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70
“와…… 악양에 이런 곳이 있었어?”
단소미는 주위를 둘러보며 놀라움은 감추지 못했다.
많은 곳을 돌아봤다고 생각했다.
특히 악양에 대해서는 모르는 곳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유백이 데려온 이곳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며 온 적도 없었다.
주변은 평원이었다.
탁 트여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곳곳에 보이는 유채꽃은 장관을 이루었고, 뛰어가 그곳에 누워 뒹구니 꽃 냄새가 온몸에 배어 버릴 것만 같았다.
함께 따라온 홍진랑이나 주지약, 그리고 여은월마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역시 악양에 이러한 곳이 있을 것이라곤 조금도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폴짝폴짝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곤히 잠을 자는 백호와 백묘를 제외한다면, 모든 이들이 이곳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괜찮지?”
유백 역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발견한 장소에 아이들과 함께 찾아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듯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묘한 느낌도 있다.
오랫동안 악양에서 살고 있었던 주지약이나 홍진랑조차 이곳에 존재를 알지 못하였고, 주위에는 기묘한 안개가 끼어 있어 딱히 화창해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환상과도 같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인지, 뛰어놀기에만 정신이 없었고, 딱히 풍경에 신경을 쓰지 않는 홍진랑만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런 곳을 안 거야?”
홍진랑이 힐끗 유백을 바라봤다.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유백이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조차 알지 못하는 장소를 알아내었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우연찮게 말이지.”
그러나 유백은 하등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다.
홍진랑의 시선이 어찌 되었건 그저 눈앞에 있는 세 여아를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이었다.
홍진랑이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가끔 말이야. 넌 정말로 알다가도 모를 놈 같다.”
“하하, 자주 듣는 말이다.”
유백은 인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말은 마치 오랫동안 들어 봤다는 듯이 자연스레 내뱉고, 쭉 기지개를 켜며 찌뿌듯한 몸을 풀어냈다.
“그거 알아?”
“뭐가?”
“천운이 깃든다는 말.”
중얼거리는 유백의 시선은 홍진랑을 향해 있지 않았다.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오로지 단소미, 저 자그마한 아이에게 주는 시선에는 온갖 감정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어떠한 이유인가?
홍진랑이 인상을 썼다.
“그런 말 들어 본 적 없는데?”
“하하. 그래? 하지만 실제로 존재해. 물론 대부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기 마련이지만…….”
“천운이 깃들었다면서 죽어?”
“죽음 또한 그 천운의 하나이지.”
유백은 마치 오랫동안 산 노인처럼 세상의 흐름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사람은 살기 위해 삶을 살고 죽고 싶지 않아 발악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의 죽는 것 역시 천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극히 드물게 그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있다.”
“헤에…… 대단한 건가?”
“물론이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피한다는 것은 또 다른 천운. 그리고 그런 이들은 대부분…….”
“대부분?”
“세상을 발칵 뒤집는 무언가가 되지.”
유백은 게슴츠레 눈을 좁혔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홍진랑의 전신을 휘감았다.
기이할 정도로 흘러나오는 기세는 역겨움을 안겨 주었고, 속마저 울렁거려 토악질을 할 것 같았다.
또한, 지금까지 보아 왔던 유백의 표정과는 아주 다르다.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제나 사건의 중심이기도 하고…… 많은 것들을 불러 모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니까 빨리 죽여 놓는 편이 좋았던 것인데…….”
유백은 중얼거리며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하며 미끄러지면 빠져나온 칼날이 매섭게 빛을 발했다. 어린아이가 들고 다닐 법한 검이 아님에도, 쥐고 있는 유백의 모습은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이러한 검을 오랫동안 만져 본 자처럼.
홍진랑은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다가섰다.
마치 유백이 단소미를 죽이기 위해 가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야…… 너!”
거칠게 소리를 쳐 보지만 유백은 듣지 않았다.
성큼성큼 단소미를 향해 다가갔다.
한참 동안 뛰어놀던 아이들마저 기이한 유백의 행동을 눈치챘는지, 빤히 그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아가씨!”
여은월이 황급히 단소미와 유백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단검을 손에 쥐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검을 쥐고 다가오고 있는 유백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다.
결코, 접근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한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뭐야, 갑자기!”
주지약이 앙칼지게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분위기가 기이했다.
유백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명백한 살기.
그러한 것을 알고 있기에 막아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단소미만이 멍하게 유백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것을 보며 유백이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번거롭게 하네.”
“무슨……?”
사악!
사라졌다.
눈앞에 있던 유백의 모습이 느닷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란 여은월과 주지약이 휘둥그레 눈을 떴고,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백호와 백묘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동시에
카카캉!
격렬한 쇳소리가 들렸다.
단소미의 머리 위에서 터진 그 소리는 모든 이들을 경악케 했다.
검을 휘두른 유백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기이한 모습을 한 사내가 있었다.
얼굴은 가면으로 가렸으며, 키는 마치 팔 척은 되는 것처럼 크다.
전신이 근육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단해 보였으며, 가면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는 날카롭다 못해 상대를 찌르는 것 같았다.
“누…… 누구?”
털썩.
단소미가 그것을 바라보며 주저앉았다.
느닷없이 나타난 사내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든 것이다.
만약 유백이 칼을 휘둘러 막지 않았더라면, 단소미는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덜덜 온몸이 떨려왔다.
그 사내를 보는 순간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공포다.
“…….”
“놓쳤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나타날 줄이야.”
유백이 싱긋 웃었다.
사내를 향해 보이는 그 웃음은 조소가 머금어졌다. 찾고 있던 이를 만났기에 느껴지는 반가움, 그리고 그를 죽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살기.
그러한 모든 것들이 유백의 말 한마디에서 느껴졌다.
“……너였나? 나를 쫓고 있던 것이?”
“그래, 이런 어린 모습이라면 금방 나타날 거로 생각했는데 늦었구나.”
“…….”
“그래, 동생 놈은 어디로 가고 네놈 혼자 온 것이냐?”
딱!
유백이 손가락을 퉁겼다.
동시에 사방에서 기이한 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단소미와 주지약은 그들이 유백의 집에서 보았던 일꾼들임을 알았다.
“아가씨, 이쪽으로!”
그때, 여은월이 다급하게 단소미를 사내들 사이에서 떼어 놓았다. 그녀 역시 불안감 가득한 표정이었으나, 자신의 안위보다는 단소미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더욱 컸던 것 같았다.
사내가 다시금 움직이며 단소미를 노리려 하는 찰나, 유백이 그 사이를 가로막으며 검을 흔들었다.
“안 되지 안 돼. 내가 있지 않으냐?”
“…….”
“천하의 흉면쌍살…… 너를 앞에 두고 내가 긴장을 풀 것 같으냐?”
“……유백, 이 자리에서 죽인다.”
“하하,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웃고 있기는 하지만 유백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놈의 뒤를 쫓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는 하나, 놈이 얼마나 강한지 역시 몸소 알고 있다.
설령, 팔선이라 할지라도 그와 같은 경지에 올라와 있는 이를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뭣들 하느냐? 도망치거라.”
유백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단소미를 향해 소리쳤다.
저들의 목적은 틀림없이 단소미.
그렇기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목적을 잃게 하는 것이다.
“도망치게 놔둘 성싶으냐?”
“하하, 그건 내가 할 말이라네.”
슥슥.
유백의 수하들이 사내를 둘러쌌다.
뒤를 쫓다 이제야 발견하였으니 이번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그런 투지가 느껴지는 눈빛들이다.
“가거라!”
이윽고 유백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하아, 하아, 하아.”
“도, 도대체 뭐야?!”
“…….”
도망치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은 크게 흔들렸다.
친구라 믿고 있었던 유백이 단소미를 공격하려 하였는데, 그것이 알고 보니 공격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또 말을 듣고 있자니 그들이 알고 있는 유백은, 평범한 아이가 아닌 것 같았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해졌으며, 어린 그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좋아요! 지금은 당장 이곳을 벗어나 집으로……!”
“크와아아앙!”
단소미의 곁을 지킨 채 달리고 있는 백호가 느닷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 강렬한 소리는 온 사방에 울려 퍼졌으며, 마치 적을 위협하는 것처럼 살기가 가득했다.
달려가고 있던 아이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다리가 멈춰졌고 움직이지 못했다.
백호의 울음소리가 그만큼 강렬했던 것이다.
그때.
저벅저벅.
묘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그리 멀지 않고 또한 가깝지 않은 곳.
하지만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을 정도로, 소리는 점점 그리고 확고하게 귀에 들렸고,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뭘까?
분위기가 기이할 정도로 스산했다.
바람결은 차갑고 몸은 극도로 긴장한 것처럼 굳어졌다.
소름이 돋고 부들부들 떨려 왔다.
“허허, 어디를 그리 가느냐?”
이윽고 수풀이 갈리며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자.
사도학이나 남궁천, 그러한 이들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그 노인을 보는 순간, 백호와 백묘가 털을 곧추세우며 이빨을 보였다.
분명, 겉보기에는 아무런 느낌조차 없는 노인임이 분명한데, 기이할 정도로 스산하며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여은월과 백호가 단소미와 노인을 가로막으며 섰다.
“무…… 무슨 일이시죠?”
여은월이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한 느낌이 들기에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고, 눈빛에는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노인이 그것을 바라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
“도망가지 않느냐?”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너희를 구해 줄 유백은 다른 놈과 있고…… 내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구나. 그런고로…… 너희들의 목숨은 이 노부에게 달려 있는 것 아니더냐?”
아이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평소 침착함을 보이는 단소미마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지금까지 만나 왔던 그 어떤 이들과는 다른 그 감각이 치가 떨릴 만큼 싫었다.
그래도 묻는다.
목소리에 힘을 주고 앙칼지게 언성을 높였다.
“누구…… 세요!”
그 말을 듣고 단소미를 바라보며 노인은 웃었다.
참으로 대단한 아이이지 않은가?
하나부터 열까지 그를 쏙 닮아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부는 류태서라 한다…… 기억만 해 두거라. 곧 잊힐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