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74
“후우…….”
먼 곳으로 도망친 천무광은 높은 곳에서 한쪽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우현의 성격이라면 당장 쫓아와 머리통을 부술 것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쫓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세월의 변함이란 사람마저 바꿔 놓는 것입니다. 형님.”
천무광은 그런 말을 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아주 오래전, 처음 단우현을 만났던 그때를 떠올리고,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추억에 잠겼다.
얼마나 좋았던지 아는가?
무를 숭상하는 사람으로서, 그 끝에 다다른 존재라 할 수 있는 무신과의 여정은 누구라 한들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재미를 주었다.
천무광은 아직도 그 나날을 잊지 못한다.
또한, 생각한다.
반드시 그 높이에 오르겠다고.
무신이 봉인되어 동정호 깊숙이 가라앉은 그 순간.
천무광은 그 술법을 만들어 낸 천무제에게서 무신을 뛰어넘을 가능성을 보았다. 그렇기에 선경에 올랐음에도 함께했던 이들을 배신하고 그 곁을 떠나 천무제 곁에 붙어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조금 이용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우의 애교로 봐 주십시오.”
으차 하며 천무광이 쭉 기지개를 켰다.
골치 아팠던 류화군을 죽였다.
환술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무기였다. 심지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류화군이라 한다면 설령 천무광이라 하여도 곱게 끝나지는 않는다.
그의 환술은 완벽하며 심지어 천무제조차 속아 넘어갈 정도이니까.
그렇기에 최우선 목표는 언제나 류화군이었다.
뒤를 쫓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현 팔선들은 천무제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만큼, 잠시 잠깐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미친 듯이 쫓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 판단은 정확하였고 천무광은 자신이 직접 손을 쓰지 않고 류화군을 죽이는 것에 성공했다.
“천하의 무신이 손바닥 위에서 놀다니. 쯧쯧.”
천무광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과거라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지금 눈에 보이는 단우현이 너무나도 어이없고 또한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틀림없이 곁에 붙어있는 그 나약한 녀석들 때문일 터.
천무광의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그러나 이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잠시 잠깐 단우현이 있는 곳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어떠한 낌새를 눈치챘는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
“호락호락하게 속아 넘어가 주지 않겠다는 건가?”
천무광은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일이 다르게 흘러갔다.
그러나 다시금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누군가 빠르게 그를 쫓고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천무광이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
* * *
“헉…… 헉…….”
류화군은 털썩 땅에 주저앉았다.
조금 전 베였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몸뚱이가 붙어 있음을 깨닫고, 너무나도 어이없는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보며 두 눈을 멀뚱멀뚱 치켜떴다.
어찌 이럴 수 있는가?
“화…… 환술……?”
눈앞에서 벌어진 것은 틀림없는 환술이다.
베인 감각도 벌어진 상황도 틀림없이 현실과도 같이 생생한데, 그 모든 것들이 고작해야 환술에 지나지 않았다니?
그 누구보다 환술에 자신이 있었던 류화군은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환술이 아니다.”
“……!?”
단우현이 검을 거두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마디를 내뱉으며 허망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류화군을 향해 명백히 조소를 내걸었다. 그의 모습에 조금 전 류화군이 입힌 상처들이 고스란히 있었기에, 그의 환술이 완벽했음을 느끼게 했다.
그런 상항에서 어찌?
류화군은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화, 환술이 아니라고……? 이게? 부…… 분명 나는…….”
“죽었을 테지.”
단우현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술이 아닌 상황이라면 몸이 양단되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류화군의 몸 곳곳에는 어디 하나 베인 곳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또한 피 한 방울 새어 나온 흔적조차 없었다.
더듬더듬하며 몸을 만져 보고 있었던 류화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 살기…….”
“그래.”
꿀꺽하며 마른침이 넘어갔다.
단우현의 살기는 진짜였다.
공격하는 그 순간 느꼈던 살기는, 류화군의 환술마저 깨부술 정도로 강렬하였으며 그 탓에 눈에 보였던 모든 것들이 단우현의 엄청난 살기가 만들어 낸 환각으로 뒤바뀐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단우현이 진정 류화군을 죽이려 했다면, 보았던 모든 환각이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허망한 현실.
그것이 너무나도 두려워 몸서리쳤다.
“왜…… 살려 주었는가? 죽이려 했던 것이 아니었는가?”
류화군은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단우현은 틀림없이 류화군을 죽이려 하였다. 환술마저 깨부수고 살기에 의해 환각마저 보일 정도로 진심으로 단우현은 류화군을 죽이려 했다.
그런데도 살려 준 이유가 무엇인가?
“단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기…… 기분 따라 사람을 죽이는가?”
류화군은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보았던 무신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죽이려 한다면 반드시 죽였다.
그의 앞에서 칼을 뽑고 살아난 이가 없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무신은 과거 무신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류화군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천 년이라는 세월이 자네를 바꾼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생활이 자네를 바꾼 것인가?”
“글쎄, 잘 모르겠군.”
“…….”
적의가 없다.
이미 살기로 류화군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단우현의 말투는 물론이고 그 표정과 행동에선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인지 류화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살았으니 다행이로군.”
“이미 죽었다. 너는.”
“아네. 이 류화군은 죽었지…….”
단우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이미 죽은 이가 이승을 걸어 다닐 수는 없는 법.
고로, 더 이상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신이 경고인 만큼,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라져라.”
류화군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단우현의 말은 절대적이다. 틀림없이 죽이고 싶었으나 어떠한 계기로 인해 살생을 자제하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놓아주는 것이다.
류화군의 입장에선 대단히 운이 좋은 일이었고, 이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 고맙네.”
인사를 한 류화군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까지도 단우현이 보여 준 환각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런데도 억지로 다리에 힘을 주고 그곳에서 벗어났다.
‘천하의 팔선을…… 이리도 간단히…….’
도망치면서 류화군은 그런 생각을 했다.
팔선이라 한다면 한 분야에서 그 극을 이뤄 선경에 도달한 자들을 말한다. 본디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이 대단하여, 그들 중 하나가 중원에서 깽판을 치기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그것은 류화군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무신에게 이리도 간단히 당해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가 가진 힘만으로도 능히 중원을 뒤집고 헤집어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다.
그런데도 무신에게 미치지 못한다.
‘천재(天災)라는 말이 헛소리는 아니로군.’
류화군은 꾹 주먹을 쥐었다.
천 년 전, 무신을 가라앉히는 데 들어간 술법과 내공이 얼마였던가? 팔선 전부가 달라붙어 십여 년간 공을 들여야 했다.
극의에 다다랐다 해도 과언이 아닌 팔선들이 수년간 공을 들인다?
결코,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나 그것은 실제로 벌어졌고, 결국 무신은 천무제의 생각대로 동정호 가장 깊숙한 곳에 갇혔다.
‘본래라면 북해에 가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였지만…….’
북해 가장 깊숙한 곳.
한설이 몰아치고 만년빙정이 잠들어 있는 곳.
그곳에 가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였고 확실한 방법이었으나, 불가능하였기에 동정호를 선택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그 술법을 깨고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하였다. 제아무리 무신이라 하여도 수십 년 안에 모든 진원진기를 빼앗기고 죽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도 천 년.
‘그 고독과 차가움을 어찌 견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류화군이었다.
또한, 그렇기에 팔선이라는 존재에 대해 단우현이 가지고 있는 살심이 진짜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류화군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더욱 속력을 냈다.
먼 거리에서 천무광의 뒤를 쫓고 있는 남주련의 기운이 느껴졌다.
단우현은 산길을 걸으며 남궁소혜가 있는 곳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가득했다.
팔선과 삼천.
과거 인연들에 대한 것들이 하나하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찌 보면 악연이기도 하였고 다른 의미로는 좋은 인연이기도 하였다.
‘팔선이 없었다면 소미를 만나지도 못했을 테지.’
그런 생각을 해 보자면 팔선은 은인이나 다름없다. 류화군을 살려 준 이유이기도 하였기에 그들에 대한 미운 감정은 있어도 복수심에 눈이 멀 생각은 없었다.
‘천 년이라…… 길구나.’
길다.
너무나도 긴 그 시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겪었기에 지금 단우현이 있으며, 지금 인연들을 만나고 또한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었다.
단우현이 웃음을 지으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동시에 느닷없이 바람이 몰아치더니 풍경이 뒤바뀌었다. 조금 전 있던 그곳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보이지 않았으며, 어느새 남궁소혜가 운공을 취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순간에 엄청나게 먼 거리를 이동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선인들이 쓴다는 축지(縮地)에 버금가는 신법이었다.
“당했군.”
주변 흔적을 살펴보고 있었던 단우현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지었다. 천무광의 머릿속은 이미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남궁소혜까지 건들 것이라 생각을 하지 못하였기에 그저 헛웃음만 흘러나왔다.
천천히 운공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간 단우현이, 손을 뻗어 등에 가져다 대었다. 깊은 내상을 입은 것인지 몸 곳곳에 기맥들이 말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좋은 약을 먹은 것 같았으며, 어느새 치료 또한 되어 있었다.
‘남주련인가?’
그러한 기운을 느낀 것 같았기에 저도 모르게 웃었다. 지금 당장 움직인다면 틀림없이 그 얼굴을 볼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은 조금 더 나중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단우현이 천천히 기운을 넣어주었다.
이미 남주련의 기운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내상을 다스리고 있기는 하였지만, 단우현의 기운이 스며들어 가니 그것들은 서로 다투지 않고 융합되어 부드럽게 흘러나갔다.
그렇게 더욱 빠르게 내상을 치유하며 막혔던 혈도를 뚫어 나갔다.
퍽퍽!
기이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녀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남궁소혜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막혀 있던 혈도들이 타동되는 과정이기는 했지만, 본인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는 일이다.
그런데도 함부로 움직이거나 입을 열 수 없다.
자칫 주화입마를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운이라 해야 하는가? 어쩌면 소미보다 네가 더 운이 좋을지도 모르겠구나.”
으드득!
단우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뼈가 재구성되는 것 같은 묘한 소리. 남궁소혜의 몸이 이리저리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 흘렀으면 그 땀은, 마치 독소를 배출하는 것처럼 시꺼멓게 물든 채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