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38
비천웅은 연무장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이나 감각을 곤두세웠다. 바람이 스치는 것을 느끼고 내뱉은 숨결마저 그 바람결에 맡기는 듯했다.
휘날리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그 흔들림 사이로 나뭇잎이 떨어져 넘실넘실 춤을 췄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감각을 검에 실은 비천웅이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몸을 움직였다.
사악-!
한 번의 칼질.
그 움직임을 실제 눈으로 새길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만큼 신속하고 정교한 검술이었으며, 어느 누구라 한들 흉내를 낸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춤을 추던 나뭇잎들이 반으로 갈라져 툭 떨어졌다.
“와아-!”
“아…….”
그 광경을 눈에 새긴 단소미와 여은월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사람의 움직임이라 할 수 없는 것을 보고 있으니 경악성을 터트릴 만하였지만, 단소미는 그저 재미있는 광경을 본 것처럼 손뼉을 쳤고, 여은월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이었다.
“지랄은…….”
연무장 바닥을 쓸고 있던 적무성과 장삼태가 쯧쯧 혀를 찼다. 할 일이 그렇게 없는 것인지 어린아이를 데려다 기이한 것을 보여 준다.
장삼태는 불가능한 신위일지 몰라도, 적무성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능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비천웅만큼은 정교하지 못할 것이다.
살수로서 단박에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익힌 그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검술을 펼치기 때문이다.
“나뭇잎이…… 두 개로 갈라졌어요.”
“……그래, 앞으로 네가 해야 할 것들이다.”
“제가…… 말인가요?”
여은월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비천웅을 올려다봤다.
사도학에게 무공을 배우기는 했지만 천마신공은 아니었다.
그저 기본 틀을 익히게 한 것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니, 단소미의 호위를 하기 위해서는 더욱 고강한 무예를 익혀야 했다.
거기서 비천웅이 나섰다.
여은월과의 인연도 인연이었고 그 역시 제자를 키워 보고픈 마음이 있었다.
이런 기회를 그냥 날릴 이가 아니니, 여은월을 잘 키워 반드시 한 사람 몫을 해내는 무인으로 만들어 낼 심산이었다.
“비연검, 흑살검, 단검술, 비도술, 암살, 심지어 독과 기습에 특화된 모든 것들…….”
“…….”
들려오는 소리에 적무성이 힐끗 비천웅을 바라봤다.
양손에는 단검을, 허리에는 한 자루의 검을 차고 있다.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곳에 날카로운 한 수들이 숨겨져 있다.
특히 손목에서 뻗어 나오는 칼날은 누구도 쉽게 예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네게 주마.”
“아저씨…….”
“강해지거라. 두 번 다시 같은 꼴을 겪고 싶지 않다면…….”
비천웅은 지금 벌어진 모든 것들을 나쁘게 생각지 않았다. 단소미를 죽이려 한 것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었지만, 결국 단우현에 의해 금제가 풀렸으며 그는 여전히 이 장원에 남아 있다.
있을 곳이 없는 비천웅에게 장소를 마련해 준 것이 단우현이다.
그러한 이에게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기 위한 방도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고된 수련이 될 거다. 그래도 하겠느냐?”
비천웅의 말에 여은월은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여은월은 자그마한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아이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반짝 빛을 냈다.
“그래…… 다행이구나.”
비천웅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의에 찬 아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틀림없이 고되다는 것을 절로 느끼고 있을 텐데도, 여은월은 조금도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것으로 비천웅은 자신의 할 일이 정해졌다.
저 아이를 천하에 손꼽는 강자로 만들어 내는 것.
삶에 새로운 동기가 부여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 * *
“이것이 전부입니다.”
천도회.
하남을 되찾은 정도 무리들은 혈천 본 각 가장 꼭대기에 천도회의 깃발을 휘날리며 그 위엄을 드러냈다.
정도무림이 이 중원 땅을 되찾았다는 자부심과도 같은 깃발이기에, 많은 이들이 환호하며 또한 그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사파 놈들…… 엄청난 돈을 요구하는군…….”
“예상했던 일이 아닙니까?”
“그렇지.”
천도회주인 팽도웅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정사가 연합하여 혈천을 쫓아냈다고는 하지만, 그 뒤처리가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다.
회수한 혈천의 자금을 나누는 일부터 꼬이기 시작하니, 팽도웅의 머리는 당장 터져 나간다 한들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보다 사천당가 쪽은 어찌하고 있는가?”
제갈현이 잠시 신음을 삼켰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한 모양이다. 하지만 팽도웅이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해 보라는 듯이 표정을 짓자, 한숨을 내쉰 제갈현이 입을 열었다.
“천도회의 실권 대부분이 사천당가로 넘어갔습니다.”
“그럴 테지…… 예상했던 일 아닌가?”
“예, 아마도 곧 구파일방과의 물밑작업이 끝나는 즉시, 새로운 천도회주를 올리려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이 당 어르신일 테고?”
제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천하제일세가라 불리며 온 무림인들이 추앙하는 호남단가는 천도회의 일에 간섭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사휘만큼 영향력 있는 이를 찾을 수 없으니, 그가 새로운 천도회주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팽도웅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무림을 위해서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막을 수 있는 것은 남궁세가뿐일 텐데…….”
“이미 아시다시피 남궁세가와 황보세가는 공식적으로 천도회 탈퇴를 선언하였고, 심지어 남궁세가는 본가를 안휘에서 악양으로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
“호남단가와의 인연 때문일 테지.”
“예, 그래 보입니다.”
“후우…….”
팽도웅이 한숨을 쉬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
그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 세상의 황제는 따로 있거늘 자그마한 권력을 취하려는 이들은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이것을 좋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쁘게 받아들여야 할지.
팽도웅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대는 어떠한가?”
“예?”
“제갈세가 또한 호남단가와 인연이 있지 않은가?”
제갈현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남궁세가만큼 깊지는 않다. 또한 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곳을 버리면서까지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으며, 제갈현은 그저 새로운 무림의 시작을 제 눈으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마음이 표정에서 드러나는가?
팽도웅이 피식 웃었다.
“자네나 나나 똑같군.”
“하하.”
“자, 그럼 다음 문제를 들여다보도록 하지. 북해인가?”
한참 동안 웃음을 짓고 있던 제갈현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혈천의 문제가 사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커다란 일이 벌어졌다.
“예, 급작스런 북해빙궁의 몰락은 심상치가 않습니다. 특히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에서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라 생각하는가?”
“……사실 현 상황만 놓고 보자면 호남단가 이외에는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만…….”
“그렇지…….”
“시기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또한 호남단가에게 그런 짓을 벌일 만한 사적인 이유 역시 드러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단체…… 라?”
“그리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 봅니다만…… 시신을 확인한 이들이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한 사람의 짓이라고 말입니다.”
“……!”
팽도웅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단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번 혈천 일처럼 그러한 존재들이 또 없으리라는 보장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북해빙궁을 멸문시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들을 모으게나. 이 일을 상의해야겠네.”
“알겠습니다.”
* * *
천무광이 멈춰 선 곳은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다.
주위는 그야말로 폭풍이 온 사방을 뒤집어엎고 지나간 것처럼 모든 것들이 부서져 있었다. 이미 백골이 되어 버린 시체들 역시 가득했다.
사람들이 이곳을 치우지 못하고 내버려 둔 것은 장백산 아주 깊숙이 있는 곳인 데다, 많은 이들이 이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마어마하군.”
천무광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단우현 혼자 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다.
혈마를 죽이기 위해서라지만 그의 칼에 고흔이 된 시체들의 수를 생각해 본다면, 설령 천무광이라 하여도 오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찌하여 천무광은 이곳에 와 있는 것인가?
“먼지도 장난 아니고……. 어휴, 찾으려면 한참 걸리겠는데?”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한때나마 혈마가 머물었던 곳.
이제는 그 잔재만이 남아 과거의 흔적을 보여 주고 있기는 하지만, 천무광이 이곳에 온 것은 단순히 구경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리저리 잔재들을 치우며 움직였다.
가장 큰 본 각이 있는 거리까지 상당하여 한참을 움직여야 했다.
다 무너져 버린 것은 본 각 역시 마찬가지다.
혈마가 이 자리에서 죽었음을 보여 주는 듯한 흔적들마저 있었는데, 기이한 것은 혈마로 추정되는 뼈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슴츠레 눈을 뜬 천무광이 그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여전히 혈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기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슬쩍 손을 휘둘렀다.
콰콰쾅!
무너진 본 각 주변에 있던 잔재물들이 이리저리 날아가 다른 곳에 부딪히며 떨어졌다. 어느새 훤한 바닥만이 남아 있는 곳을 지그시 살펴보며 천무광은 주먹에 힘을 주었다.
쾅!
내려치는 것과 동시에 바닥이 크게 흔들렸다.
밑은 빈 공간이었는지 한쪽에 구멍이 생겼는데, 천무광은 마치 처음부터 그것을 찾고 있었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그럼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닌 그 혈마다.
비밀 통로 하나 만들어 놓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본디 기이한 짓을 자주 하는 놈일수록 여러 가지를 만들어 놓는 법이다.
천무광은 그 안으로 들어섰다.
휑한 공간 사이로 눅눅한 냄새가 풍겨 왔다.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에는 불조차 비추지 않은 탓에 시꺼먼 어둠만이 가득하였는데, 마치 그 어둠조차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천무광은 안으로 파고들었다.
“냄새가 나.”
히죽 웃음을 지었다.
안쪽에서 역한 냄새가 가득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천무광은 문득 커다란 공간이 나옴과 동시에 쭉 기지개를 켜며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 있었냐?”
“오호…… 그대가 어찌 이곳을 알았는가?”
목소리가 들렸다.
시꺼먼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참으로 기괴했다. 심지어 고양이 눈처럼 빛나는 눈동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오싹하게 했다.
천무광의 눈에 보이는 이.
불과 얼마 전까지 보았던 그 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한때나마 서로 웃고 즐기며 떠들었으나, 끝내 칼을 겨누었던 친우.
젊은 모습의 그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곳에 있을 줄 알았다. 그런 걸로 날 속이려면 한참 멀었지. 속는 건 그년의 전매특허니 잘 속였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하하, 정말 예상 밖이로군. 그대가 올 줄 몰랐는데 말이야…….”
우득우득-!
천무광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더 게슴츠레 변했다.
“너, 무슨 명령을 받고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
“주둥아리를 찢어 버리기 전에 말해라. 태공진.”
천무광의 살기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