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72
캉!
칼날이 쳐 올라갔다.
휘둘러졌던 그 칼은 틀림없이 남궁소혜의 목을 베었어야 함이 마땅한데, 기이하게도 후려쳐 올라가며 그 목적을 잃었다.
어느 누가 감히 천무광의 칼날을 쳐 낼 수 있을까?
단우현?
아니다.
류화군이 팔선 중에서도 제법 약한 축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그런데도 선경에 발을 디딘 자. 혈마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자다.
또한, 도주하는 것에 굉장히 능한 자이니만큼, 아무리 단우현이라 하여도 그를 붙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천무광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 있던 남궁소혜의 모습이 어느새 사라졌다.
“네가 직접 나설 줄이야…… 그렇게도 내가 보고 싶었나?”
시선 끝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뽑지도 않은 칼을 한 손에 든 채, 다른 한 손에는 축 늘어져 있는 남궁소혜가 있었다. 독이 골수까지 치밀어 올랐는지 이제는 그 의식조차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여인은 그런 남궁소혜의 맥을 부여잡고 기운을 불어넣었다.
“…….”
“할 말도 잊었나? 하지만 정말 의외로군. 류화군 녀석만 나타날 줄 알았는데…….”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당연한 거 아니야?”
여인이 입을 열었다.
남궁소혜의 몸에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떠한 영향력조차 받지 않는 것처럼 태연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천무광이 그런 여인을 삐딱하게 바라봤다.
“차라리 태공진 녀석이었으면 조금 더 수월했을 텐데…….”
“그럴 것 같아서 직접 왔어.”
“흠…… 그 계집은 왜 살린 거냐? 차라리 나에게 칼을 날렸다면 꽤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을 텐데…… 후예라 그런가?”
“…….”
여인, 아니 남주련이 지그시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후예라 하여도 너무나도 오래전 일이다. 남궁소혜의 입장에선 천 년 전 선조였으며, 반대로 남주련의 입장에선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긴 세월을 보내다 만난 단순한 타인 같은 감각이다.
그럼에도 천무광을 향해 칼을 날리지 않고, 남궁소혜를 구해 낸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하아…… 또 형님인가? 하긴, 네년은 그 형님 없으면 죽고 못 살지.”
그 한마디에 남주련의 미간이 들썩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천무광 역시 마찬가지 아니던가?
아마도 이 두 사람이 가장 단우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것이다.
“그건 너도 똑같은 거 아니야?”
“잘 아는군.”
“알면서 이런 짓을 한다?”
“단순하고 명쾌한 이치다.”
천무광이 손에 쥔 검을 떨어트리며 쭉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인근에 있는 나무에 몸을 기대더니 품에서 장죽 하나를 꺼내 피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남주련이 인상을 찌푸렸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 곁에 저런 쓰레기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지.”
“…….”
“그는 언제나 고고하고 고독해야 하는 자다. 또한, 곁에 있는 자들이라 하면 우리가 아니고선 안 된다.”
후우 하며 천무광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래 봐야 그저 지난 바 생각을 내뱉은 것에 지나지 않고, 그것을 남주련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고 있으나, 그런데도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하나하나, 모조리 죽여야지. 그런 놈들이 곁에 있다는 건 무신이 대한 예의가 아니다.”
“누구보다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랐던 사람의 입에서 나올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네 얘기를 하냐?”
천무광이 삐딱한 표정으로 남주련을 바라봤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세가 더없이 부풀어져 올랐다. 누구라 해도 말릴 수 없을 것 같았으며, 또한 흐르는 기세를 버틸 수도 없을 것이다.
울컥!
“커억!”
그때, 남궁소혜가 토혈을 하며 시꺼먼 피를 뱉었다. 죽어 가던 얼굴의 혈색이 다소 돌아온 것을 보자니 위급한 상황은 넘긴 것 같았다.
남은 것은 아직도 흐르는 출혈과 상처 정도였는데, 출혈은 혈을 찍어 막을 수 있으나 상처는 천무광을 상대하면서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남주련은 아주 자연스럽게 천무광 앞에서 남궁소혜의 혈을 짚어 출혈을 막았으며, 품에서 기이한 단환을 꺼내어 그 입에 넣어 주었다.
“먹거라.”
남궁소혜가 흐릿한 시선으로 남주련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너무나도 부드러워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꿀꺽 단환을 목구멍으로 넘기자 그녀가 더욱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단우현의 웃음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잘 버텼구나. 너는 어쩌면 나보다 더 높은 곳을 볼지도 모르는 아이다. 그러니 절대 죽지 말거라.”
남주련의 한마디에 남궁소혜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그녀가 남궁세가를 세운 여인이라는 것도, 혹은 삼천의 일이라는 것도 여전히 믿을 수 없었으나, 보이는 표정 하나하나에 진심이 묻어나 왠지 모르게 사람을 안심시켰다.
그때, 천무광이 인상을 썼다.
“나 참, 나도 한물갔군. 내 앞에서 용케도 그런 짓을 하고 있어.”
“그렇다고 죽일 수는 없으니까.”
“너도 죽는다?”
“그 전에 네가 죽을지도 모르지……?”
찌릿찌릿.
온몸에 소름이 돋다 못해 그 기세에 살갗마저 찢겨 나갈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마치 생사투를 앞에 둔 이들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흐릿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남궁소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삼천이라 불리는 이들은 단우현을 따랐던 자들이 아니었던가?
그런 이들이 어째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려 하는 것인가?
그 이해 못할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며, 어떻게 해서든 정신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무제의 밑으로 들어가더니 내가 누구인지도 잊었나 보지?”
“하하하, 그럴 리가? 천하의 남주련을 잊을 리가 없지.”
“그럼 간단히 죽어 주지 않을 거란 것도 알고 있을 테지?”
“흐음, 그건 곤란한데. 나도 오래 이 자리에 있을 생각이 없어서 말이다. 조금 있으면 무서운 게 올 것 같거든.”
“무서운 거?”
남주련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무광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그래, 형님이 왜 이 자리에 없겠냐? 류화군을 잡으러 갔지.”
“너…… 설마!”
“하하하! 아무리 사람이 달라졌어도 복수심은 잊지 않는 법이다.”
남주련의 얼굴에 낭패가 깃들었다.
전 팔선이라 하여도 모조리 나간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몇몇은 무제를 죽이기 위해 반기를 든 자들도 있었으며, 그리하여 현 팔선으로 남은 이들이 있었다.
류화군.
그가 바로 그런 이들 중 하나이다.
한데, 그를 죽이기 위해 단우현을 이용하였다?
남주련이 숨을 골랐다.
단우현이 갔다는 것은 결국 류화군은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그때, 남궁소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이…… 이용하신 거군요…… 다…… 단 공자를…….”
“으응?”
천무광이 묘한 표정으로 남궁소혜를 바라봤다. 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바라보는 것 같은 그 시선이 결코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놀란 것은 남주련 또한 마찬가지였다.
몸에 수십 가지의 독을 주입당했고 중상을 입은 몸이다. 아무리 남주련이 독을 몰아내 주었고, 영약을 먹여 그 생명줄을 붙잡고 있다 한들,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거나 혹은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쓰러져 있어야 함이 마땅하였기에 두 사람은, 흥미롭기도 하고 혹은 재미있기도 한 시선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그때, 천무광이 후우 하며 연기를 쏟아 내며 질문에 답했다.
“이용…… 이용이라…… 난 단순히 복수심을 부추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이용했다라…… 이상하군.”
“다, 당신. 다, 단 공자가 이 사실을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그 한마디에 천무광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그러나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박장대소했다.
“푸하하하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이 산중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의 웃음소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듣고 있는 남궁소혜가 인상을 찌푸리며 숨을 헐떡였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온몸이 흔들린다.
마치 정신마저 빼앗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남주련이 곁에서 그 기세를 흩어 내지 않았더라면, 남궁소혜는 더 큰 내상을 입고 그대로 눈을 감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누구한테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하하하. 네년이 그 무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느냐?”
“…….”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인간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상황을 꿰뚫지 못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그, 그건…….”
남궁소혜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천무광을 바라봤다. 그렇다면 단우현은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무광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었다는 말인가?
“처음부터…… 하나부터 열 가지 알고 움직인 거다. 그 마음에 있는 복수심이 본디 그가 가지고 있던 천살성을 일깨운 것이지.”
“천…… 살성……?”
“나는 그저 옆에서 살짝 밀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뱉는 천무광은 말투에는 힘이 깃들어져 있었다.
마치 네년보다 그에 대해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를 아는 척하지 말라는 것처럼 쏟아 내는 한마디에 원망이 가득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동자는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촤아아악!
그때, 검이 쏟아졌다.
어느새 내뻗어진 남주련의 칼날이 천무광을 베어 낼 듯이 날아갔다. 틀림없이 검기라 할 수 있는 그것이었는데,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날아가 천무광을 압박했다.
팡팡!
그러나 천무광의 기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검기를 막아섰다. 마치 의지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주인을 지키는 모습은, 아무리 남궁소혜라 할지라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
정신력으로 눈을 뜬 채 버티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쯧, 기분 나쁠 정도로 정교한 검술은 여전하군.”
“그 기괴망측한 기운은 여전히 더럽네.”
“망할 년…….”
“개자식…….”
쾅!
그때, 어디선가 귀를 울리는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산이 흔들렸다. 그것은 마치 지진과도 같았으며 동시에 몰아친 돌풍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나무들이 크게 휘청이다 부러져 나갔으며, 어디선가 솟구쳐 오른 돌덩이들이 쏟아져 우르르 떨어졌다.
“하! 끝났구먼!”
천무광은 그것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먼 거리에서부터 느껴졌던 기이한 두 기운 중 하나가 사라졌다. 그것만 깨닫더라도 목적은 달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무광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훌쩍 물러섰다.
동시에 남주련의 칼날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더 있어 봐야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 같군.”
인상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이 자리에서 남주련을 베어 낸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지만, 당장 단우현이 달려올 수도 있는 상황이니만큼,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것이 하나 없었다.
복수를 끝마친 단우현의 칼날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니까.
“어딜?!”
“하하! 미안하지만 다음에 보자고!”
천무광이 다시 한번 칼날을 피해 훌쩍 몸을 날렸다.
아쉽게도 그의 몸을 베지 못한 남주련의 칼은 그저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