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89
그날은 날이 깊어질 때까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한때나마 천하를 풍미했던 이들의 옛이야기에 모든 이들이 귀를 곤두세웠다.
천하오황이라 불리던 자들.
비록 적무성은 무천풍이 빠진 뒤에야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그 역시도 무시할 수 없는 고수이며 사파의 황제였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골치를 썩이고 있었던 것은 비검 때문이었네. 현상금도 상당히 걸었지.”
“비검 그놈은 애초에 내 말도 듣지 않는 미친놈이었어.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검황 남궁천이 말을 내뱉으며 못마땅한 시선을 사도학에게 보냈다.
비검은 아주 오래전 마교를 풍미했던 걸출한 인물이다.
비록 마교 내에서 장로를 살해한 탓에 추격을 받기 시작하였지만, 그전까진 정도 무림인들은 물론이고 사파인들조차 두려워하던 자였다.
그렇기에 남궁소혜를 비롯하여 권무진과 마장강은 귀를 쫑긋 세웠다.
이들에겐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이기는 하였지만, 비검에 대한 것은 여전히 흥미를 자극할 화제였다.
“그래서 붙잡았나요?”
“당연한 것 아니냐? 현상금을 걸었지. 그것도 엄청나게 큰돈을 말이다.”
제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큰 현상금을 건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비검의 위험성을 생각해 본다면 얼마를 들인다 하여도 반드시 붙잡아야 했다.
“붙잡은 것은 나다!”
그때, 무천풍이 자신 있게 가슴을 두드리며 어깨를 폈다. 엄청난 돈이 걸려 있었으니만큼 그를 잡기 위해 꼬박 일 년 동안 뒤를 쫓아다녀야 했다.
“그렇지…… 자네지…… 그리고 탈옥을 시킨 것도 자네였지.”
“……큼!”
남궁천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무천풍을 바라봤다.
잡아 온 뒤 현상금을 받아 챙겼다.
하지만 문제는 마교 또한 비검에게 상당한 금액을 걸어 두었다는 것이었는데, 그 때문에 무천풍은 비검을 탈출시킨 후 다시 붙잡아 마교로 넘겼다.
두 번이나 같은 이에게 붙잡힌 비검의 표정은 꽤 볼만했다.
“푸하하-! 그때까지만 해도 난 웬 미친놈인가 했다!”
사도학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당시를 회상했다.
무림맹에 잡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굉장히 분해 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놈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 얼마나 황당한가?
동방구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결론을 내었을 때, 생애 태어나 이처럼 어이없고 당황스러운 녀석은 처음 보았다.
아마 그때가 무천풍과 사도학의 첫 인연일 것이다.
“헤에, 그리 대단하신 분이 도대체 황실은 왜 털었습니까요?”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장삼태가 과일을 깎으며 물었다. 기실 가장 궁금했던 일이다. 이는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순간 사도학은 움찔했다.
마치 내뱉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나올 것을 짐작하였는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냥 과거 일이야 과거 일! 신경 쓰지 마라.”
“아니, 방금까지 나온 이야기도 다 과거 일입니다만……?”
“재미가 있으니 내버려 두거라. 나도 듣고 싶구나.”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사도학의 얼빠진 시선이 단우현을 향했다.
과거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측면도 있을 테지만, 단우현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라진 재보의 행방을 쫓을 수 있는 단서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이야기하는 거냐?”
사도학이 미간을 움켜쥐었다. 무천풍의 입장에서도 결코 공개하고 싶지 않은 과거일 텐데, 그는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사람처럼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사도학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등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며 술을 들이켰다.
술잔을 쥐지 않은 다른 손은 어느새 장삼태의 어깨 위로 올라가 있었다.
장삼태가 의아한 시선을 보내 보았지만 사도학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그사이 무천풍의 말이 이어졌다.
“어느 날이었다. 그놈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우드득!
손에 쥐고 있던 술잔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것을 보는 순간 사도학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고, 다른 이들은 더욱 궁금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도대체 저 무천풍이 누구에게 무엇을 당했기에 저러는가?
한없이 의아함만이 머릿속에 머물렀다.
“녀석은 갑자기 나타나 내기를 하자고 했다.”
“내기?”
“그래, 서로 신출귀몰한 것으로 중원에서 유명하니, 과연 누가 더 은밀하고 빠른 것인지 내기를 하자고 말이다. 나는 싫다 하였지만 놈은 자존심을 박박 긁어 댔지.”
“허허, 그런 이가 있었던가? 놀랍구먼.”
“금사자 무천풍이라면 중원제일의 경공가. 그런데 경공으로 도전했다고……?”
적무성마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오황에 올라와 있는 이를 향해 도전장을 내민다는 것은, 자칫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어이쿠, 어디 그런 간덩이 부은 놈이 있습니까요? 와아…….”
장삼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때, 장삼태의 어깨를 붙잡는 사도학의 힘이 강해졌다.
“아, 뭡니까 대체? 아파 죽겠네!”
“그냥 뭐…… 그런 거다.”
장삼태가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사도학을 바라봤다.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 없다는 모습.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지만, 그사이에도 여전히 무천풍의 말이 들려왔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누구도 이 무천풍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다리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으니까!”
“크아- 멋지십니다. 이 장삼태도 다리 하나는 자신 있는데, 어르신만큼은 안 될 겁니다요.”
제갈연이 어이없는 시선으로 장삼태를 바라봤다. 무천풍이 달리는 것을 본 것도 아닌 주제에 무슨 생각으로 저리 말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아마도 조금이라도 유명하거나 강해 보인다면 굽실거리며 들어가는 성격 때문인 듯했다.
저도 모르게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다리? 빨라? 경공?’
제갈연의 시선이 다시금 장삼태를 향했다.
무천풍의 언성이 높아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황실의 재보를 하나 훔쳐 나오는 것! 그게 우리가 했던 내기다! 녀석과 나는 동시에 움직였지! 일각도 되지 않아 나는 성공을 하였지만……! 그게 녀석의 함정이었던 거다!”
크흑, 하며 무천풍이 눈물을 머금었다.
황실의 재보를 가지고 나온 것은 순전히 내기의 일환이었다. 나중에 몰래 가져다 놓으려 했던 것이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걸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일이 벌어졌다.
“녀석은 황궁 내에서 소리를 치며 돌아다녔다! ‘도둑이다, 도둑이 들었다!’라면서 말이다. 덕분에 황실은 발칵 뒤집혔고 나는 쫓기는 꼴이 되었지.”
“아…….”
“크큼…….”
“뭐 그런 미친놈이 다 있습니까요?”
무천풍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황실 전체가 들썩이고 수많은 고수가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였다.
덕분에 온 신경이 무천풍을 향했으니, 자연스럽게 홀로 남아 버린 사내는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막대한 돈과 물품들을 훔쳐 달아났다.
“도둑도 도둑의 자존심이 있는 건데! 어디 그런 싹수없는 놈이 다 있습니까요?! 이런 씨부럴 놈! 잡히면 손모가지를 콱!”
한때 도둑이었던 장삼태는 듣는 것과 동시에 화가 나 펄펄 날뛰었다.
도둑들한테도 양심이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다른 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제 잇속을 채우다니?
심지어 속인 이가 오황 중 한 사람이었으니, 간덩이가 크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놈은 내가 도망치는 와중에 숨겨 놓은 모든 재산까지 들고 날랐어!”
“아이고! 속 터져! 당장 잡아 옵시다! 잡아서 아주 도륙을 내야겠네!”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들긴 장삼태가 크게 한숨을 토했다. 있는 대로 화가 났기에 지금 그 사내가 눈앞에 있다면 장삼태는 부리나케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그래! 나 또한 마찬가지야! 그 금왕수 새끼! 잡히면 사지를 찢어발겨 버릴 테다!”
“…….”
“…….”
“…….”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장삼태를 향했다.
그 눈빛에는 경멸함이 섞여 있었으며 또는 안쓰러움까지 엿보였다. 틀림없이 장삼태가 한 짓은 아닐 테지만, 결국 사고를 친 것은 그의 스승일 테니까.
반대로 장삼태는 그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씩씩거리며 얼굴을 붉혔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석상처럼 굳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전히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사도학의 손에는 더욱 굳게 힘이 실렸다.
장삼태의 시선이 사도학을 향해 돌아갔다.
‘농담입죠?’
‘진담이다.’
서로 시선을 마주하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사도학의 모습에는 어떠한 거짓조차 없어 보였으며, 동시에 모든 사실을 재확인한 장삼태는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아, 그러고 보니 소미를 좀 재워야겠습니다. 벌써 졸린 것 같으니…….”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려는 장삼태의 어깨를 사도학은 더욱 강하게 쥐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요?”
“선대의 잘못은 네 잘못이나 다름없지.”
“그건 무슨 개 같은 논리입니까요?”
장삼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야기가 더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판단을 하였는지, 재빠르게 말을 돌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그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이제 그만 잘못을 뉘우치고 무릎을 꿇어라.”
“아니, 제가 뭘 했다고 그러십니까요!?”
“잠깐…… 그게 무슨 소리냐?”
그때, 무천풍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장삼태를 바라봤다. 사도학의 말투,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대조해 보았다.
그러다 무언가를 추측한 것인지 장삼태를 노려보았다.
말투와 행동, 저절로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심지어 조금 들은 사도학의 말을 곱씹어 본다면…….
“네…… 네놈이 금왕수의 후예더냐!?”
“아닙니다요! 절대로! 그런 새끼 모릅니다요!”
“그…… 그러냐?”
“에이, 이 장삼태가 어찌 그런 놈을 안다고 하십니까? 제 고향은 이 호남단가이고 ,제 스승은 우리 여기 계신 이분입니다요.”
장삼태가 사도학을 굳게 부여잡았다.
손아귀가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사도학은 오히려 비릿한 조소를 입에 걸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이 금왕수의 후예다. 네놈이 찾고 있던 그놈 말이다.”
“정녕?!”
“그래.”
“이런 개시부럴 놈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무천풍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것을 바라본 순간, 장삼태 역시 경공을 펼치며 훌쩍 물러섰다.
“맞아! 저거야! 저 경공이었다고! 이 개놈 자식!”
“난 모른다고!”
장삼태가 식당을 벗어나 내달렸다.
그 뒤를 무천풍이 쫓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공 싸움은 눈이 뒤집힐 만큼 화려하여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단우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금왕수와 금사자라? 제법 재미있는 조합이로군.”
“그게 재미있는 거냐? 아니면 뭔가를 찾은 것 같아서 재미있는 거냐?”
그 질문에 단우현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윽고 씩 웃음을 지었다.
그의 목소리가 아주 천천히, 그러나 흥미를 가득 담고 흘러나왔다.
“양쪽 모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