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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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텁텁했다.
마치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목이 타들어 갔다.
그가 신음을 내뱉자, 곧 청량하고 시원한 물이 그의 입술을 적셨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서서히 돌아오는 정신을 되잡으며 흐릿하게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천장이었다. 분명 마구간 같은 곳으로 들어간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어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하나하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몸은 욱신거렸으나 감각들이 되돌아옴으로써 한 가지, 번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살아 있어?”
“살아 있어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목소리가, 그것도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린 탓이다. 시선 끝에는 자그마한 아이가 있었다. 양손에는 물이 담겨 있는 그릇을 손에 쥐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다.
“살아 있어요!”
“어…… 그, 그래.”
“헤헤헤, 다행이에요. 며칠 동안 눈을 안 떠서 정말 걱정했는걸요.”
천진난만하게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물그릇을 건네주었다. 권무진은 그것을 얼떨결에 받아 마시며 가만히 생각을 더듬어 갔다.
분명 마구간에 들어갔고,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으며, 이후에 기억은 너무나도 흐릿하여 잘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네가…… 구했느냐?”
“제가 아저씨를 발견한 건 맞지만, 구한 건 우리 아빠예요. 나중에 보면 꼭 고맙다고 하세요. 헤헤, 정말 살아서 다행이에요!”
한 점 사심이 없는 말투다.
정말로 이 아이는, 권무진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아, 그리고 장 아저씨한테도 고맙다고 해야 해요. 매일 아저씨 죽 떠먹여 주느라 고생했거든요.”
“장…… 아저씨?”
“네!”
“……여기는?”
“우리 집이에요!”
단소미는 오랜만에 신이 났다.
그렇게 구하고 싶었던 사람을 구했다. 비록 자기 자신의 힘은 아니었지만, 눈앞에서 사람을 죽게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꼈다.
더군다나 며칠 동안 깨어나지 않아 걱정했던 사람이 일어났으니, 더욱 기분이 좋아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장 아저씨가 아저씨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알려 달라고 했어요. 한 대 때려 준다고.”
“때려? 나를?”
“네! 죽 먹다가 맨날 뱉는다고…….”
단소미는 주섬주섬 그릇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삼태와 단우현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으니까.
“…….”
“헤헤, 그럼 전 갈게요. 쉬고 계세요.”
자그마한 아이가 종종걸음으로 그릇을 들고 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권무진은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침상에 몸을 기댔다.
“내가…… 살아 있구나.”
죽음을 경험했다.
아니 죽었다고만 생각했다.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숨을 쉬고 있으니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직 할 수 있다.’
권무진은 번뜩 눈을 빛냈다.
할 수 있다. 살아 있으니 할 수 있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때,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힐끗 시선을 돌리자 기이한 사내가 들어왔다.
“컴! 몸은 괜찮소?”
뒷짐을 지고 헛기침을 하는 것을 보니 이곳에 주인이 아닌가 싶었다. 조금 전 그 아이의 부모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이상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라는 것엔 틀림이 없었다.
권무진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고맙소. 그대가 나를 살렸소.”
“큼! 알면 되었소.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원…… 쯧쯧. 다음부터는 죽으려면 곱게 죽으쇼. 애들이 당신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시오?”
“며…… 면목이 없소이다. 죄송하게 되었소.”
권무진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폐를 끼친 것도 사실이고, 본의는 아니었으나 아이들에게 좋지 못한 꼴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내 목숨을 구해 준 것에 감사하오.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소.”
“평생 잊지 마쇼.”
헛기침을 한 사내가 뒷짐을 지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누군가에게 인사를 받는 것이 좋은 것인지 입가가 씰룩거리는 것이 보였다.
‘말은 다소 험하게 해도 좋은 사람이로군.’
권무진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때, 또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오는 것인가? 하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할 때, 방 안에 있던 사내가 후다닥 뒤로 물러서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이내 문이 열림과 동시에.
“오셨습니까요, 장주님?”
“그래.”
권무진은 아직 안으로 들어온 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느닷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충격을 받는 듯 사내를 주시했으니까.
“그쪽이 장주가 아니었소?”
“나는 장주라고 한 적 없수. 뭔가 착각한 거 아뇨?”
“헤헤, 장 아저씨예요. 우리 집에서 청소도 하고 으음, 요리도 하는 분이에요. 아저씨가 먹은 죽도 장 아저씨가 했어요.”
이내 들려오는 단소미의 말에 권무진은 뒷골이 당겼다.
구해 준 사람이라 생각을 하여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폐를 끼친 것에 대한 진심을 담은 인사였다.
한데 고작해야 종놈의 농간이었다니?
파르르 입꼬리를 떨며 놈을 바라보자, 장삼태가 씰룩씰룩 입가를 들썩이며 애써 웃음을 참는 것이 보였다. 그 때문에 더욱 울화통이 터질 뻔했다.
뒤늦게 그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호통을 쳤을지도 모른다.
“멀쩡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몸이 괜찮은 모양이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익숙한 얼굴에 사내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신은!”
“단우현이다. 저 아이의 아비이자 너를 구한 사람이지.”
“나, 나를……? 당신이?”
“그래, 운이 좋구나.”
그런 단우현을 바라보며 권무진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구해 주고 싶어 구해 준 것이 아니리라.
저 아이가 없었더라면 눈앞에서 죽는다 한들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을 자였다.
“감사 인사는 소미에게 해라. 이 아이가 네게 천을을 가져다줬으니까.”
권무진은 그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 절대자의 시선과 기세가 전신을 억누르며 강제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정말…… 고맙구나. 네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아니에요! 아닌데! 정말 소미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우리 아빠가 했어요.”
단소미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했다. 단우현과 권무진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쏙 단우현의 등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럼 두 사람은 잠시 나가라. 이자와 둘이서 이야기를 좀 할 테니.”
“네! 이따 낚시하러 가기로 한 거 잊으면 안 돼요!”
“하하, 알았다.”
단소미가 장삼태의 손을 잡고 문을 나섰다. 방 안에 어색함이 감돌았다.
권무진은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여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정적을 먼저 깬 것은 단우현이었다.
“앉아라. 서 있는 것도 힘이 들 텐데.”
“……감사합니다.”
단우현의 말처럼 권무진은 사실 서 있는 것조차 힘이 든 상태였다.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켰던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침상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온몸이 말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 아이가 아니었다면 너는 죽었을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운이라면 운이고 운명이라면 운명이지. 결국, 하늘은 네 편을 들어 주었고, 바람은 나를 너의 곁으로 인도했구나.”
“…….”
단우현의 한마디가 몹시 묘했다.
마치 엮이려 하지 않은 것에 엮인 느낌이랄까? 내키지 않음에도 이 또한 순리라 생각을 하고, 그것을 자연스레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목숨을…… 빚졌습니다.”
“빚이라고 생각지 마라. 내 아이가 슬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살려 준 것이니.”
단우현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다소 삐딱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고 시선을 내려 권무진을 바라봤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료들에게 당했나?”
“…….”
“무림이란 본디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해야 하는 곳이지. 설령 그것이 배신이라 해도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네놈도 그들의 입장이었으면 같은 짓을 하지 않았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
단우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 말은 모두 다 했다. 굳이 아픈 사람을 데리고 설교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권무진을 살려줌으로써 단우현은 자신의 역할을 다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그것에 화를 내고 칼을 갈지 말거라. 마음이 독해지면 칼날 또한 독해지는 법. 독한 칼날은 결국 쉽게 부러지기 마련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권무진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단우현은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었다. 고작해야 짧은 한마디이고, 그것이 무공에 대한 것이 아님을 잘 알지만, 마음속에 품었던 마독진에 대한 살심이 서서히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이러한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권무진은 필시 마독진을 죽이기 위해 날을 갈고 또 갈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당분간 이곳에서 요양하면서 지내라. 그 몸으로는 나가봐야 시체밖에 더 되겠느냐?”
“감사합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권무진은 침상에 몸을 눕혔다. 너무 지친 나머지 스르르 잠이 올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웠다.
‘대단한 자다.’
권무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고작해야 말 한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돌린다니.
심지어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힘들다.
한데, 저 자는 바꾸었다.
내뱉은 말 때문이 아닌 그의 몸에서 풍겨 온 기이한 기운이, 마음을 침착하게 만드니 정신이 또렷해지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이 아닐까?’
단우현의 모든 것들이 신비하게만 보였다.
‘단우현…… 단소미라……?’
권무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악착같이 성공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던 그가 처음으로 겪는 묘한 느낌이었다.
마음이 따스해졌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주륵-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타인의 따스함에 눈물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