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31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악양에 들어선 비천웅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골목에서 주변을 바라봤다. 혈천의 습격 탓에 악양 전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곳곳에 보이는 하오문 패거리들의 모습은 낯선 이를 경계하고 있음이 확실해 보였다.
하여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또한 목표를 보호하는 이의 실력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하여도 위협이 남아 있을 것이다.
스르륵.
비천웅의 몸이 허공에 녹듯 사라졌다.
어느새 그는 가장 높은 곳 지붕 위로 올라섰다.
이런 곳에서 기척을 죽이고 있는다면, 다른 이들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고도 주위를 확실하게 둘러볼 수 있을 터였다.
“단소미…….”
비천웅은 몇 번이나 그 이름을 되새김질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손에 피를 묻힌 것이 아닌, 누군가를 구해 주었다.
그런데 그 목숨을 다시 자신의 손으로 거두어야 하니 망설임 또한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해내야만 한다.
천무제가 그에게 내린 은혜는 잔정 따위에 흔들릴 만큼 옅지 않았다.
또한, 그를 배신한 순간 기다리는 것은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망설임은 이내 사라져 갔다.
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것이 살황 비천웅이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비천웅은 허리에 찬 검을 매만졌다.
이 칼날로 그 자그마한 어린아이의 심장을 꿰뚫어야 한다. 비천웅의 마음이 다소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때였다.
사아악-!
느닷없이 기척이 느껴졌다.
비천웅의 시선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곳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온몸에 흑의를 걸친 자다. 얼굴마저 보이지 않았으며, 그 무서운 눈빛만이 흉흉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설마, 천제(天帝)를 배신할 생각은 아닐 테지, 비천웅?”
“…….”
비천웅은 상대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천무제의 꼭두각시 중 하나.
어찌하여 그가 이곳에 있단 말인가?
비천웅이 긴장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같은 방법으로 자랐다 하여도 엄연히 실력의 고하가 있는 법이다.
비천웅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암영에게 이겨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인가?
암영을 바라보고 있는 비천웅의 눈에는 경계심과 투지가 깃들었다.
“걱정하지 마라.”
“……잊지 마라.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같은 명령인가?”
비천웅의 말에 암영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되었기에 비천웅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고작해야 어린아이.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기에 비천웅과 저 사내, 둘이나 보낸 것인가?
비천웅은 그 사실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눈앞에 있던 사내의 몸이 순식간에 스르륵 사라졌다.
보고 있었음에도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늦을 정도다. 만약 그가 마음먹고 비천웅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면, 결코 막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살수로서 나보다 뛰어난 자다.’
비천웅은 주먹을 쥐었다.
떨리는 손을 다잡으며 호흡을 삼켰다.
그의 기척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반드시 단소미를 죽여야 한다는 압박감.
천무제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의 명령을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결심.
그러한 감정들 사이에서 비천웅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순간, 한 아이의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죽어 가던 아이.
지금쯤 썩어 사라졌을 테지만 그 눈빛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떠올리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렇다고 흔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비천웅이 이를 갈며 칼을 쥐었다.
그때,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저건?”
익숙한 어린아이의 모습.
홀로 악양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비천웅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며 그림자 속으로 그 종적을 감추었다.
* * *
“으음-.”
홀로 악양 거리에 나와 있는 단소미는 당과를 먹으며 그저 걷고 있었다.
본디 호남단가에서 악양까지의 거리는 상당한 바, 어린아이 혼자서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먼 거리에서 백호와 백묘가 호위하고 있다. 그렇기에 혼자 나가는 것을 허락한 단우현이었다.
열심히 백호의 등을 타고 악양에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주지약은 집에 일이 있어 나오지 못하였고 홍진랑은 오늘 수련을 받는 날이었다.
또한 여은월은 고된 훈련 탓에 열이 나 있으니, 결국 어느 아이와도 어울릴 수 없었다.
지난번 보았던 유백이라는 아이를 찾기 위해 저잣거리를 두리번거렸지만, 그 역시 다른 일이 있는 것인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단소미가 지루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나?”
누구도 듣지 않지만 혼잣말을 해 봤다. 이래야 조금은 외로운 마음을 달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아 있는 당과를 전부 입에 집어넣은 단소미는 저잣거리 여기저기를 구경하다 지루한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아빠와 낚시를 하는 것도 괜찮겠는데?”
그제야 할 일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낚시를 하는 거다.
그만큼 재미있는 게 또 없다.
누가 더 큰 물고기를 잡는지 내기를 하고, 이기면 원하는 것을 사 달라 졸라 봐야지, 하며 키득거렸다.
벌써부터 이겼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기실, 단우현과 함께 낚시해서 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길은 여느 때와 같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백호를 부르지는 않았다. 오늘따라 날씨가 굉장히 좋은 탓에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소미는 악양을 빠져나와 걸었다.
숲길을 걷는 것은 매우 위험할 테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점이, 단우현의 딸이 맞기는 맞는 것 같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담이 무척 좋아 보였다.
그렇게 단소미는 이리저리 주변을 구경하며 다시금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 * *
그러한 단소미의 뒤를 따르는 이가 있었다.
비천웅.
거리는 약 사십 장.
상당히 먼 거리이기는 하지만 그의 경공이라면 단박에 줄일 수 있었다. 순식간에 저 심장에 몸을 꿰뚫는 것 역시 지금 그에게 있어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망설이고 있었다.
단소미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흔들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걷고 있는 아이다.
순진무구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환한 웃음은, 비천웅의 마음마저 치유하는 듯했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비천웅은 몇 번이나 다짐했다.
죽여야 한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비천웅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단소미를 바라봤다. 하지만 차마 아이를 향해 내달릴 수는 없었다.
질끈 눈을 감은 비천웅이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단검을 날렸다.
쉑!
쏘아져 날아간다.
그 속도는 가히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다.
거리를 좁히며 날아가는 단검은 상대의 심장을 꿰뚫고 튀어나올 정도로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어? 이건 뭐지?”
사악!
그때, 단소미가 주저앉았다.
아이의 머리 위를 단검이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캉!’ 하는 소리가 미약하게 울려 퍼졌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숨어 있던 또 다른 이 때문이었다.
-무슨 짓이냐?
전음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단소미를 노리고 있었던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 비천웅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암영은 느닷없이 날아오는 단검을 쳐 내며 살기를 뿜었다.
-시…… 실수다.
-…….
비천웅이 전음을 날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어찌나 이리도 교묘한 순간일까?
단검이 머리를 꿰뚫고 지나가려는 순간 주저앉은 것은 천운이었고, 그것이 뻗어 나가 숨어 있던 암영을 견제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우연이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비천웅은 마음을 먹고 내달렸다. 입술을 꽉 깨물고 손에 쥔 검에 힘을 주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이 구해 낸 그 아이가 아니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며 일검을 날린 것이다.
단소미의 머리 위로 비천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을 휘두르려는 찰나.
캉-!
또다시 암영의 칼날과 부딪쳤다.
비천웅과 암영이 동시에 서로를 마주 봤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
단소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위를 바라보는 순간, 두 사람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몸을 감추었다.
“응? 뭐지?”
단소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위를 올려다봐도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무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백호마저 조용하지 않은가?
착각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며 나무 밑에 있는 버섯을 주섬주섬 챙겼다.
“장 아저씨한테 요리해 달라고 해야지.”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처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단소미는 그저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와 다르게 비천웅은 신음을 삼켰다.
먼 거리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은 틀림없는 살기.
그것도 비천웅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방해할 셈이냐?
-……방해한 건 네놈이다.
-죽고 싶은 게로군.
암영은 벌써 두 번이나 견제를 받았다.
자연히 비천웅이 자신들을 배신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하여 살기는 더욱 짙고 날카롭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천무제를 배신하는 순간 금제가 작동하게 되어 있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을 보니 역시 착각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아가씨-!”
어디선가 커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비천웅은 물론이고 암영 또한 고개가 돌아갔다.
처음보는 아이가 빠르게 달려와 단소미 앞에 멈춰 섰다.
“하아하아…… 호…… 혼자 나가셨다고 해서 까…… 깜짝 놀랐어요.”
여은월이었다.
“응? 열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왜 나온 거야?”
“그야 아가씨가 나가셨으니 걱정돼서…….”
“아이…… 참.”
단소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열이 상당했다. 당장 걷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도 소화하지 못하고 토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걱정되어 쫓아왔다고 하니, 단소미는 괜스레 미안해졌다.
“헤헤헤, 미안해!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아프면 내가 옆에 꼭 붙어서 간병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 아가씨…….”
도란도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것은 먼 거리에 있던 비천웅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의 시선이 파르르 떨리고 눈동자가 커졌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째서…… 살아 있는 거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태연하게 단소미와 함께 있다니?
결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온몸이 떨려 왔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의 머릿속을 뒤흔들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정리가 되기도 전에.
아이들의 머리 위로 시꺼먼 천이 펄럭였다.
비천웅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나아간 그의 칼날이.
촤락-!
정확히 암영의 옷을 가르고 위협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비천웅의 직접적인 공격에 암영의 눈이 더욱 게슴츠레 변하였고, 손에 쥔 검은 망설임 없이 비천웅을 향해 뻗어지려 했다.
크와아아앙-!
그때, 호랑이의 거센 포효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