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47
“또 어딜 가셨어?”
“응.”
세 아이들이 도란도란 길을 걷고 있었다.
다소 풀이 죽어 있는 단소미 때문인지 주지약의 표정에는 걱정 근심이 가득하였다. 단우현이 사라지면 상당히 오랫동안 풀이 죽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러한 불안감이 작용한 것 같았다.
홍진랑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한마디를 할 때마다 주지약의 서슬 퍼런 눈빛을 받아야 했다.
홍진랑은 가끔 생각 없는 말로 단소미를 울려 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소미를 떼어 놓고 가다니 아저씨가 나빴네!”
“아니야. 내가 가지 않는 편이 좋은 일이라 그런 걸 거야.”
단소미가 손을 저으며 주지약의 생각을 부정했다.
물론 그녀가 진심으로 욕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자그마한 나쁜 말이라도 단우현을 향한 것이라면 듣고 싶지 않았다.
단우현은 단소미의 인생 그 자체다.
그가 없다는 것은 소미의 인생 또한 없는 것과 같다.
그 정도로 단우현을 따르고 있으니 그것이 어찌 보면 불안한 일이기도 했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버지도 툭하면 북경 가고 어디 가고 하지만 난 전혀 쓸쓸하지 않거든.”
그때, 홍진랑이 코를 후벼 파며 말했다.
홍원창은 항상 나다니기 바쁘다.
최근 들어 그 위상이 더욱 올랐기 때문인지 북경에 가는 일이 더 많아졌다. 많은 사람이 곧 중앙으로 불려 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말이 오갈 정도다.
물론 지금까지 쌓아 온 그의 업적들을 생각해 본다면, 응당 중앙으로 불려 갔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테지만, 그것을 막아 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주지약의 아버지다.
다른 현령이 온다 하여 홍원창만큼 잘 해낼 것이란 기대감이 들지 않았고, 그가 이 악양 땅에 있는 것만으로도 치안이 좋아졌다.
호남 일대에는 도적과 산적들이 많이 사라졌는데, 이는 홍원창과, 그가 언제나 도움을 청하는 호남단가 덕분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영친왕은 홍원창을 중앙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고, 그 결과 홍원창의 중앙 진출을 틀어막고 있는 셈이다.
홍진랑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힐끗 주지약을 바라보자 그녀가 생긋하며 웃었다.
“왜?”
“아, 아니.”
“흐음…… 그래? 그보다 오늘 은월이가 없네?”
“할아버지들과 수련 중이야.”
“윽…… 엄청 힘들겠는데?”
홍진랑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한때나마 호남단가에서 수련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지옥이라 할 수 있었으니, 어린 여자아이의 몸으로 그 모든 것들을 견뎌 내는 여은월이 대단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럼 할 것도 없으니…… 유백이네 집에 가 볼까?”
“그러고 보니 사는 곳만 알고 다른 건 모르네? 문파…… 라고 했던가?”
“세가라고 한 것 같은데?”
홍진랑과 주지약이 고개를 갸웃했다.
최근 들어 함께 다니는 아이이기는 하지만 사실 아직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고작해야 사는 집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어디서 왔는지, 왜 악양으로 들어왔는지, 그러한 의문이 많이 들었지만, 유백의 앞에 서면 기이할 정도로 모든 의문이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그 녀석, 약간 이상해.”
홍진랑이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썼다. 확실히 유백이라는 아이 자체만 놓고 본다면 잘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 착하긴 했다.
하지만 홍진랑은 그에게 아무도 모르는 뒷모습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가끔 보이는 표정이 무서운 탓이다.
“으음…… 가끔 그런 게 있기는 하지?”
“조금?”
주지약과 단소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걷다 사람과 부딪치는 순간 유백의 험악한 표정이 드러난다.
마치 벌레를 보는 시선, 당장이라도 부딪친 이를 때려죽일 것 같은 느낌.
물론 그것들은 순간이고 곧 사라지기는 했지만, 다소 기이한 느낌이 드는 아이라는 점만큼은 틀림없었다.
“모두 다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보다 집이 어디라고?”
단소미가 손뼉을 짝 치며 물었다.
알고는 있지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내뱉은 말이다.
생각에 잠겨 있던 두 아이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스스럼없이 웃음을 지으며 북서쪽을 가리켰다.
“예전에 무슨 문파 하나가 있었던 곳 있잖아? 거기라고 하던데.”
“엄청나게 큰 거 아니야?”
지금은 그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지만, 문파가 하나 있기는 했다. 호남단가를 잘못 건드려 무너지기는 하였지만, 그 땅은 여전히 주인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상당히 넓고 비싼 땅이기에 돈이 없는 자들은 그곳을 사들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홍진랑과 주지약은 오히려 어이없는 시선으로 단소미를 바라봤다.
“너희 집이 더 커.”
“맞아…… 우리 집보다 말이지…….”
천하의 왕부보다 큰 곳이 바로 단소미의 집이다. 그 화려함은 물론이고 주변 풍경까지 생각한다면, 이 호남에서도 가장 비싼 곳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멋대로 지은 거지만…….’
주지약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집을 지어 놓았지만, 본인의 것은 아니다. 그곳은 왕부의 땅으로 영친왕이 모른 척 눈을 감아 주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팔 수도 없다.
“어쨌든 일단 가 볼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소미가 싱긋 웃으며 길을 잡았다. 총총걸음으로 달려가는 그 아이의 뒤를 홍진랑과 주지약이 작은 한숨을 쉬며 따랐다.
* * *
구무악은 묘한 표정으로 서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악양에는 호남단가가 있다.
또한 그곳과 공생을 하는 처지이니만큼, 혹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이 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기도 했다.
만약 그러한 자들이 있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제갈운에게 서찰을 날린다.
그것이 바로 구무악과 호남단가의 관계다.
반대로 이 호남 땅에서는 누구도 하오문을 건드릴 수 없는데, 그 이유인즉 호남단가의 힘이 하오문의 뒷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여전히 많은 곳에서 하오문을 무시하고 도려내려 하는 자들이 있지만, 이 호남 땅에서만큼은 하오문의 힘이 상당히 크다 할 수 있었다.
그런 곳의 수장인 구무악은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추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한 서찰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며 혹은 의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유씨세가?”
처음 들어 보는 곳이다.
이 중원 어딘가에서 활동을 한 세가라고 한다면, 응당 이름이 귀에 익었어야 함이 맞는데, 유씨세가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뭐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이 기록들은?”
아무것도 없다.
뒤를 파 보려 많은 정보를 입수해 보았지만, 유씨세가가 어디에 있었고, 왜 악양으로 온 것인지, 또한 어디서 활동을 하던 곳인지, 그러한 정보들이 단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구무악이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단소미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으니…… 괜찮기는 할 테지만…….”
한숨을 내쉰 구무악이 서찰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단소미가 친하게 지내는 아이 중 한 명이다.
영친왕부의 눈도 있고 또한 알게 모르게 남궁세가와 마교인들이 곁을 지키고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소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구무악은 서찰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제갈운에게 알려야 한다.
그것이 구무악의 역할이기도 했다.
* * *
“꾸웩!”
얻어맞은 장삼태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그는 마치 개구리처럼 뻗은 채 바들바들 몸을 떨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는 것인지 제대로 서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사…… 살려 주십쇼.”
장삼태가 중얼거리며 억울한 목소리를 냈다.
차라리 산적이나 도적들을 상대하는 것이 백번 낫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과 대련을 강제적으로 해야 하는 장삼태에게 있어선 그 모든 상황들이 그저 어렵고 힘들기만 했다.
초췌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단우현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어찌 보면 괴로워하는 장삼태의 꼴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명백히 장삼태를 위한 것.
단우현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버리며 장삼태를 키워 주고 있는 셈이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 번개 같은 움직임과 하늘 거시기 할 검술입니까요?”
장삼태는 지난번 들었던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인상을 썼다.
또다시 그러한 말이 나온다 한들 이해하기도 어렵고, 하고 싶은 마음 역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우현은 고개를 저었다.
“상대방과 자기 자신의 차이를 이해하는 거다.”
“그건 또 무슨…… 개…….”
“개소리로 치부하지 말고 잘 들어라.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찌 이길 수 있겠느냐? 그저 적이 원하는 상황대로 끌려가다가 결국 그대로 죽기 마련이다.”
“아…….”
“오감을 키워라. 눈을 맹신하지 말고 감각을 믿고 귀를 기울여라. 자그마한 소리 하나에도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 게 도움이 됩니까요?”
장삼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감각이라는 것이 키우고 싶다 하여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부단한 노력, 그리고 엄청난 깨달음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다.
또한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듣는다 하여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당장 눈앞에서 흘러 들어오는 칼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소리란 때론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발소리, 날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그러한 것 하나하나가 다음 수를 읽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것이다.”
“……말도 안 돼.”
빠각!
“아이고!”
장삼태가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단우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곧 억울한 눈빛을 보내며 아픈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를 들어, 네가 감각을 잃을 수밖에 없는 진법에 빠졌다 치자.”
“에…… 예…….”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싶었지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단우현을 보고 있자니 반박을 해 봐야 날아오는 것은 몽둥이일 것 같았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와 싸운다는 것은 굉장히 불리한 일이지. 백 중 아흔아홉은 죽을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럴…… 테죠?”
“하지만 바람의 소리를 듣고 적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렇게 불리한 상황도 아니다.”
“가능합니까요, 그런 게?”
장삼태가 휘둥그레 눈을 뜨며 묻자,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면서도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
움찔!
놀란 장삼태가 힘을 짜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빠르게 땅을 박차려는 순간.
‘사아악!’ 하며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저도 모르게 몸을 날리며 피하는 것과 동시에, 서걱 하며 곁에 있던 커다란 나무 하나가 통째로 잘렸다.
쾅!
잘려 나간 나무가 맥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자, 장삼태가 주르륵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를 쳤다.
“죽습니다요! 정말 죽일 셈입니까요?!”
“거 봐라. 하면 되지 않으냐?”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 기이한 기운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곧 공기가 떨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장삼태를 향해 쏟아졌다.
“사…… 사람 살려-!”
쩌렁쩌렁한 그의 외침이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