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56
“끄으으으…….”
홍원창은 아직 죽지 않았다.
온몸이 고문으로 인하여 난자가 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그 끈질긴 생명력은 바퀴벌레와 같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전히 숨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는 흐릿한 시야로 앞에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수 명의 사내들이 마치 지키고 있는 것처럼 홍원창 앞에 앉은 채로 계속해서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보고 있었다.
살아 있는 상태로 계속해서 고통을 주기 위함인지, 최소한 치료를 해 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기실 홍원창이 살아 있는 이유 역시,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주며 고문이 끝나면 치료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홍원창은 흐릿한 시선으로 앞을 확인하며 뒤로 묶여 있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고문을 받을 때 부러졌던 칼날을 옷소매 속에 넣어 두었는데, 그것을 이용할 때가 된 것이다.
“빨리빨리 죽여 버리면 되지 왜 자꾸 머뭇거리시는지 모르겠네 진짜.”
“그러게나 말이야.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 거야?”
역귀의 수하들이 툴툴거리며 불만을 터트렸다.
범죄자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호남의 홍원창을 붙잡았다.
빠르게 죽이고 그 시신을 매장한 뒤, 이곳을 뜨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 제일 나은 선택이라 할 수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역귀 강자중은 죽이지 않고 고문만을 반복했다.
물론 그 연유를 알고 있기는 했다.
용모파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용모파기가 돌지 않았던 강자중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것들이 만약 돌기 시작한다면 이 중원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며, 더욱 강한 무림인들이 현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찾아올 수도 있는 법.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용모파기가 나온 곳을 찾아 쓸어 버리려 하는 것이었는데, 좀처럼 홍원창이 입을 열지 않으니 강자중의 입장에서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어찌할 수 있는가?
이럴 땐 빠르게 숨어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잠깐 숨을 죽인 채 조용히 산다면 역귀에 대한 것도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서 잊힐 것이다.
본디 일이란 처음에만 화려하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잊히게 되는 법이니까.
그리 생각을 한다면 이러한 시간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것이다.
“차라리 죽일까?”
“음…… 좋은 생각이긴 한데…… 걸리면?”
“아, 고문 충격으로 죽었다고 하면 되지.”
두 사내가 눈을 번뜩 빛냈다.
어차피 심하게 다친 상처다.
아무리 치료를 한다 하여도 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만큼, 벌어진 상처가 감염되어 죽었다던가 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목을 조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어차피 목에 흔적도 있고…….”
두 사내들이 가만 홍원창을 바라봤다.
그의 목에는 밧줄에 걸려 생긴 상처가 있다. 죽일 생각은 없으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심어 주기 위해, 일부러 밧줄에 목을 매어 놓은 탓이다.
그곳을 조른다고 하면 설령 강자중이라 하여도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서로를 마주 보던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시라도 이곳을 벗어나고픈 마음에 독한 마음을 품은 것이다.
이윽고 두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홍원창을 향해 다가왔다.
저벅저벅.
점점 거리를 좁혀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과 들려오는 소리는, 홍원창에게 있어 끔찍함을 안겨 주었다.
“죽여!”
이내, 다가온 한 사내가 홍원창의 목을 조르려는 순간.
푹!
새끼손가락만 한 비수 하나가 그의 목을 꿰뚫었다.
“컥!”
사내는 짧은 신음을 삼키며 목을 잡고 뒤로 물러섰다.
그것과 동시에 곁에 있는 동료가 칼을 뽑으려 하였지만, 오히려 움직이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필사적인 홍원창이었다.
소리를 내게 해서는 안 된다.
이곳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역귀의 수하들이 있으니 만큼, 자칫 새어 나간 소리 하나에 많은 이들이 몰려들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하여 또 한 번 목을 찌르고 다른 손을 입을 틀어막았다.
엎어져 바들바들하는 두 사내의 입과 코를 체중으로 틀어막으니 어떤 신음조차 새어 나가지 않았다.
“하…… 하아…….”
홍원창의 거친 호흡만이 들려왔다.
부들부들 몸을 떨던 이들이 어느새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선 홍원창은 주섬주섬 두 사내의 장비를 챙겼다.
단검 한 자루와 이 빠진 중검 하나가 전부.
이것으로 이곳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실로 힘든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 하여 마냥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비대한 몸이 도움되기는 또 처음이로군…….”
홍원창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마치 산적들이 쓰다 버린 산채 같았다.
애초에 떠돌이 생활을 하는 역귀 강자중의 상황상, 이러한 산채를 만들어 놓을 리 없으니만큼, 산적들을 죽이고 차지한 것이든 아니면 비어 있는 산채를 쓰는 것이든 간에, 오랫동안 머물 생각은 아닌 듯 보였다.
또한, 이곳이 버려진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산채 가장 구석, 그러니까 사람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곳에 홍원창을 묶어 놓았다는 점이다.
본래라면 어딘가 창고 같은 곳이나 옥 같은 곳에 놓아야 했을 텐데도 그러지 못한 이유는, 쓸 만한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일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홍원창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 반쯤 무너져 사람이 쉴 공간조차 없는 폐건물 하나가 떡 하니 그의 시야를 가렸다.
홍원창은 조심스레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주위를 살폈다.
몇몇 이들이 경계를 서듯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적게 잡아도 수십 명은 될 법한 자들.
그리고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멀쩡한 건물에는 틀림없이 강자중이 머물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유인즉슨, 다른 곳보다 확실하게 경비를 서는 이들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나갈 수 있는 곳은……?’
홍원창이 시선을 빠르게 돌리며 다른 곳을 확인했다. 사방이 나무 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탓에 출구가 아니면 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응당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터.
그러나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강자중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곳을 지나야 하는 데다, 정문에는 두세 명의 보초들이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려는 순간 걸릴 수밖에 없다.
‘어찌한다?’
온몸이 욱신거린다.
기실 이렇게 움직이는 것조차 힘이 들 지경이었는데, 탈출하기 위해 시간을 너무 많이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순간 움직여야 하니만큼, 홍원창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시선에 들어왔다.
길목 사이사이 보이는 화톳불이다.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날이라 그런지 유난히 불을 강하게 피워 놓았고,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오는 통에 조금만 건들면 충분할 것 같았다.
홍원창은 바닥에 널려 있는 돌멩이 하나를 손에 쥐었다.
‘한 번에 해야 한다.’
돌을 던지는 것은 자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고 지금도 가끔 돌을 던지며 홍진랑과 놀기 때문이다.
단, 문제는 소리였는데, 그렇기에 한 번에 넘어트리지 못한다면 자칫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홍원창은 가만 화톳불을 주시했다.
강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지그시 바라봤다.
뼈대가 강한 것이 아닌지라 조금만 더 바람이 강하게 분다면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마치 하늘이 도움을 주는 것처럼 강한 돌풍이 몰아쳤다.
아슬아슬하게 휘청이던 화톳불이 크게 움직인다. 엎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약간의 계기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홍원창이 자세를 잡고 힘차게 돌을 내던졌다.
* * *
“워낙 신출귀몰한 자인지라 찾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설령 그것이 역귀이든 아니든 말이에요.”
“안다.”
“며칠이 걸릴지도…….”
당문혜가 힐끗 단우현의 눈치를 살폈다.
이미 홍원창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전부터 호남단가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 정도는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으니만큼, 단우현의 심기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 말을 고르고 내뱉는 것 역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당문혜의 곁을 지키고 있는 두 사내 역시 마찬가지다.
귀신을 쫓다 느닷없이 역귀일지도 모르는 사내를 잡으러 가고 있는 이 상황이 꽤 아리송한 느낌이긴 하였지만 좋든 싫든 간에 역귀를 붙잡는 것은 탄탄대로를 걷는 것과 동일시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두 사내 역시 눈에 불이 붙었다.
“오늘이다.”
“네?”
“오늘 내로 잡는다.”
“……?!”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모든 이들이 혀를 내둘렀다.
역귀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홍원창을 붙잡아 간 것은 틀림없어 보이니 만큼, 단우현의 입장에선 촌각을 다투는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칫 그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장 어디서 어떻게 잡혀갔는지도 모르는 이를 하루 만에 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하오문까지 나선 상황이다. 못 찾는다면…… 각오해라.”
“네에!?”
단우현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봤다.
멀리서 이쪽 상황을 감시하듯 살피고 있는 하오문들, 그리고 당문혜를 비롯하여 천도회의 인물들.
그런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단우현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특히 깜짝 놀란 것은 다름 아닌 당문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 내뱉은 말이다.
각오하라는 말 자체가 절망이나 다름없었다.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으며, 온갖 위험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크게 헤집었다.
“아니 왜 화풀이를 우리한테 하려 하십니까요?”
그때, 장삼태가 대뜸 나서며 인상을 썼다.
각오하라는 말에도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표정이다. 허리에 손을 얹어 놓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단우현을 쏘아봤다.
슥 하며 돌아오는 단우현의 날카로운 눈빛조차, 조금도 두렵지 않은 모양이다.
“찾는 거야 찾아보기는 하겠지만! 못 찾으면 어쩔 수 없고? 지 팔자이지 않습니까요? 그 지난번에 나무에 떨어져 죽은 그놈처럼 말입니다요.”
장삼태가 응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나무를 건든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설마 떨어져 죽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사람의 목숨이란 누군가 어찌한다고 해서 살거나 죽거나 하지 않는다.
살 사람이었다면 살 것이고 죽을 이었다면 죽는다.
심지어 지금 시간이 어떠한가?
이미 늦은 밤이다.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탓에 한 치 앞을 구분하는 것 역시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찾고 그 흔적을 발견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니, 지금은 홍원창의 운에 맡겨야 할 때다.
“제법 느긋하구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자인데?”
“하하. 이 삼태, 장주님 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다 보니 삶이란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요. 더군다나 쉽게 죽을 놈이 아니지 않습니까?”
장삼태가 어울리지 않게 서생처럼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장삼태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드러내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일에 쉽게 죽을 만큼 쉬운 길을 걸어오지 않은 자이지 않은가? 단우현의 곁에 있으면서 홍원창 역시 이보다 더 험한 일을 겪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 것들이 있기에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당문혜와 단우현이 그것을 바라보곤 어이없이 웃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구나.”
“예?”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다는 것 말이다.”
단우현이 쭉 기지개를 켰다.
마치 몸을 푸는 것 같은 모습이었기에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동시에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눈을 돌리는 순간.
“사, 산불?”
먼 곳에서 활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천둥 번개가 친 것도 아닌데 불이 일었다?
단우현이 그것을 바라보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닌 뗀 굴뚝에 연기는 나지 않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