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75
남궁소혜는 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온몸에 기운이 도는 느낌.
처음에는 단순히 내상을 치유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집중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남주련이 주었던 단환을 먹었음에도 쉽사리 치유되지 않았다.
이는 인형들을 막아 내는 과정에서 그녀의 심신이 상당히 지친 탓이다.
어떻게 해서든 마음을 다잡고 운공을 하는 사이, 기이한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는 것 같은 상냥한 기운이다.
느닷없이 들어온 그것은 자연스럽게 주위에서 날뛰고 있는 기운들을 휘감고 흐르며 그녀의 기맥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해를 입히지 않다고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상냥한 움직임이었다.
흐르는 기운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명령을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본디 그녀가 가야 할 길이 아닌 다른 곳을 뻗어 나갔다.
마치 그녀의 온몸을 샅샅이 뒤지고 탐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급하게 그것을 부여잡아 보려 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쿵 하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남궁소혜는 그대로 의식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음…….”
그로부터 눈을 뜬 것은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을 때였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 천천히 뜨자, 분명 밤이었던 하늘이 쨍쨍하게 해가 내리쬐고 있었다.
이는 무아지경에 빠져 운공을 할 때나 생기는 일로서 남궁소혜는 새삼 놀라워하며 벌떡 상체를 들어 올렸다.
스륵.
무언가가 흘러 내려갔다.
“응?”
가만 그것이 무엇인지 바라보니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사람의 상의였다. 왜 이런 것이 자신을 덮고 있었는지 알 지 못하는 남궁소혜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어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네?”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단우현이 바위에 앉아 가만 남궁소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조금 전 그 기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또한 이상하게 온몸에 열이 올랐음에도 시원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생했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시간이 조금 더 지체되었을 거다.”
“무슨 그런 농담을…….”
남궁소혜가 혀를 내두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도 이런 농담이 또 없다.
단우현이나 천무광이 인형들을 부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리되었다면 상대 또한 무언가를 눈치채고 도망쳤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
그때, 남궁소혜가 머릿속에 떠오른 그것을 질문하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한데, 느닷없이 부는 바람에 싸늘함을 느꼈으며 저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손목이 보였다.
배꼽이 보였다.
“……?”
그 기이함에 슬그머니 단우현의 상의를 들어 올렸다.
눈앞에 보이는 새하얀 맨다리를 확인한 그녀는, 천천히 상의를 다시 덮으며 시뻘겋게 얼굴을 붉혔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으나 소리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창피했는지, 다시금 누워 상의를 푹 머리끝까지 뒤덮었다.
“……!”
“몸에서 독이 배출되면서 옷이 녹아내렸다. 내가 벗긴 것은 아니니 탓하지 말도록.”
“으으…….”
남궁소혜는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사내에게 알몸을 보인 적이 없었거늘, 그것도 하필이면 단우현 앞에서 이런 꼴이 되다니?
심지어 몸에서 독이 나오면서 옷이 녹았다?
믿을 수 없는 소리다.
“거, 거짓말하지 마요…….”
“농담으로 들리나? 네 옆을 봐라.”
단우현의 말에 고개를 내민 남궁소혜가 오른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시꺼멓게 땅이 죽어 있었다.
또한, 옷가지로 보이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는데, 조각의 형태로 보아 틀림없이 남궁소혜가 입고 있었던 그것이었다.
“아! 난 망했어……!”
남궁소혜는 더욱 상의를 뒤집어쓰며 울먹였다.
하지만 곧 하체가 시원하다는 것을 깨닫고 번뜩 정신을 차렸다. 조심스레 온몸을 가리기 시작한 그녀가 매서운 시선으로 단우현을 쏘아봤다.
“봤죠?”
“보게 된 것이지, 원해서 본 건 아니다.”
“…….”
결국, 보기는 봤다는 말이다.
남궁소혜가 하아 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앙칼지게 고함을 내질렀다.
“고개 돌려요!”
“…….”
단우현이 하아 하며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남궁소혜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단우현의 옷이 제법 큰 덕에, 그녀의 몸 전체를 가릴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도 불만인 것은, 여기저기 노출이 되는지라 이것만 입고 마을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남궁소혜가 뾰족한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아무렇지 않게 안 보고 있는 것 또한 기분이 나쁘다.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거야?’
마치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조금은 복잡한 기분이었다.
질끈 띠를 맨 남궁소혜가 단우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알아요? 당신 아우께서 제 목을 치려 했던 거요.”
“그렇군.”
“……할 말이 그게 전부예요?”
“녀석에 대한 것은 눈치를 채고 있기는 했었다. 설마하니 너를 건드릴 줄은 생각하지 못했지.”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 줬다?”
남궁소혜의 말투에 가시가 돋쳤다.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단우현이 믿어 주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은, 천무광의 배신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것과, 결국 보기 좋게 이용당했다는 것이다.
천하의 단우현이.
전설의 무신이.
누군가에게 이용을 당했다니?
마치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깨져 버린 것 같아 남궁소혜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걱정하지 마라. 그놈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네에?”
“그런 것이 있다. 그보다 몸은 좀 괜찮으냐?”
들려오는 말에 남궁소혜가 더욱 아미를 찌푸렸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니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찮은데요 몸은……?”
남궁소혜가 이리저리 몸을 확인해 보며 답했다. 상당한 중상을 입고 있었기에 사실 조금 더 아파야 함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마치 상처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기이함을 느낀 것 또한 바로 그때였다.
‘가벼워……?’
온몸이 가볍다.
예전에는 느껴 보지 못했던 감각이다.
몸 안에 쌓여 있는 내력이 충분히 돌고 있음을 감지했다. 평소보다 오감은 더욱 뚜렷하여 마치 감각 하나하나가 날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남궁소혜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칼에 베이고 찔린 상처들이 어느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마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처럼 피부 역시 더욱 백옥같아졌으며, 전혀 격전을 치른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예요?”
“축하한다. 한 단계 더 성장했구나.”
“네?”
뜻 모를 말에 남궁소혜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 단계 성장을 했다는 것은 더욱 높이 올라갔다는 말인가?
하지만 왜?
무언가 깨달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남궁소혜는 그저 그 인형들을 막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싸움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남주련이 주었던 것이 희대의 영약인가?
아니다.
다소 내공을 높여 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몸 안의 독과 내상을 치유하는 데 힘을 다했으니, 공력을 올려 준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뭔가. 이 느낌은?
마치 새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감각에 남궁소혜가 물끄러미 단우현을 바라봤다.
“환골탈태를 하였다.”
“저요?”
“그래.”
“나요?”
“그래.”
“진짜?”
“…….”
계속되는 물음에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나 더 물어야 속이 시원할 것인지 남궁소혜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이에요!?”
이윽고 까랑까랑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환골탈태라니?
벽을 넘어선다 하여도 그것을 이루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오황칠성십존이라 불리는 이들은 물론이고, 이 무림에서 제법 이름난 백 대 고수까지도.
그들 중 환골탈태를 경험한 고수가 있다고 한다면, 기껏해야 오황 정도일 것이다.
그만큼 희귀한 경험이다.
온몸에 막힌 기혈이 없어야 하며 흐르는 공력을 섬세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런데도 수많은 무인들이 환골탈태를 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된다.
그만큼 엄청난 일이라는 것이다.
남궁소혜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찌나 믿을 수 없는지 제 볼을 꼬옥 꼬집어 보았다. 다소나마 통증이 느껴지는 것을 감지하고는 숨을 삼켰다.
“말도 안 돼…….”
“운이 좋았다. 꽤 좋은 영약을 먹은 것 같더구나. 그것이 아니었다면 기혈을 뚫을 수 없었을 거다.”
단우현이 웃으며 답했다.
기실 남주련이 준 단환보다 단우현이 불어넣어 주었던 천일조화공의 역할이 컸다.
막혀 있던 기맥을 깔끔하게 닦아 내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그 많은 기운들이 단박에 상단전을 뚫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물론 상단전을 연다 하여 환골탈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무척 운이 좋았던 것이다.
또한 상단전을 열었다는 것은.
그녀가 이미 절정을 넘어섰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제 마장강 녀석도 한 수 접어줘야겠군.”
“하…….”
그 말을 듣고 있음에도 남궁소혜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그저 꿈만 같았으며, 설령 꿈이라 한다면 결코 깨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깊게 심호흡했다.
마음을 다스리려 애를 쓰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하나하나 그 행동이 재미있어 보였던가?
단우현 또한 꽤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단…… 공자 덕분이죠? 제가…… 환골탈태한 거……?”
“네 힘이고, 네 운이다. 나 때문은 아니지.”
“…….”
말은 그렇게 해도 남궁소혜는 안다.
틀림없이 단우현 덕이다.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운공을 하고 있을 당시 흘러 들어왔던 그 부드러운 기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그것은 틀림없이 단우현의 기운이었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단우현의 눈동자와 표정.
그것에 담긴 감정이 그 기운을 닮아 있었다.
남궁소혜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마치 태양처럼 밝고 백지처럼 순수하였으며 어떤 사내라 하여도 그 마음을 쥐고 흔들 것처럼 아름다웠다.
“고마워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단우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