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11
이른 아침, 남궁천을 비롯해 인원 대다수를 천도회 측으로 보내니, 별채는 쥐 죽은 듯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남아 있는 이라 해 봐야 어린아이들이 셋이었고, 매향을 비롯하여 단우현과 사도학, 무천풍이 전부인 상황이다.
평소 북적이던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왠지 모르게 적응이 되지 않았으며, 또한 이러한 고요함이 다소 꺼림칙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고요함을 더 만들어 내는 이가 있었다.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단우현이다.
풍광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명상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평소 단우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사도학이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놈 무슨 일 있는 거냐?”
“그…… 글쎄 말입니다. 저런 모습은 처음 보니…….”
장삼태마저 어깨를 으쓱했다.
많은 시간을 단우현과 함께 보냈던 장삼태다. 하지만 저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괜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러다 어떤 사달이라도 나는 것은 아닌가 했다.
사도학이 눈짓을 주었다.
그 의미를 깨달은 장삼태가 인상을 찌푸렸으나, 차마 거부는 할 수 없었던지 슬그머니 단우현을 향해 다가갔다.
“저…… 장주님.”
“그래, 무슨 일이냐?”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요?”
지금까지 어떠한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던 단우현의 시선이 돌아갔다.
장삼태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부드러웠으며, 또는 흥미 돋은 눈빛이기도 했다.
“걱정되느냐?”
“예?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분위기가 이상해서 말입죠.”
“하하, 별것 아니다. 그저 오랜 지기를 떠나보내 기분이 영 그렇구나.”
“남궁 어르신들 말씀이십니까요? 가서 데려올깝쇼?”
장삼태가 반짝 눈을 빛내며, 두 주먹을 움켜쥐고 밖을 바라봤다.
단우현의 명령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뛰어가 천도회와 합류하려는 남궁천을 끌고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아니, 아니다. 그보다 아이들은 어디 가고?”
“내일이면 이 사천을 떠나야 하니 마지막으로 저잣거리 구경을 간 것 같습니다요. 청소하러 갔더니 방문까지 걸어 잠그고 나갔습니다.”
“그래?”
단우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비어 있는 아이들 방이었다.
무슨 이유로 그곳을 향하는가?
장삼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명쾌한 해답은 얻을 수가 없었다.
그가 슬쩍 사도학과 무천풍을 쳐다보자, 두 사람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들 역시 단우현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왜 저러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종잡을 수 없는 자인지라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무천풍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괜스레 눈치를 보게 된다. 혹 금왕수의 재보를 찾지 못하여 그 탓인가 싶기도 했다.
“저놈도 사람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있겠지.”
그러나 곧 사도학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천 년을 묵은 강시이니, 썩은 놈이니 혹은 무신이니 하지만, 제아무리 경지가 높고 많은 이들이 경외한다 하여도 사람이라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기분이 아니 좋을 때도 있을 것이고, 좋을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을 것이다.
“우리 장주님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괴물 아닙니까요? 피도 눈물도 없는?”
“네놈이 그러니까 매를 번다는 거다.”
“엑……? 꾸웩!”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장삼태가 느닷없이 날아온 무언가에 복부를 얻어맞고 날아갔다.
쿵!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장삼태는 이미 혼절을 하였는지 눈마저 뒤집혔다.
사도학과 무천풍이 쯧쯧 혀를 찼다.
매를 버는 것도 능력이다.
* * *
“찾아오실 줄은 몰랐네요.”
단소미의 방으로 들어간 순간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시선 끝에는 새하얀 궁장을 길게 늘어트린 여인 한 명이 있었다.
바라보는 순간, 누구라 한들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존재.
천하의 남궁소혜 역시도 이 여인의 앞에서는 자그마한 반딧불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서려 있었으며, 내뱉어지는 말은 마치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사람의 귀를 간질였다.
또한 바라보는 시선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마치 보석을 박아 놓은 것 같았다.
아직은 그 부상이 낫지 않아 얼굴에는 창백함이 엿보였지만, 오히려 그것이 여인이 미모를 한층 더 빛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단우현은 무릇 남성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외모를 가진 여인을 앞에 두고도 조금도 흔들림 없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태공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것을 물으러 온 것이군요.”
여인이 다소곳이 침상에 앉았다.
이윽고 고혹적인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마치 상대를 유혹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여인은 알고 있다. 이러한 짓을 한다 하여도 단우현은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제가 천무광에게 쫓기고 있었을 때, 그것을 막아 준 것이 태 선인이었습니다.”
“…….”
여인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눈으로 본 모든 것들을 입에 담았다.
먼 거리이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그녀는 똑똑히 봤다.
종이 한 장 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승부였지만, 그 판을 뒤집어 버린 것은 천무광이었다.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단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 했다.
천무광이 가지고 있는 기운이 한순간에 돌변하더니, 태공진을 집어삼켰다. 그것을 과연 무공이라 칭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걸레가 되어 버린 태공진이 쓰러지고, 그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남주련의 기운이 느껴지며 다가오는 것을 깨달았다.
천무광이 다급하게 그 얼굴을 바꾸고 쓰러진 태공진을 치워 냈다.
“남 선인과 천무광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태 선인을 몰래 모셔 왔죠. 기척을 눈치챘을 테지만, 남 선인을 상대로 함부로 힘을 드러낼 수는 없었을 테니 그냥 놓아준 것 같습니다.”
“……그렇군.”
“구해 보려고 나름 노력은 했습니다. 하지만 내상을 치유하려 해도 이미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였기에……. 하지만 뭔가…이상한 것이..”
“되었다……. 잘 묻어 주었느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급하였기에 제대로 된 묘를 만들지는 못하였지만, 확실하게 그 시신을 묻고 염을 해 주었으니 좋은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우화등선한 선인이니만큼, 좋은 곳이 있을 리 없다.
선인이란 육신의 껍데기를 벗고 등선한 이를 뜻한다.
결국 그 본류가 영혼이다 보니, 죽는 순간 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영혼이 죽어 사라졌으니 설령 환생이 실존하더라도 태공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단우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도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군요.”
“나도 사람이다.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느냐.”
“무수히 많은 사람을 베고 그 목숨을 앗아 간 이의 말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드네요.”
단우현이 쓰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사실 그 역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에게도 이러한 감정이 남아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 선인께서는…… 웃으면서 가셨어요.”
“그래…… 녀석답군.”
머릿속에 태공진의 얼굴이 그려졌다.
도경에 심취한 녀석이라, 예전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가 모호했다.
“죽으면 죽는 것이고 살면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이치란 다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며 사는 겁니다.”
자신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많은 이들이 있고 또한 죽음에 대한 용기를 지닌 이들도 있을 테지만, 막상 그것이 코앞에 다가오게 되면 치를 떨고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웃으며 갔다?
단우현은 그것이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했다.
“그래, 아이들은 잘 대해 주더냐?”
“장난감 취급받죠.”
여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
그런 것을 발견하였으니 응당 아이들의 호기심이 갈 법했다.
중상을 입은 몸이었기에 힘든 나머지 꼬리를 숨기지 못한 자신의 책임도 있었기에, 그녀는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아이들이에요. 왜 당신이 그 아이를 데리고 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요.”
단우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같은 생각을 한다.
단소미만이 아니다.
홍진랑이나 주지약 역시 단소미만큼이나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렇기에 곁에 두는 것이고, 그렇기에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당신의 발목을 잡지 않으면 좋으련만…….”
“하하.”
여인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단우현 또한 잘 알고 있다. 시기가 좋지 않다. 혈천의 깃발은 여전히 나부끼고 있으며, 천무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기실 그런 이들이 단우현을 목적으로 덤비기 시작한다면, 최우선 목표는 단소미가 될 가능성이 컸다.
무신을 직접 건드리는 것보다 주위부터 제거해 나가는 편이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천무제의 잔혹성을 생각해 본다면 그럴 확률은 구 할이다.
여인은 힐끗 단우현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가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단소미를 잃음으로써 변할 단우현이다.
그의 손이 또다시 피로 물들기 시작한다면, 이 중원 땅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기에.
“몇 가지만 묻겠다.”
“아는 것이라면…….”
“무신도경에 대한 것.”
여인이 ‘아하!’ 하며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단우현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이 무신도경에 대한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여인은 다르다.
한때나마 천무제의 수족이었던 구미호라면, 천무제의 생각을 어느 정도 파악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는 것만 말씀드릴게요.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니.”
“그래.”
“일종의 실험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실험?”
“예, 서로 상생될 수 없는 절대무공들을 상생시킨다면 어찌 될까? 만약 성공한다면…….”
“더욱 강한 새로운 무예를 만들 수 있다?”
“예, 중원에는 뛰어난 자들이 많죠. 천무제가 지금까지 풀어내지 못한 것을 풀 수 있는 자들. 그렇기에 무신도경은 뿌려지는 것이라…… 생각해요.”
답이 될 수 없다.
단우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추측에 지나지 않은 말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천일조화공과 혈마신공을 합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강맹한 무공이 탄생할 것이다.
그것을 기반으로 천무제는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를 무공을 창안해 낼 테고.
무신도경이 뿌려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라 추측하는 것이 타당했다.
물론 여러 가지 꺼림칙한 것들이 남아 있기는 하였지만, 어느 정도 천무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아시다시피 천무제는 오랫동안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당신에게 싸움을 걸었고 매번 패배했죠.”
“…….”
“그것까지 포함해서 전부 실험이었다 한다면?”
단우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머릿속에 그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그리고 만약 그것이 성공하였다면? 천무제야말로 무신을 뛰어넘는 고금제일인 아닐까요?”
단우현이 웃었다.
그것은 마치 도전자를 향해 보내는 절대자의 여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