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77
호남으로 먼저 돌아와 있는 제갈운은 남궁천과 함께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책자를 바라봤다.
낡아 빠진 그것은 척 보아도 오래되었음을 느끼게 해 주었고, 또한 쓰여 있는 글씨는 마치 용이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웅장하고 장엄했다.
“무신도경이라…….”
“지난번 것까지 해서 이것으로 두 권째로군요.”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역시 단소미가 발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용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흥건하게 젖은 탓에 곧 폐기되었지만, 무신도경이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큰 충격을 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일단 거짓부렁은 아닐 거야. 장삼태 그놈이 살아남았으니까…….”
“사 어르신의 해석이 남달랐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해석하는 차이가 있다.
같은 것을 본다 하여도 떠오르는 생각이 다른 것이 사람이니, 같은 문장을 보고 이해를 한다 하여도 그것들이 모두 하나이지 않을 터.
사도학의 해석이 다소 남다르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도경이 가짜가 아님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만약 이 도경이 가짜였다면 어떤 해석을 내놓는다 한들, 기혈이 뒤틀려 수습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렸을 테니까.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라고…….”
“내용은 무신과 혈마에 대한 것입니다. 많은 것들이 지워져 있기는 합니다만…… 하지만 이상한 것은 뒷장에 있는 구결들은 지워진 흔적조차 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갈운은 그것을 가장 기이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오래된 책이다.
심지어 무신과 혈마에 대한 것들이 쓰여 있는 곳은, 글자가 흐릿하고 또 지워진 곳도 많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면 결코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반대로 가장 뒷장에 있는 구결들은 그대로다.
글자는 여전히 또렷하고 지워진 흔적들조차 없다.
그 부분만 보존되어 있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다.
“천일조화공이라…….”
“그리 쓰여 있기는 합니다만…… 이것이 정말 무신의 무공일까요?”
제갈운의 물음에 남궁천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무신이라 하면 단우현이지만 그가 어떤 심법을 사용하는지 어떤 무공을 익힌 것인지 아는 것이 하나 없었다.
애초에 칼을 휙휙 휘두르며 적을 죽이는 것에 능하였지, 남궁천이나 사도학, 혹은 적무성처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무공을 보여 준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무공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건 대단한 발견입니다! 제대로 해석해 익히기만 한다면……!”
제갈운의 눈빛이 번뜩였다.
천운도 이런 천운이 따로 없다.
기연이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하늘이 내려 준 것이다. 무신이라 하면 전설이라 칭해지는 존재이며, 그의 무공이 실존한 이 무신도경은 중원 최고의 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실제 무신의 무공이며 익히는 이가 나타난다면, 능히 천하의 손꼽을 무인이 될 것이다.
제갈운의 손이 덜덜 떨렸다.
책자를 만지고 있는 그의 눈에는 탐욕이 서렸다.
무릇 무인들이라 한다면 가질 수밖에 없는 그것.
그때, 남궁천이 조용히 제갈운의 손을 매만졌다.
“아무리 대단한 무공이라 하여도 쓰는 이에 따라 하급 무공보다 못할 때도 있는 법이라네. 무공 그 자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이가 대단한 것임을 잊지 말게나.”
“아…… 아, 알고 있습니다.”
제갈운은 꿀꺽 마른침을 넘겼다.
남궁천이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제갈운은 무신도경을 외우고 혼자서 그것을 익히려 해 봤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것을 가지고 도망간다는 선택지 또한 있었다.
오랫동안 무력으로는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던 제갈세가를, 단박에 팔대세가 제일 자리로 올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욕심이 생긴 것이다.
“사람은 때론 욕심을 부려야 하는 법이지.”
그때, 두 사람의 귀를 자극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하게 등을 돌리며 바라보자 곧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어느새 그 자리에는 단우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입가에 보이는 한 줄기 미소.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그런 얼굴이다.
“자, 자네, 왔는가?”
“그래, 갔던 일은 잘되었나 보지?”
“커컴!”
단우현에게 말도 없이 움직였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남궁천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애초에 호남단가에선 단우현의 말이 절대적.
그가 움직이라 말을 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우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는 것인지, 느긋하게 자리에 앉았다.
황급히 뒤를 쫓아 온 매향이 서둘러 차를 대접했다.
“그건 그렇고 또 재미있는 물건을 주워 왔구나.”
“…….”
단우현이 탁자 위에 있는 무신도경을 바라봤다. 그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낡은 것은 비슷하지만, 책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다소 달랐다.
단우현이 천천히 손을 뻗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래, 어디서 구했느냐?”
“소미라네.”
“그렇군.”
소미라는 말에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아무리 운이 좋다 하여도 이러한 일이 연이어 벌어질 리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결국 다른 인위적인 힘이 작용했다고 봐야 마땅했다.
“……장삼태가 익혔다네. 사도학의 해석으로 말일세.”
앞뒤 잘라먹고 하는 말이지만 두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만한 고수들이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단우현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참, 재미있게 되었구나.”
남궁천은 고개를 갸웃했다.
단우현의 행동에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보통 본인의 무공이 다른 사람에게 새어 나갔다 한다면, 화를 내거나 혹은 어이없는 표정이라도 지을 법한데, 단우현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 영문을 알 수 없어 남궁천은 조금 답답했다.
“큼…… 제갈 가주, 미안하네만 차를 더 가져다줄 수 있겠는가?”
남궁천이 주전자를 들며 말했다.
매향이 가지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심지어 마신 것은 단우현밖에 없었으니 아직 가득했어야 하는데, 기이하게도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제갈운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남궁천이 순식간에 내용물을 증발시켜 버린 것이다.
‘비켜 달라는 것일 테지.’
남궁천과 단우현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제갈운은 그것을 파고들려 하지 않았지만 궁금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하나, 가르쳐 주지 않으나 억지로 비집고 들어갈 수는 없는 법.
지금은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 함이 맞다.
“알겠습니다.”
제갈운이 깊게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그렇게 제갈운이 밖으로 나가자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단우현은 그저 차를 만시며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 보기만 하였고, 남궁천은 그저 그 얼굴만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자네, 이 무신도경의 내용이 정녕 사실인가?”
“사실이라니?”
“뒤에 구결이 적혀 있다네.”
“안다. 이미 보았으니.”
“……그게 자네의 것이 맞는가?”
남궁천의 질문에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섞여 있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단우현의 행동을 볼 때, 만약 저 구결이 단우현의 무공이 맞다면, 그것을 읽고 익힌다 한들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남궁천 또한 구결을 읽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군.”
“뭐라?”
“반 푼이라는 말이다. 마치 누군가 내 천일조화공을 해석하려다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로군.”
단우현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남궁천은 웃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신의 무공을 해석하려는 자가 있다는 것이 더욱 문제였다.
“그럼…… 이 무신도경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하지 않았더냐.”
단우현의 말에 남궁천은 신음을 삼켰다.
결국 단우현이 지닌 구결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완벽하지 않고 다른 이가 무신의 무공을 완성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삼태 녀석은 이것을 익히고도 이상이 없었네만……?”
“운이 좋았던 게지. 백 중 아흔아홉은 목숨을 잃었을 거다.”
단우현은 생각했다.
백 중 아흔아홉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면, 지난번 보았던 무신교의 교주라는 어수룩한 녀석이 그 확률을 뚫고 익혔다는 말이 되지 않은가?
심지어 장삼태까지.
생각해 보니 그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우현이 천천히 책자를 들어 올렸다.
“볼 생각은 하지 마라. 너 정도의 실력자가 보아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 테고 오히려 독만 될 것이니.”
화륵!
순간.
무신도경이 불타올랐다.
순식간에 불이 붙더니 이내 재가 되어 휘날렸다. 억만금을 준다 하여도 살 수 없는 무신도경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잿더미가 되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남궁천이 질끈 눈을 감았다.
“허허, 정말 영문 모를 일들만 계속 일어나니 뭐가 뭔지 모르겠구나.”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무림맹 일부터 시작하여 천도회, 혈천과 그밖의 많은 일들. 이제는 그가 알고 있던 중원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에 괜스레 씁쓸한 기분만 들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퍼뜩 자세를 잡고 단우현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같이 갔던 그자는 어디 갔는가?”
“누구를 말함이지?”
“그 있잖은가? 삼광이니 뭐니 하는 자.”
어느 정도 정체를 짐작했지만 굳이 그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숨기려 하는 것을 입에 담아 봐야 좋을 것이 없다.
“아, 그 녀석 말이지…….”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찻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넘긴 단우현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우아하면서도 기품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이내 찻잔을 내려놓는 순간 그의 두 눈이 번뜩였다.
“도망쳤더군.”
“도망? 누구에게서?”
“나를 피해서 말이다.”
“으응?”
남궁천은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형님, 아우 하면서 함께 지내는 것을 본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그런데 단우현을 피해 도망갔다는 말은, 무언가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곳에 있었을 때처럼 단우현을 놀리고 얻어맞을까 두려워 도주를 한 것인가?
삼천이라 한다면 전설이라 불리는 단우현보다 더욱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였다. 그런 이에게 한 수 배울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을 거라 기대하고 있던 남궁천은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에게서 배울 것 따위 하나 없을 거다. 그리고…….”
“그리고?”
“두 번 다시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
그 말에 남궁천은 오싹하며 소름이 돋았다.
지금 천무광이 눈앞에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의 몸을 양단시켜 놓을 것 같은 짙은 살심이 느껴졌다. 이는 결코 평범치 않은 일이다.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이야?’
남궁천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삼천과 무신이 반목(反目)하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을 하였기에, 남궁천은 그것을 쉽게 믿지 못하였다.
“그러고 보니 말이다…….”
“응? 또 무슨 일이 있는가?”
“남궁소혜가 환골탈태를 했다.”
“으응?!”
생각에 잠겨 있었던 남궁천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며 귀를 후벼 파기까지 했다.
환골탈태라는 것이 어디 애들 장난인가?
남궁천 또한 육십이 넘은 나이에 겨우 가능했던 경지다.
“무슨 탈태?”
“환골탈태 말이다.”
또다시 들려오는 한마디에 남궁천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며,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는지 코에서는 세차게 콧방귀가 새어 나왔다.
이윽고 남궁천이 부리나케 방을 튀어 나갔다.
“소혜야! 어디 있느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미친 듯이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