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03
“아니, 정말이라니까? 호남단가의 가주는 틀림없이 삼천이 오른 경지에 도달한 거야!”
“오황보다 강해 보이더만…….”
“그 무시무시한 인간을 일검에 잡다니…….”
싸움이 벌어진 후, 곳곳에서 사람들의 말이 오갔다.
그 자리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아직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당시를 떠올렸다. 다섯 사내들의 압도적인 힘을 눈앞에서 보았기에 그 절망감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이 단우현이다.
“그냥 슥삭하니까 끝나더라니까?”
“거짓말하지 마, 이 인간아! 당 어르신도 못한 것을 어찌 그런 인간이 해?”
“진짠데?!”
“아이고, 저 답답한 자식! 눈으로 직접 봤으면 그런 말이 안 나와! 군자검과 마천군, 그리고 귀면자와 정체 모를 노인 한 명! 그자들도 엄청났다니까!”
당시를 회상하며 떠들어 대는 이들의 표정에는, 호남단가야말로 천하제일 무림세가라 손가락을 치켜세울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단박에 판을 뒤집었으며, 눈앞에서 보여 준 신위만으로도 능히 오황에 견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들이 내키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사천의 무림인들이다.
“당 어르신이…….”
“아니, 당사휘 그놈은 그냥 배경이었다고!”
“이놈이? 당 어르신한테 그게 무슨 말이냐!”
스릉-!
칼부림이 일어난다.
사천 무림의 자존심인 당사휘를 욕하는 순간, 울컥 치솟는 치욕감에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사내를 갈가리 찢어발기려 했다.
싸움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곳과는 다르게 고요한 곳 또한 있었다.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는 당사휘만의 공간.
안에 머물고 있는 당사휘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은거를 결심한 날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검황을 뛰어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수련을 하였는데, 그것이 어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어찌, 어찌 이런 일이…….”
이번만큼은 틀림없이 넘어섰다고 믿었다.
또한 혈천을 몰아내는 것에 많은 공을 세움으로써, 사천당가가 제일세가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하려 했던 그였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존재를 마주친 순간부터 당사휘는 그저 한없이 자그마한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 있던 정사 연합 모든 이들이 호남단가를 입에 담았다.
그 말도 안 되는 싸움을 이야기하며, 최전선에 섰던 남궁소혜를 향해 엄지마저 치켜들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결코 이 승리를 얻지 못했다는 둥 혹은 모든 이들이 죽었을 거라는 둥……. 당사휘의 존재감은 어느새 고작해야 배경으로 전락해 버렸다.
끼익-
그때,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당중악이다.
아비의 상심을 아는가?
그 역시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아버지…….”
“말도 꺼내지 말거라.”
“하지만…… 곧 호북을 되찾기 위해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
당사휘는 내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창피를 당한 것과 동등한 상황이니 정사 연합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수치스러웠다. 눈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한들 뒤에서 뭐라 숙덕거리겠는가?
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천하의 당사휘가 현시점에서 사라진다면, 이 중원에 무수히 많은 소문을 낳게 될 것이다.
그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당사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알아는 보았느냐?”
“이미 알려진 것 이외에 다른 정보는 없습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 허…….”
당사휘는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하늘에서 나타난 것인지 땅에서 솟구친 것인지 모를 자들.
가면을 뒤집어쓴 이들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 가주는 다소 도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염이라는 사내를 일검에 죽이다니?
검황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사도학이 있다 하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사휘가 한숨을 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생각을 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정면으로 부딪치리라 마음먹었다.
호남단가 또한 호북으로 향할 것이니, 그곳에서 그들을 탐색하고 어떤 자들인지 답을 내야 함이 마땅했다.
당사휘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시선을 돌려 당중악을 바라봤다.
“그래, 가자꾸나.”
“잘 생각하셨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당중악이 쓴웃음을 지었다.
* * *
“호북으로 갈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이로군.”
“…….”
제갈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이미 승기를 잡은 상황이다. 또한 가장 두려워할 법한 이들을 죽였으니, 더 이상 거칠 것 없이 진격을 함이 마땅했다.
혈천이 모든 힘을 쏟아 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큰 타격을 입은 것은 틀림없을 것이고, 이미 정사 연합의 사기가 하늘에 닿아 있으니 여기에서 멈춘다면 군사적 재능이 모자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정사 연합은 기세를 탔다. 혈천 무리가 두려워 숨어 있던 자들 역시 틀림없이 나타날 거다. 이것이야말로 호재이지.”
“그렇습니다.”
“전 전력이라 생각하지 말거라. 혈천의 남은 힘은 여전히 강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제갈현은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보는 가주는 반갑다는 내색 하나 없이 자신의 말을 뱉고 있었다. 이는 그의 성격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제갈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형님은 어찌하실 겁니까?”
“당분간 사천에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이리로 전서를 날리도록.”
“……함께 가지 않으십니까? 이미 세가 내부에서도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하.”
제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근 이 년 가까이 세가를 비웠다. 또한 연통 한 번 넣은 적이 없으니, 사실상 가주직을 상실했다 봐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운은 걱정할 것이 없었다.
“네가 잘하고 있지 않으냐?”
“형님만 하겠습니까?”
“하하, 애초에 가주직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알지 않으냐? 아버님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난 하지도 않았을 거야.”
“…….”
“네가 잘 이끌어 주거라. 연아가 돌아갈 때까지 말이다.”
제갈연의 이름이 나오자 제갈현은 신음을 삼켰다. 이는 가주직을 포기했지만, 제갈연은 아직 제갈세가와 연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그것을 연아에게 물려주어야 할 수도 있다.
그리된다면 세가 내에서 적지 않게 말이 나올 것이지만, 제갈연의 재능과 그 성격을 생각한다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 가지……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래, 단 가주와 가면 쓴 이들에 대한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
제갈현이 인상을 썼다.
그것을 물으려 했는데 처음부터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이리된다면 어떠한 이야기를 한다 하여도 대답을 해 주지 않을 테니, 포기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애써 웃었다.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십니다.”
“하하, 사는 게 원래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그럼 이만 나는 가 보마…… 그리고 명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알고 있습니다. 호남단가에 대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제갈운은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스쳐 지나갔다. 그 행동이 다소 위압감이 넘친 탓에 제갈현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아우의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제갈운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괜한 호승심에 단가를 건드려 단우현의 눈 밖에 나는 것보다야 백번 나은 일이다.
“이야기는 잘 끝나셨어요?”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제갈운의 곁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호위를 하는 것처럼 검을 손에 쥔 제갈연이 골목 어귀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비가 걱정되어 따라온 것인가?
제갈운이 하하 하며 웃었다.
“걱정되었느냐?”
“숙부님은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인석아…….”
제갈운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스물 초반인 제갈연이 수많은 무림행을 하며 살아온 제갈현의 생각을 읽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하긴 두 사람 다 비슷한 면이 있지.’
제갈현과 제갈연 모두 두뇌가 유달리 뛰어나고 무공에 남다른 재주가 있다.
비록 제갈현의 경우에는 제갈연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진 않았으나, 그 또한 학문보다는 무에 관심이 많아 어린 시절부터 무학의 도를 따라 걸은 까닭이다.
그렇게 비슷한 두 사람이니,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는 것 역시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제갈운이 웃음을 지으며 제갈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순식간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지자 제갈연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보다, 정말 괜찮나요? 이대로 호북으로 가지 않아도?”
“단 가주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지 않으냐?”
“……만약 정사 연합이 호북을 되찾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알면서 묻느냐?”
제갈운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천에서부터 중경을 건너 호북으로 향한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니, 혈천 역시 방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호북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정사 연합의 승리로 마무리된다면?
모든 이들이 눈치를 챌 것이다.
혈천에게 더 이상 여력이 없음을!
그리된다면 혈천을 따르고 있던 이들이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분열될 것이고, 그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이들이 일어날 터였다.
“혈천의 몰락은 기정사실이 되는 셈이지.”
“고작 사천에서 벌어진 싸움 하나로 커다란 세력 하나가 훅 가는군요.”
제갈연이 고소한 표정으로 웃었다.
혈천이 날뛰기 시작하면서 겪은 고생들을 생각해 본다면, 당장 그곳을 무너트리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단우현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단가가 끼어들 여지는 없는 셈이다.
“단 가주가 말하지 않았느냐? 여기까지라고. 남은 것은 그들의 몫이라 생각하는 것이지.”
“그 중심이 호남단가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갈연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갈운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호남단가가 가지고 있는 힘은 무림맹보다 강하다. 마음만 먹는다면 더 강한 정도 혹은 더 강한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원의 지배자가 되는 것 역시 쉬운 일이니, 한때나마 그러한 꿈을 꾸었던 제갈운의 입장에선 다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제갈연은 그것을 꼬집었다.
아비의 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갈운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 하하. 그보다 단 가주는 안에 있느냐?”
“나갔어요.”
“나가?”
“예, 장 아저씨와 무천풍 어르신을 이끌고…….”
“아…….”
그 한마디에 제갈운은 단박에 깨달았다.
이 사천에 온 목적 중 하나.
그것은 다름 아닌 금왕수를 찾기 위함이다.
무천풍의 재보를 가지고 도망간 이를 붙잡고, 온전하지는 못할지언정 조금이나마 돈을 건지기 위한 여정이었다.
제갈운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것참…… 재미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