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59
작은 동굴 안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목을 축이고, 기어 다니는 충을 집어삼키며 허기를 채웠다. 그런데도 몸은 좀처럼 낫지 않았는데, 이는 그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선력(仙力)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극도의 정신력으로 흩어져 가고 있는 선력들을 붙잡고 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언제까지가 될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천무광은 인상을 쓰며 운공을 했다.
어떻게 해서든 내공을 모아 흩어지는 선력을 붙잡아 보려 하였지만, 그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천무제 혹은 단우현 정도일 테니까.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팔선을 벗어나 천무제의 곁으로 돌아선 그였으나, 결국 단우현은 물론 천무제에게도 닿지 못한 채 버려졌다.
그에게 당한 이들을 생각해 본다면 꼴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기는 했지만, 서서히 그 힘을 다하고 있는 모습과 어떻게 해서든 생을 붙잡으려 하는 광경을 누군가 보았다면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살아야 한다!’
천무광은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이렇게 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수치를 받고 죽는다면 분한 마음이 쉬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당장 천무제가 눈앞에 있다면 갈가리 잡아 뜯고 싶은 분노를 집어삼키며, 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을 써야 했다.
‘무신도경……!’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천무제가 만들어 중원에 뿌려 놓은 그것.
더 높은 경지를 위해 만들려 했지만 정작 본인은 익히지 않고 중원에 뿌려 놓은 그것.
그 연유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러한 말을 하는 천무제를 무작정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있을 거다. 무신도경을 만든 연유가…….’
천무제가 천일조화공에 목을 매고 있었던 것은 알고 있다.
이유인즉, 무신의 심법인 그것은 인외를 초월하였으며 선계에서도 누구라 한들 해석할 수 없는 심법이다.
그것은 설령 천무제라 하여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레 무신도경을 만든 이유 역시, 그와 같은 심법을 창안하기 위함일 터.
내용은 필시 혈마의 무예와 반쪽짜리 천일조화공이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천무광은 다급하게 품에서 한 권에 책자를 꺼냈다.
지금까지 발견되었던 무신도경과는 전혀 다른 것.
가장 완성된 것이라 해도 무방한 그것.
펼치는 순간 내용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본디 천무제가 창안하고 혈마에게 내준 혈마신공은 물론이고, 천무제의 해석이 가장 완벽했던 천일조화공.
그러한 것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뒤흔들었다.
해석을 해야 한다.
천무제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것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과연 이것을 익히고 사라져 가는 선력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완벽하지 못한 채 장난 삼아 버려진 책의 내용을 읽는다 하여도 그것을 해석해 내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해낸다.’
천무광은 이를 갈고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조합해 나갔다. 그 역시 무극에 다다른 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경이로운 존재.
점점 사라져 가는 선력을 느끼며 다급하게 머리를 굴리는 그 순간.
“……!?”
천무광은 느닷없이 몰려드는 기운을 느끼며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거기까지…… 의미 없는 것을 본다 한들 해결되지 않을 거예요.”
저벅저벅.
어디선가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풍한설을 머금은 것 같은 앙칼진 소리는, 비수처럼 꽂혀 그의 전신을 자극했다.
천무광의 시선이 어렵사리 돌아가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남주련…… 어찌…….”
“여자의 감이라 할까요?”
명백히 조소가 걸려 있는 냉담한 말투다.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 말투, 표정, 그 모든 것들 하나하나에는 경멸감마저 실려 있는 것 같았다.
처참하게 짓밟혀 있는 천무광을 보는 것 또한 그녀의 마음을 더욱 크게 쥐고 흔드는 것 같았다.
남주련이 입술을 앙칼지게 깨물었다.
“어련하실까…… 날 죽이러 왔나?”
“…….”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죽이려 했다면 단숨에 목을 쳤어야 했다.
그만큼 천무광과 남주련 사이에는 이미 메울 수 없는 골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주련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그것을 바라보며 천무광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동시에.
걸어온다.
스르릉!
검갑에서 칼날이 뽑혀 나와 그 날카로움을 드러내고, 서서히 다가올 때마다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는, 온몸을 갈가리 찢어 버릴 것 같았다.
주룩.
천무광은 식은땀을 흘렸다.
“네년…… 무신도경에 대해…… 알고 있었나?”
“감……? 일까요. 애초에 그자가 그러한 것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니까요.”
천무제는 무신도경 따위 의미 없다 이야기를 하였다.
뿌려진 무신도경이 곳곳에서 드러나며 천무제와 그 일당을 쫓고 있는 팔선의 시선과 행동을 빼앗았고, 고로 천무제는 너무나도 자유롭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갔다.
그렇기에 의미가 없다.
회수를 하라 명령을 내린 이유 역시, 천무제의 말대로 그것을 익힌 이들이 강해질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또한.
“무신도경의 등장으로 형님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그렇죠.”
“어이가 없군.”
단우현이 직접 그것을 찾아다니는 짓을 하지 않을 테지만, 그러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천무제가 살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자연스레 단우현은 지키고 싶은 것에 곁에 붙어 있을 것이며, 이는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천무제에게 아주 좋은 일이었다.
물론 천무제가 단우현의 등장을 예상했던 것인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단우현의 발목을 붙잡고 그의 생각을 조금 더 뒤흔든 일이 된 것이다.
남주련은 가만 천무광을 내려다봤다.
이제 곧 그 선력마저 사라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
눈앞에 있지만 존재감마저 흐릿하여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깨닫게 했다.
그런 이를 바라보며 그녀는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가치가 없는 것이기도 하죠.”
망설이지 않는다.
남주련의 마음이 이미 천무광에게서 떠나 버렸고, 두 사람은 서로 적이었다.
그녀는 자신들을 배신하고 떠난 이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걱!
피가 뿌려졌다.
천무광의 가슴이 베이며 시뻘건 피가 튀어 올랐다.
가만히 남주련을 바라보고 있었던 그는, 그 모든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듯, 웃음을 지으며 뒤로 넘어갔다.
베인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골수로 치밀기도 전에, 천무광은 눈을 감고 그 정신은 아득히 먼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털썩!
이윽고 쓰러진 천무광을 바라보며 남주련은 입술을 깨물었다.
흘러내리는 피, 눈앞에서 쓰러진 옛 동료의 모습.
그렇게나 티격태격하며 싸웠던 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서로 등을 맞대고 검을 휘둘렀던 든든한 존재. 그런 이를 벤다는 것이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남주련은 긴 한숨을 내쉬며 검을 털어 냈다.
검에 묻은 옛 친우이자 동료의 피가 바닥을 적셨다.
* * *
“얍!”
단소미가 몸을 움직이며 주먹을 내질렀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그 몸놀림은, 어린아이가 펼쳤다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마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지경이었으니, 단소미의 재능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 준 것이나 다름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엄청나군…….”
권무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여인의 지도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단소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실력이 부쩍부쩍 늘어나고 있었다. 저렇게 성장을 한다면 약관도 되지 않아 무호나 권무진 정도는 쉬이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저건…… 단순한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은 많이 보았다.
곁에 있는 제갈연이나 남궁소혜만 보더라도,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단소미는 그러한 종류가 아니다.
한 번 본 것은 반드시 따라 하고 따라 한 것은 어느새 완벽하게 구사해 낸다.
여인이 가르쳐 준 무공들을 순식간에 흡수해 나가고 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 딸 아니랄까 봐…….”
마장강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공청석유를 마신 덕에 그 내공만 하여도 어마어마한데, 무공의 흡수마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 보니, 다음 천하제일인은 저 아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제 됐어요?”
“그래, 그 정도면 되겠구나.”
하지만 미호는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마치 이러한 것 자체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이 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웃기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럼 은월이와 나가 놀아도 돼요?”
“오늘은 이쯤 하면 되었으니 괜찮을 테지.”
“네에!”
단소미가 기쁜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달려갔다.
무공을 배우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아직은 또래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것에 조금 더 재미가 치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권무진이 미호를 향해 물었다.
“괜찮은 건가? 저 성장 속도……?”
“예, 조금 모자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별문제는 없네요.”
“……사람한테는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게 있다. 뭐든 넘치면 해가 되는 법인데……?”
“저 아이의 그릇은 이 정도로 넘칠 만한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권무진은 할 말을 잃었다.
여인의 말을 들어 본다면 아직 단소미는 한참이나 더 담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닌가?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워하면서도, 또 한 번 재능이라는 이름 앞에 노력이 무너지는 일이기도 했다.
권무진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당장 달려가 수련이라도 할 셈인 듯했다.
“한 수 부탁하지.”
“……그래.”
마장강이 곁을 따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권무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아마도 이 호남단가에서 마장강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후우…….”
어느새 홀로 남은 미호는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역시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지만, 가히 충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단소미의 성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아직…… 조금 더…….’
그러나 미호는 아직 모자란다는 것 정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천무제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제 한 몸 지킬 수 있는 무공을 가지지 않고서야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혹독하게 몰아세워야 했다.
“시간이 얼마 없어…….”
미호는 하늘을 바라봤다.
지독할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몰아치고 있었다.
불어오는 것은 분명 겨울바람임이 분명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칼날과도 같은 차가움과 몸서리쳐질 듯한 한기뿐만이 아니었다.
미호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