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21
“그래……? 도망갔다?”
객잔으로 돌아온 단우현은 복부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사도학을 바라봤다.
심각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지만, 천하의 사도학이 입은 상처이니 상대의 수준이 그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하지만 그놈도 무사하지는 못했을 거다.”
사도학이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완벽한 승리라고 생각했었다.
애초에 살황 따위는 그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고작해야 살수 나부랭이 따위가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보다 오히려 검황이라는 이름이 그에게는 더욱 무거웠다.
그 때문에 눈앞에 있었음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단박에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여겼다.
또한 살황 비천웅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 역시 한몫하고 있었던지라, 지거나 혹은 제압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
상처를 입었음에도 비천웅의 움직임은 사도학을 따라잡았다.
무수히 많은 상처를 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밀리지 않았다는 것만 보아도 정상적인 몸이었다면 오히려 사도학이 밀렸을지도 모른다.
“망할 새끼!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음지에 숨어 있었단 말이지?”
“…….”
단우현은 화를 내는 사도학을 지그시 쳐다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얕보고 있었던 상대에게 당한 것이라 볼 수 있었기에, 사도학의 입장에서 울분이 터지는 것 역시 사실.
만약 반대 입장이었다면 단우현 역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였나?”
“그래! 정상적인 상태에서 붙었다면 오히려 졌을지도 몰라. 마지막 일검은 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분통을 터트리며 손을 내지르자, 쾅! 하며 벽장이 부서졌다.
그만큼 사도학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 것이다.
오늘 이후로 그가 가지고 있는 살수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했다. 살황 비천웅은 암습은 물론이고 정면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생각을 하니 더욱 짜증이 솟구쳤다.
“그래서 네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시선을 돌린 사도학이 날카롭게 단우현을 쏘아봤다. 그가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비천웅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우현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약 반 시진이 지난 뒤였다.
시간을 생각해 본다면 비천웅은 이미 이 마을을 떠나 어디론가 사라졌을 정도였으니, 더 추격해 본다 한들 의미가 없었다.
“확인할 것이 있었다.”
“이거 때문에?”
거칠기 짝이 없는 말투와 시선으로 사도학이 침상에 누워 있는 한 아이를 바라봤다. 미약하게나마 숨결을 잇고 있는 아이.
당장 죽지는 않을 것 같지만 보는 순간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흉측한 몰골이다.
또한 역한 냄새마저 진동한다.
마치 시취가 온몸에 배어 버린 감각이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퍼지고 있으니, 그만큼 곤혹스러운 상황이 또 없을 것이다.
“비천웅이 데리고 있었던 아이지? 이 아이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을 죽인 건가?”
“알 수는 없지만…… 그러지 않았을까 싶군.”
“흠…….”
단우현이 가만 아이를 바라봤다.
흉측한 몰골이기는 하지만 재능이 있다.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다면 능히 대성할 만큼 뛰어난 인재다. 또한 오감 곳곳이 깨어 있는 탓에, 당장 무예를 익힌다면 능히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월등한 실력을 보이게 될 것이다.
“뭘 하려고?”
“키울 셈이다.”
“네놈이?”
사도학은 단우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단소미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것인지, 어린아이를 또다시 키우겠다는 말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애초에 다른 아이에게 정을 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단우현의 시선은 단소미를 바라보았을 때와는 많이 달랐기에, 사도학은 기른다 한들 단소미에게 주는 정만큼 이 아이에게 주지 않을 것을 알았다.
“무슨 생각으로?”
“무골이더군. 조금만 키워 낸다면 호위를 맡길 수 있을 거다.”
“……소미의 호위라.”
사도학이 흠- 하며 작은 신음을 흘렸다.
물론 단소미의 곁에는 많은 호위가 있다.
기본적으로 백호와 백묘가 그러하였다. 두 영물의 실력이라면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단소미가 해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할 것이다.
영물은 본디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해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물.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현재 호남단가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언제 어디서나 붙어 있을 수 있는 호위가 단소미에게 있어야 하는 것 역시 당연한 사실이다.
사도학은 그 점을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무골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네놈이 무공을 가르칠 것은 아니지 않냐?”
“적당한 것을 찾아 던져 주면 될 일이지. 어떤 걸 익혀도 대성할 그릇이다.”
“무슨 생각이냐, 네놈?”
“아무것도.”
사도학이 힐끗 단우현을 바라봤다.
괜한 말을 할 놈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떠한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장삼태에게도 자신의 진신절기를 가르치지 않았던 놈이 어린아이를 길러 무예를 익히게 하려 하다니?
사도학의 입장에선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실 호위를 생각한다면 홍진랑이 더욱 알맞을 것이다.
“아- 모르겠다. 네놈 생각이니 네놈이 알아서 할 테지.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들고 있는 그것 말이다.”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사도학이다.
단우현은 어떠한 말조차 하지 않았으며 또한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이 자리는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보다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단우현의 손에 쥐인 한 자루의 칼이다.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검.
아니, 검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단검이라 해야 할까?
검보다는 짧고 단검보다는 기니, 중검이라 말해야 조금 더 정확할 것 같았다. 넓은 공간이든 좁은 공간이든 언제 어디서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검은 진득하게 피를 머금은 것인지 칼날에서 혈향이 퍼졌다.
오랫동안 피를 머금은 검이다.
한두 명을 베어서는 이런 기세가 나오지 않는다.
틀림없이 비천웅의 검.
어째서 그것을 단우현이 쥐고 있는가?
“아무리 봐도 비천웅 그 개자식 것 같은데?”
“현청에 있더군.”
“그 말은 그놈 것이 맞는다는 거냐?”
“그래.”
단우현은 가만 그 검을 살폈다.
날카롭기 그지없다.
세상 모든 보검들을 가져다 놓는다 한들 이것만 할까?
어떤 검과 부딪친다 한들 결코 부러지지 않을 것 같았으며, 날조차 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과 현령이 합작하여 대장간을 불 지르고 그곳에서 회수한 비천웅의 검이다. 단우현은 이것을 얻기 위해 꽤 오랫동안 수소문을 하고 다녀야 했다.
가져오는 데 제법 공을 들이기는 했지만, 그 어떤 뒤탈조차 나지 않으리.
홍원창의 이름을 팔지 않더라도 그 정도 능력은 단우현에게 있었다.
“마을 새끼들도 그렇고 현령 놈도 그렇고…… 하나같이 썩어 빠졌구먼?”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들에겐 이것이 당연할 테지.”
“하, 참…… 그걸 또 이해하고 자빠졌네! 아주.”
사도학이 쯧쯧 혀를 찼다.
아무리 단우현이라 해도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며 수긍하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사도학은 호남으로 돌아간다면, 홍원창을 족쳐서라도 이곳 현령을 작살 내겠다 다짐했다.
“그건 그렇고 엄청난 명검이군. 마을 사람들이 눈을 뒤집힐 만해. 이 정도라면 능히 한 마을 정도는 살 수 있을 거다.”
“그렇지.”
단우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검을 살피며 웃음을 지었다.
검면에는 기이한 문장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지그시 지켜봤다.
마치 어딘지 모를 종교를 섬기는 것 같은 느낌.
혹은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
칼날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번뜩였고,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며 손에 쥔 이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악함이 묻어날 지경이었으니, 사도학은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단우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천무제의 검이니 당연하겠지.”
그리 말을 하며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 * *
“커억……!”
비틀거리던 비천웅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최후의 일격.
간신히 중상을 피하고 역습을 가하였다고 생각을 했지만, 사도학의 마공은 쉽사리 비천웅을 놓아주지 않았다. 다 낫지 않은 상처를 쑤시며 그의 정신을 좀먹고 있다.
당장 운공을 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마공에 집어삼켜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망할…… 늙은이……!”
빠득!
주저앉은 비천웅이 이를 갈며 사도학을 떠올렸다.
그런 곳에서 만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기습적인 한 수에 선공을 내준 것 역시 비천웅답지 못했다. 본디 기습과 선제공격은 그의 특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단소미를 바라보는 순간 흔들린 마음과 그가 내뿜는 마기를 통제하기 위해 상대에게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일은 없었다.
비천웅은 언제나 냉정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헤쳐 나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다.
그런 이가 흔들렸다는 것은, 그만큼 충격을 받았다는 말.
‘어째서?’
비천웅은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 죽어 가던 어린아이와 곤히 자고 있던 단소미의 얼굴이 번갈아 가며 그려지고 있었다.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쪽이 욱신거렸다.
‘고작 어린아이이거늘…….’
지금까지 많은 아이를 봐 왔다.
실제로 눈앞에서 아이를 죽인 적도 있다.
그는 언제나 비정하고 냉정하며, 천무제의 명령이라면 그의 칼날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고작해야 두 명의 어린아이 때문에 칼이 흔들렸다고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실소가 흘렀으며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에 쥔 흙바닥을 꾹 쥐며 화를 토했다.
목표가 바로 눈앞에 있었음에도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단우현이라는 이를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기회는 절대 흔치 않을 것이란 것 역시 비천웅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실책은 더욱 뼈저리게 다가왔다.
또한…….
‘검마저 잃고 말이 아니군…….’
비천웅은 고개를 돌렸다.
저 먼 곳에 마을의 불이 보였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에 불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되돌아가려 한다면 반 시진 안에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비천웅은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미 한 차례 들쑤신 곳이다.
호남단가의 인물들이 없다면 다시금 돌아가는 것 역시 가능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단우현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응당 그 역시 경계를 할 터.
괜히 돌아가 봐야 뼈조차 추스르지 못하리라.
그것을 알기에 비천웅은 더욱 허망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오늘만큼 탈이 많은 날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은…….
‘몸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검을 되찾는 것도, 단소미를 죽이는 것도 몸이 정상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천무광의 한 수와 사도학의 한 수를 얻어맞고도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비천웅은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않고 걸었다.
조용한 숲속으로 그 모습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