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76
“끄아아악!”
“무…… 물러서지 마라!”
거대한 혈천의 깃발이 휘날렸다.
붉은 깃은 죽음의 상징.
여전히 정도를 따르며 자신들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정파인들에게 있어 그 깃발은 죽음 그 자체였다.
벌써 수많은 문파가 무너져 사라졌다.
죽은 이들의 사체를 한데 모아 쌓아 놓는다면 능히 산을 이룰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혈천의 깃발 아래 모이지 않는 이들은, 모조리 적이었으며 죽여야 할 사형수라는 듯 혈천은 망설이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이 지나간 곳은 언제나 시뻘건 핏물이 가득했고, 고개 숙인 자들만이 살아남아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는 것으로 그 목숨을 보장받았다.
중원 무림은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
누구도 그들의 진격을 막아 낼 재간이 없어 보였다.
“현재 사천과 호남 지방을 제외한 모든 곳이 혈천의 수중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남궁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한 일이 있을까 싶어 식솔들을 호남으로 이주시켜 놓았다. 하지만 남궁세가를 다시 일으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안휘를 잃는다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었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결국 호북까지 손아귀에 들어갔군.”
“……지난번 일로 어느 정도 호북의 힘을 되찾아 놓은 듯하였는데, 혈천의 기세는 말 그대로 파죽지세. 순식간에 무당을 무너트리고 숨어 있는 정도 세력을 밟아 놓았습니다.”
“무당을 무너트렸다면 당연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테지.”
구파일방의 태산북두 무당이다.
하지만 선진 사태로 인하여 무당은 본래 그 힘의 반절조차 남지 않았으며, 상당수가 빠져나온 상태이니 들이닥친 혈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구파일방 중 한 곳이 또 가는가?’
남궁용이 애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나마 이 무림을 다스리며 기둥 역할을 했던 곳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상황은 그리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현재는 어찌하고 있는가?”
“수많은 혈천인들과 그곳을 따르는 무리들이 중경을 향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 모습으로 보아 아무래도 다음은…….”
“사천인가?”
“예.”
남궁용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호북을 점령했다.
이미 그곳은 혈천의 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쪽으로는 구 할 가까이 집어삼켰으며, 남은 것은 남쪽과 서쪽이다.
하지만 기이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호북을 삼켰으면 사천보다는 호남이 먼저일 텐데?’
호북과 호남은 붙어 있다.
경계선만 넘으면 바로이고 또한 그 길을 막아설 존재들조차 없을 것이다.
반면 사천은 아니다.
중간에 중경이 끼어 있다.
비록 대단한 세력들이 모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천을 비롯하여 귀주와 섬서를 끼고 있다.
혈천에 저항하는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으며, 섬서에는 여전히 그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화산파가 존재했다.
따지고 보자면 사천이 먼저가 아닌 호남이 먼저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마치 호남단가를 경계하는 것 같은 느낌이구나.’
남궁용은 인상을 찌푸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 한다면 정도인들이, 아니 남궁세가가 가지고 있는 비장의 한 수를 저쪽에선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천도회는 어찌 움직인다 하더냐?”
“사천으로 향할 심산이 큽니다. 아무래도 정도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곳이니, 사천만큼은 절대 내주지 않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럴 테지…….”
사천은 정도 최후의 보루다.
중간에는 중경으로 막혀 있으며 사천은 본디 정도 최고 권위를 자랑했던 하남 무림맹보다 몇 배나 많은 무림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구파의 청성, 아미.
심지어 아직 사천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사천당가 휘하에는 셀 수조차 없을 만큼 수많은 중소 문파들이 있었다.
호락호락하게 보다가는 오히려 혈천의 씨가 마를지도 모르는 곳.
그곳이 바로 사천이다.
“그리고 이번 일에 관해선 남궁 가주가 해 주어야 할 일이 있소.”
그때, 끼익 문이 열리고 당중악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위풍당당한 풍모와 눈빛은 마치 남궁용을 압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궁용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시선이 좋지 않았지만 불편한 마음을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게 무엇이오?”
“이 싸움에 호남단가를 끌어들일 수 있겠소이까?”
당중악의 한마디에 남궁용의 표정이 굳어졌다.
슬그머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무감정하여 날이 선 것 같았다.
당중악 또한 남궁용의 표정을 보며 뒤통수가 오싹해짐을 깨달았다.
‘용은 용이로군.’
그런 생각을 하며 공력을 끌어 올렸다.
상대의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대와 호남단가는 제법 친한 것 같아 부탁한 것인데, 그것이 아니란 말인가?”
“하하하, 어디를 어떻게 보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소만…… 그곳은 내가 부탁한다고 움직이고, 부탁하지 않는다 하여 움직이지 않는 곳이 아니오.”
그래, 모든 것은 단우현의 뜻대로.
그렇게 돌아가는 곳이다.
단우현의 마음에 들면 움직이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무슨 짓을 하여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는 설령 남궁천이라 하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남궁용은 다소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 *
“크억?!”
장삼태는 눈을 뜨며 울컥 토혈했다.
시꺼먼 피가 한 줌 가득 바닥을 적셨다.
한 번이 아닌 몇 번이나 토혈하니, 마치 내장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장삼태가 가슴을 부여잡고 기침을 내뱉었다.
어느새 콧물과 눈물, 심지어 입에서는 침까지 고여 흘렀다.
“커컥!”
“아이고, 이놈아. 적당히 해라, 적당히.”
사도학이 그런 장삼태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운공을 시작한 지 벌써 열흘이 흘렀다.
그사이, 눈조차 뜨지 못한 채 운공에만 빠져 있던 놈이, 눈을 뜸과 동시에 토악질을 시작했다.
얼마나 냄새가 고약한지 코를 찌르는 악취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주…… 죽는 줄 알았네…….”
“죽다 산 거지. 네놈, 열흘 동안 의식이 없었어. 알긴 아냐?”
“여…… 열흘 말입니까요?”
장삼태가 멀뚱멀뚱 눈을 뜨며 사도학을 바라봤다. 열흘이라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저 잠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만큼 시간이 지났단 말인가?
장삼태가 슬그머니 자신의 몸을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괜찮은 거 맞습니까요?”
“살았으니 괜찮은 거지.”
사도학이 혀를 내둘렀다.
기실 무신도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단순히 구결만 쓰여 있었기에, 그것을 해석하고 진기를 이끄는 것은 오롯이 사도학의 역할이었다.
때문에, 다소 불안한 것 역시 남아있었다.
사도학의 해석이 잘못되어 다른 곳으로 진기를 유도했다면, 장삼태는 두 번 다시 눈을 뜰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을 테니까.
설령 눈을 뜬다 하여도 광인이 되었거나 어딘가 불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운도 좋아.’
사도학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단소미를 제외하면 이렇게까지 운 좋은 이가 또 있을까 싶다.
‘내키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 책자가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로군.’
사도학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정말 무신, 즉 단우현의 심법이 적혀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렇듯 장삼태가 살아남아 있는 것을 보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몸에 흐른 진기의 길들을 기억하느냐?”
“아, 왜……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습니다요.”
“잘 기억하고 있거라. 이제부터 네가 운공해야 하는 것은 그 길이다.”
장삼태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그답지 않게 얌전한 이유는, 제 딴에도 몸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심법으로 그 정도의 경공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만…….”
“그, 그 정도였습니까요? 우리 스승님 심법이?”
“하하, 네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뭐가 말입니까요?”
장삼태가 묘한 표정으로 사도학을 바라봤다.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표정이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놈, 삼류 심법으로 어떻게 그 정도 경공을 펼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하냐?”
“그야…… 우리 사문 무공이 뛰어나서?”
“지랄도 참 앙증맞구나. 그 심법은 진원진기를 가져다 쓴다. 소량의 내공과 대량의 진원진기. 그러니 내공이 많지 않은 너라도 그런 경공을 펼칠 수 있는 거다. 또한 그렇기에 한 번 펼칠 때마다 수명을 빼앗기는 셈이지.”
“헉?! 그…… 그게 진짭니까!”
“그럼 거짓말처럼 들리냐?”
처음에는 단순히 많은 무공들을 익히고 있는 탓에, 그 기운들이 서로 섞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진맥을 해 본 결과, 그것 또한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장삼태가 익히고 있는 심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온갖 잡기들을 익혔으니 그대로 갔다간 몇 년 안에 목숨이 다했을 거다. 네놈 명줄도 제법 질긴 모양이군.”
“이 장삼태! 어르신들 뒤질 때까지 모셔야 합죠!”
“지금 죽여 주랴?”
“…….”
장삼태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사도학의 매서운 눈빛을 보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려 보던 장삼태가 기이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많은 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탓이다.
심지어 늘 곁에 있던 단소미조차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어디 갔습니까요? 이 삼태만 빼놓고?”
“집에 갔다.”
“예?”
장삼태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사람이 아파서 열흘 동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는데, 집에 갔다고?
그게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그저 장난 삼아 사도학이 내뱉은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그시 그의 눈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날카로운 고양이 같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거짓말?”
“멍청하긴…… 지금 이 호북 꼴이 어떤 줄 알면 당장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이놈아.”
사도학이 인상을 쓰며 주변을 바라봤다.
현청 주위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조금 더 먼 곳으로 오감을 넓히면 곳곳에서 혈천인들의 기척이 잡혔다.
이미 호북 전체에 그들의 세력이 스며들었다는 이야기다.
단소미가 없었다면 이리도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을 테지만, 그 아이를 이런 곳에 내버려 둘 수가 없으니 만큼, 결국 빠른 철수를 결정했다.
또한, 단우현에게 보고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픈 사람을 두고……?”
“자꾸 같은 말 하게 하지 말고 움직일 수 있으면 일어나라. 우리도 최대한 빨리 호남으로 돌아갈 테니.”
사도학의 표정이 제법 심각해 보였다.
그 때문인지 장삼태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고, 그저 시키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짐을 챙기려는 심산이다.
“이상하군.”
그런 이를 바라보며 사도학이 중얼거렸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기척들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처럼.
그것이 서쪽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마교가 조용한 게 더 이상해.’
그런 생각을 하며 사도학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