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67
“선검문이 그리 대단한가?”
“이곳 전체가 그들의 것이라 하면 믿겠는가? 심지어 절강의 왕야조차 그들을 어찌할 수 없다네.”
단우현이 게슴츠레 눈을 좁혔다.
단순히 마을만을 장악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중원에 이름조차 날리지 못한 곳이, 한 성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쉽게 볼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이 절강의 왕이라네.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살아갈 수 없지. 지금의 나처럼 말일세.”
장량이 허탈감을 느끼며 너털너털 웃었다.
그 웃음이 쓰게 느껴지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닐 거다. 그만큼 현 상황을 좋게 보지 않고 있다는 것도 있지만, 떠나려 해도 오랜 고향을 쉽게 나설 수가 없다.
이미 너무나도 늙은 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주산군도에 들어가려 했습니까요? 보통은 죽을 텐데?”
“하…… 하하…….”
장삼태의 물음에 또다시 쓴웃음이 입에 맺혔다.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잠깐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던 장량은 이내 후우 하며 또다시 연기를 내뱉고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손님이 와서 그런가? 입이 가벼워지려 하는구먼…… 잠시 이 노부의 이야기 좀 들어 보겠는가?”
“해 봐라.”
단우현 역시 궁금하기는 했다.
노인은 이미 선검문의 통제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주산군도로 들어가려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에 의문을 품었다.
“내게도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네. 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지.”
씁쓸함이 머금어져 있는 한마디다.
있었다는 것은 현재는 없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렇기에 단우현이나 장삼태는, 그들이 이미 어떠한 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였거나 죽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한 삼십 년 전이었을까? 갑자기 선검문 녀석들이 들이닥쳤다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집 안을 뒤지며 노인의 아들을 찾아냈다. 마치 어딘가로 데려가려 하는 듯이 끌고 나가는 것을, 말리며 싸웠다가 검상을 입게 되었다.
아내는 그 충격으로 몸져누웠고, 병상에서 하염없이 아들을 찾는 아내를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결국 찾아 나서야 했다.
노인은 선검문도들이 아이들을 주산군도로 데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마을 사람 모두가 쉬쉬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당시 끌려간 아이들의 수만 하여도 수십 명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늦은 저녁 은밀히 배를 끌고 주산군도로 향했다.
험한 파도를 넘고 기이한 해역을 지나 그곳에 도착한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 따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상황이었다.
“도착은 하였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네.”
“왜……?”
“차마 발을 딛지 못했기 때문이네. 그곳은…… 사람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야.”
노인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아직도 그 당시 일이 머릿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사방에서 꽂히는 시뻘건 눈빛들.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 괴상한 기척.
죽음조차 불사하고 주산군도를 찾아 들어왔지만, 한 발조차 내딛지 못하는 것은 그보다 더한 두려움과 공포가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결국 배를 돌려야 했다.
무사히 살아나온 것이 천운이라고 장량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들어가 살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저 주산군도에 있던 그 무언가가 아들을 찾기 위해 다가온 장량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것 이외에는 생각되는 것이 없었다.
“이런 미친! 뭐 그런 새끼들이 다 있습니까요?”
“……어쨌든 이것이 바로 현 상황이라네. 그러니…… 얌전히 포기하고 돌아가시게나.”
장량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
배를 다시 몰고 돌아왔을 때, 선검문도들에게 붙잡혀 며칠 동안 고문을 당해야 했고, 그곳에 있었던 일을 입막음당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처음이다.
아마도 곧 죽을 때가 되었기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저 단우현이라는 사내의 분위기가 알 게 모르게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군…….”
단우현이 잠시 뜸을 들이며 생각에 잠겼다.
* * *
“이러한 자들이 와 있다고?”
선검문.
그곳에 문주 허역상은 문도들이 가지고 온 용모파기를 바라보며 신음을 삼켰다. 눈앞에 있는 것은 틀림없이 호남단가의 인물들.
어째서 이들이 이곳에 있는 것인가?
“틀림없느냐?”
“분명합니다. 소동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이리저리 마을을 배회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합니다.”
“…….”
허역상은 인상을 찌푸렸다.
좋지 않다.
호남단가라 한다면 온 중원의 눈과 귀가 집중되어 있는 그곳. 또한 나섰다 한다면 어떠한 일이든 해결해 버리는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목적은 주산군도인가?’
객잔에서 배를 찾았다 하였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것은 곧 선검문과 척을 진다는 말과 동일시되는 것.
“천하제일세가이니 뭐니 해도 우리 선검문의 적수는 아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선검문주 허역상은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중원에 나서지 않은 탓에 그 이름을 날리지 못한 것이지, 결코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그는 안다.
이곳에서 주산군도를 보호하는 명목으로 받은 비급과 힘을 사용하면, 지금 당장 중원을 제패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이니까.
혈천이라는 것이 크게 날뛰었을 때도 선검문도들은 단 한 번도 겁을 먹은 적이 없었다. 자신들이 나선다면 얼마든지 정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량에게 갔을 테지?”
“그렇습니다.”
허역상은 인상을 찌푸렸다.
천운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가 장량이다. 그 험한 바다를 뚫고 주산군도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자.
지금까지 누구라 한들 들어가는 순간, 사자(死者)가 되어 버리는데, 그만큼은 살아서 돌아왔다.
하여 그 꺼림칙한 느낌 탓에, 허역상 역시 장량을 죽이지 못하고 살려 놓은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 살고 있던 놈인지라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근래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이래저래 묘한 자다.
“좋다. 아이들을 추려 보내거라. 살려서 보내면 안 된다.”
“존명!”
쩌렁쩌렁 들려오는 목소리에 허역상은 웃음을 지었다.
호남단가의 가주를 죽였다는 것만으로 그의 위상은 한층 더 올라갈 것이다. 이제 선검문이 이 중원에 비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 * *
“만약 네 아들이 살아 있다면 어찌할 셈이냐?”
“……!”
단우현은 어떻게 해서든 주산군도로 가야 했다. 처음부터 그것이 목적이었으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만약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눈앞에 있는 것들을 치워야 한다면, 어느 누구라 한들 망설이지 않고 베어 낼 것이다.
게슴츠레 눈을 좁힌 그가 장량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나 그 마음속에서도 잊고 살고 있었던 장량은, 눈빛이 흔들리며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게…… 가능한 것인가?”
“글쎄, 살아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가망이 없는 이야기는 아닐 테지.”
장량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다.
반드시 죽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잡아간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조건에 부합하여 아직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생각이 머릿속에 맴도니 전율이 일었다.
“만약 살아 있다면…… 데려와야 하지 않은가?”
단우현은 장량의 마음을 후벼 팠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아들을 데려올 수도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믿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었던 장량은, 점점 더 단우현의 말에 빠져들며 마치 한 가지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데…… 데려올 수 있는가?”
“주산군도로 우리를 데려다주면…… 만약 살아 있다면 반드시…… 데려오도록 하지.”
단우현은 결코 빈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겠다고 한다면 반드시 해낸다.
그것을 알고 있는 장삼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장량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것 같기도 한 그는, 당장 주산군도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장주님이 누구인데!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요!”
“처…… 천하제일인?”
사실 장량은 무공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이 지닌 무게조차 모르는 것은 아니다. 휘둥그레 치켜뜬 시선이 단우현에게 맺혔고, 긍정도 부정조차 하지 않는 그 모습에 더욱 큰 신뢰감이 몰려들었다.
“저, 정말로 가능하다면…… 내가…… 데려다주겠네…… 주산군도로!”
장량은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오래전에 한 번 죽었어야 했던 목숨이다. 그러나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이날을 위함이 아닌가 했다.
“배가 없다 하지 않았수?”
“무…… 물론 없네만…… 그…… 근처에 있는 배 하나를 훔치면 될 것일세.”
장량은 마음이 급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배를 이끌고 주산군도로 가려 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며 산 적이 없었던 그가, 배를 훔칠 생각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간 급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그렇군…… 하지만 먼저……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지.”
“무슨 소리인가?”
퍽!
단우현이 가볍게 손을 퉁겼다.
빛살처럼 쏟아져 나간 무언가가 천장을 꿰뚫었다.
“꺼억!”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꿰뚫리며 노란 무복을 입은 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서…… 선검문도 아닌가?!”
깜짝 놀란 장량이 소리쳤다.
쓰러져 나뒹구는 시신은 틀림없이 선검문도다. 미간이 꿰뚫린 그 모습은 마치 암기로 뚫어 버린 것 같은데 확실하게 사람을 보내 버린 듯했다.
그가 떨리는 시선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이 결코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놈들이 몰려왔다. 피할 수 없을 것 같군.”
“서, 선검문 놈들이 말인가?”
“에엑? 정말입니까요?”
장삼태마저 화들짝 놀랐다.
조금 전부터 주위가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졌다 싶더니, 그게 놈들이 오고 있는 징조였을 줄이야?
그가 하아 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법 많군.”
“얼마나 많습니까요?”
“백은 되어 보인다.”
“엑?!”
깜짝 놀란 장삼태가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수많은 싸움을 하기는 했지만 이런 것을 또다시 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제대로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아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수일 터.
장삼태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자.
단우현이 웃었다.
“도와주마.”
“헤헤헤, 역시 우리 장주님이십니다요.”
단우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백이라는 숫자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중에서도 사이한 기운을 풍기는 몇 놈들이 느껴지기에 장삼태에게 맡길 수가 없었다.
그가 덜덜 몸을 떠는 장량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쥐 죽은 듯 숨어 있어라. 일이 끝날 때까지 말이야.”
“아…… 알겠네, 알겠어. 나는 걱정하지 말게나.”
장량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이라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전혀 겁을 먹지 않는 단우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