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98
만월(滿月)이 뜬 밤이다.
깊은 어둠은 짙게 내리깔리고 한 줄기 달빛만이 구름을 뚫고 빛을 밝혔다. 그 한 줄기를 제외하면 막연한 어둠만이 가득한 곳인지라, 음산한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그 음산함은 단우현이 있는 장원에도 드리워졌다.
긴장감이 넘쳐 흐른다.
느긋하게 앉아 있는 단우현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생사투를 눈앞에 둔 사람처럼 감각이 곤두서 있었다.
눈빛은 물론 검을 손질하는 손길조차 조심스러웠고, 어느 누구 하나 말을 하는 이가 없으니 그야말로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단우현은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남궁소혜, 제갈연, 마장강과 권무진, 장삼태까지.
늙은이들을 제외하면 호남단가 안에서도 제법 힘 좀 쓴다는 이들이며, 어디 가서도 뒤처지지 않는 고수들이 모여 있었다.
단우현은 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긴장되느냐?”
그 물음에 시선이 쏠렸다.
대답은 하지 않지만 하나같이 긍정의 의미를 담은 눈빛이다.
지금까지 많은 싸움이 있었다.
그와 같다 한다면 같을 수 있고, 다르다 한다면 다를 수 있는 상황.
호남단가의 전 전력이 나서는 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남궁소혜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쩌면 이들 중 내일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르고 혹은 친우일지도 모른다.
생사를 건 싸움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슬픔과 결의를 다지게 했다.
“재미없군.”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단우현의 말에 남궁소혜가 뾰족한 시선으로 쏘아봤다.
그만이 여유롭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다.
그렇기에 장난 삼아 내뱉은 말이라 해도 그리 기분 좋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되면 그만두거라. 사실…… 우리 싸움도 아니지 않으냐?”
“단 공자가 벌인 일을 뒷수습하는 거거든요?”
어처구니없는 말에 남궁소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 모든 사태는 단우현이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다.
혈마신교를 몰아내는 상황에서 남은 잔당들이 힘을 합쳐 혈천을 세웠으며, 그로 인해 정도 무림과 사도 무림이 무너지고 혼란이 찾아왔다.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은 그 뒷수습이나 다름없다.
단우현이 하하- 하며 짧은 웃음을 지었다.
그가 힐끗 고개를 돌리자 남궁천을 비롯하여 적무성과 무천풍, 그리고 사도학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가면을 뒤집어쓴 채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가면 사이로 드러난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 절로 사람을 위축시켰다.
이것이 바로 오황.
느껴지는 감각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단순히 바라만 본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전신이 찌릿찌릿할 정도의 기세가 전신을 타고 흘렀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그들과 시선을 피할 정도다.
“준비는 다 되었나 보군.”
“그렇다네. 그만 가세나. 시간이 촉박하구먼…….”
남궁천이 재촉하며 검을 쥐었다.
당장이라도 쫓아가 혈천을 베려는 것 같았다. 이는 적무성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그 기세가 말투와 눈빛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군…….”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병을 들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는 아홉 개의 잔이 있었다. 언제 준비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우현은 그것에 조심스레 술을 따랐다.
쪼르르-
한 잔 한 잔 채워질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그가 무엇을 하고 또 무슨 생각으로 저러한 것을 하고 있는지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여 괜스레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한 잔씩들 마셔라.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단우현이 내뱉은 말에 저마다 인상을 썼다.
살아 돌아와라,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할망정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에 다들 뿔이 난 얼굴이다.
“에이, 시벌! 내 반드시 살아올 겁니다요!”
가장 먼저 술잔을 든 것은 다름 아닌 장삼태였다.
거침없이 다가가 한 잔을 마시더니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닦아 내고는 단우현 앞에 앉아 그를 쏘아봤다.
“살아 돌아오면 이거보다 더 맛난 술 사 주쇼.”
“하하, 그래.”
겁 없이 내뱉는 그 말에 단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장삼태의 모습 때문인가?
저마다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넘기는 그 술잔에 반드시 살아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 * *
당사휘는 물러서며 휘청였다.
그러나 상대는 균형을 잡는 것조차 기다려 주지 않았고, 곧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당사휘의 몸이 땅을 나뒹굴었다.
“크윽…….”
입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은 것인지 평소 당사휘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어 보였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위를 돌아봤다.
당중악과 남궁용, 두 사람을 제외하면 모든 이들이 시체처럼 엎어진 채 미약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죽지는 않았으나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바람 앞 등불이다.
그것은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던 정사 연합 또한 마찬가지다. 당사휘를 믿고 따르며 칼을 휘둘렀던 이들은 그가 당하는 모습에 사기가 꺾여 나갔으며, 시체는 빠르게 쌓여 가고 있었다.
“어…… 어찌…….”
당사휘는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남궁천을 뛰어넘기 위해 은거를 한 지가 십 년이 넘었다. 그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수련을 무수히 하고, 몇 번이나 벽이라는 것을 넘은 것 같았다.
그러나 실상, 그가 가진 힘이라고는 너무나도 미약한 것.
다섯 사내 중 한 사람, 그의 옷깃조차 제대로 스치지 못하는 자신의 힘이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지루하군.”
사내가 그런 말을 하며 천천히 당사휘를 향해 다가갔다. 더 이상 이 지루한 싸움을 끌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인지, 쥐고 있는 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 이놈!”
막아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당중악이 빠르게 사내 앞을 막아 보았지만, ‘퍼걱!’ 하는 격한 소리와 함께 당중악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아버지!”
당문혜의 외침이 들렸다.
또한, 사천당가의 무사들 역시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사내의 몸에 닿지 못했다. 가볍게 손을 내지르는 것만으로, 수많은 당가의 무사들을 패대기쳐 버렸다.
“커억!”
“끄악!”
“아아아악!”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천하의 사천당가가 농락을 당하고 있으며, 믿었던 당사휘는 제대로 힘조차 쓰지 못한 채 쓰러졌다.
사기가 꺾여 나가는 정도가 아닌 밑바닥을 기었고, 그로 인해 도망치는 이들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놓치지 않는다.
살려 달라 애원하고 눈물을 흘려 보지만, 상대의 무자비한 칼날은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 또 하려 하지 않았다. 저들의 칼날은 그저 무정(無情)하였으며 또한 잔학하였다.
“어…… 어찌 이런 일이…….”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당사휘가 어렵사리 자리에서 일어나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에 그가 받은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그가 황망한 시선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한 순간.
털썩-!
당사휘는 주저앉아 버렸다.
“으…… 으어…….”
엎어져 있는 당문혜가 그 상황을 바라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 정신이 남아 있는 당중악 역시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것이 바로 당사휘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를 칭송하고 따른 것이다.
그런 당사휘가 겁에 질려 주저앉았다.
지켜보는 이들마저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역력했다.
“고작해야 이런 놈이 칠성이라니? 우습지도 않은 농담이로군.”
사내가 천천히 당사휘를 향해 다가갔다.
이미 독성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인지 눈빛은 굉장히 무정하여 감정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그 앞을 남궁용이 막아섰다.
차마 칼을 휘두르지는 못하였지만 떨지 않고 서 있었다. 모든 이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는 이를 앞에 두고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괜찮은 눈이다. 남궁세가였던가? 흥미롭군. 검황이 살아 있었다면 한번 만나 보고 싶을 정도야.”
“…….”
남궁용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두렵지만 시선을 떼선 안 된다. 시선을 떼는 순간 누가 죽을지 모른다. 설령 자신의 목이 날아간다 하여도 뒤에 있는 이들만큼은 반드시 지켜 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당사휘 따위보다 훨씬 낫구나.”
“저분과 나를 비교한단 말이오? 나는 저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오.”
“농담도 잘하는군.”
사내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남궁용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안다.
검을 쥐고 있다 한들 남궁용은 그것을 휘두르지 못하리라. 이미 기세에 밀렸으며 공포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칼을 쥐고 앞을 막아선 의지는 놀랄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지금 남궁용이 할 수 있는 최선이며 전부다.
사내는 그저 다가가 베기만 하면 된다.
“가주!”
“아버지!”
뒤에서 장로와 남궁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다못해 저들만이라도 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남궁용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각오를 정한 그 순간.
사아아아악-!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기세.
그것은 이 격전지 안을 모조리 휘감고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그 어떤 이라 하여도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고절한 수법이었다.
사내가 시선을 돌려 그것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카카카카캉-!
칼과 칼이 부딪치는 격한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그 어떤 공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며, 한 걸음조차 물러서지 않았던 사내의 몸이 주르륵 밀려 나갔다.
지켜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이런, 이런, 내가 조금 늦었구나…….”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남궁용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보니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커다란 등이 보였다.
어떤 산인들 이보다 더 높아 보일 수 있겠는가?
“아…… 아버…….”
“허허, 괜찮은 모양이로구나.”
남궁용은 차마 뒷말을 뱉을 수 없었다. 시선을 돌린 남궁천의 눈동자가 그 입을 막았다.
남궁용은 결국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이곳은 이 늙은이에게 맡기고 다른 곳으로 가 보거라. 어서.”
“아, 알겠습니다.”
남궁용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들은 사람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이건 뭐, 아주 작살을 내 놨네.”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다가오는 것은 사도학이었다. 마천군의 가면을 쓴 그는 쓰러진 자들과 죽은 자들을 번갈아 바라보다, 주저앉은 당사휘를 향해 한껏 조소를 날렸다.
이윽고 한데 모여 있는 다섯 명의 사내들을 바라봤다.
저들 중 가장 강한 놈은 누구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생각을 하는 찰나.
“호…… 호남단가다……!”
“호남단가다! 호남단가라고-!”
곳곳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군자검과 마천군의 등장에 이어, 귀면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한데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천천히 다가와 검을 뽑는 순간.
정사 연합 사이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우와아아아아!]“단가에서 우리를 구하러 왔다고!”
그것은 환희에 찬 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