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35
단소미가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기실 장삼태와 매향의 행동,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괴성 탓에, 이곳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하고 있었던 찰나다.
그러나 사도학이 서슬 퍼렇게 눈을 뜬 채 지켜보고 있었기에, 차마 안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눈치만 살피게 된 지 다시금 이틀 정도가 흘렀다.
빠르게 회복한 여은월은 어느새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며, 덕분에 이곳을 확인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혼자보다는 둘이 있는 것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하지 않던가?
단소미가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섰다.
뒤를 따라 여은월이 어정쩡한 자세로 단소미 곁에 달라붙어 있었다.
걸을 수 있다 하여도 모든 상처가 아문 것은 아니다.
기실 이렇게 단소미를 따라 움직이는 것 역시 상당히 무리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자리에 따라서 온 것은 단소미에게 끌려왔기 때문이기도 하나, 이곳에 비천웅이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했기 때문이다.
“아…… 안녕하세요.”
여은월이 어수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한때나마 함께 살았던 이를 대하는 행동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비천웅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두 번이나 만났다.
또한, 아직도 죽어 가는 여은월 앞에서 보인 비천웅의 눈동자를 잊을 수 없으니, 어린 마음에 괜스러운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 살아 있었구나.”
비천웅이 여은월을 바라보며 물었다.
기뻐해야 하는지 아니면 애써 마음을 죽이고 모른 척해야 하는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솟구쳤다.
어떤 말을 더 해 주어야 할까?
비천웅은 갈등하며 숨을 삼켰다.
“아저씨, 세 번째네요!”
그때, 단소미가 자연스럽게 침상에 걸터앉았다. 사람을 죽이는 비천웅의 손길 따위는 조금도 무섭지 않다는 듯이 침상을 탁탁 두드리고는 싱긋 웃었다.
“세 번…….”
“네, 처음 만났을 때 한 번…… 이곳에서 한 번…… 그리고 이전 번에 한 번이요. 아저씨랑 저랑은 구해 주고 구함을 받는 운명인가 봐요.”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 한마디가 비천웅의 마음을 쑤셨다.
죽이려 했다.
아니, 죽여야 하는 아이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비천웅은 감사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이 아이를 구한 이유 역시, 천무제의 명령을 따르던 도중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었던가?
딱히 구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혹은 이 아이의 천운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왜 구하려 했는지 아직도 알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자, 단소미는 비천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린아이의 손길이 그의 손에 닿았다.
“고마워요!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다들 어찌 되었을지…… 아저씨는 틀림없이 저희 생명의 은인이에요.”
“……!”
비천웅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와 그의 머리를 장악했다. 저도 모르게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러고는 이내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앗! 아저씨 우는 거예요?”
단소미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비천웅은 손을 들어 올려 볼을 매만졌다. 축축한 무언가의 감촉이 손에서부터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며 놀라워했다.
‘눈물?’
태어나 지금까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던가?
없다.
비천웅은 언제나 고독하고 살아남아야 했기에 눈물을 흘릴 여력조차 없었다. 아등바등 몸부림을 치는 그에게 그러한 것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눈물이라니?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상황이 비천웅의 메마른 감정을 자극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지금 자신의 꼴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우스웠다.
* * *
“…….”
“왜 그냥 보고만 있는 거냐?”
사도학은 지그시 지켜만 보고 있는 단우현을 향해 물었다. 자칫 단소미가 상처 입을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가만 내버려 두는 그의 모습이 달갑지 않았다.
애초에 비천웅의 목표가 단소미였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던 탓에, 사도학은 마치 경계하는 것처럼 시선을 떼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당장 달려가 비천웅의 목을 틀어 버릴 태세였다.
“인형에게도 마음이 있는가 해서 말이다.”
“하, 고작 그런 이유로 애들을 위험에 빠트려?”
“걱정하지 마라. 공력은커녕 칼을 휘두를 힘도 없을 테니까.”
기력을 찾았다 하여 바로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천웅은 지금, 칼을 쥐는 것은 물론이고 일어서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상처도 상처이지만 단우현이 온몸에 사지 근맥을 만져 놓은 탓이 컸다.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그래서, 저 녀석이 개과천선할 것 같기는 하냐?”
“글쎄, 모를 일이지.”
피식 웃음을 짓는 단우현을 바라보며 사도학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고문을 하며 입을 열려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또 품에 안으려 한단 말인가?
당최 단우현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안쓰럽더냐?”
“……그냥 예전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오호…… 저 녀석이?”
사도학은 과거 단우현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내뱉은 한마디로 단우현이 과거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모든 상황이 같다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메마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두 사람은 몹시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뭐, 네놈 결정이니 뭐라 안 하겠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거다.”
“그래.”
사도학은 마기를 풀풀 풍기며 툴툴거리고는 이내 등을 돌렸다.
사도학이 걱정하는 것은 다른 이들 또한 능히 염려할 문제였다.
한 번은 칼을 겨눈 상대이지 않은가?
하지만 단우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오래전이라 해야 할까?
어수룩한 장삼태를 처음 만났을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도 틀림없이 칼을 들고 단소미를 향해 덤볐었지?
때에 따라 적이 아군이 되고 아군이 적이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이지만, 어쩌면 비천웅은 장삼태만큼이나 단소미에게 충성을 다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란도란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에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일 텐데도, 비천웅은 아무런 군말 없이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단우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조금 더…… 단단하게…… 저 아이가 편히 살 수 있도록…….”
그러한 소리를 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의 생각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그저 단소미가 이 세상을 조금 더 편히, 그리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단우현이 가지고 있는 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기실 이미 천 년 전 끝난 단우현의 삶과는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단우현은 몇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
“주산군도라…….”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잠시 흐릿해졌다.
살기가 깃든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몇 번이고 그 말을 되뇌며 머릿속에 새기고 어떤 결심을 하는 듯했지만, 반면 머릿속에서 그것을 지워 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모든 복잡한 심경이 단우현을 자극했다.
“주산군도는…… 그리 추천드리지 않아요.”
“알고 있었나?”
그녀는 밤하늘을 가르며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궁장을 온몸에 걸치고 아홉 달린 꼬리를 흔들어 대며 매혹적인 모습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무릇 남자들이 저 여인이 얼굴을 보는 순간, 단박에 빨려 들어가 모든 것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전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어요.”
여인은 신음을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혈마를 피해 도망 다니다가 우연히 주산군도까지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지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처참한 곳이었다. 오히려 혈마에게 쫓기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고수들은 하나같이 강했으며, 기척 또한 상당히 민감하여 숨는 것 역시 여의치 않을 정도였다.
“그곳은 천무제가 제 꼭두각시들을 만들기 위한 곳. 그만큼 경계가 삼엄하고 강한 자들도 있죠. 그곳을 건드린다는 것은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같아요.”
“이미 하지 않았느냐?”
“천무제가 당신에게 한 것은 선전포고라 생각하기 어려워요. 정말로 단소미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비천웅이 아닌 다른 이를 보냈을 테죠.”
누구보다 무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가 천무제다. 심지어 혈마와 혈천의 일로 호남단가의 전력이 모조리 드러난 이상, 비천웅 혹은 그 비슷한 수준으로는 단소미를 죽일 수 없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비천웅을 보낸 이유는 단순한 경고와 위협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었다.
“아니, 이것은 틀림없는 나에 대한 선전포고다.”
단우현의 눈빛에 살기가 깃들었다.
자신을 건드리는 것은 괜찮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한 삶을 살아왔으니, 또다시 피로 물든 길을 걷는다 해도 망설임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단소미는 아니다.
유일하게 찾은 아이.
삶이라는 것이 공허하고 허무했던 단우현을 붙잡고 현실을 보게 했던 아이.
여전히 밝은 웃음으로 곁을 지키고, 마음의 지주가 되어 한결같은 모습을 보내고 있는 저 아이에 대한 칼날은 곧 단우현이 다시금 칼을 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인은 그런 단우현을 가만 바라봤다.
이윽고 슬쩍 등을 돌렸다.
조소를 날리는 것처럼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었다.
“어쩌면 지금 그런 당신의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그런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참 좋아하겠네요. 지금 당신의 모습, 소미가 보면 말이죠.”
그런 말을 남기며 훌쩍 몸을 날렸다.
어디로 가는지 말조차 하지 않는다. 가볍게 날아오른 몸이 가뿐히 지붕을 밟고 올라서서 담장을 타고 넘어갔다. 본디 자유로운 성격이었던 그녀가, 울타리 속에 갇혀 있을 리 만무하니, 다시금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우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그는 마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한참 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
이윽고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그가 하늘을 바라봤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구나.”
여인의 말이 비수처럼 와닿아 가슴에 꽂혔다.
모든 것을 정리할 생각으로 홀로 여정을 떠나려 했던 단우현의 발목을 붙잡는 한마디였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지만, 그보다 더욱 그를 붙잡은 것은 계속해서 그려지는 단소미의 얼굴이다.
떠나고 싶지 않다.
그러한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장성한 단소미는 앞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다른 이들은 또 어떨까?
과거에는 누구의 삶에도 관심이 없었던 그였으나, 지금은 다른 감정들이 계속해서 그를 자극했다.
단우현이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지며 마음먹은 대로 몸이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 복잡한 심경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저 달빛을 바라보며 하나하나 생각을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