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473
쾅!
유백은 휘둘러진 검을 막으며 물러섰다.
묵직하게 내려쳐진 기운이 어찌나 강맹하던지, 손에 쥐고 있던 칼날을 놓쳐 버렸다. 그것과 동시에 흉면쌍살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치고 들어왔다.
반드시 그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담은 한 수.
‘큭?!’
유백은 인정해야 했다.
상대를 너무 얕보았다.
팔선에 오르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류태서의 오른팔. 특히, 흉면귀가 아닌 그 형이라 한다면 그 강함이 팔선에 버금간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자였다.
그런 이를 제압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 한편으론 자신의 승리를 확실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백의 수하들은 모조리 죽어 나자빠졌고, 살아남은 것은 고작 유백 혼자다.
또한 그 역시 위태위태하였다.
이윽고 날아 들어온 검은 그대로 유백의 몸을 갈랐다.
촤악!
피가 솟구쳤다.
아득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머릿속을 자극했다. 이를 악물고 버텨 보려 하지만, 몸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죽음을 기다리는 것 정도다.
캉!
그때, 흉면쌍살의 검이 쳐 올라갔다.
깜짝 놀란 것은 유백만이 아니다.
흉면쌍살 역시 반보 뒤로 물러서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튕겨져 나간 검이 웅웅 하며 울음을 터트리고, 그 묵직함이 아직도 남아 손아귀가 떨려 왔다.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행이네요. 살아 있어서.”
“주…… 죽을 뻔했다.”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남주련이다.
한 자루의 칼날을 손에 쥐고 흉면쌍살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으며, 풍겨 오는 기세 또한 남달라 어떤 이라 할지라도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남주련인가……?”
“처음 뵙는 거죠? 이름이?”
“흉면쌍살…….”
“이름조차 없으신 모양이군요.”
남주련은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름이 아닌 별호를 댄다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름을 얻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주련에게 있어선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녀가 힐끗 시선을 돌렸다.
“이분을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스윽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남궁천이다.
다소 지친 듯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상대가 내뿜는 기세를 느낀 것인지 그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조심스레 유백을 향해 다가가 쓰러진 그를 끌고 안전한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중상을 입은 몸이기는 하지만, 남주련은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안다.
“저쪽에 류태서가 있을 테죠?”
“……글쎄?”
“비키세요.”
우웅!
남주련의 검이 울었다.
검명을 터트리며 퍼져 나가는 강맹한 기세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흉면쌍살 역시, 그것을 느꼈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검을 쥐었다.
이는 목숨을 걸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당장…… 비켜!”
사악!
사라졌다.
흉면쌍살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다. 어찌하여 이 여인을 그렇게 천무제가 그리고 천무광이 경계를 했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언가 기척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반대쪽에서 칼날이 날아들었다.
촤악!
“큭?!”
등이 베이고 급하게 몸을 틀며 칼을 휘둘렀다. 무언가 스치고 벤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곳에는 남주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찌 된 노릇인가!
감각을 곤두세우고 그녀의 기척을 찾으려는 순간.
서걱!
“크악!”
오른팔이 날아오르며 피를 뿌렸다.
칼을 쥔 손이 떨어지고 순간적으로 눈앞이 번뜩였다.
서걱!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된 인지조차 하지 못한 그 순간, 번뜩인 무언가가 목을 스치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우두커니.
흉면쌍살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대로 선 채 정면을 바라봤다.
어느새 가슴이 살짝 베인 남주련이 모습을 드러내며 가볍게 검을 터는 모습이 보였다.
“으흐…… 흐흐…….”
“뭐가 우습죠?”
“팔선 중 제일이 천무광이 아닌 네년이라 하더니 틀린 소리는 아니로구나.”
“…….”
“과연…… 무신의…… 제자…… 인가…….”
촤락!
말을 내뱉는 순간.
흉면쌍살의 목이 치솟아 올랐다.
피가 터져 오르고 몸뚱이는 휘청이며 그대로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철퍼덕.
격렬한 소리와 함께 엎어진 시신에선, 꾸역꾸역 피가 새어 나왔으며, 덩그러니 구르는 머리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눈을 부릅뜬 채, 남주련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기분 나쁘게…….’
남주련은 인상을 썼다.
수많은 이들을 상대해 보았지만 이토록 기분 나쁜 이는 또 처음이다.
과연 한때 이 중원에서 악명을 떨치고 또한 류태서의 수하가 된 이유가 이러한 것 때문이었을까?
입술을 곱씹은 그녀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너무 조용한데……?”
류태서의 기운을 느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빨리 도달했던 것인데, 기이할 정도로 조용하다. 설마 하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을 품고 내달렸다.
흉면쌍살을 죽였다는 것에 대한 기쁨도 만족감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상황이 기묘하여 그녀는 어떤 성취감조차 달성한 느낌이 없었다.
그저 내달렸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린 그녀는, 이윽고 한 장소에 도착했다.
“……!”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휘둥그레 눈을 떴다. 엎어져 있는 백호와 백묘가 보였으며, 혼절한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또한 쓰러져 있는 낯익은 여아 또한 있었는데, 심각한 중상을 입은 것인지,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울컥울컥 피를 쏟고 있었다.
“이게…… 대체…….”
쓰러져 있는 것은 단소미다.
죽어 가는 눈동자, 핏기 하나 없이 흐릿하게 치켜뜬 시선이 그녀를 바라봤다.
표정 하나 바꿀 힘조차 없는 것인지 자그마한 호흡만을 연신 쉬어 대는 모습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바라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놀란 남주련이 허겁지겁 다가왔다.
류태서의 목적이 무엇이었기에 어린 단소미를 해하였는가? 그저 단우현을 화나게 할 목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 미호가 조심스레 단소미를 끌어안았다.
눈물을 흘리며 지그시 죽어 가는 아이를 바라봤다.
슬픈 눈동자.
만약 단소미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다면, 자그마한 손을 뻗어 그 눈물을 닦아 주고 싱긋하며 웃어 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류태서…… 가…… 이 아이의 몸에…… 천환옥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남주련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이 주저앉았다.
천환옥.
선계의 문을 열기 위해 존재하는 옥이다.
선계란 본디 이승과 저승 사이에 존재하는 곳. 그렇기에 팔선이라 불리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천제의 부름 없이는 함부로 갈 수가 없는 곳이었는데, 그곳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천환옥이라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천환옥이 오행의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어야 했는데,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팔선에 올라 있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다 바쳐 선력을 쏟아 내어도 그 양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영물의 내단.
그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미호의 구슬이다. 천 년의 세월을 머금은 오행의 기운은 틀림없이 천계의 문을 열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양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오행의 기운을 마음대로 움직일 힘.
즉, 천일조화공을 익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단우현만을 위한 무공.
익힐 수 있는 이가 없다.
그제야 미호와 남주련은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무신도경이 만들어진 이유 역시 완벽히 깨달았다.
또한 단소미가 천운을 가진 이유.
그것은 바로 단우현을 만나기 직전, 천환옥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이든 간에.
“완전히…… 놀아났네요…….”
이러한 충격이 또 있을까?
남주련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천무제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
천환옥을 탈취한 것 역시 그였으며, 단우현이 깨어난다는 사실을 파악한 그는,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율한 것이다.
단소미를 만나 천환옥을 품게 하였을 테고, 그 마을을 습격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죽였으며 그녀를 구해 내어 단우현이 있는 곳에 놓아두었다.
비천웅은 자신의 행동이라 생각하였을 테지만, 알 게 모르게 천무제의 꼭두각시처럼 따랐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수련을 하는 도중 태어나 처음으로 구한 아이가 있다며 누구보다 기분 좋게 웃음을 지었던 비천웅을 떠올리는 순간, 남주련은 마음이 쓰라렸다.
또한 단우현, 그의 천살성이 사라졌음을 깨달은 천무제는, 그가 결코 죽어 가는 아이를 버려두지 않을 것이란 확신마저 있었을 것이라 추측되었다.
자연스레 상황을 만들어 단우현이 움직이게 만들어 두었고, 혈마를 부추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며 어쩔 수 없이 단우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단소미에게 내주게 했다.
이러한 상황 하나하나를 되짚어 본다면, 단우현은 물론이고 모든 이들이 천무제의 손아귀에게 놀아나게 된 셈이다.
심지어 자신의 제자였던 혈마마저.
남주련은 뿌득 이를 갈았다.
눈앞에 천무제가 있다면 당장 갈가리 찢어 죽일 셈이다.
그때, 묘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청아한 느낌.
바람마저 산들거리며 부드럽게 몸을 감싸 안는다.
바람이, 불이, 땅이, 그리고 물과 빛이.
마치 주위를 감싸 안는 듯싶었으며 그것은 곧 한곳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뭐…… 뭐 하는 건가요?!”
남주련이 깜짝 놀라 언성을 높였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단소미를 안고 있는 미호가 자신의 공력을 모조리 그 아이에게 내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손에 쥔 기이한 구슬을 죽어 가는 아이의 입에 넣어 두고는, 그것을 삼키는 것을 확인하며 싱긋 웃었다.
“이 아이는 살아야 해요…….”
“당신……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나요?”
남주련은 기가 찬 표정으로 미호를 바라봤다.
그녀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지고지순한 영물의 왕이라 불리는 그녀의 모든 것을 내주고 있다.
커다란 구멍이 났던 몸이 서서히 치유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단소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공력이 사라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미호의 힘으로 서서히 채워 나가고 있었다.
영물의 힘이 고스란히 깃드니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고, 핏기 없던 얼굴은 서서히 본연의 형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 아이가 죽어…… 또 그분이 알게 된다면…….”
“…….”
“그분의 그런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요.”
미호는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떨궜다.
오래전 보았던 단우현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그의 고독함을 알고 있는 것인지 애잔함과 슬픔이 교차했다.
이윽고 그녀의 모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동시에 마치 모래성이 부서져 사라지는 것처럼 그녀의 몸이 옅어지고, 흩뿌려지고 있었다.
“저는…… 믿어요. 그분을, 그리고 이 아이도. 그러니 반드시…….”
미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어느새 그 몸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으며 목소리마저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힘을 얻은 흐릿한 단소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단소미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을 정도의 깊은 슬픔에 빠진 것 같았다.
단소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미호가 있던 곳을 매만져 보았다.
하지만 손은 허공을 가르고 더는 미호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