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69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현령은 덜덜 손을 떨며 침을 삼켰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 곳곳에는 혈천인들로 보이는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또한 이곳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형문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그 많던 낭인들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시체가 즐비해 있다는 소리에 다급하게 그곳들을 둘러보고 있던 현령은,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현청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의자에 오르지도 못한 채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곳은 본래 조용한 곳이다.
지금까지 칼부림 한 번 제대로 난 적이 없었고, 이렇다 할 큰 사건들 또한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렇게 많은 시체를 본 것이 처음인 탓에, 격렬히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허…….”
현령은 식은땀을 닦아 내며 숨을 골랐다.
형문파가 무너지고 혈천 세력들이 모조리 주검이 되었다. 그 시신들을 치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인데, 이 사실이 혈천이라는 곳에 알려지게 된다면 어찌 될까?
결코, 웃으며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현령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팠던 배고픔도 사라졌다. 그만큼 충격적인 것들을 눈에 새긴 것이다.
“괜찮아요?”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새의 지저귐처럼 귓가를 올렸다. 현령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리자 눈앞에 자그마한 아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악양에서 올라온 손님들이 있다는 것을 잊었다.
이런 어린아이를 내버려 두고 다들 어딜 간 것인지?
“하…… 하하. 괘, 괜찮다. 그보다 다른 어른들은 어디를 간 것이냐? 왜 너 혼자 있는 거지?”
“그게…… 다들 바쁜지 저만 떼어 놓고 가 버렸어요. 꼼짝하지 말고 여기에 있으래요. 심심한데…….”
단소미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운 얼굴을 찌푸렸다. 오랜만에 호북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구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 튀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현령의 모습과 곳곳에서 풍기는 기묘한 분위기가, 이 자그마한 아이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었다.
“밖이 되게 시끄럽죠?”
현령이 쓴웃음을 지었다.
시끄러울 만하지.
곳곳에서 시체가 발견되었고 포졸들이 그것을 치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심지어 형문파에 가족을 둔 자들의 비명과 울분이 끊이지 않으니 소란이 쉽게 가실 리가 없다.
“그래, 조금 그렇구나. 그러니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거라.”
“제갈 아저씨랑 똑같은 소리를 하시네요.”
단소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제갈운은 별채에 있다. 무엇을 하는 것인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다. 그렇기에 심심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이곳까지 기어 나온 것이다.
“위…… 위험하니 그런 것이지.”
“아하.”
단소미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자그마한 탄성을 내질렀다. 이윽고 슬그머니 밖을 바라보고는 어휴 하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일련의 행동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현령은, 그저 기이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저는 가 볼게요.”
그런 이야기를 하며 단소미가 총총 걸어갔다. 아이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며, 현령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저 아이가 무엇 때문에 한숨을 쉬었는지 그것이 궁금해졌다.
그런 현령과는 반대로 어느새 별채로 들어간 단소미는 지그시 담장을 바라봤다. 제갈운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으며, 아무리 커다란 현청이라 하지만 안과 밖은 엄연히 차이가 있는 법이다.
담장에 붙어 폴짝 뛰어 보았다.
하지만 높은 담장은 이 작은 아이의 키로는 쉽게 넘을 수 없었다.
“좋아…….”
단소미가 뒤로 슬그머니 물러섰다.
반드시 이 담장을 넘어 보겠다는 의지로 눈을 반짝 빛내고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한순간, 잠들어 있던 공력이 다리로 모여들었다.
단소미의 머릿속에는 매일같이 함께 달리던 장삼태의 모습이 뚜렷하게 각인되었다. 그 움직임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내달리려는 순간.
“크르릉.”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단소미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언제 나타난 것인지 백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입에는 기이한 책자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을 조심스레 가져와 단소미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뭐야?”
“크릉.”
백호는 마치 무언가 말을 하는 것처럼 책자에 머리를 비볐다. 그 행동은 좋은 것을 얻었다는 것처럼 기뻐 보이기까지 했다.
밖으로 나갈 생각이 가득했던 단소미가 반짝 눈을 빛내며 책자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제목을 읽어 내려갔다.
“무신…… 도경?”
이것은 분명히 지난번에 발견했던 그 책과 같았다. 틀림없이 물에 빠트렸기에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었던 것.
그것을 어찌 물고 왔단 말인가?
단소미가 기이한 표정으로 백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백호 또한 영문을 알 수 없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어디서 난 거야?”
“크릉크릉.”
백호가 그 커다란 덩치를 눕혔다.
이내 슬그머니 눈을 뜨는 듯하더니 커다란 손바닥으로 바닥을 쿵쿵 찍었다.
그 모든 행동을 확인한 단소미가 아하 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거기 있었다고?”
그 한 마디에 어이없게도 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하는 한 사람과 한 마리는 심지어 의사소통에 일절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백호는 계속해서 크릉거렸으며, 단소미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상하네? 묘아가 주워 왔나?”
단소미가 힐끗 백묘를 바라봤다.
바닥에 곤히 누워 있던 녀석이 잠시 눈을 떴다. 그러다 흥미를 잃었는지 눈을 감았는데, 저 모습을 보아하니 범인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 귀신?!”
느닷없는 단소미의 말에 백호가 귀를 쫑긋 세웠다. 작은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젓는 것이, 이 커다란 덩치를 지닌 백호조차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백묘는 귀신 따위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잠시 눈을 떴다 콧방귀 소리를 내며 다시금 눈을 감았다.
휘둥그레 눈을 치켜뜬 것은 오히려 단소미와 백호다.
소름이 돋는 것인지 백호는 머리를 흔들었고, 단소미가 팔을 문질렀다.
“후우……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단소미가 식은땀을 닦아 내며 두 손으로 책을 바라봤다.
무신도경.
확실히 그런 제목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여전히 소름이 돋았다. 음 하며 작은 신음을 삼키고는 다시 한번 책을 이리저리 확인했다.
다소 낡아 있는 책자.
조금이라도 거칠게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았다.
단소미가 천천히 한 장을 넘겼다.
빼곡하게 쓰여 있는 글자들이 가득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단소미는.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알다가도 모를 글씨에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함을 머금었다.
“아이고, 삼태 살려!”
느닷없이 장삼태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 * *
“아이고!”
“미친놈, 엄살은!”
“진짜 아픕니다요!”
장삼태는 인상을 썼다. 칼에 베인 곳이 너무나도 아프다. 옅게 베인 것이 아니라 깊게 베인 탓이기도 하였고, 아무리 지혈을 하고 응급 처치를 했다지만 그 상처가 단시간에 아무는 것은 아니다.
장삼태의 안색은 시퍼렇게 죽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천당가를 향해 소리치던 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업고 가고 있는 사도학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썼다. 무림인이라면 깊은 상처 하나둘 정도는 생기는 법이다.
이 무림에서 사는 사람 중, 칼을 맞지 않는 놈이 어디에 있던가?
사도학은 장삼태보다 훨씬 깊은 상처를 몇 개 더 가지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상처를 버틸 수 있을 만한 공력이 없다는 것이다.
‘의방으로는 소용이 없어. 결국, 하늘에 맡겨야 하는가?’
출혈이 멎었다고는 하지만 상처가 아문 것은 아니다. 베여 나간 장기들을 꿰맬 수도 없는 만큼, 탕약과 침을 이용한다 한들 소용이 없다.
이미 의술로 치료 가능한 범주가 넘어서 버렸다.
하여 공력으로 내부 출혈을 막고 운기조식을 통해 상처를 치료할 수밖에 없다.
외상보다 내상이 무섭다는 것은 이러한 이유다.
또한, 내상을 확실히 치료할 방법은 지난 바 공력이다.
‘이럴 때 단가 놈이 있었다면 달랐을 테지만…….’
사도학의 입에서 기나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단우현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천하의 오황이라고 떠벌리며 무릇 무인들에게 경외심을 받는 사도학조차, 지닌 바 공력을 흘려보내 주어 장삼태의 생명 줄을 붙잡고 있는 것이 한계였다.
그 이유인즉슨.
“나 죽는 거요?”
그때, 장삼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서히 힘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을 보며 자신의 마지막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사도학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가,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익힌 심법이 너무 쓰레기야. 그런 것으로는 내가 공력을 불어넣어 주더라도 내상을 치료할 수 없다. 용케 그런 심법으로 그만한 경공을 익혔구나.”
내공과 내상을 다스릴 수 있는 영약은 있다. 사도학이 마교를 나오기 전 몇 개 주워 온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품 안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장삼태가 가지고 있는 심법으로는 약기운을 흡수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 씨브럴……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 처, 천하의 다시없을 심법이라고 하더니만…….”
“미친놈, 천하의 다시없을 심법은 단가 놈이나 익히고 있겠지.”
“그…… 그럼 단가 놈 좀 데려와 주쇼…….”
사도학이 어이없는 실소를 흘렸다.
단우현 놈이 부른다고 어디 오기나 할 녀석인가? 또한 호남에 있는 놈을 어찌 지금 당장 부를 수 있겠는가? 부른다 한들, 심법을 내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 그럼 영, 영감님 심법을 알려 주쇼.”
“이런 미친놈…….”
사도학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장삼태를 바라봤다. 마교의 심법, 심지어 사도학의 심법을 알려 준다는 것은 차기 마교주가 되겠다는 말과 진배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도학이 익히고 있는 심법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천마신공과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어 어쩌면 장삼태가 익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도학이 신음을 삼켰다.
‘이걸 살려? 죽여?’
“하지만 네놈 몸속에는 몇 개에 기운들이 더 들어 있다. 내 것을 익힌다 하여도 완벽하지는 못할 거다.”
“그게 뭡니까?!”
“누가 그렇게 잡다하게 익히래!?”
“시벌, 가르친 게 누군데!”
“뭐? 시벌? 진짜 죽고 싶으냐?”
“죽여! 죽이라고 개새끼야!”
어차피 죽을 거 막 나가는 것인지 장삼태가 크게 소리를 치며 사도학을 다그쳤다. 시뻘겋게 얼굴이 붉어진 그가 주먹을 들어 올렸음에도, 장삼태는 두 눈 부릅뜬 채 노려봤다.
이미 자기 죽음을 직감하였으니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상관없다는 식이다.
“왜 그래요?”
그때, 단소미가 달려오며 물었다. 처음에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이내 장삼태의 모습을 확인한 후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손에 들고 있었던 책이 툭 하고 떨어졌다.
“왜 이래요?! 아저씨 괜찮아요?”
“소…… 소미야…… 이 아저씨가 없어도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야 한다…….”
“어…… 어허어어엉…… 무섭게 그러지 마요!”
단소미가 울음을 터트리며 장삼태를 붙잡았다. 이 손을 놓으면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인지, 꽉 힘을 준 채 좀처럼 놓지 않았다.
그때, 떨어진 책자를 주운 사도학이 진중한 표정으로 한 장 한 장 그것을 넘겼다. 절반 가까이 무신과 혈마에 대한 사설로 가득 차 있었으나, 가장 뒷장을 넘기니 묘한 문장들이 그 시선을 자극했다.
사도학은 인상을 썼으나 곧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한테 무슨 천운이 깃들었나?”
“예?”
“아니…… 아니다, 시간이 없으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사도학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단소미를 바라봤다. 아마도 이것 또한 이 아이의 천운인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의 농간인가?
설령 그것이 어느 쪽이든 간에 지금은 장삼태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절대 다른 생각은 하지 마라. 나 또한 책을 보고 그대로 진기를 흘려보내는 것이니 잘못되었다간 돌이킬 수 없다.”
“도대체 뭔데 그럽니까?!”
“닥치고 이거 먹고 앉아! 죽고 싶지 않으면!”
사도학의 다그침에 장삼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누군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니 어이없는 실소가 입가에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