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00
팡팡-!
주먹과 주먹이 서로 교차하듯 오갔다.
섬전과도 같은 손놀림과 날렵하기 짝이없는 몸놀림.
사람의 움직임이라 볼 수 없는 그들은, 주변 곳곳을 누비며 서로 우위를 잡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한 번의 공격에 막대한 공력이 쏟아졌다.
짙은 마기가 쏟아지고 붉은 혈기가 그것을 상쇄한다.
쾅쾅!
마치 자연재해라도 일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나무와 수풀들이 죽고 사라져 보이지 않았으며, 커다란 바위조차 산산조각이 나 공터를 만들어 냈다.
파이고 터지고 베이고, 한 번의 부딪침에 얼마나 많은 공방이 오가는지, 설령 누가 이 광경을 본다 하여도 조금도 알아챌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도학의 얼굴은 잔뜩 지쳐 있었다.
흙과 먼지를 뒤집어썼고 몸 곳곳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는 흑(黑)이라 불린 사내 또한 마찬가지.
두 사람은 조금도 밀리거나 혹은 우세하지 않다. 치열하게 받아치고 서로를 노리는 그 모습은, 마치 두 명의 사도학이 있는 것처럼 닮아 있었다.
“으하하! 좋구나, 좋아!”
사도학이 미친 듯이 웃음을 지으며 마기를 뿌렸다.
뻗어 오는 혈기가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며 피를 뿌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는 오로지 상대와의 우위를 가리겠다, 혹은 반드시 상대를 이겨 넘어 보겠다는 투쟁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는다.
사도학은 마치 이 싸움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 같았다.
“미친놈이군!”
“하하하! 네놈도 똑같지 않으냐!”
흑의 말에 사도학이 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마기가 마치 채찍처럼 늘어나 상대를 향해 쏟아져 나아갔다.
쾅!
흑은 뒤로 물러서며 씩 웃음을 지었다.
그 또한 손을 뻗는다.
손끝에서 쏟아져 나간 혈기는 마치 암기처럼 나아가 사도학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쾅쾅-!
두 사람은 싸움은 그 격렬함이 하늘을 꿰뚫을 정도였다.
“이게 전부냐!?”
“그럴 리가 있겠냐!”
상대의 도발에 사도학이 더욱 마기를 끌어올렸다.
오랜만이다.
이러한 싸움.
단우현과 붙었을 때에도 느끼지 못했던 고양감.
상대가 자신보다 조금 우위에, 혹은 비등해야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생사의 갈림길 앞에 선 느낌, 이것이야말로 사도학이 중원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이유였다.
그는 언제나 기다렸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있는 상대를 말이다.
그때, 흑이라 불린 사내가 훌쩍 거리를 벌렸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피식 웃었다.
“지금부터 진짜다. 얌전히 죽거라.”
“참, 네놈들은 지랄 한번 잘해. 특히 그런 개소리 같은 거 말이다.”
사도학 역시 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
상대의 기세가 발끝에서부터 전해지고 있음에도,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점점 더 강하게 부풀어 오고 있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라는 바다.
사도학의 입가에 맺혀 있는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가 기세를 끌어올렸다.
거침없이 피어오르는 검은 마기가 더욱 그 색을 짙게 타고 올랐다.
이윽고 어느 순간 검붉은 색으로 변하였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사내는 그 색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온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마기라는 것이 신공을 익힌 이의 성향에 따라 그 색이 바뀐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지금까지 저러한 색을 피워 낸 이는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저 검붉은 마기는 소름이 끼칠 만큼 불길했다. 그러나 곧 사내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꺼림칙한 마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마치 오래전 사라졌던 무인의 호승심이 그를 자극하는 것 같았다.
“어디 한번…… 죽고 죽여 보자꾸나!”
“푸하하하-! 죽는 건 네놈이지, 내가 아니야!”
큰 웃음과 함께 사도학이 달려들었다.
* * *
쾅쾅-!
곳곳에서 지축이 울리는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으며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땅이 흔들렸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한쪽에서 들리는 칼부림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혈천과 정사 연합.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혹은 반드시 너희들을 죽이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의 살기가, 그 폭풍과도 같은 바람을 타고 단우현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걷고 있는 단우현은 그러한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무림이라는 것이 다 이렇지 않았던가?
죽고 죽이는 것이야말로 무림 그 자체다.
“끄아아악!”
“아아악!”
“살려 줘!”
소리가 들린다.
죽어 가는 이들의 목소리다. 혹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들의 소리다.
적인지 아군인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의 절규가 귀를 자극하는 순간, 단우현은 한 걸음을 또다시 내디디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카카카캉-!
이윽고 그의 눈앞에는 격렬한 공방이 오가는 전장이 보였다.
남궁소혜를 필두로 호남단가의 인물들이 다가오는 혈천을 막아서고 있었으며, 그 뒤로 정사 연합의 무인들이 힘을 보태 주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남궁소혜의 온몸은 피투성이다. 이는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장삼태는 너덜너덜해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으며, 마장강은 곧 죽을 것처럼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움찔거리고 있었다.
호남단가의 등장으로 제법 기세가 올랐다고 생각되었던 정사 연합 역시 염이라는 사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기세가 많이 죽은 것 같았다.
심지어 정사 연합에서 주축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천당가 역시, 당사휘를 앞에 세운 채 최대한 막아 내려 하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자는.
한 사람.
단 한 사람이다.
혈천 무리가 꺾여 나간 사기에도 버티고 서 있는 이유 중 하나.
바로 염이라 불리는 사내.
그는 마치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를 농락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유롭게 혹은 때론 잔혹한 손속으로 정사 연합을 농락하고 있었다.
죽이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칼을 뻗어 상대의 팔과 다리를 베어 내지만 숨통은 끊지 않는다.
마치 그들이 내뱉는 괴성과 절규를 들으며, 재미있어 하는 듯 그 어떤 때보다 태연하고 여유롭게 상대를 농락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과 대치를 하고 있는 남궁소혜와 권무진, 장삼태 등의 얼굴에는 낭패감이 가득 서렸다.
“재미있는 짓을 하는구나.”
그때, 단우현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모든 이들이 공포에 휩싸였고 또한 절규 탓에 작은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도,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단우현을 바라봤다.
낮게 뻗어 나간 목소리지만 정확히 모든 이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다…… 단 공자?”
“장주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남궁소혜와 장삼태가 소리를 치며 단우현을 바라봤다. 이미 사도학과 남궁천이 먼저 온 상황에서 왜 나타나지 않냐 싶었더니, 느긋하게 걸어온 모양이다.
장삼태는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 보는 단우현의 얼굴만큼 반가운 것은 또 없었다.
“저…… 자는?”
그리고 한 사람, 당사휘 역시 단우현을 바라봤다.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자.
이러한 상황에서도 태연함을 유지한 채 걸어오고 있는 자.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조차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염이란 사내의 강함조차 머릿속에 들어가 있지 않은 모양이다.
‘어찌 이런 상황에서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당사휘는 알 수 없는 묘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호남단가.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절대 가볍지 않음이다.
호흡을 내뱉으며 당사휘는 단우현을 주시한 채 시선을 결코 떼지 않았다.
“왔나? 왜 이리 늦나 했지.”
“웃기는 놈이로군.”
단우현이 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 수 있었으나, 천하의 단우현을 앞에 두고 저러한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혈마 정도의 수준이 아닌 이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염은 태연했다.
손아귀에 쥔 한 사내의 목을 으스러트리며 단우현을 향해 내던졌다.
휙 날아온 시체가 발밑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게 실로 얼마 만인지…… 긴 세월 같으면서도 또 아닌 것 같군.”
“…….”
염은 단우현을 알고 있다.
그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눈빛 가득 살기를 머금었으며 당장이라도 단우현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발길 것 같았다.
“다시 만날 줄이야…… 하하하,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부들부들 몸이 떨려 왔다.
살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우현에 대한 증오심을 떨쳐 낼 수가 없었던 것인지, 그는 더없이 광분하며 기세를 뿜어냈다.
“윽!”
“크억!”
염의 기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퍼져 나갔다. 당사휘는 물론이고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염이 뿜어내는 힘에 주저앉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휘청거렸다.
이는 그가 가진 혈기(血氣)가 다른 이들과는 판이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단우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네놈을 죽이고 싶었다! 그 눈빛! 나를 쳐다보며 오만방자했던 모습! 내 앞에서 친우를! 동료를! 문도들을 모조리 죽인 그 광경!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염은 오래전,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긴 지난 세월 떠올렸다. 눈앞에 있는 자, 무신이라 불리며 한때나마 전 중원을 구덩이로 몰아넣었던 자.
자신감 하나만으로 살아가던 염의 모든 것을 눈앞에서 짓밟고 뭉개 버렸으며, 그 생명마저 앗아 갔던 존재. 다시금 혈마에 의해 눈을 떴을 때, 염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무신을 죽이겠다는 의지 하나만이 있었다.
“절대 용서치 않으리!”
“누구냐, 넌?”
“……!?”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염과는 다르게 단우현은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혈마와 비슷한 외관. 필시, 그의 주변으로 흐르는 기세로 보아 혈마신공을 익힌 것으로 보였다.
다만 온전한 것이 아니다.
혈마신공을 알아보기는 하였지만 염이라는 사내 자체는 단우현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모른다, 네놈 따위.”
“따…… 따위……?”
염은 온몸을 떨었다.
단우현의 눈앞에서 처참하게 울부짖었었다. 미친 듯이 발광하며 그에게 검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단우현과 일각 동안 검을 부딪친 이는 염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염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를 갈며 단우현을 쏘아봤다.
그러나 정작 단우현의 눈빛에 염의 모습 따위는 들어와 있지 않았다. 흥미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라 취급하지 않는 것인지.
그렇기에 이를 갈며 소리치는 염의 말을 들으면서도, 동요 없이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인가?
“네…… 네놈은……! 내 앞에서 그 많은 이들을 죽여 놓고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냐!”
“네놈은 개미를 짓밟아 죽였다 해서 그 개미들의 수를 일일이 세느냐?”
오싹-!
순간, 모든 이들이 소름이 돋았다.
이는 평소 단우현을 알고 있는 호남단가의 사람들 또한 그러했다.
덤덤하게 말을 내뱉는 단우현은, 마치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찌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그들이 알지 못했던, 천살성의 진면모이리라.
그때, 단우현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스르릉-!
검집에서 뽑혀 나오는 그것은, 아주 오래전 염의 목을 쳤던 그 칼날.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염은 더욱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단우현의 덤덤한 목소리는 여전히 그의 귀를 자극했다.
“또한, 죽고 죽이는 것이 무림인데 하나하나 그 이름을 어찌 기억하겠느냐? 그리고…….”
단우현이 가만 검을 뻗어 염의 발아래를 가리켰다.
염의 주위에는 조금 전, 그가 죽인 무수히 많은 정사 연합인들이 쓰레기더미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그 행동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너는 지금 네놈이 죽인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느냐?”
그 말에는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