세에 답을 해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검은 계속해서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냥 가 봐야 소용이 없지요. 그러니 안쪽에서 끝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쪽이라면?”
“당연히…….”
제갈운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이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 마을에서 혈천 세력을 몰아내겠다는 말이다. 형문파는 물론이고 그들 밑에 빌붙어 있는 낭인들까지.
이곳에 있는 세력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호북은 제법 깔끔해질 것 같은 느낌이다.
“혈천의 지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기회에 그것 또한 알아내면 금상첨화겠지요.”
“좋은 생각이로군.”
혈천과의 접전을 피할 수 없다.
단우현과 혈천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세력을 조금이나마 줄여 놓는 것이 호남단가 입장에서 좋은 것이다.
기왕 움직이기로 한 것, 크게 힘을 발휘할 심산이다.
“그럼 저쪽은 괜찮겠냐?”
“그 세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잘 빠져나올 겁니다. 평소 운은 나쁘지만 이런 쪽으로 운이 좋은 놈도 한 명 있지 않습니까?”
“삼태 녀석 말이로군.”
“예, 그놈 생명력 하나만큼은 바퀴벌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겁니다.”
제갈운의 말은 단순한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삼태가 지금까지 겪어 온 것들을 생각해 본다면, 딱히 틀린 소리라 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저들 나름대로 수긍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미는요?”
“백호가 곁에 붙어 있습니다. 또한 제가 있으니 심려 놓으시길…….”
“으음…….”
제갈연이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이미 한 차례 매향과 백호가 단소미를 놓친 적이 있었기에, 괜스레 불안감이 치솟은 것이다. 하지만 그날처럼 억수와도 같이 비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제갈운의 시선이 있다면 문제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또 위험해지면 어디선가 휙 하고 나타날 텐데…….’
제갈연은 단우현을 생각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의 위기에는 민감하지 않은 이가, 단소미의 위기에만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떻게 그걸 또 그리 잘 아는 것인지.
“그럼 형문파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불을 지르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저쪽이 살아남길 원한다면 말입니다.”
“알겠다.”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훌쩍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 * *
퍽퍽!
가장 앞서 달려가고 있는 것은 장삼태다. 경공이 빠르다는 이유이기는 했지만,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그를 방패막이로 삼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뒤에서 쫓아오는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단순한 종놈이 아니었어?!’
‘이 무슨 무공…….’
‘움직임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는다.’
종놈이라 말을 하기에 대단치 않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본 순간, 모든 이들이 경악하고 말았다.
공력은 형편없지만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다.
주먹을 뻗든 움직이든 혹은 발을 휘두르든 간에, 어느 움직임이라 한들 쓸모없이 힘을 낭비하지 않았다.
“…….”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당중악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평범한 종놈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무공을 구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저 정도로 완벽하게 무예를 구사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는가?
잠깐의 움직임조차 힘을 낭비하지 않았으며, 또한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상대의 간격을 넘나들며 확실하게 잡아냈다.
또한, 그 뒤를 쫓고 있는 권무진과 마장강.
이들 역시 보통이 아니다.
과거 보았던 이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빠르게 수준이 올랐다는 것이기에 당중악은 그것을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벽을 돌파하는 이가 있을 리 없다!’
당중악의 아비는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렇게 염원했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멈춰 있는 것이다.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며 모습을 감춘 것 또한, 남궁천과 같은 경지에 이르기를 바랐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저들이 가진 경지와 같다 생각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든 벽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당중악은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다.
“아! 시벌! 좀 싸우쇼! 싸워!”
앞서가고 있는 장삼태가 열불이 터졌는지 소리를 쳤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이들의 수는 엄청났고, 그 탓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데, 선진을 보호해야 한다는 핑계로 고수들이 그의 곁에 머물고 있으니 앞서가고 있는 장삼태의 입장에서 얼마나 열불이 터질 일인가?
“걱정하지 말게! 나도 있네!”
그때, 남궁용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검을 뻗었다.
번뜩이는 순간 눈앞에서 시뻘건 피가 터져 올랐다.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장삼태의 온몸을 흠뻑 적셨다.
“아아아아악! 이 망할! 이게 뭐야!?”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몰골에 장삼태가 큰 소리를 내질렀다. 역겨운 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찝찝한 물기가 온몸을 적셨다.
심지어 눈앞마저 시뻘겋게 변했다.
“미, 미안하네.”
“도움 되는 인간이 이렇게 없어!?”
장삼태가 소리를 내지르는 순간.
퍼걱!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달려오던 사내 한 명이 그대로 날아가 나무에 부딪히며 주룩 무너져 내렸다.
힐끗 옆을 돌아보니 도면으로 상대를 후려친 마장강이 서 있었다.
“시끄럽다. 주둥이 조잘댈 시간 있으면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라.”
“야이, 미친놈아! 저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꾸 나보고 앞으로 가라는 거야?”
“그렇다고 모조리 죽일 수는 없지 않으냐? 가주님도 아니고…….”
“그, 그렇지.”
장삼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는지 시퍼렇게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없는 것이 훨씬 낫다.
“하지만 정말로 많군. 끝이 보이지 않아.”
팽도웅이 거세게 도를 휘두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는 하였지만, 이것은 도가 지나친 것 같았다.
“혈천이오!”
그때, 무당의 누군가가 소리를 내질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 이들. 시뻘건 혈의를 몸에 두른 채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강함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예고도 없이 등장하는 그 모습은 저승사자와 다름없었다.
“죽여라.”
한 사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순식간에 그의 수하들이 주변으로 흩어지며 칼을 뻗었다.
카카카캉!
격전이 벌어진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이다.
제아무리 혈천 밑으로 들어갔다 하여도 형문파나 낭인의 힘으로는 이들을 막을 수 없었을 테지만, 혈천이 직접 나선다면 그 이야기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다른 적들과는 격이 다른 자들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혈천의 인물 중 셋.
틀림없이 이 무리를 이끄는 이들이라 짐작되는 자들이다.
그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이와 장삼태가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사내의 눈동자가 들썩이는 것을 본 순간, 장삼태의 모습은 어느새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야!”
“무슨 짓을?!”
느닷없이 사라진 장삼태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우두머리의 앞이었다. 동시에 각을 뻗어 사내의 머리통을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사내는 반 보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피해 냈고, 동시에 칼을 뻗었다.
사악!
뻗어 나온 칼날의 섬광은 생각보다 길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장삼태는 평소보다 멀리 움직였다.
촤락! 하며 옷자락이 잘려 나갔다.
한 치만 덜 물러났더라면 옷이 아닌 몸통이 날아갔을 것이다.
“저놈! 절대로 놓치면 안 돼!”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저 새끼 소미의 얼굴을 알고 있다고! 저놈을 죽이지 못하고 우리가 죽으면, 다음엔 소미를 죽이려 할 거란 말이다.”
장삼태의 말에 권무진과 마장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있는 사내.
마차를 세웠던 그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은 마차 안에 있었으니 알지 못했고, 장삼태는 밖으로 나와 단소미를 챙겼으니 응당 그 얼굴이 알려진 것이다.
“그 꼬맹이와 한패로군.”
사내가 그리 중얼거리며 칼날을 핥았다.
어린아이를 죽이는 것에 일말의 동정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인지, 시뻘겋게 번뜩이는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쫓아가 아이의 목을 베려는 것 같았다.
“네놈을 죽이고 아이를 죽이도록 하지. 그 계집은…… 거지 굴에 던져 주면 딱 좋겠어.”
“빌어먹을 자식…….”
“막을 수 있다면 어디 한번 막아 보거라.”
사내가 이죽거리며 장삼태를 도발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남궁용과 팽도웅이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가려는 순간, 사방에서 몰아치는 사내의 수하들이 선진을 비롯하여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을 휩쓸었다.
다른 생각을 할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권무진과 마장강이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칼자루를 쥐었다. 장삼태가 나선다면 놈을 버리고 다른 곳을 바라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우두머리 곁에는 두 명이 더 있으니, 마치 상대를 하라고 말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내키지는 않지만…….”
마장강이 거대한 도를 치켜들며 가늘게 눈을 떴다.
눈앞에 있는 상대를 일도양단(一刀兩斷).
그러한 기세가 대도(大刀)의 칼날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권무진 또한 마찬가지.
소쌍도를 들고 있는 그의 기세가 한층 날카롭게 변했다. 찌르듯 다가오는 살기는 눈앞에 있는 이를 반드시 베고야 말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졌다.
“질 수는 없지.”
권무진이 중얼거리며 자세를 잡은 그때.
쾅!
느닷없이 굉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