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87
터벅터벅-.
이른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호남단가를 걸어 나가는 금사자 무천풍은 다른 때보다 유난히 힘이 없어 보였다. 어깨는 축 처져 있었으며, 그렇지 않아도 늙어 보이는 얼굴은 하루 사이에 더욱 폭삭 늙은 듯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동정심 가는 모습에 남궁소혜가 식은땀을 흘렸다.
“정말로 저분이 금사자 무천풍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남궁소혜는 정녕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다.
이는 제갈연 역시 같았는데, 한때나마 오황이라 불렸던 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공력 역시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단해 보인다기보다는 그저 어디서나 흔히 볼 법한 그런 노인이었다.
“허허, 분명할 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단 가주가 지금까지 내쫓지 않고 데리고 있는 것만 보아도 말이야.”
남궁천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늙기는 하였지만, 예전 얼굴이 남아 있다.
바로 알아보지 못한 건 고작해야 한두 번 스친 것에 지나지 않았기에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았던 탓이다.
“분명…… 붙잡혀서 단전을 잃었다고……?”
남궁소혜의 질문에 남궁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에는 틀림없이 그러했다.
또한, 오랫동안 붙잡혀 있었다는 것만 보아도 틀린 소문은 아니라 판단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사도학이다.
자신의 경쟁 상대나 다름없는 이의 단전을 그리 쉽게 부술까?
강자라면 싸우기 위해 사족을 쓰지 못하는 데다, 언제나 제 발전을 위해 남을 이용하기까지 하는 독한 놈이다 보니, 그리 쉽게 단전을 부수거나 하지 않았을 터.
“어떠한 사술을 이용해서 단전을 막아 놓은 것일 테지. 그것을 푼 것이 이 근래였을 테고.”
“아……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남궁소혜는 어이없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천외천들의 이야기는 아무리 귀에 담아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제랑은 완전 다른 사람이네요.”
남궁소혜와 남궁천이 사라진 무천풍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틀림없이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득의양양하며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보였는데, 이른 아침이 됨과 동시에 사람이 바뀌어 버린 듯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다른 이들을 향했다.
혹시 아는 것이 있는가 싶어서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그 뭔가?”
“아침에 일어나니 창고 주변에 땅을 판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오호…… 최근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던 것 그것인가?”
권무진의 말에 남궁천이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며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호남단가 곳곳에서 누군가 땅을 파헤친 흔적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소미가 흙장난을 하나 싶었는데, 그 깊이가 예사롭지 않아 확인을 해 보니 어린아이가 쉽사리 팔 수 없을 정도까지 파헤쳐 냈다.
이는 무천풍의 짓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금사자 무천풍은 여기 땅 어딘가에 묻혀 있는 뭔가를 찾고 있다는 거죠?”
“그럴 테지.”
남궁소혜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금사자 무천풍의 일이다. 그런 이가 보이는 행동이니만큼 틀림없이 금은보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고, 단우현은 처음부터 그것을 꿰뚫어 봤을 터.
그렇다면 응당.
‘때가 되기를 기다렸을 테지.’
모든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사자가 돈에 미친 인간이라 한다면, 단우현은 금귀라 할 정도로 돈에 대한 집착이 심각한 자다.
그런 이가 돈 냄새를 맡았다면 반드시 얻고야 만다.
그렇지 않아도 금환상단에서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상당한 손해를 안은 단우현이다. 그것을 메우고 싶은 생각이 누구보다 간절했을 거다.
“금사자…….”
“으음…….”
“무천풍의 재보라…….”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금사자 무천풍의 재보가 이 땅, 어딘가에 묻혀 있다.
곳곳에 파헤친 흔적들이 있으니 어딘가에 묻어 놓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커컴! 삽이 어디에 있더라?”
“아, 저도 같이 가요!”
“그러고 보니 저쪽 청소를 못 하였군.”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저마다 손에는 땅을 팔 수 있는 도구 하나씩을 손에 쥐었다. 곧, 곳곳에 땅이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 * *
“……뭐 하는 짓들이냐?”
단우현이 어이없는 시선으로 주위를 바라봤다. 마당부터 시작하여 이곳저곳이 파헤쳐지고 있다. 마치 촘촘하게 함정을 파 놓으려는 것처럼 곳곳에 구덩이들이 가득했다.
단우현의 표정은 상당히 얼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커컴……! 아…… 아무것도 아니네. 땅에 뭐가 떨어져서 말이야…….”
“도…… 도와 드리고 있었습니다.”
“…….”
남궁소혜가 허둥지둥 삽을 숨기며 어색하게 웃었다. 단우현의 시선이 새삼 사나운 탓에 그들은 뭐라 제대로 된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제갈연은 무엇이 그리 창피한지 얼굴을 가렸다.
“바보 같은 짓 하지 마라. 내가 다 창피하구나.”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정말 뭐가 떨어져서…….”
남궁천이 궁색한 변명을 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다 늙어 어린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보물찾기나 하고 있으니, 어느새 정신이 돌아오자 이만큼 창피한 일이 또 없었다.
제갈연이 얼굴을 가리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단우현이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아무리 뒤져도 없을 거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 낭비하지 말도록.”
“버, 벌써 찾았는가?”
“아니.”
단우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한 것이 실제로 있었고 또한 찾았다고 한다면, 이미 단가 내부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을 것이다. 하지만 단소미는 물론이고 단우현마저 그 존재를 지금까지 알지 못하였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이곳에 없다. 내 장담하지.”
“가주님께서 이미 얻으셔서?”
“…….”
권무진이 무척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것이 되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는 사람 같았다.
단우현이 미간을 움켜쥐었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고 하더니 저 강단 있는 권무진마저 잡고 뒤흔들고 있었다.
“없다면 없는 거다. 나 또한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럼 소미가?”
이번에는 마장강이 반짝 눈을 빛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단소미다. 그 아이가 먼저 선수를 쳐서 발견하였다고 한다면, 단우현의 말 또한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다름 아닌 그 단소미다.
천운을 끌고 다니는 아이.
그렇다면 당장 단소미에게 다가가 국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삭삭 손을 비벼 볼 생각이 가득한 마장강이었다.
하지만 단우현은 그마저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럼 도대체 뭔가? 무천풍은 분명 여기서 찾고 있지 않았는가.”
“이십 년 전 이야기다. 누가 가져갔어도 진즉 가져갔을 테지.”
“그러니까 자네가…….”
“아니라고 했다.”
단우현은 머리가 아파짐을 느꼈다.
금사자의 재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렇게까지 눈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필시 평범치 않은 양 같아 보였다.
“다들 이럴 만도 하지요, 하하하. 금사자의 재보라 함은 어쩌면 만금상단에도 필적한다 하지 않습니까.”
그때, 제갈운이 부채를 펄럭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재보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것인지, 그는 그저 이 상황이 무척 재미있어 보이기만 했다.
“저 늙은이가 그렇게 많은 돈을?”
단우현 역시 만금상단의 위력 정도는 알고 있다. 곁에서 듣는 것들이 그러한 것이니만큼, 알고 싶어 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소문입니다. 소문이라는 것은 언제나 덧붙여지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상당한 양이라는 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그렇군…….”
단우현이 턱을 슥 쓰다듬었다.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며칠 동안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금사자를 보고 이 장원에 재보가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심지어 어제 일도 있었으니만큼 그것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상인도 아닌 자가 용케 그렇게 모았군.”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한 단체의 우두머리도 아니고, 홀로 떠다니는 호랑이 같은 자가 어떻게 그러한 재보들을 모을 수 있단 말인가?
단우현이 제갈운을 바라보며 그 답을 구했다.
“간단합니다. 어떠한 의뢰도 가리지 않고 받은 탓입니다. 때로는 의뢰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산적과 수적들을 털었습니다. 혹은 현상금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합니다.”
“그런 것으로 재보가 쌓이는가?”
“…….”
“크큼.”
“하…….”
“어이없네.”
단우현의 한마디가 내뱉어지는 순간, 모든 이들이 어이없는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금사자 무천풍이 했던 짓 대부분을 그가 하였다.
산적과 수적을 털고 현상금이 걸린 이들을 잡아내었으며 그 돈을 받았다.
차곡차곡 하나둘씩 쌓이기 시작하니, 벌써 호남제일갑부가 된 것이 누구인가?
바로 단우현이다.
그러나 단우현은 자신이 가진 돈이 그리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다소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래……?”
“예.”
순간, 제갈운은 보았다.
단우현의 눈빛에 깊은 흥미가 솟구친 것을 말이다.
이렇게 된다면 반드시.
‘찾아내겠지.’
제갈운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제아무리 땅을 파고 그 흔적을 찾는다 해도 발견하지 못한다. 설령 발견된다 하여도 단우현이 있는 만큼 결코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단우현이 직접 찾게 만들면 그만이다.
어차피 가지지 못하는 거 구경이나 좀 하게.
슬쩍 등을 떠미는 것만으로도 능히 가능한 일이다.
그때, 느닷없이 활짝 문이 열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해 돌아갔다.
“으하하하-! 이 삼태가 돌아왔습니다요!”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은지 장삼태는 쩌렁쩌렁 크게 언성을 높였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반가운 것인지, 얼굴마저 활짝 피어 있었다.
“이제야 왔느냐? 제법 늦구나.”
“헤헤헤, 장주님이 보고 싶어서 하루라도 빨리 오려고 했는데 말입죠. 아, 어디서 개 같은 것들이 자꾸 시비를 걸어서 말입니다요.”
장삼태가 헤실헤실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손을 비볐다. 단우현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그의 눈빛에는, 정말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단우현이 지그시 장삼태를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는 다른 기색이 느껴졌다.
어딘가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느낌.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네 몸에는 잘 맞는 모양이구나.”
단우현의 말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장삼태가 자신 넘치는 표정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당하게 가슴을 탁탁 치며 큰 소리를 냈다.
“으헤헤헤! 이 장삼태! 이제는 천하제일인이라 불러 주십쇼!”
“미친놈.”
“돌았구나?”
“허…… 기가 막히는군.”
사도학과 남궁천, 적무성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콧대가 높아지는 것은 아무래도 좋다만, 그러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눈앞에 있는 이들이 너무나도 높은 존재들이었다.
그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입을 열었다.
“좋은 자신감이로구나.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꾸나.”
“네?”
장삼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