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4
“끄어억…….”
연달아 크게 충격을 받은 곡중은 허망하게 뒤로 넘어갔다.
큰 소리를 내며 엎어진 그의 모습은 제법 우습기까지 했다.
“헉, 헉……!”
장삼태는 그것을 바라보며 거칠게 호흡했다.
지금 이 상황이 마치 꿈만 같았다. 잔챙이도 아니고 가장 강해 보이는 놈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것이 말이다.
거칠게 뛰는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자신이 해냈다는 것이 도통 믿어지지 않는다.
“채, 채주님이 당하셨다!”
남아 있는 산적들이 큰 소리를 쳤다. 채주가 쓰러진 것이 그만큼 놀라웠던 탓이다. 장백산 정도가 아니라면 절대 질리가 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던 사람인지라 그 놀라움은 더 했다.
그들이 칼을 겨누며 장삼태를 향해 내달렸다.
그 순간.
퍽퍽-!
“끄억!”
“아아악!”
느닷없이 날아든 무언가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어디서 무엇이 날아왔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누가 공격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돌연 눈앞이 캄캄해진 그들의 의식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쯤 했으면 되었겠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단우현이 화살을 내던지며 손을 털었다.
“죽었다면서요?”
“하하, 이런 화살로 나를 죽이려면 적어도 백만 발은 필요할 거다.”
그가 화살 따위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은, 장삼태도 잘 알고 있었다.
장삼태가 털썩 주저앉아 호흡을 고르더니 씩 웃었다.
“제가 해냈습니다!”
“그래, 해냈구나.”
“와, 진짜 뒤질 뻔했네.”
“생사를 건 싸움이란 본디 그런 것이지. 직접 목숨을 걸고 싸워 보지 않는 이상, 두려움을 떨쳐 내지 못하고 위축되기 마련이다.”
장삼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 그 느낌을 확실히 인지했다.
당장 죽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다.
그렇기에 더욱 두려웠고, 죽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기에 휙 하고 시선을 돌려 단우현을 바라봤다.
“저 혹시 말입니다, 장주님.”
“뭐냐?”
“……제가 이기지 못하고 죽을 뻔했어도 도와줄 생각은 없으셨죠?”
“물론이다. 강해지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고수와 하수가 나뉘는 것이다. 너는 위급한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제법 잘 해냈다.”
단우현의 눈빛을 보고 그가 결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설령 목이 날아갈 것 같은 상황이어도, 단우현은 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홀로 일어서야만 진정한 무인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장삼태가 어색하게 웃었다.
도와주지 않는다고는 하였지만, 마지막에 전음을 날려 위급한 상황을 역전할 방법을 알려 준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직접 손을 써서 도와주지는 않아도 생존 방법은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그걸 못하면 죽는 거고, 해낸다면 강해지는 거고.
‘빌어먹을…… 병신 같지만 멋있어.’
분명 화가 날 법한 일인데도 장삼태는 화보다 당당한 단우현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그가 크게 한숨을 내쉬고 생각을 떨쳤다.
“곡중이라 했던가? 놈을 깨워 보도록.”
“예.”
장삼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곡중을 향해 다가갔다.
곡중은 무언가 얼굴에 것이 닿는 느낌에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흐리멍덩한 정신 속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쪼르륵-
입안으로 뜨뜻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굉장히 비리고 맛이 이상했다.
꿀꺽꿀꺽-
목 안으로 넘어가는 그 괴상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서서히 눈을 뜨자, 눈앞에 사내가 바지를 내리고 흉측한 물건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이로 노란색 무언가가 보였다.
순간 제정신이 돌아왔다.
“푸억!”
“오, 이제야 눈을 뜨는구먼.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기에 최후의 방법을 취했는데.”
기겁한 곡중이 허둥지둥 뒤로 물러나 봤지만 역겨운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다.
“켁켁……! 우웩!”
엊그제 먹은 음식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역질을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 서서히 진정한 곡중이 분노로 불타는 눈으로 장삼태를 노려보며 괴성을 내질렀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그러게 누가 안 일어나래?”
장삼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 이…… 이 미친 새끼가!”
“그쯤 해라.”
그때.
분위기가 느닷없이 가라앉았다.
들려오는 묵직한 목소리에 곡중이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수하들도 볼 수 있었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단우현과 시선을 마주치기 무섭게, 마치 지옥의 불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공포심에 휩싸였다.
곡중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처음 날린 화살을 맞고 나서 죽는다고 소리치며 엎어졌던 자 아닌가?’
“다, 당신은 누구…….”
“시간이 없으니 잡담은 이제 그만하도록. 그보다 네놈에게 물을 것이 있다. 이자를 아느냐?”
단우현이 품에서 한 장에 용모파기를 꺼내서 보여 주었다.
곡중은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눈을 치켜떴고, 이내 슬그머니 옆을 돌아보며 손가락질했다.
“여기 이자 아닙니까?”
“아니야, 이 시벌 놈아!”
버럭 소리를 지르는 장삼태를 보며 곡중은 움찔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십중팔구 눈앞에 있는 이자를 그려 놓은 게 맞았다.
그때, 작게 한숨을 쉰 단우현이 중얼거렸다.
“네놈의 수하들 몸에서 아편이 나왔다. 어디서 구한 것이지?”
“아, 아편이야 당연히…… 뒷골목에서…….”
피식-
단우현이 피식거리며 조소를 보였다.
그 소리를 들은 곡중이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농을 하자고 내가 이곳까지 온 것 같으냐?”
“아니요…….”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호랑이가 코앞에서 포효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거친 말이나 표현 등이 전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고, 고수!’
그것도 엄청난 고수다.
“하…… 하지만 제가 입을 열면 전 죽습니다요!”
단우현이 슬쩍 손을 내밀며 웃었다.
단순한 행동이었으나 곡중에게 그것은 마치 저승사자가 내민 손길과도 같았다.
“말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게 해 주마.”
그 말을 들은 곡중은 고민하지도 않고 얼른 대답했다.
“삼도회입니다!”
“삼도회?”
단우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장삼태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도 알지 못하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계속 설명해 봐라.”
“흑도회가 무너진 뒤로 숨죽이고 있던 놈들이 사방팔방에서 날뛰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흑도회라는 거대한 단체가 무너지자 숨을 죽이고 있던 자들이 날갯짓을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엔 흑도회가 사라지며 평화를 되찾은 듯 보이지만, 뒤에선 암약하는 세력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단우현이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런 놈들 중 삼도회라는 것들이 이 호남에서 활동하는데…… 아편은 물론이고 계집들까지 공급해 줍니다.”
“어떤 놈들이냐?”
“강합니다. 잡졸 하나까지도 무공을 익히고 있어서 저희들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거래할 때마다 복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도 모릅니다. 사실 저도 아편 따위에는 손 대고 싶지 않았는데, 놈들이 무력으로 우리 애들을 다 때려잡고 강매를 하는 바람에…… 그놈들의 말을 듣지 않아서 사라진 산채가 한두 곳이 아닙니다.”
곡중은 억울했다.
아편이 사람을 얼마나 망치는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일부러 손을 대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놈들이 강매를 하였다.
살기 위해서는 돈을 내고 아편을 살 수밖에 없었고, 비싼 아편 값을 마련하느라 더 자주 도적질을 하다가 단우현한테 된통 당한 것이었다.
“위치는?”
“저도 모릅니다. 달에 한 번씩 찾아오기는 합니다만, 언제 올지는 전혀…….”
단우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 같은 도적놈들 사이에 비밀을 지켜 준다는 의리 따위가 있을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놈들은 호남에서 활동하는 흑도회 같은 단체이고, 활까지 쏘는 산적들이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제법 높은 수준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말이었다.
“결국 이 새끼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네요?”
“거짓말은 아닌 거 같다.”
“에이! 그럼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대체!”
단우현이 고개를 돌려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곡중을 바라봤다.
“가지고 있는 아편 전부를 내놓아라. 계집들도.”
“예?”
“못 들었느냐?”
삭-!
가볍게 휘저은 손짓에 곡중의 앞섶이 날카롭게 잘려 나갔다. 그것을 본 곡중이 시퍼렇게 안색을 바꾸며 격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전부 드리겠습니다!”
* * *
악양에서도 상당히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허름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 있다.
갓을 쓰고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그곳을 둘러보며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몇몇 이들은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으나 간혹 하늘을 멍하니 바라본다든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신음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마치 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더…… 더…… 더 줘…… 더 필요해…….”
“으…… 으.”
딱 봐도 정상인 사람들보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이것은 비단 악양 내에서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보았던 호남의 수많은 마을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인은 그들을 뒤로 하고 걸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여인이 도착한 곳은 악양의 저잣거리.
무수히 많은 사람들 너머, 골목 곳곳에서 사내들이 우두커니 선 채 주변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여인을 발견했는지 재빠르게 골목 뒤쪽으로 사라졌다.
여인이 황급히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 순간, 미처 주변을 살피지 못한 그녀는 누군가와 부딪치고 말았다.
“아야!”
“괘…… 괜찮니?”
여인이 깜짝 놀라 아래를 내려다봤다.
자그마한 여아 한 명이 코를 매만지며 작게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생긋 하며 웃었다.
“소미는 괜찮아요. 언니는 괜찮아요?”
아이의 귀여운 얼굴을 확인한 여인이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