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7
“아이코!”
홍원창은 정신을 하나도 차릴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암기와 칼날들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고 있으니까.
한 대라도 맞는다면 골로 갈 것이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도망을 쳐야 했다.
그러는 편이 무모하게 칼을 뽑아 저들에게 덤비는 것보다 목숨을 부지할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그리고 가장 안전한 곳이라면!
“대협!”
날아드는 칼날을 피하고, 또 피하며 가까스로 단우현의 옆에 도착했다.
그는 마치 이 싸움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처럼 태평스럽기까지 했다.
헤헤 웃음을 지으며 그 옆으로 다가서자.
“싸워야지.”
“예?”
“싸워야지. 저 포졸들은 네 수하들 아니더냐.”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당연히 대협의 목숨을 지켜야 하니 제가 곁에서 호위하겠습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늘어놓는 홍원창을 보며 단우현이 피식 웃었다.
결국 살고 싶어 옆으로 온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으냐?”
“그야 물론…….”
“고개를 숙이고 깍듯하게 예를 갖춰 ‘죄송합니다.’라고 해라.”
“……예?”
“내 말이 들리지 않았느냐?”
쉬익!
척!
그때,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홍원창의 목을 노리고 칼날이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단우현이 손을 뻗어 그것을 막아 내지 않았다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단우현은 가볍게 칼날을 잡고 뒤틀었다.
칼끝이 소용돌이처럼 휘어지더니, 그 여파가 검신을 타고 이동해 검을 휘두른 사내의 전신마저 뒤틀어 버렸다.
우드득-!
“커억!”
짧은 신음을 내뱉은 사내가 기괴한 모양으로 쓰러졌다. 사색이 되어 있는 홍원창이 입을 틀어막고 덜덜 몸을 떨었다.
나름대로 이런 생활에는 이제 익숙해졌다 여겼으나, 이런 식으로 죽은 시체를 보고 있자니 속이 다 울렁거렸다.
“또 한 번 내게 목숨을 빚졌구나.”
“저…… 대협?”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홍원창은 생각했다.
대범하고 침착하고 어떤 의미에선 포용력 또한 대단했지만, 가끔 속이 좁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건 아마도 조금 전, 그의 말실수가 원인인 것 같았다.
홍원창이 주륵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모……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하하, 그래그래. 한두 번이 아니니 평생 감사하며 살아라.”
홍원창이 어색한 표정으로 마주 웃었다.
* * *
챙-!
남궁소혜의 검술은 빠르고 묵직했다.
힘이 실려 있고, 그 힘을 이용할 줄 알며, 때로는 부드러움까지 지닌 그녀의 검술은 과연 남궁세가가 팔대세가 중 으뜸이라 불릴 만하다는 감탄을 나오게 했다.
‘수가 너무 많아.’
그러나 남궁소혜는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이들과의 싸움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이는 권무진 한 사람뿐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단우현은 나서지 않았고, 장삼태는 수준이 낮아 도움보단 발목을 잡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결국, 남궁소혜와 권무진 두 사람이 모든 이들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단우현은 생포하라고 했다.
이런 난전에서 사람을 생포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베어 죽이기만 한다면 오히려 편했을지도 몰랐다.
한마디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단우현의 말을 따르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으나, 힐끗 시선을 돌리며 곁에 있는 권무진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권무진은 확실하게 적을 생포하고 있었다.
쌍도를 이용해 상대의 칼날을 모조리 막아 내고, 유유히 움직이며 혈도를 짚었다.
혹은 상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리를 부러트리거나 기절시켰다.
‘저 사람한테만큼은!’
투지를 불태운 남궁소혜가 빠득 이를 갈았다.
자신은 정파의 인물이고, 권무진은 사파에서 벗어났다 하여도 출신은 변치 않는다.
심지어 마독진의 수하였던 만큼 그에 대한 승부욕이 들끓었다.
그녀가 검을 뽑지 않고 검집만 쓰고 있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였다.
퍽퍽-!
“크악!”
“컥!”
경쾌하게 들리는 신음과 전해 들어오는 묵직한 타격감은 확실하게 상대를 혼절시켰음을 느끼게 했다.
하나, 생각했던 것보다 수가 많고 나름대로 단련을 한 이들인 탓에 서서히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오른쪽에서 날카로운 기운을 느꼈다.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 사내가 검을 찔러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치고 들어오는 것이 무척이나 빠르고 거리가 확실하게 좁혀진 탓에 피하는 것조차 영 쉽지 않았다.
휘둥그레 눈을 치켜뜬 순간.
서걱-!
느닷없이 사내의 몸이 양단되었다.
“당신…….”
그 일을 해결한 것은 다름 아닌 권무진이었다.
피 묻은 쌍도를 양손에 들고 입가에 묘한 조소(嘲笑)를 머금었다.
“입을 열 놈만 있으면 되지. 실력도 안 되면서 왜 모조리 잡으려고 하나 멍청하게?”
“이익!”
딱히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모조리 다 생포할 필요는 없는 법이었다. 아니, 애초에 살아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남궁소혜가 눈에 불을 켜고 검을 뽑아 들었다.
한순간 시선이 단우현을 향했는데, 그가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이놈도 그렇고, 저놈도 그렇고 다 마음에 안 들었다.
서걱-!
“끄아악!”
팔을 자른다 해도 죽지 않는다.
다리에 힘줄을 끊어 낸다 해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열 수 있는 입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남궁소혜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망설임이 있었던 그녀의 검이 조금 더 날카롭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 * *
“중상을 입은 놈들이 좀 있긴 합니다만…… 뭐, 이 정도면 양호하지 않겠습니까?”
쓰러져 있는 삼십여 명을 바라보며 홍원창은 즐겁게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많이 살아 있군.”
“예?”
“칼을 제대로 못 쓰는 놈들이 둘 있거든.”
단우현이 웃으며 장삼태와 남궁소혜를 번갈아 봤다. 저 둘이라면 제압이 어려울 것이라 여겼는데, 죽은 놈들의 수는 고작해야 일곱이 넘지 않았다.
그것이 몹시 재미있는지 입가에 머문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헥…… 헥…… 나 살아 있는 거 맞습니까?”
그때 장삼태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대부분 권무진과 남궁소혜가 제압했지만, 그래도 장삼태 또한 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이들 중 다섯 명 정도는 그가 해치웠으니까.
“잘 살아 있다. 목도 멀쩡하군.”
“으하하! 이게 다 장주님 덕분입니다.”
장삼태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몹시 놀란 모양이다. 하긴, 이런 고수들을 상대로 팔다리 하나 잘려 나가지 않고 멀쩡하게 붙어 있으니 그야말로 천운이 아닌가?
호탕하게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궁소혜는 지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문득 장삼태에게 시선을 보냈다.
분명 삼류 무공조차 되지 않을 태극권을 익히고 있건만, 어디 하나 상처 없이 멀쩡한 것이 무척 신기했다.
“당신…… 그 삼류 무공으로 이들을 제압한 건가요?”
“삼류 무공이라니? 그건 삼류 무공이 아니야!”
“태극권이면 저잣거리에서 은자 한 냥도 하지 않는…….”
“떽!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네가 장주님과 아는 사이만 아니었으면 크게 경을 쳤을 테니! 네가 뭘 모르는데, 그 태극권은!”
“네, 그 태극권은?”
“절세신공이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주절대는 모습에 남궁소혜는 고개를 돌렸다.
만약 장삼태의 말이 사실이라면 태극권을 익히고 있는 중원의 수많은 이들이 모두 절세신공을 익혔다는 뜻이었으니, 무림을 뒤엎을 최고의 고수들이 줄줄이 나타났을 것이다.
남궁소혜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장삼태가 실실 웃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사실 장삼태 또한 자신이 익히고 있는 개량된 태극권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얼마 전, 산적을 붙잡고 아편을 가지고 장원으로 돌아올 때 단우현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익힌 태극권이라는 무공이 단순히 건강을 챙기기 위한 체조로 보이느냐?”
“아닙니까?”
“그것을 만든 이가 누구냐?”
“장삼봉입니다.”
그때, 단우현은 마치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는 것 같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장삼태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경청하며 바라봤다.
“무당에서 조사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 창시한 것인데 고작해야 체조일 리가 없지 않으냐? 어쩌면 그 태극권 속에 많은 이들이 알아채지 못한 비밀이 있을지도 모르지. 장삼봉조차 풀지 못한 비밀 말이다.”
“예?”
“누군가 그 심득을 풀어 주기 바라며 밖으로 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그 당시에는 워낙 경황이 없어 자세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장원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거듭 고민하며 그 의미를 해석하려 노력해 보니 답은 하나였다.
단우현은 결코 허언을 하는 자가 아니었다.
빙 둘러 말을 하거나 좀처럼 답을 주지 않기는 했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이 태극권이 바로 장삼봉조차 풀어내지 못한 절세의 신공이라는 것.
그리고 장삼태는 단우현에게 직접 태극권을 배웠다.
물론 손발 잡고 제대로 가르쳐 준 것은 아니다.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말해 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장삼태는 그럴 때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되새길 수 있도록 적어 놓았다.
그렇게 태극권을 익혀 나갔으니 언젠가 그 비밀까지 파헤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어요?”
“헤헤헤, 신경 쓰지 마!”
휙 하고 등을 돌린 장삼태가 어느새 쪼르르 단우현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남궁소혜는 그 뒷모습을 가만 바라보며 입술을 매만졌다.
“대단하지 않으냐?”
“……저한테 물어본 거예요?”
“그래. 내 눈앞에 너밖에 없지 않나.”
“하!”
어느새 다가온 권무진이 곁에서 중얼거렸다.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대단하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녀석이 익힌 것은 틀림없는 태극권.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저 단우현이라는 사람 덕분에.”
“그래서 그를 따르는 건가요?”
“물론, 나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으니.”
권무진이 그러한 말을 남기고는 쓰러진 이들을 포박해 나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어떠한 말을 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말이다.
그러나 그의 한마디는 남궁소혜의 귀에 머물러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한 번 입술을 곱씹으며 장삼태와 그 옆에 있는 단우현을 주시했다.
‘말도 안 돼……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