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09
“네놈, 잠시 이리 와 봐라.”
비천웅이 그 서찰을 받아 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였음에도 들려오는 목소리.
저도 모르게 떨리는 시선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니, 어떤 이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신은…….”
“내 얼굴은 아나 보지?”
천무광.
그가 높은 곳에서 비천웅을 내려다봤다.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왜 이 자리에 비천웅이 있는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알고는 있었다. 천무제, 그놈의 수하 중에 중원을 제 집처럼 헤집고 다니는 녀석이 있다는 것을. 물론 대부분이 천무제의 명령이었을 테지.”
“…….”
비천웅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해서는 안 된다.
천무광은 틀림없이 천무제의 밑에 있는 자였지만, 그 속내를 알 수가 없기에 주군조차 경계하는 이가 아니었던가?
퍼억-!
“컥!”
그러나 천무광은 침묵을 용납하지 않았다.
본디 마교를 세운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자였고, 천마신공을 창안하였으며, 마교의 수많은 위업을 쌓아 지금도 전설로 일컬어지는 인물이 천무광이다.
애초에 그런 천무광 앞에서 살황 비천웅은 너무나도 초라한 존재였다.
얻어맞은 그의 몸이 허망하게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입에서는 피가 터져 뿜어졌다.
포달랍궁을 혼자서 전멸시킨 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날아간 비천웅을 바라보며 천무광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람에 날아갔던 전서가 그의 손에 들어왔다.
“단소미라…….”
그 이름은 틀림없이 단우현의 딸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찌하여 천무제가 그 아이를 노린단 말인가? 또한 무슨 이유로 포달랍궁을 몰살시켰고, 무엇을 찾기 위해 이런 짓을 벌였는가?
한참 동안 서찰을 보고 있던 천무광의 신형이 느닷없이 사라졌다.
동시에 비천웅의 앞에 나타난 그가 발을 휘둘러 가슴을 걷어찼다.
“컥!”
“천무제가 바보가 아닐진대…… 그 딸을 죽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윽!”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답을 내놓아라.
천무광의 눈빛은 그러했다.
살고 싶다면 그 무거운 주둥이를 열라는 것처럼 날카로운 눈동자는 좀처럼 비천웅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사악-!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날카로운 일검이 천무광이 서 있던 곳을 헤집었다. 그러나 검은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으며, 천무광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발로 그의 팔을 짓눌렀다.
“기어코, 어디 한두 군데 부러져야 대답하겠느냐?”
“끄아아아악!”
우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맹렬하게 울렸다.
반항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는다.
상대와의 실력 차이가 극명한 상황에서 비천웅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말도 내뱉지 않도록 자결을 하는 것이었다.
그가 이를 악물며 입안에 있는 독단을 깨물려는 순간, 천무광의 손이 입안을 쑤시고 들어왔다. 이윽고 그의 손가락이 마치 아무런 거리낌조차 없다는 듯 독단이 숨겨져 있는 어금니를 잡아 뽑았다.
“끄아아아아악!”
“시끄럽다.”
이윽고 어금니를 내다 버린 천무광이 재차 비천웅의 안면을 차 버렸다.
퍼억!
나뒹구는 비천웅의 모습은 비참해 보이기까지 했다.
천하의 오황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다루는 그 행동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내가 보기엔 단소미라는 아이는 네놈과 관계가 있는 것 같고…… 천무제 그놈이 왜 죽이려는 건지도 모르는 것 같은데…….”
천무광은 상황을 읽으며, 괴로워하는 비천웅 앞에 주저앉았다.
얼굴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해 보였으나 천무광의 표정에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깃들어 있지 않았다.
비천웅의 머리카락을 잡아채며 물었다.
“말해 봐라. 여기서 뭘 찾으려 했는지.”
천무광의 입꼬리가 진득하게 올라갔다.
* * *
산에서 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데다 자칫 큰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명의 아이들은 그러한 걱정 따위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뛰어놀고 나무 막대기를 쥐고 휘두른다.
마치 협객이 된 것처럼 연극하며 아이의 마음을 달랜다.
“꾸웩!”
홍진랑은 날아드는 막대기에 머리를 얻어맞았다. 굉장히 아픈 것인지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얼얼한 정도가 아니었다.
자그마한 어린 여자아이가 휘둘렀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힘이 깃들어 있었다.
“아프다고!”
“……진랑이 약해.”
“무공 익히고 있는 거 맞아?”
단소미와 주지약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홍진랑을 바라봤다.
셋 중 유일한 사내아이가 바로 홍진랑이다. 또한 그 덩치 탓에, 악양이나 장사의 거리에선 무적이라 불릴 정도였다.
또래 아이들과 싸워서 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만 보아도, 홍진랑 역시 꽤 재능이 있으며 무골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힘을 못 쓴다.
단소미를 힘으로 누르려 하면 유유히 빠져나가고, 검법을 펼쳐 보면 한 수 한 수마다 파훼를 당해 버린다.
“아니 왜 이렇게 강한 거야 너는?!”
“으응? 내가 강해?”
“자각이 없어?”
“……?”
단소미는 손에 쥔 막대기를 빤히 바라봤다.
그냥 휘두르고 싶은 대로 휘둘렀다. 할아버지들이 가르쳐 준 방법으로, 때로는 단우현이 알려 준 대로. 단지 그것이 전부였는데, 홍진랑은 받아 내는 것조차 하지 못한 채 널브러졌다.
“젠장! 나 이래 봬도 강한데.”
“그냥 덩치가 커서 애들이 무서워하는 거 아니었어?”
주지약이 홍진랑의 심장을 후벼 팠다.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맞기는 했다. 덩치가 다른 이들보다 두 배 이상 커다랗고 뼈 또한 상당히 두꺼우니, 보는 것만으로도 겁을 집어먹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기에 붙어 보지도 않고 포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여 정학히는 홍진랑이 약하다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애초에 단소미조차 이기지 못하고 있으니 홍진랑의 자존심은 밑바닥을 기었다.
그가 주저앉으며 좌절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애당초 소미를 이기려는 것 자체가 웃긴 거 아니야? 이 아이, 작아 보여도 몇 살이나 많은 사람들도 이긴다고.”
“그거야 뭐…… 알고는 있지만.”
한때, 악양으로 놀러 갔을 당시 그곳에 있는 거지패들 중 하나가 주지약의 전낭을 훔쳐 간 일이 있었다. 하여 세 아이는 그 거지를 찾는 와중에 몇 번 싸움이 벌어졌었고, 단소미는 상처조차 입지 않은 채 단 한 번에 상대를 제압했다.
“하긴…… 괴물 소굴에 살고 있는데 나보다 약하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저기…… 우리 집이 조금 이상해도 괴물은 아닌데……?”
단소미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홍진랑의 말대로 호남단가에는 무수히 많은 소문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것이었고, 그 밖에도 천하의 고수들이 운집해 있는 곳이라던가 혹은 귀신이 산다고 하는 자들도 있다.
기실 그러한 것보다 더욱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는 악양과 장사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군자검과 마천군의 집이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괴물 소굴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특히 범죄를 주업으로 하는 이들 사이에서 말이다.
단소미가 애써 웃음을 짓고 있는 찰나.
‘냐옹-’ 하며 어디선가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세 아이들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어딘가 사라졌던 백묘가 이제야 나타난 모양이다.
단소미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곳을 바라본 순간, 백묘가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어디 가는 거야!”
깜짝 놀란 단소미가 부리나케 그 뒤를 따랐다. 백묘는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한동안 멈췄다가, 아이들이 보이면 그제야 다시금 움직이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저거 또 이상한 거 발견한 거 아니야?”
홍진랑이 투덜거렸다.
백호도 그렇지만 백묘도 쓸데없는 것들을 많이 주워 오곤 했다.
백호보다 더한 것이 백묘였는데, 작은 몸집과는 다르게 이제는 곰까지 사냥을 하여 가져오는 엄청난 힘을 보여 주곤 했었다.
두 아이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곰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고 있던 주지약과 홍진랑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주저앉아 무언가를 가만 바라보고 있는 단소미를 보았다.
“또 뭐야?”
“진짜 불안한데?”
두 아이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지그시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단소미를 보았다.
“이건…….”
세 아이의 시선 끝에는 한 마리의 여우가 보였다.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은 채 널브러져 있는 그것은 심각한 부상이라도 입은 듯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단소미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여우의 몸에 손을 대려는가?
“무…… 물려, 그러다가!”
“괜찮을 거 같은데?”
“어디를 봐서…….”
홍진랑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여우는 틀림없이 여우다. 그러나 백묘와 마찬가지로 새하얀색을 띠고 있었으며,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아홉 개나 되는 꼬리였다.
아마도 이것을 본 많은 이들은 같은 소리를 할 것이다.
구미호(九尾狐).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생물인지라, 사실상 누구도 실존한다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우가 눈앞에 있다?
주지약과 홍진랑은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백묘가 울음을 터트리며 단소미를 올려다봤다.
마치 구해 달라는 듯, 혹은 도움을 주라는 듯.
이 구미호와 면식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불쌍해 보였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소미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단소미가 마음을 결정한 듯 눈을 빛냈다.
이윽고 천천히 손을 뻗어 구미호를 감싸 안아 들었다.
“집으로 가자.”
“정말로 데려가는 거야? 큰일 나면 어쩌려고?”
“괜찮아. 소미가 밥 잘 주고, 키울 거니까.”
“내가 봤을 때 오히려 네가 키워질 것 같은데…….”
주지약이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구미호라면 능히 천 년은 살았을 터. 심지어 대대손손 내려오는 이야기가 맞는다면, 백호는 물론이고 백묘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영물 중의 영물이었다.
“그런데…… 영물의 내단이라 하면 눈이 돌아갈 사람들이 많을 텐데…….”
홍진랑의 한마디에 두 아이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그러한 소문을 들은 적 있다. 무인 중에는 영물을 잡아 그 내단을 취하는 것으로 공력을 늘리는 자들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백호든 백묘든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순간, 세 아이의 머릿속에 몇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특히 여전히 백호와 백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사도학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신음을 삼킨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이…… 일단, 숨겨 놓고 상처만 돌봐 주자. 거,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야.”
“으응…….”
아이들의 목소리에 다소 불안감이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