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95
단우현이 귀주에서 사천으로 향했을 무렵, 하남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만후량은 손을 덜덜 떨었다.
귀를 파고드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시선이 살벌하게 변하며 앞에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사천으로 향했던 이들이 괴멸당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사내는 동료 혹은 친우, 그마저 아니라면 수하라 할 수 있는 자들이 죽었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마음의 동요라는 것이 없는지, 아니면 그들에 대한 정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쾅!
만후량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사천 인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전투에서 이기기 위하여 보낸 이들은 바로 혈천의 정예라 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 숫자만 하여도 수백은 되었으며 그들이 가진 힘만으로 능히 구파일방과 팔대세가 정도는 가볍게 무너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괴멸당했다?
믿기 힘든 목소리가 귀에 닿아 몸이 떨렸다.
“어느 놈이……!”
“알 수 없습니다. 엄청난 고수라는 것 외에는…….”
담담한 말에 만후량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사내를 향해 다가가 세차게 뺨을 후려쳤다.
짝-!
매서운 소리가 방 안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서 있는 사내는 고개조차 돌아가지 않았으며, 오히려 뺨을 때린 만후량의 인상이 구겨졌다.
시뻘겋게 손아귀가 달아오른 것을 보니, 아픈 것은 오히려 만후량 쪽 같았다.
“어디 그런 것을 보고라고 올리느냐! 어떤 놈이 그리하였는지 찾아야 할 것 아니냐!”
“…….”
대답이 없는 사내를 보며 만후량은 더욱 인상을 썼다. 질근질근 입술을 곱씹었다. 피가 새어 나와 어느새 입술 주위는 시뻘겋게 변했다.
“호남단가더냐?”
“알 수 없습니다.”
“쓸모없는 것들…….”
만후량의 말에 사내의 시선이 지그시 그를 향했다.
오싹-!
한순간에 등줄기가 서늘할 정도로 강한 한기가 몰아쳤다. 그것을 깨달은 만후량은 이를 갈면서도 차마 더 몰아붙이지 못했다.
아무리 그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인형들이라 하여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쉽사리 떨쳐 낼 수 없었다.
혈마가 살아 있을 당시, 이들은 만후량에게 있어 공포 그 자체였으니까.
“좋다, 어쩔 수 없지. 해서? 사천 상황은 어찌 되었느냐?”
“잘 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발대가 저래서야…….”
만후량의 입에서 어이없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발대가 도착했다면 사천의 상황을 단박에 뒤집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하나의 수를 더 써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완벽히 전 중원을 장악하려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이다.
“너희들이 가거라. 죽이고 꿇리고 짓밟아라. 혈천에 고개 숙이지 않는 이들이라면 누구도 남김없이!”
혈천이 가진 최고의 힘.
그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사내다.
고작해야 다섯 정도밖에 되지는 않지만, 그들만으로도 능히 중원을 뒤집어엎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가진 이들이다.
전력을 잃은 혈천이 내보낼 수 있는 마지막 한 수이기도 했다.
“최대한 빨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내는 웃음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하남에서 사천까지 거리는 상당했으나, 사내들의 능력이라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 * *
단우현과 그 일행이 사천의 성도로 입성을 한 것은 그로부터 삼 일 뒤였다. 성도는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는 다르게 의외로 고요했다.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었으며 무인들 역시, 날카롭다기보다는 긴장이 풀려 있는 것 같았다.
이는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당장 혈천 무리들이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긴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거나 혹은 이미 포기를 한 것일 터였다.
“조용하군.”
단우현 역시 그것을 느끼며 어이없이 웃었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상관없다 할 수 있지만, 무인들마저 저러고 있으니 괜한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제갈운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사천은 정도무림의 최고 전력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청성과 아미, 사천당가까지. 심지어 옆에는 곤륜도 있습니다. 결코 쉽게 무너질 곳이 아니지요.”
“그런가?”
단우현이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아미는 몰락하고 있다 들었고 곤륜은 이미 멸문했다. 회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졌으니 그 전력의 반 이상이 깎여 나간 것이다.
그럼에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사천당가인가?
단우현의 시선이 곳곳으로 돌아갔다.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무인들 중에서도 사천당가의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사천당가가 청성과 아미를 압도하고 사천의 황제라 불리고 있으니, 그들이 거리를 순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안겨 주는 것 같았다.
“객잔을 잡으실 건가요?”
그때, 주지약이 슬그머니 다가와 단우현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단우현에게 말을 거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는 듯이 결심굳은 눈빛이었다.
“그래.”
“사, 사천에 머물 곳이 있어요. 다른 곳보다 안전하고 또…… 도, 돈도 들지 않아요.”
주지약의 말에 단우현이 눈을 반짝였다.
이는 곁에 있는 무천풍 역시 마찬가지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이니, 돈이 들지 않는 숙소가 있다면 응당 그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다.
단우현이 주저앉아 주지약과 키를 맞췄다.
움찔하며 반보 물러서는 아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곳이 어디더냐?”
“저…… 저쪽에 있는…….”
주지약은 차마 사천왕부라고는 입에 담지 못하겠는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이 주지약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했다.
“그렇군……. 괜찮은 것이냐?”
“네, 이미 말을 해 두었어요.”
단우현의 입장에서도 괜찮은 제안이었다.
객잔을 잡아 묵는 것은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 좋은 점이 있지만, 안전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현 무림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단소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객잔보다는 왕부 쪽이 좋은 선택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좋다, 그곳으로 가자.”
“따라오세요!”
단우현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주지약이 환하게 웃었다. 기실 지난번 사천에서 단소미를 만났을 당시,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으나 소미가 먼저 떠나는 통에 실패했다.
‘이곳까지 왔으니 재미있게 놀아야지!’
주지약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결심했다.
일행들은 주지약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넓은 길을 거닐며 한참을 걷는 것이 제법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았다.
서서히 인적이 드물어지고 들려오는 소리마저 고요했다.
그때 뒤에서 걷고 있던 남궁천이 슬그머니 장삼태의 곁으로 붙었다.
“왜 그러십니까요?”
“해야 할 것 있다네.”
장삼태는 인상을 찌푸렸다.
단우현도 지금은 일을 시키지 않는데, 남궁천이 뭐라고 일을 시키려 하는가?
그러나 장삼태는 남궁천의 살벌한 시선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펴고 웃음을 머금었다. 불만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하오문으로 달려가 정보를 모아 오게.”
“정보…… 말입니까요?”
“그래,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황을 좀 알아야겠네.”
“뭐……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장삼태가 힐끗 앞을 바라봤다.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장원이 보였다. 주지약이 이끄는 곳은 사천왕부가 아닌, 왕부 소유의 장원이 분명했다. 제법 커다란 것이 길을 찾기만 한다면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시급한 일이니 서두르게나.”
“알겠습니다요.”
장삼태가 고개를 숙였다.
휙 하고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경공 수준이 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지경이다.
“걱정되는 모양이로군.”
그때, 단우현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말을 엿들은 모양이다.
남궁천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마음이 요동치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으이.”
“그런가?”
단우현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제법 거세다.
좋은 바람이라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바람 사이로 옅은 피 냄새가 짙게 몰아쳐 왔다.
이는 전쟁터의 냄새다.
“어차피 벌어진 싸움이다. 사람 죽는 거야 매한가지인데 뭔 걱정이 그리 많아?”
사도학이 다가와 투덜거렸다.
무인으로서의 삶은 항시 피를 달고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을 아는 이가 무엇이 그리 걱정이 되어 저리 닦달을 하는가?
사도학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남궁천을 바라봤다.
“허허, 늙은이의 주책 같은 것이네. 그래도 내가 먼저 가야지, 아들이 먼저 가면 쓰겠는가?”
“내 보기엔 네놈은 천년만년 살 놈이니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보낼 거다, 이놈아.”
사도학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 때문인가?
남궁천의 표정이 다소 풀렸다.
“그렇게 강한가? 그 혈천이라는 놈들 말이야?”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무천풍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간 이 중원무림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오황, 그중에서도 수위를 다투고 있는 검황 남궁천이 저리 걱정을 할 정도라니?
예전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한 것은 남궁천이 아니다.
앞서가고 있던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강하고 약하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맹목적으로 상대를 따라야 하는 놈들이니…… 누구보다 독할 수밖에.”
단우현의 말에 남궁천이 신음을 삼켰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단우현은 혈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과거 혈마신교였다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무언가가 있던가?
묻는다 하여도 답해 주지 않을 것 같았기에, 남궁천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사천까지 들어와 혈천 놈들 생각하는 걸 보니 네놈도 이제 아작 낼 생각이냐?”
사도학이 단우현을 향해 물었다.
지금까지 그의 행보로 보았을 때 혈천과의 결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피바람을 일으킬 것인가?
기실 사도학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앞서가던 단우현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동시에 그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단우현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그의 대답이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조금 거드는 것이다. 혈천을 무너트리는 것은 너희들의 역할이지.”
“거든다?”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기에 모든 이들이 의구심을 품었다. 이미 이곳까지 왔으며 혈천과의 싸움 역시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았다.
단우현이 나서는 순간, 판이 뒤집힐 것은 불보듯 뻔한 사실인데 거든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들이 보기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단우현이 해결할 것 같았다.
혈천이 무너지는 것 또한 머지않았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에 생기는 의문이었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원…….”
결국, 두 손을 든 남궁천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단우현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제갈운만이 뜻을 알아들은 것인지 웃음을 지으며 예를 표하듯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