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6
한 사내가 어두컴컴한 곳을 지나며 코를 틀어막았다. 짙게 흐르는 역한 약냄새가 코를 찌른 탓이었다.
이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하자,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내부에는 한 노인이 있다.
다소 초췌해 보이는 노인은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 먹고 있지 않은 듯, 온몸이 마치 목내이처럼 빼빼 말랐고, 부릅뜬 그의 두 눈은 오로지 한 곳만 응시하고 있는 탓에 다소 기괴한 모습이었다.
“잘되고 있소?”
“…….”
“잘되고 있냐 묻지 않소.”
“크흐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아라. 이제 곧이니.”
노인은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손을 놀렸다.
약재들을 물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통에 담고, 그것을 흔들어 섞은 후 내용물을 확인했다.
“흐읍!”
깊게 숨을 들이켜 그 향기를 맡은 노인이 씩 웃었다.
“이거다! 내가 원했던 것이 바로 이거야!”
“하하, 과연 추 노괴이오. 왜 흑도회에서 그대를 안 놔준 것인지 알 것 같군.”
“크흐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보다 흑도회를 무너트린 놈은 찾았느냐?”
“아니, 아직이오. 이 정도면 무슨 소식이 있을 법도 하건만 놈의 얼굴로 위장을 하고 다녀도 조용하더군. 깊숙이 숨었든가 혹은 이미 죽었을지도…….”
“그럴 리가 없다! 흑도회를 무너트린 놈이 죽다니!”
추 노괴.
흑도회에선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
영약이나 독을 제조하는 임무를 맡은 이로, 흑도회의 비호를 받으며 나름대로 부귀영화를 누린 자였다.
하나 흑도회가 몰락하고 분열되면서 갈 곳을 잃은 추 노괴를 받아 준 이가 바로 이 사내였다.
사내는 만면에 웃음을 지은 채 걱정 말라며 추 노괴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약이나 만드시오. 놈은 반드시 우리가 찾아 죽일 터이니. 그것을 위한 협력 관계 아니었소?”
“그렇지! 내가 네놈들 같은 버러지들에게 협력하는 이유가 그것 말고 또 있겠느냐? 어서 잡아서 내 앞에 끌고 오너라!”
사내가 인상을 썼다.
이미 무림맹에선 공적으로 선포당한 인물이고, 흑도회가 무너진 이상 갈 곳도 집도 절도 없는 노괴를 받아 준 것이 바로 그였다.
한데 버러지라니?
당장 노괴의 사지를 찢어발기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였으나 꾹 눌러 참았다. 아직은 저 인간이 이곳에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았으니까.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들으셨소? 이번에 현령이 산적을 토벌하다가 아편을 찾았나 보오.”
“산적 놈들을 토벌했다고? 그 빌어먹을 현령 놈이?”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고, 은밀히 그것을 왕부로 가져가려는 것 같소만…….”
“반드시 빼앗아야 한다! 실패작이라 해도 꼬리를 잡힐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 정도란 말이오?”
“네놈들의 검술이 네놈들의 깨달음을 담고 있듯 어떤 약이나 독이든 그걸 만든 사람의 정수가 담겨 있는 법이다. 만약 조금만 약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조사를 시작한다면 내 존재가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다.”
사내가 심각한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저 노괴의 말을 듣다 보니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추 노괴는 결코 세상에 모습이 드러나서는 안 되는 자였다.
무림맹도 그렇지만 다른 곳에서도 쫓는 이가 많았던 탓에 다른 이들에게 빼앗기거나 혹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사내는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아랫것들을 풀도록 하겠소.”
“약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을 죽여야 한다. 현령을 포함해서 현청에 숨쉬는 자가 존재치 않을 정도로 확실해야 한다.”
“걱정 마시오, 추 노괴.”
사내가 씩 웃음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 * *
“이대로 왕부까지 갈 것이다! 알겠느냐?”
“옛!”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홍원창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흑도회를 몰락시킨 뒤, 포졸들이 홍원창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완벽한 신뢰, 경외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홍원창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을 다른 곳으로 주었다.
그곳에는 포졸 복장을 하고 있는 네 명의 인물들이 있었다.
하나는 여인이었는데, 들키지 않기 위해 남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가릴 수 없는 것인지 주변에 서 있는 포졸들이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단우현이 서 있었으며, 권무진과 장삼태도 있었다.
이들 모두 포졸 복장을 입고 있으니, 자신이 그들보다 높아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엣헴! 네놈은 절대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말거라.”
“…….”
지목을 받은 단우현은 슬쩍 고개를 들어 말에 올라타고 있는 홍원창을 주시했다.
‘네놈?’
잠시 할 말을 잃고 어이없는 시선을 보내니, 홍원창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소곤거렸다.
“대…… 대협, 여기서는 제가 제일 높습니다. 대답을 하셔야지요.”
“……알았다.”
“존대를 하셔야지요. 저는 현령이고 대협은 일개 포졸입니다.”
“…….”
단우현은 가만히 생각했다.
이 자식이 설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말이다. 물론, 포졸 복장을 하겠다고 한 것은 자신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홍원창의 수하가 된 것은 아니었다.
“해 보십시오, 대협.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단우현의 눈에 들어온 홍원창은 짓궂은 장난을 치는 아이처럼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허탈한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려는 그때, 장삼태가 곁으로 다가왔다.
“지랄도 유분수지. 왕 노릇은 딴 데 가서 하쇼.”
“뭐…… 뭐얏?!”
“뭐요? 내가 틀린 말 했나? 평소에는 그런 말은 꺼내지도 못하면서 존대는 무슨.”
홍원창이 부리부리하게 눈을 홉뜨며 장삼태를 쏘아봤다. 그러나 이미 홍원창에게 범인으로 몰렸던 장삼태도 지지 않고 눈싸움을 했다.
짝짝!
그때, 누군가 박수 치는 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단우현이 박수를 치고 있는 게 보였다.
“네가 그래도 쓸모가 있구나.”
“예?”
“아니다. 덕분에 뭔가 시원해진 것 같아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영문을 알 수 없는 장삼태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홍원창 또한 그러하였으나 결국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포졸들이 홍원창을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출발!”
앞서 가는 포졸들을 바라보며 남궁소혜는 생각에 잠겼다. 산적을 붙잡고 얻은 아편을 왕부로 옮긴다는 소문을 흘렸다.
그리고 총 인원 열 명의 극소수의 인물들만이 움직였다.
함께 길을 떠나는 진짜 포졸들의 수는 고작해야 다섯이 넘지 않았으며, 홍원창을 제외하면 남은 이들은 단우현과 장삼태, 권무진과 남궁소혜였다.
단단히 변장까지 하였으니, 습격할 만한 충분한 빈틈을 보인 것이다.
‘정말로 이런 것으로 놈들이 올까?’
고작해야 아편이었다.
그것을 만드는 입장에선 황실로 증거가 들어가는 것이 못마땅하긴 할 테지만, 현령을 습격하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되찾을 만한 물건일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물론, 단우현은 반드시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만들 때는 만든 사람의 특징이 드러나는 법이다. 이것을 왕부로 가져가 조사한다면 누구인지 정체가 바로 드러날걸?
‘그래서 제갈총사가 그렇게 아편을 찾으려고 했구나.’
남궁소혜는 단우현의 전음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총사 역시 처음부터 아편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
결국 아무것도 건진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남궁소혜는 힐끗 단우현을 바라봤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는 것에 굉장히 능하다.
머리가 비상하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무공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지난번 보았던 그의 능력은 남궁소혜의 입장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무위였으니까.
그 마독진을 어린아이 다루듯이 한 것만 보아도 말이다.
‘그런데 성격이 좀…….’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선을 딱 긋는 태도.
심지어 말투마저 오만의 극치에 달하였으니, 마치 자신 위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러면서도 제 식구 하나는 끝내주게 잘 챙겼지만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장삼태나 권무진을 보살피고 있었고, 단소미에게는 아주 껌뻑 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을 본다면 아주 오만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정말 속을 알 수가 없네.’
남궁소혜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인간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짧은 한숨을 내쉰 그녀간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부스럭-!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가장 앞서 가던 단우현이 여유롭게 미소 지었고, 권무진이 말들을 멈추게 했다.
동시에.
솨솨솨솩-!
하늘 가득 화살이 날아올랐다.
“적이다!”
포졸 중 한 명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휘이잉!
퍽퍽퍽퍽!
화살이 박히는 끔찍한 소리에 몇 명이나 죽을지 모두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한데, 아무도 죽지 않고 그 자리에 멀쩡히 서 있었다.
화살들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으나,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정작 누구 하나 맞추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들 안도할 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바람이었다.
사사삭-!
동시에 복면을 쓴 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가 대략 삼십여 명은 넘는 것 같았고, 하나같이 무공을 익힌 이들로 보였다.
“이놈들!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런 무도한 짓을 벌이느냐!”
“문답무용(問答無用).”
홍원창은 단우현을 힐끗거렸다.
단우현이 예상했던 대로 놈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곧장 칼을 뽑았다.
“살(殺)!”
사사삭-!
명이 떨어지자 적들은 망설임 없이 움직이며 달려들었다. 단 한 사람도 살려 둘 생각이 없다는 듯, 그들의 몸에서 흐르는 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럼, 생포해 봐라.”
단우현의 시선이 권무진과 장삼태에게로 향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거칠게 자리를 박차고 복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난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