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27
호남단가.
혈천의 패악질을 막아 내고 그 이름을 떨치고 중원무림 위에 우뚝 선 곳.
중원의 이목이 쏠리며 사실상 정사 연합이나 혹은 마교라는 거대한 단체들보다 더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곳.
천하제일세가(天下第一世家).
이제는 이러한 이름이 어울리는 그 커다란 장원에는, 무수히 많은 이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단우현과 사도학이, 또한 옆으로는 장삼태가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다.
무천풍은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양, 먼 거리에서 그저 응시하며 흥미로운 시선만을 보내고 있었다.
“남궁 가주란 자가 그런 소리를 했다?”
“에…… 예, 혈천과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악양에 머물고 있으라고…….”
단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세가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다. 남궁천이 악양에 있고 또한 혈천이 언제 안휘를 습격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남궁십육검의 대장 남궁한중은 차마 단우현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이는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천하의 사도학이 눈앞에 있다.
마황이라 떠받들어지며 온 중원을 호령했던 자.
오황이라고 말을 하지만 남궁천의 말을 들어 본다면, 단우현의 등장 전까지 사실상 천하제일이었던 이가 바로 사도학이다.
그런 이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 정도였는데, 그런 사도학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이 호남단가의 주인.
심지어 오황이라 불리는 넷을 품고 있는 이.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단우현이 눈앞에 있다.
그의 말 한마디라면 남궁세가 따위는 단숨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하지만 단우현은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그저 가만 남궁한중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다른 쪽이다.
무릎을 꿇은 채 맨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자들이다. 그 수는 고작해야 서른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는데, 하나하나 그 기도가 남궁십육검과 비등하거나 그 이상이었으며, 그들만 가지고도 구파일방 중 하나 정도는 능히 작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 앞에 있는 사도학의 눈빛은 험악했다.
차마 얼굴을 들고 쳐다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네놈들은?”
지금까지 마교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단우현이 물음을 던졌다. 머리를 박고 있는 마교도 모두가 몸을 움찔하며 겁을 먹은 것 같았으나, 누구 한 명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단우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사도학을 바라봤다.
“누구냐고 묻잖냐, 이 새끼들아!”
“저희는 대마교의 참살 부대 흑우(黑雨)입니다!”
흑우라는 말에 단우현이 힐끗 사도학을 바라봤다.
그가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끝내주는 이름이로군…….”
“커컴…….”
사도학이 차마 단우현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했다.
그 역시도 그리 좋은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의 이름을 지은 것은 동방구였으며, 사도학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탓에 얻어진 것이다.
“그래, 그 참살 부대가 이 악양 땅엔 무슨 일이냐?”
“…….”
단우현이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여전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한마디가 귀를 파고드는 것은 분명할진대, 이들은 마치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것 같았다.
“어쭈? 대답 안 해? 이 썩을 것들 보소?”
퍽퍽!
장삼태가 기가 산 표정으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수박 깨지는 소리가 격하게 들려왔으나, 흑우대 누구 하나 신음을 내는 이들이 없었다. 꾹 참아 내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도 아프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때리는 장삼태가 지친 것 같았다.
“헉…… 헉, 자…… 장주님, 이 새끼들 완전 독종입니다. 소리 한 번 안 내는뎁쇼?”
“재미있구나.”
비록 완성된 심공은 아니지만 장삼태는 천무제가 만들어 놓은 천일조화공을 익힌 자다. 마공과는 극을 이루고 있으니, 약간의 내력을 섞기만 해도 어느 정도의 타격은 먹힐 것이다.
그런데도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는 것은 저들의 근성이 악바리보다 더하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장삼태의 몽둥이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질릴 정도로 무서운 독종이들이었다.
남궁십육검조차 혀를 내둘렀다.
그때, 단우현이 슬쩍 발을 놀렸다.
쾅!
고작해야 발을 내딛는 행동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땅이 순식간에 융기했고, 이내 몰아치는 파도처럼 마교도들을 순식간에 덮쳤다.
콰다다당-!
서른 명은 족히 되는 이들이 엎어지며 날아갔다.
누구 하나 버티고 서 있는 존재들이 없었다.
“끄아아악! 삼태 살려!”
그에 휩쓸린 장삼태는 벽에 머리를 부딪친 채 신음을 삼켰다. 모든 광경을 눈에 담은 남궁십육검은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이 어찌 사람의 무공이라 할 수 있는가?
“크으윽!”
“윽……!”
지금까지 장삼태의 몽둥이질에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던 이들이 고통을 내뱉으며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그다음 행동이 더욱 기이했다.
아프다 소리를 지르며 땅을 뒹굴고 있는 장삼태와는 다르게, 그보다 더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움푹 파이고 헤져 있는 땅에 다시금 하나둘 머리를 박기 시작한 것이다.
“억…… 미…… 미친놈들…….”
“헐…….”
“도…… 독종…….”
무천풍과 장삼태, 남궁한중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저들의 행동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단우현마저 어이없는 시선을 사도학을 바라봤다.
그제야 사도학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똑바로 앉아라.”
“존명!”
쩌렁쩌렁-!
단우현의 한마디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자들이다. 꿈쩍은커녕 입 한 번 열지 않았던 이들이 사도학이 말을 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숙였다.
마치 사도학의 말 이외는 듣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장삼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단우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장주님 말이 개소리로 들리는 모양입니다요.”
“…….”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이르는 것처럼 속삭이는 장삼태는 뒤이어 따라오는 단우현의 날카로운 시선에 어깨를 움츠리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마교 놈들 욕하려다 저승 문턱 밟을 수 있음을 깨우친 것이다.
“네놈들이 악양에 온 이유를 설명해 봐라.”
그때, 사도학이 자연스럽게 단우현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물었다. 단우현이 묻는다 한들 대답을 해 주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심각한 상황임에도 사도학은 히죽히죽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무언가 이 상황이 무척 좋은 것 같았다.
“주군을 보필하는 것이 저희 역할입니다. 그밖에 다른 이유가 어찌 있겠습니까?”
“하-참, 내가 생각해도 애들 하나는 잘 키운다니까. 봐라, 충성심 하나 끝내주지?”
사도학이 단우현과 무천풍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마치 ‘네놈들에겐 이런 듬직한 이들은 없지?’ 하며 놀리는 것 같았다.
반박하고 싶었던 것인가?
단우현이 작은 신음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장삼태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렇군.”
“아니, 잠깐만요, 장주님! 이 삼태가 장주님 하면 얼마나 껌뻑 죽는데 그러십니까? 제 충성심을 의심하십니까요?”
“아니, 이봐! 수하 따위 없어도 괜찮아! 저런 거 안 만들어도 잘 먹고 잘 살잖아? 애초에 봉급 주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
장삼태와 무천풍이 무언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단우현과 사도학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쯧쯧 혀를찼다.
“그래서, 이 악양에서 뭘 하고 있던 거냐?”
“…….”
“뭘 하고 있었냐고, 이놈들아!”
“다루를 운영하며 악양 전체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혹여 주군께 폐가 되는 이들이 있다면 은밀히 제거하고 뒤처리를 하려 했습니다.”
“크으…… 이 충성심 보소.”
“…….”
단우현의 시선이 다소 삐딱해졌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 보지만 계속해서 장삼태와 비교가 되었다. 차라리 장삼태가 아닌 권무진이나 마장강을 데리고 있었으면 그나마 덜 비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괜스레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상을 썼다.
“어찌할 셈이냐? 내보내라 하면 내보내겠는데……?”
“한데, 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로군.”
“주군의 곁이 저희가 있을 곳입니다.”
한 사내의 말에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주군의 명령은 절대적이라 말을 한 것은 저놈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런 주군이 내린 명령을 무시하겠다는 소리인가?
“주군의 명령은 절대적이라 하지 않았더냐? 궤변이군.”
사도학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였지만, 저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소리인지도 모른다.
이미 천마직위를 내려놓았다고는 하지만, 마교의 입장에선 아직도 살아 있는 주군이었으며 또한 흑우대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충성심 높은 이들로 구성된 자들이다.
응당 사도학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을 터다.
저들은 오로지 사도학을 지키고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태어나고 살아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동방구와 사도학이 애써 종적을 감추어 놓았기에 쫓아오지 못하였으나, 이제 그 장소를 알았으니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도학의 입장에서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뭐, 저놈들 없었으면 우리도 곤란해졌을 테니까…….”
“그렇군…….”
단우현이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호남단가가 가진 전력으로 모든 것을 지켜 낼 수는 없다. 이번과도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었다.
혈천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 뒤에 천무제가 버티고 서 있으니, 단소미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많은 편이 좋았다.
단우현이 지그시 남궁십육검과 흑우대를 번갈아 바라봤다.
마치 무언가를 놓고 재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이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남아라. 지금처럼 조용히 산다면 신경 쓰지 않을 테니.”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궁한중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거듭 인사를 건넸다. 만약 단우현이 쫓아낸다면 당장 갈 곳이 없어진다. 남궁용의 명령이 따로 있을 때까지는 이 호남에 머물러야 하는 처지이니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이 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반대로 흑우대는 예를 갖추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마치 이러한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사도학이 허둥지둥 입을 열었다.
“네놈들도 들었으면 돌아가라. 가서 얌전히 있어!”
“존명!”
사사사삭-!
흑우대들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한 줄기 몰아친 바람이었다.
그것을 가만 바라보고 있던 단우현의 시선이 사도학을 향했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 기가 찬다는 눈빛이었다.
사도학은 차마 단우현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때, 장삼태가 입을 열었다.
“싹퉁바가지에 소면을 말아 처먹었나, 이 새끼들. 마교 새끼들은 원래 고마운 줄도 모릅니까요? 살려 줬더니 인사 한번 없이 가네. 콱 그냥!”
장삼태가 빗자루를 들고 위협적인 행동을 보였다.
명령만 있으면 당장 쫓아가 머리통을 쪼갤 것 같았다. 뒤이어 사도학의 매서운 눈빛이 쏟아지자 장삼태가 허둥지둥 단우현을 바라봤다.
“틀립니까요, 장주님?!”
“아니, 오랜만에 네가 맞는 말을 하는구나.”
“거 보쇼!”
득의양양하며 사도학을 바라보는 장삼태의 모습에, 단우현은 오랜만에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만족스레 웃음을 지었다.
이 순간, 마교 놈들의 충성심보다 장삼태가 더 멋지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