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34
사도학은 들려오는 고함을 귀에 담으면서도 담담하게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불안에 떠는 장삼태와 매향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장원에서 고문을 할 줄은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있는 곳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탓에 그 소리가 거기까지 퍼져 나가지 않는다는 것 정도일까?
“뭘 하고 있는 거냐? 일들 봐라.”
“아…… 알겠습니다요.”
장삼태와 매향이 사도학의 서슬 퍼런 시선 탓에 고개를 돌리며 부리나케 자리를 옮겼다. 마치 이 자리에 더 남아 있다가는 결코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만큼 사도학이나 단우현의 심기가 좋지 않음이다.
그렇게 약 일다경.
괴성을 내지르는 비천웅의 목소리가 더 들리지 않게 되었고, 뒤이어 끼익 하는 문소리와 함께 단우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덤덤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그의 눈빛에는 어딘지 모르게 복잡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감정이란 것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이인지라, 사도학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흉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사도학은 작은 신음을 삼키고는, 날카롭게 방 안을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소미를 죽이려 한 놈이다. 결코 이런 식으로 일을 끝내서는 안 된다. 그 흉수마저 잡아 갈아 버려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내가 해볼까?”
고문이라면 자신 있는 사도학이 씩씩거리며 팔을 걷어붙였다.
허락만 떨어진다면 당장 들어가 비천웅의 주리를 틀어 버릴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단우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말 명령만 실행하는 인형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줄 모르는 녀석이지.”
“그 말인즉…… 키워졌다는 거냐?”
사도학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천웅이 누구인가?
이 중원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절대 강자이다. 그런 이를 키워 낸 이가 있다? 그런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결론에 도달해 버렸다.
“그래.”
“누가? 설마 또 혈마?”
“아니다.”
혈마와 무신의 이야기는 이미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또한 지금까지 이 중원에서 수많은 난동이 일어난 것은 혈마와 혈천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또다시 그들과 엮일 것이란 생각에 지긋지긋한 인연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는데, 단우현은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부정했다.
마치 혈마 위에 더욱 큰 놈이 있다는 듯 보이는 표정.
“천무제다.”
“천무제? 뭐야, 그놈은 또?”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자가 실제로 등장한 것은 이 중원이라는 기본 틀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던 때.
무신의 전설로 시작된 것이 중원이라 한다면, 천무제는 그보다 더 오래전 사람이니 어떤 전승조차 내려오지 않는 자였다.
실제로 단우현 역시 팔선의 우두머리라는 것밖에 알지 못할 정도였으니, 완벽하게 감춰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아…… 네놈은 도대체 적이 얼마나 많은 거냐?”
“글쎄……. 온 세상이 적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군.”
“몇 년 전 이야기냐?”
사도학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단우현이 활동을 하고 있었을 때가 천 년 전이었으니, 그의 적이라 한다면 응당 천 년 전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결국, 천무제라 이름 붙은 이 역시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닐 터.
사도학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말이야. 예전에는 전승 같은 걸 잘 안 믿었거든. 그런데 말이야. 네놈을 알고부터는 옆집에 용이 살고 있다 해도 믿을 것 같다.”
“…….”
“집 안에는 백호랑 백묘가 있고……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있고…… 천 년 전 인간이 셋에…… 참나, 이걸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사도학의 표정은 마치 무언가에 질린 사람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 시점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꿈과도 같은 이야기였으며 또한 결코 믿을 수 없는 현상들이라 할 수 있다.
천 년 동안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말을 했다간 어디 가서 사기꾼 소리 듣기 딱 좋았다.
“강하냐?”
사도학이 힐끗 단우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기실 가장 궁금했던 것이기도 하다.
물론 천하오황 중 한 명을 키워 낸 자이니 그 강함은 당연할 테지만, 단우현과 비교하여 얼마만큼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래.”
“어느 정도로?”
“글쎄…… 조금 비등하거나 조금 떨어질 테군.”
“……!”
단우현이 잠시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천무제와 몇 번 부딪쳐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강함을 예측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단 한 번도 지지않고 이기기는 하였으나, 천무제가 가진 힘은 무공보다 사술 쪽으로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이다.
혈마에게 사술을 가르친 것 역시 천무제다. 어쩌면 지금은 더욱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 녀석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보통 놈이 아니겠군.”
“그 수하들 또한 강할 거다.”
“나보다?”
“보지는 않았지만…… 저자가 고작 인형이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을 테지.”
천하오황이라 불린 이가 고작해야 인형 노릇이라?
그렇다면 천무제라 불린 이의 밑에는 오황이라는 이름을 상회하는 존재들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어쩌면 지난번 보았던 천무광 정도 되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천무광 또한 그쪽이다.”
“……!”
사도학은 게슴츠레 눈을 좁혔다.
마교의 역사를 쓴 자.
한때는 삼천의 일인.
단우현과 각별한 사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던 이가 배신을 했다는 충격보다는, 그 정도에 인물이 고작해야 부려지는 처지에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도학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삼켰다.
만약 그러한 이들에게 습격을 받는다면?
사도학은 채 일다경조차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 사도학은 저도 모르게 씩 웃음을 지었다.
“역시…… 중원은 재미있어!”
더 높은 곳을 향한 마음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언제나 가장 위에 있는 자리에서 아래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사도학은, 실제로 자신보다 더욱 지고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있음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의를 다짐한 그의 눈빛은 더없이 반짝였다.
“해볼 생각은 하지 마라. 죽을 테니.”
“……?!”
단우현의 말에 사도학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지금까지 많은 말들을 들어 본 그였으나, 이번만큼 자존심이 상하는 말은 없었다.
* * *
혼절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비천웅은 눈을 떴다.
정신이 멍하고 팔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온몸의 뼈가 조각조각 난 것 같은 엿 같은 감각에 휩싸인 채 눈알만 굴려 주변을 둘러봤다.
“살아는…… 있군.”
또다시 이러한 말을 뱉을 줄이야.
비천웅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조소를 머금었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는 것인지.
심지어 단우현의 고문은 그조차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안겨 주었기에,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면 모조리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뱉었나?’
단우현은 비천웅의 삶 전체를 알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천무제를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가 명령들을 어찌 수행하였는지, 또한 무엇을 해 왔는지.
어떠한 의미조차 알려 하지 않은 채 그저 명령만을 수행해 온 비천웅은, 단우현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털어놓아야 했다.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비웃음이 흘렀다.
수많은 훈련을 받아 왔다고 자부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비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단우현은 그러한 상식을 깨부숴 버렸다.
그 앞에서는 고문을 견디는 훈련 따위도 일체 소용이 없었으며,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그저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뱉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경험이다.
그렇게 작은 한숨을 내뱉은 비천웅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보려 애를 썼다.
극심한 고통에 장기마저 찢겨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을 보니 장기가 찢기거나 뼈가 부서진 것은 아닌 듯했다. 그저 단순한 착각.
단우현의 고문은 뼈를 부수지도, 장기를 찢어 버리지도 않지만, 그러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안겨 준다. 끝없는 어둠 속에 사람을 몰아세우는 방식인 것이다.
비천웅이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한번 호흡을 골랐다.
천천히 감각을 되찾는다.
발끝에서부터 손끝까지.
하나하나 정신을 집중하며 움직이려 노력을 하니,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감각들이 하나둘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약 반 시진.
비천웅은 드디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제일 먼저 내공을 확인해 보았다.
온몸을 충만하게 감돌던 느낌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운공을 하고 싶으나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몸 상태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던 비천웅은 그제야 자신의 심장을 조이던 감각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금제가…… 사라졌어.”
느끼기는 했었다.
하지만 단우현이 주는 고통이 너무나도 컸던 탓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어린 시절부터 느껴 왔던 천무제의 금제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가 존재하기나 했었던가?
‘천무제가…… 어찌하여 단우현이라는 존재를 그렇게 신경 쓰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군…….’
비천웅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그는 단우현이 어떠한 존재인지 알지 못한다. 단지 천무제가 견제하는 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유일하게 천무제를 죽일 수 있는 이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한 비천웅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키고 있는 이들은 없는 것 같았다. 하긴, 굳이 지키지 않아도 이곳에서 난동을 부릴 수 있는 이는 없을 거다.
단우현도 그렇지만 사도학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의 경비는 철통과도 같은 것이다.
“큭!”
고통을 참아 가며 비천웅이 자리에서 일어난 까닭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은월의 생사였다.
하지만 비천웅은 이내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 침상에 주저앉았다.
지금 그 아이를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죽었다 하면 마음이 아플 것이고, 살아 있다 한들 해 줄 말이 없다.
그 아이에게 두 번이나 상처를 입혔고, 피 묻은 자신의 손으로는 위로를 해 줄 수도 없었다.
기실 이러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이다.
비천웅은 언제나 마음을 죽이고 살았는데, 단소미를 만난 뒤부터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털어 내고 싶으나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쉿! 조용히 해.”
“정말로 이곳이에요?”
“진짜라니까.”
그때, 밖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비천웅이 문 쪽을 바라봤다.
아무리 감각이 온전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하여도, 누군가가 접근할 때까지 눈치를 채지 못하다니? 비천웅은 자신이 너무 깊게 생각에 잠겼음을 인정하며 인상을 썼다.
이윽고 끼익 하며 문이 열렸다.
눈빛이 보였다.
한 쌍의 눈빛이다.
겁을 집어먹은 것인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망설이는 시선. 그 눈빛이 힐끗힐끗 비천웅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이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시선이 비천웅의 시야를 자극했다.
이윽고.
“괜찮아요,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틀림없이 한때나마 비천웅의 목표였던, 그리고 처음으로 그가 구해 준 어린아이의 목소리와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