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92
“하아, 하아, 하아…….”
한 여인이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뒤에서 쫓아오는 기색을 느끼고는 힘차게 달려 오르니, 그 모습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몇 장 높이로 올라 나무를 타고 이동한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달으며 빠르게 내려와 피해 냈다.
사악-!
스쳐 지나간 검기가 나뭇가지를 잘라 내고, 뒤를 따르는 검풍이 그녀를 노리며 쏟아졌다.
촤악-!
살갗이 베였다.
스치는 순간 솟구치는 피가 장난이 아니다.
달려가고 있던 여인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차마 멈출 수는 없었던 것인지 더욱 다리에 힘을 주었다.
촤악촤악촤악-!
쏟아지는 검기는 실로 무식했다.
피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였으며 그 강맹한 공격은 바위마저 두부처럼 잘라 내며 온 주위에 있는 나무들마저 쓸어 냈다.
“거참, 진짜…… 어이없네?”
뒤를 쫓고 있는 사내가 인상을 썼다.
발견한 후부터 벌써 사흘간의 추격전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하지 않던가.
쫓고 쫓긴다.
사내와 여인 사이에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코앞에서 놓친 것이 스무 번은 될 것이고, 상처를 입힌 것만 해도 상당할 거다.
보통 이 정도라면 능히 쓰러지거나 죽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인간을 초월한 생명이라 그런지 회복 능력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모양이다.
사내의 눈이 더욱 깊어졌다.
어느새 저만치 사라져 버린 여인을 바라봤다.
팡-!
순식간에 사내 역시 엄청난 경공으로 뒤를 쫓았다. 장거리 승부라면 힘들겠지만, 단거리라면 자신이 있다는 듯 그의 속도는 가히 빛살과도 같았다.
여인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이를 보며 칼을 내질렀다.
캉-!
그러나 맞지 않는다.
내지르는 검이 부딪치며 튕겨 나왔다.
한순간에 검날의 이가 나가며 그 고통이 손목까지 전해졌다.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
사내가 앙칼지게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묵직한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부웅-!
검을 휘두르는 것이 분명한데 소리는 마치 대도를 휘두르는 것 같았다.
그 소리에 여인이 몸을 비틀었다.
사악-!
칼날이 허리를 약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간격이 아슬아슬했던 것인지 옷자락만 잘려 나갔다.
“빌어먹을 여우 년이!”
사내가 더욱 이를 갈며 소리쳤다.
그로선 결코 피할 수 없는 간격이라 생각을 하였는데, 상대는 그마저 파악하고 몸을 틀어 피해 내었으니, 마치 무공이 파훼당한 것 같은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한번 바로잡고 휘두르는 찰나, 무언가가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여인이 뿌리는 암기다.
마치 수백 개의 화살이 단박에 쏟아지는 것처럼 허공을 가득 메웠다. 어쩌면 사천당가의 만천화우를 보는 것 같았지만, 그보다 강한 힘이 실려 있었으며 또한 빠르고 정교했다.
콰콰콰쾅-!
암기들이 땅에 꽂히는 순간 지축이 울렸다.
차마 피할 수 없어 막아 내고 있는 사내에게 모든 힘이 쏟아졌다.
“큭!”
사내의 입에서 처음으로 곤혹스러운 신음이 흘렀다.
설마하니 이런 한 수를 감추고 있을 줄이야.
사내는 이를 갈며 앞을 바라봤다.
어느새 저만치 가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단순히 도주를 위한 한 수. 더군다나 그러한 힘을 쏟아 내고도 저러한 경공을 펼칠 수 있는 공력.
그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할 년 같으니!”
사내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뒤를 쫓았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냐?’
이해할 수 없었다.
도주를 한다 해도 이 추격전은 끝이 나지 않는다. 결국 끝에 가선 붙잡힐 것을 본인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저리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는 것인가?
포기할 줄 모르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나, 쫓고 있는 사내로선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이윽고 한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
번쩍-!
마치 코앞에서 번개가 치는 것처럼 엄청난 섬광이 일었고, 한순간에 시야가 뒤틀렸다.
“망할 계집!”
사내는 언성을 높이고는 오감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혹여 있을지 모를 기습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
이윽고 한순간, 사내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보이지 않던 시야가 눈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주위에 느껴지는 수많은 기척들을 하나하나 짚어 내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뭐 하는 놈이냐?!”
“적이다!”
그의 시선에는 무수히 많은 이들이 보였다.
한두 사람이 아니다.
적게 잡아도 수백 명.
하나같이 일류와 절정을 오가는 고수들도 있었으며, 그 이상 가는 기척들 역시 있었다. 붉은 혈의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혈천의 무리들.
사천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 고수들이 분명했다.
사내, 아니 천무광은 그것을 바라보며 숨을 토했다.
“진짜 어이없네.”
한순간에 혈천 무리들이 천무광을 둘러쌌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칼자루를 겨누며 짙은 살기를 뿜었다.
천무광이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들 사이로 여유롭게 스쳐 지나가는 이가 보였다. 그 귀신과도 같은 몸놀림에 이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그저 천무광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무광이 이를 갈며 칼을 쥐었다.
“죽여라-!”
소리치는 이들을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거거거걱-!
이윽고 순식간에 피바람이 몰아쳤다.
* * *
“하아…….”
한참이나 달리던 여인이 어느 한 곳에 멈춰 섰다.
벌써 한 시진 가까이 뒤를 쫓는 기척이 없으니, 이제야 따돌린 것이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경계를 늦추지는 못하겠는지, 여인은 사방으로 오감을 펼쳐 놓은 채 오랜만에 숨을 몰아쉬었다.
“하필이면 저자라니…….”
여인은 천으로 상처 입은 몸을 닦아 내며 생각했다.
혈마를 피해 숨어 있었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이제는 천무광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 기척을 모조리 들켰기에 숨는다 하여도 반드시 들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처가…….’
다른 사람도 아닌 천무광이 낸 상처다.
옅은 상처 하나하나 마기가 깃들어 생명을 갉아먹는다. 그만큼 그녀는 현재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당장 상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 정도 상처라면 꽤 오랫동안 치료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숨겨야 하는데, 그 또한 마땅치 않았다.
언제 또다시 천무광이나 그 수하들이 뒤를 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마음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 곳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녀는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이 한 곳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그가 반겨 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귀찮은 일을 끌어들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상, 어쩌면 당장 내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그녀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시도를 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야, 다 도망쳤냐?”
“……!?”
어느새 그녀의 코앞에 시뻘건 핏물을 뒤집어쓴 천무광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인 것인지, 역겨운 피 냄새가 진득하게 전해져 왔다.
눈빛에 맺혀 있는 살기는 더없이 흉흉하였으며, 입은 옷에서부터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은 정녕 사람일까 싶을 지경이었다.
여인이 사색이 되어 물러서려는 순간, 내뻗은 천무광의 손이 그녀의 앞섶을 잡아 쥐었고, 들고 있는 검이 휘둘러졌다.
촤아아악-!
“아아아아악-!”
여인의 앙칼진 비명이 울려 퍼졌다.
깊은 상처다.
엄청난 마기가 미친 듯이 그녀의 몸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머릿속을 지배하였고, 그 눈동자는 격렬하게 떨리며 머리는 곧 죽음을 예감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냐? 얌전히 잡혔으면 험한 꼴 보지 않았어도 됐잖아.”
움찔움찔-
피가 솟구치는 여인을 바라보며 천무광은 마치 쓰레기를 내던지는 듯이 바닥으로 팽겨쳤다.
여인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을 삼켰다.
천무광의 시선이 마치 구더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녀를 쳐다보곤 조소를 머금었다.
슬쩍 발을 움직여 바닥을 기는 여인의 몸을 뒤집었다.
울컥울컥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지그시 단전을 짓밟았다.
“여기에 있지?”
“윽……!”
“천 년 묵은 구미호의 내단은 공력만이 아니라 반로환동을 시켜 준다고 하더군. 혈마 놈이 제 놈을 되살려 주는 대가로 그 천무제 늙은이에게 가져다 바치기로 했다던데…… 결국 이루지 못했지.”
“바, 반로환동이라니……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을 미…… 믿고 있나요?”
“그만이 아니다. 아무리 인간이 선경에 오른다 한들 인간은 결국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짐승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힘을 가질 수 없고, 짐승만큼 오행을 다룰 수 없다.”
“…….”
“하지만 네년 내단은 조금 다르지. 구미호의 여우 구슬은 그러한 것들을 초월하게 해 주니까.”
천무광이 슬쩍 칼을 뻗었다.
그녀의 단전으로 칼날이 살짝 들어갔다.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한순간에 피바다가 될 것이다.
“그러니 내놓아라.”
천무광은 망설이지 않는다.
또한 상대에게 발악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본디 그 성격이 잔혹하기 이를 데 없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컸기에 그의 사전에 망설임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칼날이 여인의 단전 속으로 파고들려는 순간.
카카캉-!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천무광의 검이 재빠르게 그것을 쳐 내었으며 그대로 몸을 날려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는 순간 ‘사악-!’ 하며 예리한 칼날이 그 자리를 스쳤다.
“망할…….”
천무광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흘 동안 여우 한 마리를 못 잡은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상황이었다.
결국 그것을 붙잡는 것에 성공하였는데, 이제 와 또 다른 방해라니.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는 이를 바라봤다.
흰 수염을 휘날리며 다가오는 자.
주름진 얼굴은 예전과는 다르지만 청렴하게 풍기는 기도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노인은 천무광을 바라봤다.
두 사람 사이에 시선이 마주쳤다.
“너무 나갔네.”
“하하, 지난번에는 주련이고 이번에는 네놈이냐? 번갈아 찾아오는 것도 꽤 질리는 일인데…….”
“그만하는 것이 어떤가?”
“사내가 오르고자 하는데 그것을 포기하면 어디 사내인가? 거기를 떼어 버려야지.”
“……많은 이들을 배신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하하하-! 잊었느냐, 태공진! 이 천무광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콰아아아아악-!
두 사람이 기세가 넘실넘실 흐르기 시작했다. 바람이 격렬하게 불어오고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떨렸다.
사람을 초월한 자들. 이미 선경의 올라 무극의 가까운 이들이라 불리는 자들.
그들의 기세가 하늘마저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무신을 뛰어넘는 것이다!”
천무광의 몸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마기가 넘실거렸다. 이는 그가 가진 전력이며, 그 흉폭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풀과 나무들이 모조리 죽어 간다.
사신(死神)의 강림이다.
“그러한가?”
그것을 바라보며 태공진은 자세를 잡았다.
그러면서도 여인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가 무언가를 눈치채고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딜-!”
천무광이 도망치는 여인을 향해 일장을 내질렀다. 쏟아진 장력은 힘은 어느 누구라 한들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태공진은 사이를 끼어들며 여인을 밀치고 검을 휘둘렀다.
쾅!
희뿌연 먼지가 자욱하게 떠올랐다.
어느새 그것이 걷힘과 동시에 여인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모든 상황을 인지한 천무광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이를 갈았다.
이번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