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14
사천 여정을 마무리할 시기다.
단우현과 남은 이들이 주섬주섬 짐을 싸고, 호남으로 되돌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챙겨 나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남아 있었던 탓에, 다시금 되돌아가는 것 역시 다들 기대하는 눈빛들이었다.
다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 무천풍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금왕수가 숨겨 놓은 재보는커녕 그의 흔적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였고, 얻은 것이라곤 하나 없이 일만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천풍 정도라 하면 상당히 비싼 노동력일 테지만, 단우현에겐 밥값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로 보였다.
무천풍은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이 봇짐 하나씩을 손에 쥐고 마차에 가져다 놓았다.
다른 한쪽에는 단우현 역시 이것저것을 챙겨 놓고 있었다.
그런데 보여야 할 종놈이 보이지 않는다.
“자네, 혹 그 종놈…….”
콰앙!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했던가?
느닷없이 대문이 활짝 열리며 헐레벌떡 뛰어오는 장삼태가 보였다.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인지, 시퍼렇게 안색이 죽어 있었는데, 그것을 본 제갈운과 단우현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자…… 장주님!”
“그래, 무슨 큰일이 났더냐?”
단우현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장삼태의 느낌이 조금 다르다. 또한 저렇게 문이 부서질 정도로 열어젖히며 들어온 모양으로 보아, 충격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온 것일 터다.
자연스럽게 제갈운이 귀를 기울였다.
“포…… 포달랍궁이…… 무너졌답니다!”
“……!”
그 이야기에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사도학이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과 함께 짐을 챙기고 있었던 그는 포달랍궁 멸문 소식에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마교와 포달랍궁은 상당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적게나마 교류를 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따지고 보면 친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거기가 왜 무너져? 지진이라도 났대?”
“아…… 아니요. 그…… 그것이 건물들은 죄 불타 버렸고, 안에 있던 이들은 모조리 죽었다 합니다.”
“허…….”
여전히 들어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포달랍궁은 구파일방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고수들이 있다.
서장의 패자.
그러한 이름을 지닌 곳이니만큼, 마교만큼이나 강하며 또한 그 끝없는 힘은 중원 무림인들조차 두려워하는 곳이다.
그런 곳이 멸문했다는 것은 쉬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단우현이 놀란 이들을 무시하며 아이들을 바라봤다.
짐을 챙기고 있던 아이들이 손을 멈춘 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힐끗 매향을 바라보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을 챙겨 다른 곳으로 갔다.
“포달랍궁은 명실상부 서장의 패자…… 도대체 누가 그들을?”
제갈운의 시선이 사도학을 향해 돌아갔다.
마교의 짓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마교인들이 단박에 그 힘을 토해 내며 포달랍궁을 집어삼킨 것이다.
기실 마교와 포달랍궁이 작게나마 교류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 앙숙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서로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크고 거셌기에 부딪히는 것 역시 당연한 일.
줄다리기하는 것처럼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 없는 그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혹, 마교가?”
“그럴 리가 없다. 만약 그놈들 짓이었다면 벌써 소문 다 났을 거다.”
사도학의 말은 타당했다.
천하의 포달랍궁을 공격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마교 역시 그만한 준비를 해야 하니 적지 않은 인원들이 이동했을 것이며, 그 소문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다.
신음을 삼킨 이들이 장삼태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디라더냐?”
“누가 그랬다 하는가?”
“왜? 무슨 이유로?”
“…….”
단우현과 제갈운, 심지어 사도학의 시선마저 장삼태를 향해 쏟아졌다. 정보를 가지고 온 자가 아직 제대로 입을 열지 않았으니, 이 사태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함이다.
장삼태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모르겠는뎁쇼?”
“…….”
장삼태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오문의 정보통을 이용하여 들은 것이다. 하오문 역시 아직 조사 중이었고 그 흉수를 알아내지 못하였으니, 장삼태가 그 외의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아니,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요? 제가 알아내려 했던 것도 아니고 저는 그냥 하오문 놈들이 말해 준 것을 전달한 것밖에 없습니다요.”
“네놈한테 뭘 기대하는 게 아니지, 암.”
“큼…….”
“…….”
사도학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장삼태의 말 또한 틀린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단순히 들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느니, 하오문이 모른다면 장삼태 역시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사도학이 고개를 돌려 단우현을 바라봤다.
“가 볼 거냐?”
“흥미가 생기지 않는구나.”
“금왕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단우현은 잠시 생각했다.
사실 금왕수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 역시 재미있을 것 같기는 했다. 단순한 유희라 여긴다면 못 할 것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다.
기이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마음을 거세게 흔들었다.
그렇기에 단우현은 포달랍궁으로 가는 여정이 그리 내키지 않았다.
“아니, 내키지 않는구나. 우린 호남으로 간다.”
“궁금하긴 한데 말이지.”
사도학이 신음을 삼켰다.
포달랍궁을 무너트린 존재.
그 강자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흔들었다. 그러한 이가 있다면, 또다시 붙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괜스레 호승심이 든 것이다.
하지만 단우현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혼자 가 보는 것 역시 재미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단우현의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도학은 이내 ‘에이!’ 하며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뭣들 해? 빨리빨리 안 해?”
사도학의 날카로운 눈빛에 장삼태가 고개를 숙이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심기 불편한 그를 건드려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 * *
날은 어둡고 달빛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은 어느새 점점 그 세기를 더했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며 이 고요한 밤을 더욱 정적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걷고 있는 땅마저 질퍽했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발이 축축하게 젖었다.
“크윽!”
진흙에 중심을 잃은 비천웅이 크게 휘청였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자세를 바로잡을 것이었지만, 지금 그의 상황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온몸의 뼈가 박살 난 것 같다.
기실 이렇게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발악하며 덤볐기에 내공 역시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야말로 당장 숨이 끊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홀로 고독하게 남아 있는 비천웅은, 외로움과 싸우며 버텨 내야 했다.
어디인지 모를 곳.
얼마나 걸어왔는지 어디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살기 위해 무작정 말을 타고 달렸다.
끼니를 챙기지도 못한 채 몇 날 며칠을 달렸지만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다. 어느덧 힘이 다한 말이 쓰러지자, 이제는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 한없이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한 곳에 멈춰 섰다.
커다란 나무가 있다.
비를 피하기에는 마땅치 않았지만, 비천웅은 그 거목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하아, 하아…….”
내뱉어지는 숨결이 거칠다.
비천웅 정도나 되는 고수가 이렇게까지 숨이 거칠어졌다면, 이는 목숨이 오락가락할 정도의 중상을 입었음이 분명했다.
“꼴 좋군…….”
비천웅은 중얼거리며 실소를 지었다.
눈앞이 급격하게 흐려졌다.
배고픔과 추위가 맹렬하게 그를 자극하며 흔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보다 더욱 그를 흔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외로움이다.
천애 고독이 이런 느낌일까?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외로움이 몰려들었다. 아플 때 누군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하던데, 지금까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지금 비천웅이 그러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혼자였다.
왜 태어났는지, 누가 부모인지, 어디서 버려졌는지 알지 못했다. 철이 들었을 때는 작은 마을 지주의 종살이를 하고 있었다.
온갖 학대를 당했다.
때론 남색을 일삼는 지주에게 몸을 바쳐야 할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살심이 일었던 것은.
그것이 그의 처음이었다.
작은 부엌칼 하나로 지주의 목을 갈라 살인을 한 것은.
도망치는 것 역시 여의치 않았다. 쫓아오는 포졸들을 따돌리다 생사의 고비를 넘긴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왜 이렇게 자신에게 모진 것일까, 왜 살아야 할까 하는 자괴감이 일었다.
그러다 ‘그’를 만났다.
새하얀 수염을 지닌 채 자애롭게 웃는 자. 뻗어 오는 손길은 자비로웠으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라고 말을 해 주는 그의 한마디와 온기는 아직까지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비천웅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그를 따랐다.
그리고 그 선택이 비천웅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천무제는 무수히 많은 어린아이를 모아 놓고, 커다란 미궁과도 같은 곳에 가둬 칼을 쥐여 주었다.
그것이 비천웅이 태어나 두 번째로 쥐는 칼이었다.
지주의 목을 베었던 부엌칼과는 너무나도 다른 무게감.
그 철검 한 자루에는 생명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이제는 살기 위해 칼을 휘둘러야 했다.
손에 묻은 피는 더 이상 씻어 낼 수 없다. 그곳에는 친우란 말은 존재치 않았으며, 오로지 살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칼을 휘두르고 목숨을 담아야 했다.
그렇게 오 년.
수백은 될 법한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고, 비천웅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순간, 비천웅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그저 비정한 살인자로서 다시 태어났다.
천무제는 그런 그를 보며 웃었다.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비급 하나를 건넸다.
무신도경.
그것을 익히고 오로지 천무제를 위해 살아온 지 수십 년.
이제는 칼을 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비천웅은, 그저 고독을 곱씹으며 그렇게 죽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그를 괴롭히는 것은 머릿속에 남겨진 채 사라지지 않은 명령 하나.
단소미를 죽여라.
천무제의 명령은 죽는 순간까지도 비천웅을 괴롭히고 그의 숨통을 잇게 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비천웅이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 순간.
쏟아지는 빗줄기가 어느새 멈춰 버렸다.
“괜찮아요?”
또랑또랑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어느 누구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던 그가 번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여아가 있었다.
아이는 손에 쥔 우산으로 비천웅을 씌워 주며 걱정스레 물었다.
시선이 떨린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순진무구한 그 눈빛이 더없이 자애롭게 비천웅의 마음을 흔들었다.
“넌…….”
힘겹게 말을 내뱉는 순간, 시야가 어두워지며 암흑 속으로 그의 정신이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