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94
“우와…… 다 부서졌어요.”
단소미가 그곳을 처음 보고 내뱉은 말이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잔재들로 보아 상당히 커다란 건물이 세워져 있었음은 분명한데, 단 한 곳을 제외하면 모조리 무너져 있었다.
그 또한 마구간으로 보였다.
불탄 흔적들이 역력하였으며 여기저기에서 색 바랜 혈흔이 보였다.
남궁소혜와 제갈연, 그리고 매향이 황급히 아이들을 데리고 마구간으로 향했다.
이러한 흔적들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음이다.
이 정도였을 줄 알았다면 비를 맞는다 한들 노숙을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마차에서 잠을 자는 것 역시 하나의 방법이지 않던가?
남궁소혜는 내심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몰살이로군.”
사도학과 적무성이 주위를 바라보며 그러한 이야기를 건넸다.
주위의 흔적은 이곳의 사람들이 모조리 죽었음을 짐작케 했다. 어느 누구 하나 빠져나가지 못한 것 같았으며, 반항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 역시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청난 고수다. 나와 비슷하거나 종이 한 장 차이일 테지.”
무천풍이 중얼거리며 납득했다.
많은 흔적이 지워지기는 하였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만 보고 해석을 한다면 틀림없이 오황 정도는 되는 인물일 것이다.
그런 이가 왜 이런 곳에서 사람들을 몰살시켰는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황입니다.”
그때, 제갈운이 중얼거렸다.
과거에도 이러한 것을 본 적 있었다.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아니 자기 자신이 죽어 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몰살당한 한 문파.
그 흔적을 조사하던 무림맹은 상대가 살황이었다는 결론을 내며 모든 추격을 접었다.
살황과 부딪치는 것은 좋지 않다.
누구라 한들 그것은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내며 활동을 하는 이들이라며 능히 붙잡을 방법을 강구할 테지만, 살황 비천웅의 경우에는 너무나도 은밀하고 안개와도 같아 그 행적을 좇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돼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궁천과 제갈운은 구파일방과 팔대세가의 동의를 얻고 그 사건을 덮어 버리기로 하였다.
“으음…… 틀림없는 것 같네.”
남궁천 역시 과거 보았던 살황의 흔적과 비슷한 것을 몇 개 발견하였다. 그것만 보더라도 비천웅의 짓임을 알게 해 주는 것이었던지라 굳이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비천웅이 누구지?”
“자네, 살황 비천웅을 모르는가?”
“아…… 그 이상한 놈?”
무천풍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십 년 전.
그 당시에도 오황이라는 이름이 내걸린 젊은 녀석이다. 나이를 생각해 본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가 오황에 오른 경위를 생각해 본다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십 년 전, 당시 살황이라 불렸던 자.
살수들에게 있어 경외를 받으며 어둠을 다스리던 이는 비천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청났지. 소문도 자자했고 말이야.”
“허허, 나와 이 둘은 그자를 눈앞에서 보았다네.”
그것은 무천풍이 황실을 털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정사마를 비롯하여 새외 세력의 수장들이 산서 땅에 한데 모여 무림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오랫동안 벌어진 싸움을 그만두고, 후학 양성을 위해 손을 잡자는 이유였다.
이에 동의를 한 자들이 한데 모여 있는 상황에서 일이 벌어졌다.
느닷없이 나타난 비천웅이 북해빙궁주를 비롯하여 새외 남만의 수장 둘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또한 그 자리에는 당시 살황이라 불린 이 역시 있었는데, 그 역시 반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목이 떨어졌다.
비천웅은 그 자리에서 유유히 사라졌으며, 누구도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하여,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오황 중 최고는 틀림없이 사도학과 남궁천일 테지만, 암습을 한다면 살황 비천웅에게 당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당시 정사마와 새외까지…… 엄청난 수의 추격자들이 그 뒤를 따랐지만 살아온 돌아온 이들은 소수였습니다.”
“기억하지.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어도 비천웅과 엮으려는 이들이 없어졌다.”
사도학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허탈하게 말을 뱉었다.
고작해야 살수 한 명에게 당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수가 죽었다. 마교 역시 그 타격을 입은 단체 중 한 명이었으니 어찌 당혹스럽지 아니했을까?
천하마교의 자존심이 구겨진 순간이기도 했다.
“그 일로 인해 우리도 엄청 고생했다. 정마새외 다 불러 놓고 한꺼번에 죽이려는 것은 아니였냐면서 말이다.”
적무성이 인상을 썼다.
결국 무황성 앞마당에서 중요 인물들이 암살당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 화살이 응당 사파에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하여, 사파는 한동안 숨을 죽여야 했다.
당장이라도 쳐들어오려는 이들을 달래야 했으며, 또한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사태를 대비하여 더욱 큰 힘을 비축해야 했다.
“그 당시 사파는 약했으니까 말이지. 오황이라는 것도 없었고.”
사도학이 귀를 후벼 파며 적무성을 바라봤다.
결국 오황이라는 이름을 얻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무천풍이 사도학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얼떨결에 생겨 버린 별호다.
적무성 본인이 쟁취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 시선을 알기에 적무성은 인상을 썼다.
“어쨌든 대단한 고수라는 것은 변함없지.”
“그런 이가 어찌 이런 짓을…….”
“흥, 살수 놈들이 별수 있나? 돈 받고 한 것이 틀림없지.”
“하지만 이 정도 문파 하나 몰살시키는 데 본인이 직접 나섰다고? 그게 더 웃긴 소리 아냐?”
살수들은 언제나 돈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살황 비천웅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다만 이상한 것은, 이 정도 문파를 살황의 수하들이 아닌 본인이 직접 나섰다는 것이 웃긴 것이다. 살각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통솔하고 있는 우두머리의 행동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설령 의뢰자 본인이 비천웅이 직접 나서 주기를 바랐다 하여도,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어찌 낼 수 있겠는가? 그러한 금액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천하 다섯 상단이나 될 법했다.
“살각을 통솔하고 있지만 본디 살황은 혼자 다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그래도 이상하긴 합니다.”
“아무래도 좋다. 수다를 떨고 있다가는 비가 쏟아지겠군. 마른 나무를 모아 불을 피우고 잘 준비를 하거라.”
단우현은 주위를 둘러보았음에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 무림에서 사람이 죽는 것이야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고, 그것이 꼭 누군가의 흥미를 유발할 일은 아니다.
단우현은 마구간으로 걸어가며 우뚝 걸음을 멈췄다.
슥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 * *
태공진은 검을 거두며 한숨을 쉬었다.
사방에는 피가 가득하고 주위는 마치 포탄이라도 얻어맞은 듯 살벌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고작해야 두 사람이 벌인 짓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
그것은 태공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몸이 베이고 찢긴 흔적.
격전을 벌였음을 알게 해 주듯 피폐해져 있는 모습이다.
그가 울컥하며 피를 한 사발 토했다.
“이런, 이런…….”
태공진의 눈가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대로 몰아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필시 둘 중 하나는 죽었을 터.
하지만 누가 죽었을지 태공진은 익히 알고 있다. 천무광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마지막 한 수를 감추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태공진은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다.
시체가 되어 버리는 것은 틀림없이 태공진 본인이었을 것이다.
쓴웃음을 지은 태공진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 한곳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결국, 또 놓쳤군요.”
“허허허, 이제 오는가? 제법 늦었구먼…….”
잘게 떨리는 시선으로 여인을 바라봤다.
남주련.
백색 검을 지닌 그녀가 주위를 바라보더니 포옥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거친 격전이 벌어졌음에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천무광 때문이다.
하다못해 핏자국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곳곳에 혈흔이 있기는 그것은 싸우다 생긴 것으로 사라진 방향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남주련은 다친 태공진을 향해 다가가 금창약을 바르고 천으로 상처를 감쌌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나마 최대한 빨리 온 것이니…….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이 문제였어요.”
남주련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천무광은 확실히 새로운 팔선들을 이끌 만한 강자이기는 하다. 하지만 남주련과 태공진 두 사람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며 싸울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결착을 보려 했던 것이었는데,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 탓에 기회를 날려 버렸다.
남주련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무광, 그자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을 때가 아니거늘…….”
“천무제 그늘에 있는 이들 모두가 활동을 시작했어요. 아마도 곧 음지에서 모습을 드러낼 테죠.”
“허허허, 슬금슬금 하나둘 기어 나오는구려.”
“이미 예상했던 일이잖아요?”
“시기가 조금 안 좋구먼…….”
태공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숨을 토했다.
세상은 혈천으로 인하여 미쳐 돌아가고 있다. 정도무림은 박살이 났고 마교 쪽 또한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중원무림을 지킨다고 하는 팔선들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렸으니 이 무림을 누가 지킨단 말인가?
태공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무제가 원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목숨, 그리고 무신의 목숨일 테죠.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기어 나오기는 할 텐데…….”
“그럼 너무 늦지 않은가…….”
“그렇죠.”
태공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도 팔선들이 천무제의 그늘에 있는 이들을 쫓고 있다. 하지만 모습을 숨긴 채 점점 강해지고 있는 그들과는 다르게, 현 팔선들은 추적하는 것에 힘을 쓰고 있으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정답일 터.
결코 좋은 상황이라 말할 수 없었다.
“여우는 잘 도망갔나요?”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구먼…… 가긴 잘 갔다네. 자네는 짐작하는가?”
남주련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여우만큼은 놈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구미호가 가지고 있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이 천무제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그는 스스로 신(神)과도 같은 영역에 도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천무제도 천무제이지만 천무광 역시 노리고 있는 것 같구먼…….”
“노린다? 천무제가 그것을 놔두고 있고?”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천무제의 속을 알 수 없으니 어떤 생각을 한다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상상에 맡긴 채 추측을 해내는 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다면 잘 도망갔길 바라야겠네요. 우리도 뒤를 쫓기에는 너무 늦었고…….”
남주련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천무광 혹은 여우를 보호했다면 목적 중 하나를 이루어 낸 것인데, 둘 다 날아갔으니 아쉬운 마음이 큰 것이다.
“너무 낙담하지 말게. 언젠가 기회는 또 있을 테니.”
“그래요. 생각해 봐야 기분만 나쁘니…… 어서 움직이죠. 다들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다들 모여 있는가?”
“그럼요. 류화군이 무언가를 찾은 것 같아요.”
류화군이라는 말에 태공진이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윽고 무언가 납득하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여전히 그자는 대단한 수완가로구먼…….”
“좋은 이야기여야 할 텐데 말이죠.”
태공진은 천천히 움직이며 남주련의 뒤를 따랐다.
앞서가고 있는 그녀를 잠시 응시하고 있던 태공진은, 등 뒤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봤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없음이 분명한데도 마치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시선을 주었다.
다시금 시선을 돌린 그가 쯧 하며 작게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