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23
“이놈들……!”
상황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사방에 깔린 이들의 수는 어림잡아 수백 명은 될 것 같았다.
하나하나 일류를 오가는 고수들이었으며, 그들이 상대하는 것은 같은 무림인들이 아니다.
무공조차 모르는 일반인들을 베어 죽이고 있으니, 그야말로 일방적인 살육을 벌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졸들이 나서며 어찌어찌 막아서고 있기는 하지만, 폭풍처럼 진격하는 혈천 무리들을 죽이기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쪽이다! 이쪽으로 숨어라!”
홍원창은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죽어 가는 이들을 눈앞에 두고 검 한 번 휘두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깝지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역할이 있는 법이다.
비록 검을 휘두를 만큼 강하지는 못하나, 홍원창은 그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사…… 살려 줘-!”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홍원창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봤다.
몰려든 혈천 무리들 사이로 한 사내가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혈천은 마치 사냥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달려들며 그 칼을 휘둘렀다.
서걱!
평범하기 그지없는 백성의 머리가 날아올랐다.
그 피가 땅을 적시니 그 광경을 바라본 순간, 저도 모르게 울화가 치솟았다.
“이놈들!”
“아…… 안 됩니다! 현령!”
곁에 있는 포졸들이 격하게 홍원창을 만류했다.
칼을 쥐고 덤벼 봐야 시체가 된다.
그만큼 상대의 강함은 그들과 격이 다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곳에서 홍원창을 잃을 수 없는 포졸들은 그를 뜯어말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 이곳은 저희가…… 어…… 어서 가십시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놈들이 어찌 저것들을 이긴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목숨보다 현령님 한 분의 목숨이 더 귀한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개소리냐고 그게!”
홍원창이 화를 냈다.
사람의 목숨에 귀하고 천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과거 홍원창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따랐을 법한 상황이지만, 단우현과 함께 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배운 홍원창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포졸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외우고 있을 정도로 속이 깊어졌으며, 자신의 목숨보다 백성과 수하들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겼다.
“차라리 함께하자꾸나!”
홍원창이 검을 뽑으며 포졸들과 나란히 섰다.
죽음이 무섭기는 하다.
그것은 홍원창은 물론이고 포졸들 또한 마찬가지다.
죽음마저 초월할 정도의 용맹한 인간이 아니라면, 누구라 한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떨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은 실로 큰 용기를 쥐어짜야 하는 영웅의 면모였다.
“혀…… 현령님……!”
“에이! 시끄럽다, 시끄러워! 어차피 지켜 내지 못한다면 주군께 맞아 죽을 텐데 목숨 따위 뭐가 대수더냐! 저놈들과 동귀어진할 생각으로 버텨라!”
“알겠습니다!”
포졸들이 크게 소리를 치며 창대를 쥐었다.
자신의 옆에 현령이 서 있다.
한때는 따른다는 것도 우스울 정도로 악인이나 다름없는 자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진심으로 그를 따르게 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그를 보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악양 땅에 사는 많은 사람이 말을 한다.
악양의 영웅 군자검과 마천군이 있다면 무엇 하나 무서울 것이 없다고.
하지만 포졸들은 달랐다.
지금 자신들 앞에 나타나지 않은 군자검과 마천군보다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함께 검을 쥐고 서 있는 현령이야말로 진정한 이 악양의 영웅이리라.
“막아라-!”
쩌렁쩌렁!
홍원창의 외침이 하늘을 진동시킬 듯 울려 퍼졌다.
동시에 혈천 무리가 그를 향해 쏟아졌다.
* * *
모든 이들이 강 건너 불구경을 하며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악양에 찾아왔던 낭인들은 물론이고, 명문정파의 인물들마저 섞여 있었다.
악양 저잣거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
그곳에는 약 몇 년 전부터 세워져 있는 다루가 있다.
이 다루는 한때 악양에서 제법 유명했던 부호가 세워 놓은 것인데, 그것이 약 일 년 전 한 무리의 손에 들어갔다.
그것을 아는 이들은 없었으며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악양 최고의 정보 단체 중 하나인 하오문은 물론이고, 가끔 보이는 거지 패들 역시 이들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주인이 바뀐 것은 그만큼 은밀하였으며, 또한 점원들 역시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서거걱-!
“커어억!”
“끄아악!”
하지만 점소이 한 명 한 명, 심지어 차를 나르는 여인들까지 칼을 쥐는 순간 느껴지는 기도가 달라졌다.
몰려드는 혈천의 기세를 단박에 꺾어 버리고, 그 목줄을 끊어 냈다. 완벽한 검술은 물론이며 한 수 한 수가 뻗어 나가는 순간, 막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넘실넘실 뿜어내는 마기(魔氣).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마교도이다.
“이거 어쩌지?”
한 사내가 툭툭 검을 털어 내며 혀를 내둘렀다.
사도학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었지만, 호남단가는 그들이 지키기에는 턱이 너무나도 높은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 뒤 다루를 사들여 머물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때아닌 혈천의 등장에 그들 역시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대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며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모른 척 넘어가야 하는지.
하지만 아무리 봐도 모른 채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교주께서 아니 계신다. 이대로 있다간 호남단가까지 피해가 갈 테지.”
“거긴 아무도 없잖아?”
“장원이 부서진다면 웃으며 끝날 일이 아닐 거다.”
“…….”
“그렇긴 하지.”
그들은 신음을 삼켰다.
단우현이라는 인간의 힘을 가장 먼저 눈앞에서 확인한 것은 다름 아닌 마교였다.
천마각 전체를 날려 버린 공력은 지금 떠올려도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런 이가 머무는 곳이 호남단가.
만약 그곳이 부서지고 있었음에도 막아 내지 않았다고 한다면, 단우현의 분노가 그들을 향해 뻗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궁세가가 있어요.”
한 시녀 복장의 여인이 창밖을 바라보며 가볍게 비수를 내던졌다.
벽을 타고 오르던 이의 얼굴에 비수가 틀어박히며 쓰러졌다.
“으음, 정파 놈들은 내키지 않는데…….”
“우리 교주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는 곳이다. 정파 새끼들과 힘을 합치는 건 내키지 않지만 일단 저 빌어먹을 놈들을 밀어내고 생각하도록 하지.”
마교도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병기를 주섬주섬 챙기며 고개를 돌렸다.
저잣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 소리가 격렬하게 들려왔다.
“이 무리를 이끄는 놈이 있을 거다.”
한 사내가 중얼거리며 칼을 쥐었다.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습격해 왔다고 한다면, 응당 이 무리를 이끄는 이가 있기 마련.
그러나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신중하거나 혹은 실력이 그리 대단치 않을 것이다.
사내가 마교도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찾아라.”
이윽고 가장 중요한 말을 입에 담았다.
마교도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숙였다.
사도학이 없는 지금 가장 높은 이는 눈앞에 있는 사내였고, 그의 말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 *
“엄청난 숫자로구먼, 제길!”
남궁십육검(南宮十六劍).
사람들은 소림의 십팔나한, 무당의 칠검, 남궁에는 십육검이 있다고 말을 한다.
누가 강하냐 묻는다면, 종이 한 장 차이라 말할 정도로 이들의 실력은 능히 한 문파를 압도할 정도이다.
그런 남궁십육검의 수장 남궁한중은 인상을 썼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혈천의 수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 많은 이들을 베어 낸 것 같았지만 지쳐 가는 자신들과는 다르게 저들은 팔팔했다.
불리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무공을 모르는 이들을 지키며 싸워야 하는 자신들과는 다르게, 혈천은 보이는 족족 칼을 휘둘러 죽이려 드니, 여러모로 이 싸움은 힘들기만 하였다.
그들은 어느새 땀이 흥건해졌다.
숨은 거칠고 공력 역시 바닥을 보인다. 이대로 일각 정도 시간이 더 흐른다면 누구 하나 버티지 못한 채 쓰러질 것이다.
“이것 참 곤란하지 않소, 형님? 저놈들을 피해서 안휘에서 여기까지 넘어와 숨어 있었는데, 결국 저놈들과 싸우다 뒈질 것 같구려.”
“가주님이 이곳만큼은 안전하다 하셨는데 말입니다.”
“……애초에 우리를 데리고 가시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게 안전하다고 생각하진 않으신 겁니다.”
한 여인이 한숨을 폭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들 가주의 성격을 모르느냐며 한숨을 토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남궁세가 최대 전력 중 하나인 남궁십육검을 혈천과의 싸움에 데려가지 않았다. 이는 이 악양에 혹여 있을지도 모르는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바로 지금처럼.
“하지만 너무 많은데?”
남궁한중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단순히 몇 명을 막아 내는 것 따위는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남궁세가의 전력은 십육검만이 아니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소 곤란했다.
상당히 많은 수가 몰려들고 있었으니까.
“조심해라!”
퍼걱!
느닷없이 혈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로 칼을 뻗어 한 사내의 목을 가르려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든 암기가 미간에 꽂혔다.
깜짝 놀란 십육검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시꺼먼 흑의를 입은 이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망할…… 저 새끼들은 왜 또 저기에 있어?”
“누구죠? 저는 처음 보는데?”
“마교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참살 부대다. 듣기론 마황이 직접 키웠다고 하더군.”
“헐…….”
“흑우(黑雨)…….”
“검은 비라는 이름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놈들이지.”
“하하하.”
흑우대(黑雨隊).
느닷없이 나타난 그들을 보며 십육검들은 신음을 삼켰다. 이 악양 땅에 저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저들은 마교 최고의 참살 부대.
오래전, 무림맹에서도 나름대로 힘이 있는 중소 문파 한 곳이 있었다.
문도들의 수만 하여도 오백이 넘었으며, 만금상단과도 관계가 좋았던 탓에 무림맹 내부에서도 그들을 무시하는 이들은 없었다.
당시 그 문파는 마교와 관계가 무척 좋지 않았는데, 마황 사도학은 흑우대를 보내 고작 한 시진 만에 오백을 몰살시켰고, 그 이름을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저기…….”
서거걱!
그때, 가장 막내인 남궁은이 칼을 휘둘렀다.
달려 들어오던 혈천의 몸을 베자 그 피가 흥건할 정도로 바닥에 쏟아졌다. 털썩 쓰러지는 이들을 보면서도 혈천 무리는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떠드는 건 나중에…….”
“아, 그렇군.”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단 해볼까?”
남궁십육검이 눈을 반짝 빛냈다.
마교도들이 나타났기에 잠시 당황을 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악양 땅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하여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니, 딱히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지금은 전력으로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